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21)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21)화(121/177)
#121.
“억!”
붉은 가면을 쓴 일라이저가 내지른 발길질에 검은 후드의 사내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불만인지 일라이저가 기절한 사람을 툭툭, 치며 위협했다.
“야, 죽은 척하지 마. 안 죽은 거 다 아니까. 어쭈? 안 일어나? 셋 셀 동안 안 일어나면 진짜로 죽인다?”
마치 이지를 잃고 광기에 차서 불을 뿜으며 날뛰는 드래곤 같은 모습이었다.
이쯤 되면 좀 말릴 법도 한데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붉은 가면을 쓴 카일은 태연자약했다.
아니. 오히려 일라이저와는 다른 의미로 살벌하게 굴었다.
그가 어느새 결박한 자의 턱을 추키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리부터 잘라 줄까. 아니면 함부로 우리 공주님께 말을 건 혀부터 뽑아 줄까.”
“그, 그, 그냥 죽여!”
“그건 안 돼. 우리 공주님한테는 좋은 것만 보여 줘야 하거든.”
이미 다리를 자르고 혀를 뽑겠다고 협박한 것부터가 좋은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카일?
나는 서로 다른 의미로 광기에 차 있는 에이프릴 쌍둥이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키드가 나설 새도 없이 이미 사내들은 모두 기절한 것 같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데 아키드가 말했다.
“어차피 이번에도 가짜야.”
그러곤 막을 새도 없이 자객의 손바닥에 있던 문신을 검으로 찔렀다.
“윽.”
문신에 금이 가자 얕은 신음을 내뱉던 자객이 곧이어 작은 목각 인형으로 변해 버렸다.
“하, 이 겁쟁이 자식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이를 본 일라이저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남은 자객의 문신을 찾아 뭉개기 시작했다.
그의 거친 손속에 그대로 동강 나는 자객들은 아키드의 예상대로 모두 인형이었다.
방금까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던 이들이 실은 목각 인형이었다니.
나는 부러진 인형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간 가면으로만 얼굴을 감추고 행동하던 나보다도 더욱 치밀한 기술이었다.
흑마법사는 아티팩트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더니 코비슈타인만큼이나 대단한 존재가 그 조직에 몸담고 있는 모양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부서진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정령들이 목각 인형 주변으로 모이며 짧게 총평했다.
― 흑마법이야.
― 인형술사가 현존해 있다니. 제법 일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인형술사?”
― 인형을 조종하는 흑마법이야. 이제야 오염이 왜 그렇게 산발적으로 퍼졌는지 알겠다.
― 인형을 이용해 퍼트린 게 분명해.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 생각보다 너무 조심성이 많은 상대한테 걸린 것 같아.
정령들은 어려운 상대를 대면했다는 듯이 재잘거렸다. 나는 정령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간 벌어졌던 기묘한 상황들을 납득할 수 있었다.
흑마법사를 대대적으로 색출하기 시작한 작금의 때.
이미 잡힌 자들만 해도 수두룩한데 오염을 퍼트리는 경로가 무척이나 넓었었다.
처음엔 그만큼 흑마법사의 수가 많다고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이런 술법을 이용해 조직의 규모를 부풀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인형술사를 찾지 않으면 힘만 빠지겠네.”
이래선 내 힘만 쪽쪽 빨리는 짓이었다. 본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로.
한편 아키드와 카일, 일라이저는 내가 정령들과 대화하는 사이 서로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모두 가면을 벗은 채였다. 그때 아키드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로네가 위험할 뻔했어. 에이프릴 식 처리는 도망치는 놈을 내버려 두는 건가?”
“면목이 없군. 잠시 한눈을 팔았어.”
카일이 굳은 얼굴로 사죄하자 일라이저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너도 봤잖아. 우리 막둥이가 활약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그걸 좀 보려다가 몇 명 놓친 거라고.”
“인정할 건 인정해. 그러다 막둥이가 다쳤으면?”
“큭, 그럼 안 되지!”
뒤이은 카일의 힐난에 일라이저가 이를 으득으득 갈며 원통한 표정을 지었다. 티격태격하는 걸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세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화의 정황을 볼 때 여태 나를 미행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를 쫓던 흑마법사 무리나 마수들을 뒤에서 몰래 처리한 것 같고.
‘어쩐지, 그동안 지나치게 평화롭다 했어.’
그들이 뒤에서 도와준 덕에 안전을 보장받기는 했지만, 그 탓에 상대가 인형술사라는 걸 늦게 알게 된 셈이었다.
나는 가면도 벗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이제 설명을 좀 해 주시겠어요?”
그러자 제일 먼저 카일이 유순한 얼굴로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로에나, 다친 곳은 없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이건 대화의 방향을 바꿔 얼렁뚱땅 이 사태를 무마하려는 속셈이렷다.
나는 카일의 술수에 당하지 않으려 고개를 홱 돌린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손 치우고 말하세요.”
존댓말까지 시전하자 카일이 움찔하며 손을 물렸다.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반응이었다.
뒤이어 일라이저가 울먹울먹한 눈으로 내게 다가와 말했다.
“막둥아, 잘못했어. 얼굴 좀 보여 줘.”
이번에는 감정에 호소할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몰라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하여튼 이 빠돌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나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서 이야기해요. 숨기려 들면 가만 안 둘 거야.”
“물론이지. 다 말할게, 로에나.”
노기를 한풀 꺾은 음성에 카일이 살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맞받아쳤다.
“그래, 로에나. 우린 그냥 네 남편이 하자는 대로 했어. 이건 다 네 남편이 꾸민 짓이야!”
이 와중에 일라이저는 아키드 탓으로 돌리려 했다.
감히 내 새끼를 배신하다니.
다른 의미로 화가 불쑥 난 나는 일라이저를 째려보며 말했다.
“난 책임 회피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
싫다는 말에 일라이저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내 종이 인형처럼 흐물거리는가 싶더니 연신 “로에나가 내가 싫대”라고 중얼거리며 실의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카일은 위로하기는커녕 “그걸 이제야 알다니. 바보군” 하고 놀려 대고 있었다.
좀 전의 살벌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라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도 같았다.
* * *
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에이프릴 쌍둥이는 자기들 처소로 돌아갔다.
아키드가 다 설명하겠다고 한 탓이었다. 일라이저의 말대로 이번 일은 아키드의 진두지휘 아래 벌어진 듯했다.
우리는 침실 로비에 있는 간이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아키드가 내 손을 꼭 붙들며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덩달아 시선을 맞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웬 비 맞은 강아지가…….’
처연하게 내려간 눈꼬리가 애간장을 녹이는 것 같았다. 내 전투력을 0으로 만드는 엄청난 표정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전투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미남이 우울한 낯까지 하니 더더욱 치명타였다.
나는 마음이 약해지려 해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내 뜻을 밝혔다.
어쩐지 아키드가 제 얼굴을 잘 이용해 먹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 탓이었다. 그러자 아키드가 입을 열었다.
“로네가 몰래 성을 빠져나가 하델루스령을 정화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 내내 제 뒤를 쫓으신 거예요?”
내 추궁에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는 조용히 뒤처리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뒤를 밟힐 수도 있으니까요.”
일순 그의 청회색 눈동자가 예리한 빛을 띠었다.
나를 위협하는 자는 한 놈도 남겨 두지 않겠다는 양 서슬 퍼런 눈빛이었다.
결국 내가 걱정이 되어 미행했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모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도 아키드의 불안을 부추긴 꼴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내가 전염병에 걸려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간 지금보다도 더욱 불안해할 게 뻔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말이라도 해 주지 그랬어요. 저는 그동안 비밀작전 수행하듯이 조마조마해하며 다녔었는데……. 설마 아버님과 어머님도 다 알고 계셨나요?”
“아뇨. 두 분은 모릅니다.”
“정말요?”
“네. 로네가 원치 않는 것 같아서,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렸어요.”
하긴 시부모님이 알았다면 진즉 사달이 났을 터였다.
나는 아키드가 내 암행을 알아채고도 비밀로 해 준 게 고마우면서도 그가 왜 나를 감시하고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 순간 아키드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제게로 바짝 끌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그의 희고 고운 낯이 화사한 빛을 띠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터라 눈을 댕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그가 말했다.
“몰래 미행한 건 미안합니다. 잔당을 놓치지만 않았어도 로네가 불쾌해할 일은 없었을 텐데.”
“그 말은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건가요?”
내 반문에 아키드가 눈웃음을 사르르 지었다.
그 웃음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키드는 들키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내 암행을 도와줄 속셈이었음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뒤이어 아키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말해 줄래요? 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