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05)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05)화(105/177)
#105.
‘응? 정화할 게 없다고?’
나는 곧장 쓰러진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뒤늦게 그가 티미라는 것에 놀라 숨을 삼켰다.
“티미?”
바닥에 널브러진 티미를 붙잡아 흔들자 그가 신음을 터트렸다.
“으으.”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는 금방 수마에 빠져들었다. 나는 기절한 티미를 요리조리 살폈다. 정령의 말대로 정화할 것도 없는 상태였다.
분명 멀리서 봤을 때만 해도 오염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정령사인 내가 곁에만 있어도 오염이 물러나는 건 아닐 텐데.
그게 이상해 고개를 갸웃거리니 정령이 저들끼리 티미의 상태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 얘 말이야, 신성력이 꽤 있었나 봐. 손쓸 것도 없이 알아서 오염을 없앴는데?
그렇다기에 티미는 신성력이 전무해 신전에서 잡일만 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티미 스스로 이겨 낸 건 아닌 것 같았다.
―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 다른 힘이 섞여 있는 거 같지 않니?
―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다른 힘이라는 말에 내가 멀거니 정령들의 갑론을박을 듣고 있을 무렵이었다. 뒤늦게 쓰러진 티미를 발견한 시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위험해요!”
그러곤 나와 캐서린을 붙들어 기둥 뒤로 숨었다. 쓰러진 티미가 오염에 노출된 사람일까 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 탓에 원인 모를 티미의 상태를 고심하던 나는 정신이 쏙 빠졌다.
일단 비명이 무척 컸을 뿐만 아니라 하필 덜미를 잡고 끈 시녀의 힘이 우악스러워 목이 막힌 탓이었다.
“캑!”
― 시, 시녀가 로에나를 죽이려 해!
정령들이 놀라 부산스럽게 내게 다가오려 했다.
적으로 간주할까 봐 얼른 손을 내저어 아군임을 드러냈다. 그러곤 시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 과로로 쓰러진 거야.”
“네, 네? 과로요?”
시녀가 손의 힘을 풀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잽싸게 그녀에게서 벗어나 목을 쓸었다.
시녀들도 캐서린을 닮아 즉흥적이고 일단 행동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 저기 눈 밑에 그늘 보이지? 내 부하 중에도 저런 애가 있는데 다 수면 부족이야.”
코비슈타인을 떠올리며 한 말에 시녀가 안도의 탄성을 내뱉었다.
“아, 아아.”
그러곤 다리가 풀렸는지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캐서린이 넘어가는 시녀를 부축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네, 네에. 저는 아가씨가 잘못되는 줄 알고…….”
시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나는 티미의 상태를 다시 살폈다.
일단 정령들의 말대로 정화할 필요가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오염에 노출됐던 이이니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캐서린의 시녀가 왔으니 그녀에게 부탁해 옆 방으로 옮겨 달라고 하려던 찰나였다.
저 멀리 무시무시한 얼굴로 달려오는 슈리가 보였다.
기껏 방에 모셔다 놨더니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쏙 사라져 애가 바짝바짝 탄 모습이었다.
“로에나 니이이임!”
이대로 마주쳤다간 온종일 잔소리에 시달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슈리의 기세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슈리와 비교하면 캐서린의 시녀는 천사였다. 슈리는 울기는커녕 당장 내 다리를 부러뜨릴 것 같은 수라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처연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캐시.”
“싫어.”
꽤 단호하게 거절한 캐서린이 제 시녀의 뒤로 숨었다. 아까 내가 피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 것 같았다.
이런 걸 자승자박이라고 하는 걸까?
믿었던 아군을 잃은 나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다 최후의 방어전을 펼치기로 했다.
일명 방긋방긋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 짓기!
일단 두 손을 마주 잡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서문을 열었다.
“슈리, 있잖아…….”
하지만 그건 시도조차 못 하고 실패였다. 슈리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변명은 안 돼요.”
철옹성 같은 표정에 나는 그만 기권했다.
“잘못했어.”
이런 슈리를 상대하려면 변명보다는 빠른 사과를 하는 편이 잔소리를 덜 들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걸까.
“잘못한 건 아세요?”
그 말을 시작으로 슈리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었다.
어째서 내 시녀들은 하나같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니 정령이 한마디 했다.
― 다 너 닮아서 그래.
왠지 정령이 미워졌다.
* * *
슈리는 쓰러진 티미를 숙소 옆 방으로 옮기면서도 지치지 않는지 내내 툴툴거렸다.
귀에서 피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는 질린 표정으로 침대에 누운 티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가 캐서린에게 준 팔찌 덕에 티미의 오염이 정화된 걸지도 몰랐다.
아주 약한 접촉이었다면 그 정도는 해 주었을 테니까.
물론 그것만으로 의혹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일단 그가 일어나면 자초지종을 알 수 있으리라.
잠시 후, 상황을 확인하고 온 슈리가 말했다.
“이번에 배달된 식료품이 문제였나 봐요. 식료품 창고 관리자들이 다 쓰러지고 난리도 아니래요.”
“그래?”
“다행히 파블로 님이랑 메이벨 님이 계셔서 쉽게 진압된 것 같은데…… 어휴! 너무 무섭네요.”
슈리가 팔을 쓸며 부르르 떨었다. 잠시지만 오염에 노출될 뻔한 상황에 간담이 서늘해진 모양이었다.
식료품이 문제였다면 프로디움 내부로 오염이 들어온 게 이해는 되었다.
신전은 성역이라 오염이 발생할 수 없었다. 오염이 퍼지려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의문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배달한 사람은? 오는 길에 내내 멀쩡한 게 이상하잖아.”
“네? ……그러게요. 듣고 보니 그렇네?”
슈리가 맹점을 발견하고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잠깐 접촉한 것만으로도 삽시간에 사람을 기절시키는 오염이었다.
오염된 식료품을 수레에 싣고 프로디움으로 배달 온 자가 멀쩡히 돌아가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때였다.
“로에나!”
키나를 통해 소식을 들었는지 아키드가 황급히 방으로 들이닥쳤다.
내가 눈치껏 슈리를 내보내자 그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으며 말했다.
“접촉했었다면서요.”
내가 정령사라는 걸 아는 이는 이곳에 아키드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제일 안전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 슈리보다 더한 극성이었다.
“제가 아니라 캐서린이요.”
“아.”
“다행히 제가 팔찌를 준 덕에 몸에 이상은 없었어요.”
진짜 팔찌를 안 줬으면 어쩔 뻔했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자 아키드가 누그러진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놀랐겠네요.”
“조금요.”
“잘했어요. 덕분에 에셀 영애가 목숨을 건졌군요.”
숨 쉬는 것처럼 내 칭찬을 자연스럽게 하는 아키드로 인해 얼굴이 홧홧해졌다.
참 이상하지. 그가 이렇게 칭찬해 주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민망함에 괜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걱정할까 봐 키나를 보냈더니 오히려 더 걱정만 끼쳤네요.”
“안 그래도 그냥 숙소로 돌아간 게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오늘 밤은 곁에 있겠습니다.”
“네?”
“아직 바깥이 안전한 건 아닐 테니까요. 제가 안심이 안 돼서 그래요.”
“하지만…….”
내가 거절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자 아키드의 눈썹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안 되겠습니까?”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면서도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순진무구한 표정이 너무나도 깨끗해 보였다. 내 시커먼 속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키, 아키에겐 제 옆이 제일 위험하다는 걸 아직도 학습하지 못했나요?’
아직 데뷔탕트도 치르지 못했고, 여기는 내 방도 아니었다. 엄연히 신전의 규율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이왕 수절한 거 좀 더 참아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달콤한 유혹을 털어 내며 애써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건 안 돼요. 신전에선 남녀가 유별하잖아요. 원래라면 이렇게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예전에 제가 아플 땐 마음대로 곁에 있었으면서.”
“그건……!”
갑자기 쓰러져서 너무 놀라서 그랬던 거잖아.
아키드가 그날 일을 걸고넘어질 줄은 몰라 말문이 턱 막혔다.
그때 아키드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손등에 가만히 입술을 찍으며 다정히 속삭였다.
“혹시 제가 곁에 있는 게 싫습니까?”
“아뇨!”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할 것도 없이 즉각 부정부터 했다.
오히려 그 반대라 걱정인 건데 대체 그런 오해를 하다니.
“그럼 됐네요.”
아키드가 원하는 대답을 얻은 것처럼 눈웃음을 사르르 지었다. 그러곤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만 잡고 잘 거니까.”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예?”
“아, 아뇨. 좋다고요.”
나는 무심결에 튀어나온 속마음에 입술을 찰싹, 때리며 변명했다. 그러자 아키드는 뭐가 좋은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규율을 그렇게 잘 지키며 살았다고. 어차피 여기엔 아버님, 어머님도 안 계시고…….’
속으로 온갖 합리화를 할 무렵이었다.
“저기…….”
잠에서 깨어난 티미가 끼어들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