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18)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18)화(118/177)
#118.
얼마 후, 메이벨이 하델루스 성에 복귀했다. 예정일보다 한참 늦은 복귀였으나 아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정령이 예고한 대로 오염이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는 탓이었다.
그간 북부에만 그쳤던 오염이 점차 수도가 있는 쪽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직은 미미한 정도였으나 원래 시작이 어렵지 퍼지는 건 한순간이라 모두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때에 성녀의 존재는 무척 중요해서 메이벨이 바쁜 건 당연했다.
아마 원작처럼 대륙 전역에 산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더는 시녀 일도 못 하리라.
“오느라 고생했어, 메이벨.”
“늦어서 죄송합니다. 계속 오고 싶었는데…….”
“이미 편지로도 사정을 알려 줬잖아. 괜찮아.”
내가 가볍게 대응하자 메이벨이 말을 이었다.
“아차, 소식 들었어요. 저 대신 안젤리카가 곁붙이로 티 파티에 참석했었다고요.”
나는 불쑥 안젤리카를 거론하는 메이벨을 떠보듯 물었다.
“티미는 기억나지 않는다더니 안젤리카는 기억하는 모양이네?”
“어렴풋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마도 티미를 만난 직후라 더 그랬나 봐요.”
메이벨이 동요하는 기색 없이 설핏 미소 지었다. 이런 식으로 기억을 차차 되찾아 가는 척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메이벨이 말했다.
“손님이 오셨다던데.”
“응. 나탈리 후작님이라고, 아마 너도 한 번 본 적이 있을 텐데.”
“네. 기억나네요. 그런데 이곳엔 어쩐 일로?”
“그분이 고고학자시거든. 지난번 흑마법사의 유물 논란 건으로 직접 현장 답사를 다시 하려고 오셨대.”
“아아.”
“아마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좀 더 길게 머물게 될 거 같아. 상황 봐서 인사드리고 와도 좋아.”
“네, 그럴게요.”
메이벨이 싱글 미소 짓는가 싶더니 내가 손으로 굴리고 있는 흰 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태연하게 구슬을 주물거리며 시치미를 떼자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그 돌은 뭐예요?”
“이거 뭔지 몰라?”
“제가 알아야 하는 건가요?”
메이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안젤리카 말로는 메이벨이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이라 했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이미 그녀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서 그녀가 메이벨 본인이라면 이 구슬을 못 알아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네.’
나는 돌을 주머니에 냉큼 넣으며 태연하게 답했다.
“아니야. 모를 수도 있지. 새로 개발 중인 놀이 도구야.”
“이번엔 제법 평범하게 생겼네요.”
“아직 시안이라 디자인이 빠졌어.”
태연하게 둘러대는 말에 메이벨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안젤리카에겐 미안하지만 이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보아하니 눈앞의 메이벨은 이 구슬의 진짜 주인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럼 진짜 메이벨은 어디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이 세계에 없을지도 몰랐다. 지금의 내가 진짜 로에나가 아니듯이.
잠깐 딴생각을 하던 때였다. 메이벨이 우물쭈물하며 무언가 할 말을 고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 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무슨 일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메이벨이 말했다.
“아무래도 더는 시녀 일을 맡지 못할 것 같아서요. 실은 지금도 신전에 양해를 구해 잠깐 들른 거예요. 직접 얼굴 뵙고 전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하긴 이젠 내 시녀로만 있기엔 너무 대단해지긴 했지.”
추켜세우는 말에 메이벨이 볼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긴요. 난세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할 뿐이에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송별회 정도는 같이 보낼 시간은 있는 거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시녀였던 사람을 아무런 송별회도 없이 보내는 건 아니라 생각해 한 말이었다.
“네. 이달 말까지는 하델루스 성에 있어도 된다고 허락받았어요.”
* * *
메이벨이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제이드가 와 있었다. 빈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라 놀랄 법도 한데 그녀는 태연했다.
“물건은?”
“여기.”
제이드가 손에 쥔 유리병을 건네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유리병에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메이벨이 유리병을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애초에 메이벨이 나탈리 후작에게 협조한 건 모두 저 물건 때문이었다.
이거라면 사사건건 방해하던 로에나를 한 방에 보낼 수 있으리라. 메이벨이 유리병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제법 여기저기 들쑤셔 놨던데. 나야 수월하게 오염을 방출해서 좋지만 좀 살살해.”
“애초에 그쪽이 늦게까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일을 급하게 진행하지 않아도 되었어.”
제이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하자 메이벨이 피식 웃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 목표는 흑마법사의 번영이 아니야. 네 주인에게 날 하수인 취급하지 말라고 전해.”
메이벨이 불쾌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제 허락 없이 오염을 빨리 퍼트린 터라 일정이 꼬인 탓이었다.
하여튼 흑마법사들은 이전 생에서부터 오합지졸에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이 꼴로 지내는 원흉이기도 해서 좋게 보려야 볼 수가 없었다.
그때 제이드가 메이벨의 품을 힐끗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 독은 누구한테 쓰려는 거지?”
“그런 것까지 내가 말해 줘야 할 이유가 있어?”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하는 수 없고.”
제이드가 별다른 추궁 없이 쉽게 물러나자 메이벨이 피식 웃었다. 이미 그와 후작 몰래 거래를 튼 지도 오래였다.
앞뒤 꽉 막힌 흑마법사들의 수장인 나탈리 후작과 달리 제이드는 제법 말이 통하는 상대였으니까.
게다가 저 흉터.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흉측하다는 느낌이 없던 게 의아했는데, 이제 보니 이전에 만난 기억이 있었다.
소년일 적에 만난 적이 없으니 알아챈 건 최근이었다.
메이벨이 제이드를 은근하게 보며 말했다.
“있어. 자꾸 눈앞에서 알짱대며 내 일을 방해하는 인간 하나가. 여기 좀 더 머물다 보면 너도 자연히 알게 될 거야.”
“설마…….”
제이드가 깜짝 놀라 눈을 홉뜨자 메이벨이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애초에 그 독극물은 각성기를 앞둔 사람에게 효과적인 독이었다.
그리고 이 성안에서 아직 각성하지 못한 이는 단 한 명뿐인 탓이었다.
제이드가 메이벨의 의도를 알아채고 작게 중얼거렸다.
“의외로군. 설마 모시던 주인에게 쓸 줄은 몰랐는데.”
“주인은 무슨. 그냥 필요에 의해 곁에 있던 것뿐이야.”
메이벨은 불쾌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그녀는 이번 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몸만 바꿔 제로니스를 가로챌 계획이었는데.
하필이면 계산 착오로 몸과 함께 과거로 돌아와 버려 얻고자 한 것도 얻지 못하고 병에 걸린 탓이었다.
그 와중에 로에나까지 거슬리게 행동하고 예정대로 죽을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티미의 일까지 생각하면 그대로 두기 꺼림칙했다. 로에나만 아니었다면 티미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기에 더더욱.
메이벨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은은한 분노를 표출하자 제이드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동시에 나탈리 후작이 늘 당부하던 말을 떠올렸다.
‘제이드, 제물을 만나면 무조건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내 명과 반대되는 말이라 해도 우선 따라도 좋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까? 지금도 충분히 편의를 봐 주고 있는데도 더더욱 오만하게 굴고 있지 않습니까.’
제이드의 반문에 나탈리 후작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대신 제물의 몸에 있는 문신을 알아내야 한다. 그걸 알아야 혼자 날뛰는 걸 막을 수 있거든. 목줄을 틀어쥔 후에는 모든 게 쉬운 법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부디 기쁜 소식을 내게 들고 와 주길 바란다, 아들아.’
나탈리 후작은 제물이 시전한 흑마법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어 했다. 그래야지만 그녀의 약점을 틀어쥘 수 있는 탓이었다.
하여 제이드는 재량껏 그녀의 뒤를 봐 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거래는 조금 위험한데. 설마 표적이 대공자비일 줄이야.’
메이벨에게 구해다 준 것은 각성기를 가장해 돌연사시키는 독극물이었다.
증상이 각성기와 비슷하여 정적의 자제를 교묘하게 죽일 때 주로 사용하는 독이었다.
무색무취라 흔적도 남지 않아 주의하지 않으면 각성기로 착각하기 쉬웠다.
뒤처리가 깔끔해 흑마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암살 도구이기도 했다.
제이드는 다소 심경이 복잡해졌다. 표적이 다름 아닌 아키드의 부인이라서.
아무래도 이 건은 나탈리 후작에게 알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며 유유히 방으로 돌아갈 때였다.
제이드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상대를 알아보고 우뚝 멈추었다.
아키드였다. 야밤에 어딜 다녀왔는지 외출복을 입은 채였다. 제이드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딜 다녀오시는 모양입니다.”
“그러는 소후작께선 안 자고 어딜 다녀오는 길인지?”
아키드가 의중을 살피려는지 힐끔 쳐다보자 제이드가 말했다.
“잠자리가 낯설어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어릴 적엔 눕기만 해도 잠들지 않았나.”
아키드의 말에 제이드의 얼굴에 금이 갔다. 대충 때운 거짓말을 곧장 들킨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일이었다. 제이드가 능숙하게 맞받아쳤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릴 때와는 다르지요.”
“그래. 그런 것 같네.”
지나치게 친근한 말에 제이드가 선을 그었다.
“제 의사는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옛일은…….”
하지만 뒷말을 채 잇기도 전에 아키드가 물었다.
“나탈리 후작이 우리 사이를 모르는 거 같던데. 그 정도로 13지구에서의 일이 싫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