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13)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13)화(113/177)
#113.
꽃축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정식으로 애프론 가문에 입적하게 된 안젤리카가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다.
“로, 로에나 님 덕에 부모님을 차, 차, 찾았어요. 감사해요.”
“아냐. 그 덕에 우리도 애프론 가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걸.”
데미안은 성공적인 협상에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애프론 백작이 약속대로 해상 마법의 비법을 전수해 준 덕이었다.
수수료 문제도 딸을 찾아 준 답례라며 올해는 동결하기로 했단다.
데미안은 애프론 가문에서 전수받은 해상 마법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자체적인 하델루스가의 해상 마법을 만들 거라나 뭐라나.
“그리고 이제 존칭은 하지 않아도 돼. 안젤리카는 이제 내 친구니까.”
“시, 싫어요. 저, 저한테 로에나 님은 여, 영원히 로에나 님이고, 주, 주인이고, 치, 친구니까!”
안젤리카가 몸에 힘을 꽉 준 채 말을 이었다.
“애프론 저택에서 열심히 시녀 일을 배워서 올게요. 그, 그땐 꼭 받아 주세요!”
“응. 그간의 공백을 메우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만 기다릴게, 안젤리카.”
내 승낙에 안젤리카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잠시 후 그녀가 우물쭈물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호, 혹시 브라운 가문의 일 말이에요……. 로, 로에나 님이 하신 건가요?”
“응?”
“시, 시종에게 들었어요. 브, 브라운 가문이 부, 북부를 떠났다고.”
“아아.”
그게 어느 틈에 안젤리카의 귀에 들어간 건지.
“나 아냐.”
“네? 그, 그럼?”
브라운 가문은 그날 파티 이후 몸을 사렸으나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내가 애프론 백작가에 브라운 일가의 만행을 줄줄이 고해바친 덕이었다.
내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딸을 막 대한 가문을 내버려 두겠는가?
원래 분노는 다른 에너지로 대체해야만 해소되는 감정이었다.
절친인 나탈리 후작을 물 먹인 일로 우리 가문을 못마땅해했던 애프론 백작의 화를 풀기 위해 브라운 일가를 던졌다고 할까.
“그냥 그 집안에 문제가 많았나 보지.”
대수롭지 않게 빙그레 미소 짓자 안젤리카가 얼굴을 붉혔다.
“메, 메이벨을 못 보고 가게 돼서 아쉬워요.”
“그러게. 꽃축제 전에 온다던 애가 아직도 소식이 없네.”
늦어진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메이벨은 델루스에 오지 않고 있었다.
티미를 데려온 일로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뭔가 일을 꾸미기라도 하는 건지.
괜히 찝찝한 기분을 느끼던 차에 안젤리카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나, 나중에 메이벨이 돌아오면 이걸 전해 주시겠어요? 원래 메이벨의 물건이거든요.”
나는 안젤리카가 내민 물건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구슬이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돌에 가까웠다.
사탕 크기만 한 비교적 가벼운 돌. 민무늬라서 그냥 흰 조약돌 같기도 한 물건이었다.
용도를 몰라 눈만 끔벅이니 안젤리카가 말했다.
“메이벨이 부적처럼 들고 다니던 거예요. 이걸 두고 사라져서 괴한에게 납치당한 줄로만 알았어요.”
“이걸?”
“네. 엄청 소중한 물건인 거 같았어요.”
그런 걸 두고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뭘까? 그것도 한참이나 떨어진 스티그 섬으로.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그 거리를 혈혈단신으로 가기는 어려웠을 텐데.
‘역시 이상해.’
어린애 몸으로 혼자서 이동할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원작 속 메이벨이라면 소중한 친구에게 말도 없이 떠날 위인도 아니었다.
그때 안젤리카가 말했다.
“아, 아마 돌려받으면 무척 기뻐할 거예요.”
글쎄. 버릴 것 같은데.
티미도 모른 척했으니 안젤리카가 건네는 이 돌덩이에도 관심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메이벨 본인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래. 이참에 실험해 봐야겠다.’
메이벨 본인이 맞는다면 이 돌을 보면 분명 반응을 보이리라. 안젤리카 말대로라면 소중한 물건일 테니까.
하지만 메이벨이 아니라면?
‘이걸 보고 나처럼 그냥 돌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돌을 만지작거리며 씨익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 안젤리카. 이건 메이벨이 돌아오면 꼭 전해 줄게.”
* * *
한편 아키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신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로니스가 떠나기 전, 아키드는 미각성 발작을 앓는 자의 각성 후 부작용에 대한 자료를 제로니스에게 부탁했었다.
각성 이후 시작된 기이한 현상 때문이었다. 아키드는 제로니스의 답신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독했다.
[미각성 발작을 일으킨 자가 각성한 후에 겪게 되는 부작용에 관해 찾아봤지만 그대와 비슷한 증상은 없는 듯해.그 증상은 미각성 발작과는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군. 혹여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찾아보는 게 어떤가?
꿈 내용을 얘기해 주면 내가 찾아봐 줄 수도 있으니 편히 연락 주게.]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하긴 부작용이라고 하기엔 꿈에서 계속 같은 여자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후우.”
아키드는 지친 얼굴로 서신을 화로에 던졌다. 혹여라도 로에나가 편지를 발견해 걱정할까 봐 없애려는 것이었다.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각성한 직후였다. 처음엔 그저 각성기로 인한 기억의 혼선이라고만 여겼었다.
하지만 각성 이후에도 이따금 꾸는 여자의 꿈에 아키드는 이 일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계속 같은 여자가 등장하니 당연했다. 그것도 낯선 풍경과 낯선 옷을 입고 있는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인 데다 모르는 여자가 자꾸 꿈에 나온다는 말은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다분한 내용이었다.
아키드는 잠시 어젯밤 꾼 꿈 내용을 떠올렸다.
꿈속 여인은 생일인지 혼자 케이크 앞에 앉아 있었다.
가족이 있던 것 같은데 다들 외출하고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케이크마저도 여인이 직접 사 온 것이었다.
여인은 액자 속 가족사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화목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과 동생 곁에 어색하게 웃고 있는 제 모습을.
여인은 혼자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를 한 후 그 많은 걸 혼자 다 먹어 치웠다.
제법 씩씩한 모습이 의아하던 찰나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 생일인데, 기억도 못 하는 건 너무하잖아.’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보는 사람이 다 코끝이 찡할 정도였다.
이후 꿈답게 뜬금없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평소와 같이 여인이 책을 읽는 장면이었다.
매번 같은 책을 보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무슨 책인지는 읽을 수 없어 모르겠다만 무척 좋아하는 책임은 분명했다.
같은 책이 여러 개 있는 걸 보면 소장용과 독서용, 전시용이 다 따로 구비된 것 같았다.
꿈 생각을 하던 아키드가 머리를 헝클이며 혼잣말했다.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건지.”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해서 더더욱.
게다가 그리 좋지 못한 삶이었다. 아키드 자신이 로에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겪었을 지독한 외로움이 여인에게 있었다.
이제 더는 불안할 일도 없는데 왜 이런 꿈을 자꾸만 꾸는지 알 수 없었다.
아키드는 우선 제로니스가 보내 준 자료를 모두 검토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알려 준 자를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해몽에 일가견이 있는 자를 한 명 알고 있네. 내게 꿈 내용을 말하기 꺼려진다면 그대가 직접 그자를 찾아가 봐.]아키드가 추신에 적힌 주소를 힐끗했다.
스티그 섬과 인접한 곳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였다. 거리가 제법 되어서 다녀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로에나의 각성 시기를 대략 가늠해 보았다. 빠듯하지만 다녀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키드는 선뜻 출발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지독한 꿈을 꾼 탓이었다.
그것도 로에나가 전염병에 걸려 죽는 무시무시한 꿈을.
* * *
얼마 후, 로즈 나탈리가 델루스에 도착했다. 지난 흑마법사 유물 사건으로 유물 매립지인 테슬 지역에 가기 위해 하델루스령을 찾은 것이었다.
테슬 지역은 델루스에서 왔다 갔다 하기에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본성에서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나탈리 후작 일행이 밤늦게 도착한 탓에 그녀를 만난 건 다음 날이었다.
나는 나탈리 후작이 함께 차를 마시고 싶다 권해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중이었다.
“못 뵌 사이 장성하셨네요. 이제 더는 이 조각 인형이 마음에 안 드실지도 모르겠군요.”
“어머, 이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나탈리 후작이 건넨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색칠까지 한 터라 무엇을 조각한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설령 색칠하지 않았대도 이목구비만 봐도 알아봤으리라.
이 조각 같은 얼굴은 영락없는 부동의 내 최애이자 나의 남편인 아키드가 분명하다.
나는 인형의 얼굴을 가만히 쓸며 흥분을 감춘 채 말했다.
“저랑 아키드 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