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38)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38)화(138/177)
#138.
슬쩍 떠보는 내 질문에 안젤리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드, 들었어요. 거리의 아, 아이들이 자주 부, 부르더라고요. 지, 지난번에 캐, 캐시 언니랑 7지구에 놀러 갔다가 들었어요.”
이따금 7지구를 방문하는 안젤리카도 알 정도면 노래가 제법 퍼진 모양이었다.
나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계획에 빙그레 미소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뭐야, 왜 캐시는 언니고 나는 로에나 님이야? 캐시랑 친해졌다고 이젠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건가.”
“아, 아니에욧!”
안젤리카가 얼굴이 시뻘게진 채 말을 이었다.
“로, 로에나 님은 제겐 여, 영웅이고 모, 모시고 싶은 주인이니까, 어, 언니라고 할 수 없어요!”
허둥지둥하며 해명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리며 물었다.
“그럼 캐시는 왜 언니야?”
“……캐시 언니는 어, 어, 언니라고 아, 안 부르면 아, 안 놀아 준다고 해서…….”
아무래도 캐서린이 안젤리카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한 모양이었다.
쾌활한 성격에 미친 친화력을 지닌 캐서린에게 안젤리카가 저도 모르게 감화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안젤리카가 내 안색을 살피며 울상을 지을 때였다. 뒤늦게 도착한 캐서린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캐시 언니 등장이요.”
곁에는 애프론 백작 부인이 안젤리카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안젤리카는 캐서린이 제 말을 다 들었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이 전보다 더 새빨개졌다.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것처럼.
“어, 어, 언니이…….”
안젤리카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나와 캐서린이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야, 안젤리카. 편하게 불러도 좋아.”
내 다독거림에 안젤리카가 고개를 푹 숙이며 투덜거렸다.
“너, 너무해요. 로에나 니임…….”
그 와중에도 깍듯하게 ‘로에나 님’이라고 하는 게 몹시도 귀여웠다.
* * *
현재 제국에선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구전동요가 퍼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도나도 그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일을 지시한 쉐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복수극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쉐리가 위스키 잔을 도륵도륵 굴리며 그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깊은 밤 남몰래 지하로 내려가 외로운 흑쥐와 놀고 간다네.”
따뜻한 이야기 속에는 제법 무시무시한 뜻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쉐리의 입장에선 로에나의 청사진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제이드에게 복수하는 일에 왜 이런 시답지 않은 동요를 유행시켜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까라면 까야지.
솔직한 심정에선 당장이라도 제이드의 목에 칼을 겨누고 싶어 드릉드릉했다.
일단 행동부터 하고 보는 쉐리로서는 이런 빌드업이 익숙지 않았으니까.
베고 싶으면 베고, 뺏고 싶으면 뺏는 게 일상이던 거리의 왕.
그런 쉐리에게 로에나는 참으로 성가신 의뢰인이자 주인이었다.
“웃기지도 않아. 별이랑 쥐랑 어떻게 친구가 되냐. 그것도 시궁창 쥐와 별의 만남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감도 안 잡히네.”
일반적으로 혜성은 ‘떠오르는 영웅’을 상징하고, 흑쥐는 ‘사특한 것’을 뜻했다.
최근 떠오르는 영웅이라고 하면 단연코 메이벨 해링턴뿐이었다. 그리고 사특한 것의 대표는 흑마법사들이었다.
지성인이 들으면 성녀가 흑마법사와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모함이 섞여 있음을 단번에 알아챌 만한 노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식 은유와 비유에 취약한 쉐리로서는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때 쉐리가 든 잔을 누군가 뺏어 들었다. 신경질적으로 뒤를 돈 쉐리는 제 술을 홀짝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로에나를 발견하고 김샌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대공자비만 아니었으면 화풀이 겸 시비를 걸려 했던 탓이었다. 로에나가 쉐리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원래 낭만적인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법이야. 특히 직설적인 말보다 비유 같은 간접적인 표현이 사람을 교묘하게 몰아넣기 쉽거든.”
“귀족들은 원래 다들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하기를 좋아합니까? 그냥 죽이면 끝날 일인데.”
쉐리가 툴툴거리며 비스킷을 와그작와그작 소리 내어 씹었다.
부러 들으란 듯이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데 로에나는 전혀 거북한 표정이 아니었다.
로에나가 물로 입가심을 하며 말을 이었다.
“대놓고 말하면 오히려 의심을 사기 쉬우니까 그렇지. 수고했어, 덕분에 성녀가 입성하기 전에 이곳 사람들이 노랫말에 익숙해지게 만든 것 같으니.”
“대체 이 노래는 무슨 뜻입니까? 말을 안 해 주니 모르겠잖아.”
“자꾸 말이 짧아진다, 너?”
“…….”
“복수하고 싶다며.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이드를 갈기는 일에 이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여쭙는 겁니다만?”
쉐리가 불퉁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공대하며 추궁했다.
로에나는 쉐리의 시건방진 태도에 익숙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복수는 너처럼 객기를 부린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거든.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괴롭혀야지.”
어차피 제이드는 쉐리의 악담에 꿈쩍도 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아키드야 거리의 아이들을 각별하게 생각했으니 쉽게 동요했겠지만.
로에나는 제이드가 13지구에서의 기억을 잊고 싶어 하던 걸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사자는 듣자마자 알아차릴 거야.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
메이벨은 귀족 예법에 익숙한 아이였다. 원래라면 평민으로 살아서 몰랐을 것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만큼 노련했으니까.
그러니 그녀는 수도에 들어와 노래를 듣자마자 바로 알 것이었다. 별이 자신이고, 흑쥐가 흑마법사라는 걸.
그걸 알아채는 순간을 노려 나탈리 후작과 메이벨의 사이를 이간질할 생각이었다.
적을 치려면 우선 적의 연대를 끊어 내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었으니.
로에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고 봐. 나중 되면 이게 얼마나 상대를 효과적으로 엿 먹이는 짓이었는지 너도 절절히 알게 될 테니까.”
그게 어쩐지 섬뜩해 쉐리가 움찔했다. 가만 보면 대공자비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저야 제이드에게 갚아 줄 것이 있다지만 그녀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순간 과거 그녀에게 겁박당했던 일을 떠올린 쉐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도 느꼈지만 이 여자랑 척을 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적으로 있으면 무척 골치 아픈 타입이거든, 이 아가씨는.’
쉐리가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상체를 등받이에 털썩 누이며 중얼거렸다.
“저야 뭐, 제이드의 똥 씹은 얼굴을 볼 수 있다면야 상관없습니다만.”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더 네가 해 줄 게 있어.”
로에나의 말에 쉐리가 고개만 쳐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어차피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이었다.
“그게 뭡니까?”
* * *
메이벨은 평소 입던 수수한 달마티카가 아닌 백색 슈미즈 타입의 드레스를 입은 채 흰 나귀를 타고 인트라비아에 입성했다.
일부러 13지구부터 시작한 행렬은 성녀의 자애로움을 알리기 위한 행위였다.
“기적의 성녀, 만세! 만만세!”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성녀의 등장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크게 환호했다.
메이벨은 냄새 나는 13지구를 통해 인트라비아로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민심을 얻어 두는 게 좋습니다. 뒤늦게 정령사가 나타난다 해도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요.’
‘그게 어째서 13지구의 민심인 건데. 어차피 중요한 건 귀족들인데.’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분화구는 가장 밑바닥부터이니까요.’
제이드의 말대로였다. 13지구부터 시작한 행렬을 통해 아래에서부터 성녀 메이벨을 칭송하는 움직임이 더욱 커졌다.
혹여라도 정체가 탄로 나 하델루스가와 척을 지게 된다면 그녀는 빈털터리 신세가 될 터.
그러니 민심이라는 강력한 뒷배를 챙겨 두는 게 후일을 도모하기에 좋았다.
7지구로 향하는 길목에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안 그래도 인파가 몰려 행진이 더디던 차에 웬 아이가 불쑥 뛰어들어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 탓에 나귀가 크게 놀라 이히잉, 하고 울음을 뱉으며 얕게 날뛰었다.
성기사들이 아이를 막아서며 타박하려 하자 메이벨이 만류했다.
“그냥 두세요.”
몸가짐 하나하나가 성녀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성기사들이 짐짓 감동한 얼굴로 물러나자 아이가 다시금 무언가를 내밀었다.
“성녀님, 제 선물이에요!”
받아 보니 웬 그림이었다. 은색 머리에 금색 눈을 한 것을 보면 저를 그린 것도 같았다.
그림 속 성녀는 깊은 밤 후드를 눌러쓴 채 바닥에 몰려든 쥐를 보살피는 듯했다.
더러운 쥐를 손으로 만지고 있는 그림을 보니 혐오감이 불쑥 올라왔다.
“고맙구나.”
메이벨이 가까스로 미소 지으며 그림을 품에 넣을 때였다. 아이 곁에 있던 이들이 손까지 모아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깊은 밤 남몰래 지하로 내려가 외로운 흑쥐와 놀고 간다네.”
갑작스러운 합창에 메이벨이 시큰둥하게 듣던 때였다. 이어지는 가사에 그녀가 놀라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흑쥐는 세상이 미워 지하로 돌아갔다네. 친구를 잃은 별은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쳐 그만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