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iacs are Obsessed With the Fake RAW novel - Chapter (80)
나는 내 측근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틀어막고 싶었다.
‘바이우드에서 미스릴이 나왔다고?’
바하트 제국이 바이우드를 별다른 큰 문제 삼지 않고 넘긴 건, 그 땅이 별로 가치가 없어서였다.
근데 미스릴이라니! 분명 켈리언이 꼬투리 잡아서 쳐들어오려 할지도 모른다고!
‘서신의 내용이 그런 것일 줄이야!’
나는 영문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이우드에서 서신을 받긴 했다.
레만의 전설담에서 4장 5절, 8째 줄.
근데 그 전설담을 구하기가 힘들어 아직 찾아야 했다. 몇 개 있는 건 누가 사서 다 태웠단다. 그래서 내용을 파악도 못 했었는데…….
내가 충격에 멍해져 있는 사이.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회의를 파하지. 다 돌아가게나.”
“예. 폐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레시우스는 바이우드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는 듯 빠르게 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허허. 바이우드에 미스릴이라니. 쓸모없는 땅이 아니었군.”
“그러니까 말이오.”
“그간 다 베르웬 공작님의 큰 계획이셨나 보오!”
아냐! 나도 몰랐다고!
나도 방금 알았어!
그래도 그걸 티 낼 수는 없으니, 그냥 잠잠히 허공을 바라봤다.
아. 공기가 되고 싶다.
“마르토스 공작님. 이쪽으로 가시지요.”
“알겠네.”
나를 노려보던 마르토스 공작도 휙, 하며 대전을 빠져나갔다.
저 양반은 날 왜 저리 싫어해.
저번에 마르토스 공작 집 근처 도로 증설 계획을 내가 반대해서 삐진 게 분명했다.
아니. 그 돈이면 빈민 수천을 구제해요. 본인 돈으로 하던가.
“하아.”
옅게 내뱉는 한숨 사이로.
쿵-.
거대한 대전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이 너른 대전에 나랑 레시우스만 남은 걸 확인했다.
……다들 돌아와!
‘고아원 이후로 처음 보는 거라고!’
아직, 아직 어색해!
“르윈.”
황좌에서 내려온 레시우스가 내 앞에서 섰다.
자신이 더 아프다는 듯, 걱정되는 눈빛으로 그가 날 빤히 응시했다.
“혹시 울었어?”
사실, 울긴 했다.
나한테도 곧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급작스러웠으니까.
“아냐.”
“…….”
“재채기 참아서 그런가 봐.”
그렇다고 나 시한부 선고받아서 울었다고 레시우스한테 어떻게 말하겠나.
나는 그의 눈을 피하며, 뺨을 긁적였다.
“그래. 그렇구나.”
전혀 내 말을 믿지 않는 투였다. 끙, 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니까.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레시우스가 내 손끝을 슬며시 쥐려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피했다.
얘가, 얘가! 갑자기 이런 스킨십을?
“……예전이라면 너는 안 놀랐을 거야. 르윈.”
“…….”
“우린 이 정도는 하는 친구였거든.”
레시우스가 내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꼬아진 새끼손가락을 레시우스가 들어 올렸고.
“앞으로 혼자 울지 마. 약속해 줘. 응?”
그가 나를 보며 채근했다.
“운 거 아니라 재채기 참은 거라니까.”
“그래. 그럼 재채기 안 참기로 해.”
레시우스의 눈동자에 들어찬 염려를 알기에, 나는 고갤 끄덕였다.
내가 어렸을 때 가르쳐 준 것처럼 그가 엄지로 꾹 내 엄지에 도장을 찍었다.
“약속했으니까 못 물러.”
레시우스가 시선의 위치가 비슷한 곳에서 자신의 이마로 내 이마를 맞춰 왔다.
“울지 마. 르윈. 그럼 난 가슴이 찢어져.”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의 영롱한 초록빛 눈동자가 날 보고 있었다.
어째, 점점 볼이 뜨거워지는 거 같기도 하고.
“하하! 그래, 친구로서! 고민 있으면 너한테 꼭 가서 상의할게!”
나는 유달리 ‘친구’에 강세를 주고, 오버하며 거리를 벌렸다.
“친구……. 그래, 친구.”
열감이 서린 내 얼굴을 보며, 레시우스가 얽혀 있던 새끼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을 장난치듯 간지럽혔다.
“야아. 간지러워.”
“친구끼리는 이 정도 장난은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러더니 진득하게 눈 맞춤을 해 왔다.
“안 그래?”
으아. 안 돼. 저런 비주얼은 역시 위험하다.
“그래! 그렇지! 친구끼리 이 정도도 할 수 있지……!”
나는 더 타오르는 뺨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그에게 어깨동무했다.
그러고는 좀 더 힘차게 대전 문을 열어젖혔는데.
‘……아직 여기까지는 아닌가?’
붉어진 그의 귓가를 보며, 시간이 더 필요한 걸 깨달았다.
나와 레시우스는 다시 야외 복도를 나란히 걷기 시작했고.
어쩐지 한참이 돼도 열감이 가라앉지 않는 레시우스의 귀를 본 나는 입을 뗐다.
“레시우스…… 너 무슨 생각해?”
“음?”
“아니, 진짜 무슨 생각해? 진짜로? 진심으로 방금 뭔 생각했는데?”
“……43번?”
야아. 죽을래?
***
그리고 바하트 제국.
켈리언은 권태롭게 황좌에 누워 있었다.
침의에 겉 의복만 대충 걸친 그 모습은 황태자일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폐하.”
그럼에도 그 누구도 켈리언의 방만한 자세에 대해 지적할 수 없었다.
대신들은 똑똑히 기억했다.
이 대전에서 피에 젖은 켈리언이 선황의 머리칼을 쥔 채 질질 끌고 다녔던 모습을.
“……바이우드에 미스릴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예. 하일렌 제국의 시찰단이 일부 채굴까지 해 확인해 봤다고 합니다.”
황무지의 땅인 바이우드에서 발견된 미스릴.
이를 안 바하트 제국의 대신들은 한동안 배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차피 내전 중에 일어난 일이니, 이제라도 바이우드를 다시 찾아오자고 말은 하고 있지만.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데?”
황제인 켈리언이 영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대신들은 다시 입을 달싹이려다가.
“예, 예. 폐하의 말씀도 맞는 거 같습니다.”
“예. 미스릴은 바하트 다른 영지에서도 종종 나오지요.”
켈리언의 그만하라는 눈초리에 입을 다물었다.
저건 한 대 맞는 정도가 아니라 찢어 죽일 것 같은 눈초리 아닌가.
“시끄러우니 다들 나가라.”
그렇게 대신들을 다 물린 켈리언은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에 있던 수하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폐하.”
“그래서 하일렌의 내부 상황을 알아봤나?”
켈리언에게 온 수하가 자신이 들었던 바를 보고하려 부복했다.
“예. 역시 예상과 같이 내부에 분열이 있습니다.”
켈리언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군부는 베르웬이, 상계는 마르토스가.
하일렌 제국 내는 이렇게 두 공작가가 세력을 양분해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 형세로 보자면 베르웬 공작가가 급격하게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하일렌 제국으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르토스 공작가도 문제지만, 황제의 최측근들이 더욱 불안해하고 있지요.”
“하긴, 베르웬 공작이 황제의 세력 중 가장 중심을 맡고 있으니.”
혹여 베르웬 공작이 황제를 배신하지 않을까, 공작이 따로 독립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예. 그래서 황제의 최측근 사이에서는 베르웬 공작과 하일렌 황녀와의 혼인이나 약혼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하아. 뭐?”
턱을 괴고 있던 켈리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베르웬 공작이 혼인이라…….”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
“하일렌 황제가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이 얘길 듣자마자 켈리언의 심사가 이리 배배 꼬이는데, 하일렌 황제의 속은 더 심하겠지.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그 혼인을 막으려 할 것이다.
하일렌 황제는 공작에게 미친 놈이니까.
‘미친놈이 한 명 더 있을 줄은 몰랐지만.’
켈리언은 의외의 복병으로 떠오른 8황자, 샤비얀의 하얀 얼굴을 떠올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렉티스로 간 아이. 심지어 아직도 죽지 않았는지 렉티스는 여전히 격동하고 있었다.
‘혹여라도 그 아이가 드래곤의 힘을 계승한다면.’
바이우드. 그곳은 양날의 검이었다.
미스릴을 가진 영지가 되었으나, 여전히 드래곤의 땅과 맞닿아 있는 영지이기도 하니.
“쓸데없는 생각을 했군.”
절대 8황자, 그 나약한 아이가 렉티스의 주인이 될 수 없을 터인데.
켈리언이 황동상이 걸린 팔걸이를 두드렸다.
***
끙. 이제야 조금 실감 난다.
바이우드엔 진짜 미스릴이 있었다. 시찰단이 다녀온 후, 당연히 제국은 난리가 났다.
“어머! 그러면 다 베르웬 공작님의 계획이었던 거예요?”
“허허. 그러게 말이오. 참 철두철미한 분이시라니까.”
아니야! 아니라고요!
왜 다들 내가 샤비얀을 앞세워서 흑막처럼 바이우드를 먹은 걸로 아는 건데.
바람에 섞여 오는 황궁 내 소문을 들으며, 머릴 부여잡았다.
“렉티스 근처가 심상찮더군.”
“나도 들었네. 바람이 엄청 분다던데.”
대전 앞에 파벌대로 모여 얘기하던 사람들이 날 발견했고.
“베르웬 공작님!”
“공작님! 오셨습니까!”
너나 할 거 없이 와서, 연신 인사를 해 왔다.
고개 숙이는 각도 봐. 예전보다 한 수십 도는 더 내려간 거 같다니까.
이 고개 각도.
차암, 사소한 건데.
‘사소한 게 아니지.’
권력 구조의 변화다. 정쟁이 일어나기 딱 좋았달까.
요즘엔 대신들이 어디에 붙어야 할지, 눈 돌아가는 게 빤히 보일 정도였다.
특히 황제의 최측근들이 많이 불안해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바이우드를 차지했다 생각하는지, 내가 딴마음 먹은 거 아니냐 이렇게 의심들을 했으니.
나야. 절대로 레시우스를 배신하지 않을 건데 말이다.
정작,
‘르-윈.’
대전으로 들어오면서 입 모양으로 내 이름을 만들며 장난치는 레시우스는 태평해 보이지 않나.
‘분란 생길지도 모르는데, 바이우드를 황제 직할령으로 돌리는 건 어때?’
나는 레시우스에게 이리 말했지만, 그가 거부했었다.
끙. 그냥 이 소란이 잦아들기를 바라는 수밖에.
내가 꾸준히 레시우스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들 가지고 있던 의심을 걷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폐하! 꼭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해 보게.”
그리고.
“황실의 기쁨인 황녀 전하와 제국의 방패인 베르웬 공작님은 모두 아시다시피 각별함이 남다른 사이십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으응?
……나랑 로잘린 얘기가 왜 대전에서?
그리고 곧 이 말을 한 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들은 나를 못 믿는구나. 그래서 로잘린과 혼인시켜 황가의 일원으로 묶어 두려는 거구나.
혼인은 레시우스가 아직 미혼이니 말하지 못할 것이고…….
“이제 두 분이 결실을 이루실 때이지요.”
황제의 최측근 인사들이 고갤 깊게 숙였다.
“그렇기에 두 분의 약혼을 진지하게 고려해 주시옵소서.”
하.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