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77)
하일렌 제국의 황녀 궁.
로잘린은 자신을 감시하는 궁인들의 눈빛에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래! 안 간다! 안 가!’
저번에 휴가 중인 언니랑 놀기 위해 비밀 통로로 자주 나갔다가 걸렸다.
그 이후, 궁인들은 로잘린에게 물 샐 틈 없이 붙어서 그녀를 감시 중이었다.
“황녀 전하. 심심하시면 수를 놓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맞습니다. 수를 놓은 손수건을 베르웬 공작님께 선물하시면 좋아하실 거예요!”
제국에서 가장 높은 여인이 있다면, 황후가 없는 지금으로선 로잘린이었다.
“피곤하니 다 나가 주겠니?”
“……예. 전하.”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여인이면 뭐 하나, 집 밖도 마음대로 못 나가는데.
‘언니는 그런 거 말고 케이크를 더 좋아할 걸.’
로잘린이 궁인들이 놓고 간 바느질 도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미쳐 진짜!]”
한동안은 밖에 못 나갈 것이다.
몇 년 전 빙의한 로잘린이 망둥이처럼 뛰어다닌 걸 궁인들은 기억했으니까.
그들은 아닌 척하며 창문 너머로 로잘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니한테 가야 하는데…….]”
로잘린이 르윈에게 받은 서신을 들어 보았다. 한글로 적혀 있는 그 서신을.
흑마법이 풀렸다지 않나.
엄청 힘들고, 수습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지?
“레시우스도 휴가인데.”
설마 같이 있는 건……? 에이. 그럴 리가 없지.
***
나와 레시우스는 라텔이 내준 레시우스의 방에서 독서 중이었다.
‘사실 방도 아니고.’
별채랄까? 고아원 옆에 붙어 있는 별채 안이었다. 거의 창고같이 쓰는 곳.
“크흠.”
헛기침을 한 레시우스는 내가 공부하라고 준 연애 서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도대체 누가 쓴 거야. 제목부터가 이상해 미친 공작이라니!’
끙. ‘미친 공작’이라는 책을 보고 있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그동안 나를 이런 식으로 봤던 건가?
분명, 나를 모티브로 썼을 이 책의 주인공은 상또라이였다.
좋아하는 사람의 다리를 부수고, 못 나가게 탑에 철창을 달고, 얼굴 안 보여 주려고 로브로 둘둘 말고.
아니.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야?
“……많이 재미있으십니까?”
흥분해선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든 나는, 도착하자마자 책을 읽었고.
이젠 결말 부분만 남겨 두고 있었다.
“예.”
엄청요.
치욕적이지만 정말 재밌네요.
‘자극적인데 재밌어!’
못 끊겠어.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에 이미 창에 든 빛이 오렌지색이었다.
벌써 해가 질 때가 된 것이다.
“아. 죄송해요. 읽다 보니 너무 집중했어요. 혹시 궁금한 점 있으세요?”
나는 말 그대로 ‘숙제’ 중인 레시우스를 바라봤다.
서점에 가 미친 공작의 책을 사고, 서점 주인에게 추천받은 연애 서적을 레시우스에게 건네줬었다.
“……혹시.”
레시우스가 든 책은 여전히 페이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상하네. 쟤 책 읽는 속도면 이미 다 읽었을 속도인데.
“혹시, 내용 확인해 보셨습니까?”
“예?”
서점 주인이 추천해 준 책도 너무 많았고, 와서는 다리에 붙는 아이들을 떼 내느라 정신없어서 확인 못했다.
뭐. 미친 공작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예에?”
교재를 확인도 안하고 건네준 선생이라니.
나는 애매하게 ‘예?’와 ‘예-’의 사이의 음으로 대답했다.
“……그러시군요.”
발그레한 뺨으로 레시우스는 고갤 돌리며 큼, 하고 헛기침했다.
뭐, 뭐야. 내용 이상해?
“수, 숙제 확인을 할까요?”
지금 보니 표지도 이상했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던 남녀 지침서.’
그니까 귀족 예법이나 그냥 연애 지침서에 관한 책은 굉장하게 많았다.
즉. 많이들 그 내용을 알려 주는데?
근데 저 책은 왜 아무도 안 알려 주는 내용을 다룬대?
“아닙니다. 나, 나중에 확인하십시오.”
레시우스는 당황해서 책을 들어 올렸다.
야아. 너 내가 지금 키로 그 정도는 못 잡을 거 같지?
내 키가 본래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점프까지 못 하는 건 아니거든.
“아……!”
점프한 내가 레시우스의 손에서 책을 뺏었고, 그는 소파로 가는 나를 붙잡으려 했다.
“보, 보시면 조금 민망…….”
레시우스가 따라와 날 만류했고, 나는 책을 펴자마자 그 이유를 알았다.
‘으아…… 이게 뭐야!’
으으응-스럽고 야설적인 그림에 내 볼이 빨개졌다.
레시우스가 보던 앞부분은 그나마 글이 적혀 있었지만, 뒤는 죄다 그림이었다.
어쩐지 페이지가 안 넘어가더라.
보니 레시우스는 작가 약력과 작가 자랑이 적힌 서론만 계속 읽은 모양새였다.
“……제가 말했지 않았습니까.”
귀까지 빨개진 레시우스가 내 손에 든 책을 건네받으려 하는데.
탁-.
문이 열리며 라텔이 와서 우리에게 소리쳤다.
“비상!”
비상?
“뭐가 비상인데?”
“조세 관리국에서 시찰 나왔대!”
라텔이 나를 잡으려 했고, 레시우스가 라텔이 잡지 못하게 날 그의 품으로 끌었다.
이 반응 속도 뭐지?
“조세 관리국에서 나온 게 큰일인가?”
“하하. 당연히 큰일이지.”
라텔이 제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여기 고아원엔 어른이 없어.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른이 없다고 미뤘지만…….”
“납부할 세금이 있나?”
레시우스의 말에 라텔이 고갤 끄덕였다.
어른이 있으면 세금 내라 독촉할 테니 숨으라는 뜻이었다.
야아. 그 세금 받는 황제가 눈앞에 뻔히 있는데…….
“이상한데.”
“이상하군.”
나와 레시우스는 동시에 중얼거렸다. 고아원은 조세 징수 대상이 아닌데?
“아무튼 여기에 들어가!”
라텔이 별채에 딸린 문을 열었다.
창고 같은 방에 달린 진짜로 창고로 쓰는 방이었다.
잡동사니를 넣는 아주 작은 창고인데, 일인용 소파가 들어간 터라 발 둘 곳이 없었달까.
“야. 잠시만……!”
문을 쾅, 하며 닫는 라텔 덕에 나는 거의 레시우스와 딱 붙어 서게 됐고.
“아, 앉으시는 게 좋으시겠어요.”
사람 한 명도 서기 힘든 공간에, 키 큰 레시우스는 불편하게 고갤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소파에 팔걸이에 앉혔고, 자연히 그의 허벅지에 앉게 됐다.
“…….”
작은 틈 사이사이로 드는 빛에, 핏줄 돋은 그의 손등이 보였다.
실밥 풀린 소파 팔걸이를 꽉 쥐려는 그 손끝도.
“하하. 얼른 가겠죠.”
“……예.”
더운 호흡이 섞인 목소리였다. 갈라진 목소리가 유난히 섹시…….
어머. 어머. 무슨 생각하는 거야.
“어른들은 없습니다!”
조세 관리국의 사람들은 라텔의 얘기를 들으며, 현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별채 문이 열려 있어서, 문틈으로 바깥 상황이 보였다.
“우리가 알아서 하겠으니 계집애는 저리 가라!”
“이게 수색하는 게 아니면 뭡니까!”
하얀 제복을 입은 행정관이 라텔을 뿌리쳤다.
애한테 저러면 안 되지!
“저…… 누이, 제발.”
격분한 내가 엉덩이를 들썩이자, 뒤에 붙은 레시우스가 윽-, 하며 옅은 신음을 뱉었다.
아. 미안.
“그런데 저 별채는 뭐냐.”
“창고입니다.”
아. 들키겠네.
서서히 다가오는 누군가의 다리를 문틈으로 보는데.
……어?
별채 안에 들어와서, 주위를 훑는 그 사람의 안면이 익숙했다.
그가 별채 안에 딸린 창고로 걸어오고 있었고.
“폐하. 무례를 용서하세요!”
“……예?”
나는 나를 뒤에서 껴안은 자세인 레시우스의 고갤 내 어깨로 확 묻었다.
동시에 문이 열렸다.
“……크흠.”
“허. 거참.”
행정관 중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하급 관리지만 마르토스 공작을 보러 행정부가 있는 날개 궁을 왔다 갔다 하는 자고.
‘레시우스 얼굴을 알 수도 있어.’
나는 내 어깻죽지에 파묻힌 레시우스 얼굴을 더 깊숙이 묻었다.
달아오르다 못해 뜨거운 체온, 나직한 더운 숨이 어깨에 닿았다.
“가, 가자.”
세금을 받으러 왔다던 행정관들은 민망한 광경에 발길을 돌렸다.
저렇게 쉽게? 세금 받으러 왔다며?
태만한 그들의 행동이 오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아닌 흥분 섞인 레시우스의 호흡이 뒤따랐다.
핏대선 팔로 날 안고 있던 그가 소파에 박아 넣었던 손끝을 움찔했다.
얼마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그 주위의 실밥이 터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온몸에 핏대를 세운 채, 날 안고 있는 레시우스의 터질 것 같은 붉은 귀를 바라봤다.
그래. 이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같다.
내 흑마법이 풀렸던 그때.
바이우드, 버려진 신전, 기사.
생각날 듯 말 듯, 어지럽게 보이는 잔상에 혼란스럽게 눈을 굴렸다.
뭐, 뭐지?
***
그 시각, 하일렌 제국의 제도.
빈민가의 초입 부분에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마차가 서 있었고.
“확인해 봤나?”
“예.”
행정부의 수장인 마르토스 공작의 명으로 고아원에 들어간 행정관이 고갤 끄덕였다.
“금발의 남자와 회색 머리를 가진 여인이 있더군요.”
정말 세금을 징수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저 안에 황제와 베르웬 가의 사생아가 있는지 확인한 것뿐.
두 남녀가 엉켜 있는 걸 확인하곤 바로 나온 것이다.
“안에서 무슨 일 있었나. 얼굴들이 왜 그런가?”
마차에 올라타려던 마르토스 공작이 민망한지 큼큼거리는 행정관들을 돌아봤다.
“젊은 자들이 혈기 넘치더라고요.”
“크흠. 예”
마르토스 공작이 골목에선 제일 큰 저택인 고아원을 바라봤다.
‘폐하의 혼을 쏙 빼놓고 있나 보군.’
그 깔끔 떠는 황제가 저기 있는 것부터가, 그 사생아에게 얼마나 빠졌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였다.
“가자.”
마르토스 공작이 떠난 후, 밤이 찾아왔다.
***
어둑한 밤에 자다 말고 나는 허리를 일으켰다.
‘바이우드, 버려진 신전, 기사.’
분명히 내가 흑마법에 풀렸을 때. 그때 뭔 일이 있었던 거 같다.
레시우스와 작은 창고에 앉아 있을 때, 그때 어떤 환영을 봤었다.
‘르윈.’
흐릿한 영상 속이지만, 나를 부르던 그 젖은 목소리는 또렷했다.
빛에 번져 흐릿한 실루엣. 이어지지 않고 끊기는 잔상들.
“딱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그런 자세를 취해 보면 조금 더 기억날 것도 같은데.
그래서 나는 방을 나섰고.
끼익-.
레시우스가 지내는 별채의 문은 잠그지 않은 탓에 바람에 절로 열렸다.
난 열린 문을 넘어 별채에 발을 디뎠다.
알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잔상이 진짜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만들어 낸 환상인지.
‘르윈.’
젖은 음성으로 자신을 불렀던 그 목소리가, 참아 내기 위해 손등에 핏대를 세운 채 신전 바닥을 긁던 그 손이.
“밤늦게 여긴 어쩐 일로…….”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를.
내가 레시우스를 살짝 밀쳐 소파에 앉혔다.
씻은 지 얼마 안 된 레시우스가 젖은 채로 날 올려다봤다.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 잔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