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31)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31)화(131/177)
#131.
쉐리와 협상을 마치고 별장에 돌아오자 헨리의 서신을 문 흰둥이가 도착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흰둥이가 헨리에게 이동 마법으로 다녀왔다는 건 우려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과 같았다.
나는 봉투를 뜯어 서신의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로에나 님의 지시대로 감시한 결과, 메이벨이 그자와 접촉을 시도한 경위를 포착했습니다.그리고 예상대로 오염이 더욱 기세를 부려 자칫 대비하지 않았다면 북부가 위험할 뻔했고요.
로에나 님의 선견지명 덕분에 북부가 죽은 땅이 되는 일은 면했습니다. 신호를 보내니 흰둥이가 바로 달려와서 무척 놀랐습니다.
나비님들도 여전히 멋지고 훌륭하고 깜찍하고 대단하셨고요.]
나는 이 대목을 읽고 정령 덕후의 덕심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수다스러운 정령들에게 이토록 많은 형용사를 붙이는 자는 헨리뿐이리라.
[신수를 이용해 원격으로 정화를 시도한 점이 대단하십니다. 아마도 이번 정화로 상대도 로에나 님의 정체를 확신했을 테죠.믿기지 않는군요. 설마 메이벨이 ‘그들’을 돕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우선 지시하신 대로 메이벨이 한 것처럼 위장해 두었으니, 그녀가 수도로 입성하는 날도 머지않을 것입니다.]
나는 편지를 읽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니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나탈리 후작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그들과 메이벨의 사이를 꿈에도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점이었다.
사실 북부에서 제이드와 마주쳤을 때부터 나는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7년 전 정기 회의 연회에서 메이벨이 제이드를 따라 누군가를 찾아간 탓이었다.
그리고 그자가 나탈리 후작이었다는 건 영상을 다시 돌려 보고 확신했다.
상대를 인식하고 목소리를 들으니 나탈리 후작이라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당시엔 한 번 들은 목소리라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던 거였다.
납치되기 전에는 메이벨이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야 나탈리 후작이 흑마법사인 걸 몰랐으니까.
그래서 둘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다고만 여기던 차에 나탈리 가문의 정체가 탄로 나 상황이 복잡해졌다.
다름 아닌 메이벨이 흑마법사를 돕고 있는 탓이었다. 성녀인 그녀가 어째서 흑마법사를 돕고 있는 걸까.
원작의 그녀라면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 일이기에 더더욱 의문이 가득했다.
그래서 메이벨이 제이드와 접촉할 때까지 시기를 기다렸다.
바람 속성을 각성한 내겐 헨리의 기척을 숨기고 상대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탓이었다.
그리고 염탐 결과, 두 사람의 접촉 사실을 확인했고, 예상대로 오염이 크게 번져 북부가 위험할 뻔했다.
이 말인즉, 메이벨이 일부러 오염을 내버려 두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아니, 어쩌면 효과적으로 퍼질 수 있도록 돕는 걸지도 몰랐다.
‘성녀로서 활동하면서 흑마법사를 도와 오염을 방치한다라.’
어차피 흑마법사들의 목적은 하델루스의 발목을 붙드는 것이었다.
북부를 어지럽혀 다른 것엔 일체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
하지만 그건 정령사인 내가 없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령사인 걸 예상하고도 오염을 퍼트린 건 제대로 확인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의도적인 접근이었구나.”
나는 메이벨이 대공에게 들러붙던 걸 떠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애초에 오염의 발원지에서 발견된 메이벨이었다. 그때부터 흑마법사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일부러 하델루스가에 접근했던 거라면 아귀가 맞았다.
기억이 있어 알리바이가 허술해지는 것보다 없는 척하는 게 더 속여 먹기 쉬울 테니까.
“이것 봐라.”
나는 메이벨의 영리한 행동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역시 내가 알던 원작 속 그녀와 너무도 달랐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자들과 협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직접 대면해서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메이벨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그들과 협력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나는 내 무릎 위에서 고롱고롱 졸고 있는 흰둥이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메이벨을 하루라도 빨리 수도로 올라오게 하려면 대륙의 오염을 모조리 없애는 편이 좋겠지?”
북부만 정화하는 거로는 부족했다. 애초에 수도 인근까지 퍼져 나가던 오염이었다.
메이벨이 북부 밖으로 간 사이 오염을 퍼트린 것도 모두 의도가 있었을 터.
흰둥이는 모조리 없애자는 말에 눈을 빛냈다. 고양이인 상태로 핵석이 떠오르며 내 다음 지시를 얌전히 기다리는 모양새가 무척 귀여웠다.
나는 흰둥이의 핵석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가서 정령들이랑 열심히 날뛰다 와. 메이벨이 한 것처럼 보이게 정령의 흔적은 모조리 먹어 치워야 해. 할 수 있겠지?”
야옹.
흰둥이가 기분 좋은 울음을 내뱉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정령의 흔적을 없애라는 말에 신이 난 것이었다.
정령의 흔적은 흰둥이의 주식이었으니까. 마음껏 먹고 오라는 말에 절로 신이 나지 않을 리 없을 터.
뒤이어 정령들이 포르르 날아다니며 부산스럽게 말했다.
― 드디어 우리가 활약할 때구나.
― 건강한 땅이 되는 건 너무 좋아. 이미 죽은 땅도 정화해도 돼?
“아니. 그건 조금 나중에.”
죽은 땅까지 정화하면 성녀가 했다고 포장하기 어려웠다.
신성력과 빛 속성 마법은 이미 손쓸 도리 없는 땅까지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탓이었다.
― 알겠어! 맡겨만 줘!
― 야호! 신나는 정화 시간~
그 뒤로 정령들이 흰둥이의 핵석으로 쏙 들어갔다. 이어서 흰둥이가 창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는 이미 땅속 깊숙이 들어간 후였다.
어차피 내가 뒤섞은 원작, 여주인공을 좀 더 일찍 수도로 입성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흰둥이가 사라진 쪽을 응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기다릴게, 메이벨.”
정작 그녀에게는 닿지 못할 말임을 알면서도.
* * *
다음 날, 우리가 수도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캐서린에게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마젠타 펜트하우스에 놀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전부터 에드워드가 와 달라 노래를 부르던 곳이기도 했고, 마침 시간적 여유도 있어 흔쾌히 응했다.
마젠타의 펜트하우스는 아카데미가 있는 4지구에 있었다.
특히 4지구는 하인트 아카데미를 주축으로 각 사교 클럽의 펜트하우스와 문화생활 공간이 집결된 곳이기도 했다.
문화 공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게 4지구라서 볼거리도 참 많았다.
수도에 온 이후, 아키드는 황실로부터 흑마법사 검거 권한을 위임받고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나탈리 가문이 흑마법사 집단과 연루되어 있다는 걸 밝힌 공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황실은 아키드에게 나탈리 성의 색출 권한까지 주어 그는 요 며칠 무척이나 바빴다.
듣자 하니 나탈리 성은 애초에 본거지가 아니었는지 그리 중요한 단서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서 와, 로에나.”
캐서린이 현관에서 나를 맞으며 방긋방긋 웃었다. 마젠타 펜트하우스는 대대로 황실파의 사교 모임답게 웅장한 궁처럼 생겼다.
안으로 들어서니 역대 클럽장의 초상화가 벽 한 면을 차지했다.
황실파 가문이 돌아가며 리더를 맡았는지 여러 가문의 인장이 눈에 띄었다.
에셀 가문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황실파 중에서도 제일 힘이 센 모양이었다.
눈대중으로 살피던 나는 익숙한 얼굴의 초상화를 보고 멈추었다.
“어라, 공작님께서도 클럽장을 하셨었구나.”
아는 사람이 등장하자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집중해서 초상화를 살폈다.
에셀 공작의 초상화 아래에는 다른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성명과 연혁이 적혀 있었다.
나는 문득 앞선 클럽장과 연도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물었다.
“그런데 연도가 살짝 안 맞는 거 같아. 앞에 분이랑 몇 년씩이나 텀이 있는데?”
“아아, 그거. 사실 아버지가 처음부터 클럽장이던 건 아니셨거든. 중간에 일이 생겨서 바뀌었다나 봐.”
“그래? 그럼 왜 전대 클럽장의 초상화는 따로 안 걸어 둔 거야? 교체되었으면 기록이 남았을 텐데.”
클럽장이 중도에 그만두었다면 초상화가 남았을 텐데 전혀 보이지 않아서 한 질문이었다.
캐서린이 곤란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전대 클럽장이 반역을 저질러서 가문이 멸문당했거든. 반역자의 초상화를 걸 순 없으니 빼 둔 거고.”
“전하.”
나는 황태자를 알아보고 가볍게 예를 갖추었다. 제로니스는 각성 후 얼굴에 그늘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때맞춰 온 듯하군.”
뒤이어 제로니스의 곁에 있던 에드워드가 히죽 웃으며 뒤따라 반겼다.
“어서 와, 로에나. 오늘은 대공자가 없네.”
“아키는 일정이 있어서 늦은 오후에 오기로 했어요.”
“딱히 안 와도 되는데.”
말로는 툴툴거리긴 했어도 아키드가 늦게 온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그의 얼굴이 활짝 펴 있었다.
에드워드는 못 본 새 무척 커다래졌다.
곁에 서기만 해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의 덩치라 과연 원작 속 그 망나니가 맞구나, 싶어졌다.
에드워드가 볼을 붉힌 채 말했다.
“그럼 대공자가 오기 전에 나랑 산책이라도…….”
나는 이어질 말을 예상하며 빠르고 간결하게 거절하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