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68)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68)화(168/177)
#168.
확실히 죽음이라는 건 하늘로 돌아가는 안식이 맞나 보다.
몸에 힘을 푸는 순간, 아까부터 나를 옥죄던 배의 통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
뿐만 아니라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생각했던 죽음과는 달리 무척 편안한 상태.
이대로 승천하는 일만 남은 건가, 싶던 찰나였다.
― 로에나, 큰일 났어. 일어나 봐.
― 맞아. 너 아직 안 죽었어.
― 자나? 자?
― 뺨이라도 때려서 깨울까?
― 그전에 네 더듬이가 날아갈 줄 알아. 빨강이 괴롭히지 마!
이상하게 정령들의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귀에 왱왱, 울렸다.
원래 죽고 나면 영혼이 잠시 머문다더니 사후의 상황도 엿볼 수 있던 건가?
하지만 죽은 사람한테 하는 말치고는 정령들의 목소리가 조금 경쾌했다.
‘참, 마지막까지 밝은 녀석들이네.’
나는 내가 죽자마자 바로 발랄해진 정령들에게 야속함을 느꼈다.
속상한 마음도 잠시, 모든 걸 내려놓은 나는 더욱 힘주어 눈을 꾹 감은 채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정령들이 나를 툭툭, 치는 촉감만 거세졌다.
‘뭐, 뭐야.’
당황스러웠다. 원래 이쯤 되면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고 주변에서 통곡하는 게 정상이 아니던가?
내가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정령들이 이번에는 내 머리카락을 힘껏 당기며 깨우기 시작했다.
―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안 일어나면 정말로 뺨 때릴 거야!
― 누워 있을 시간이 없어! 큰일 났다고!
― 상처가 다 나았는데 왜 안 깨지? 설마 뭔가 잘못된 걸까?
― 흐어엉! 빨강아, 죽지 마아아아!
과격하게 깨우는 정령과 걱정하며 말리는 정령은 물론 불안에 떠는 정령들의 목소리까지 아주 생생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죽은 사람에게 촉감이 있을 수 있나.
아파 죽을 것 같던 배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진 걸 보면 죽은 게 확실하다 여겼는데.
‘나 아직 안 죽었나?’
기묘한 느낌에 나는 눈을 감은 채 내 배를 슬슬 더듬었다가 깜짝 놀랐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은 물론 뚫린 흔적조차 없었다. 게다가 내 영혼은 몸과 분리되지도 않았다.
“허억!”
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나 상태를 확인했다.
피에 젖은 옷과 달리 내 배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마치 한 번도 뚫린 적 없다는 듯이.
― 꺄, 일어났어!
― 우와아앙!
― 흐어어엉! 사, 살았다!!
정령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며 나의 소생을 기뻐했다. 하지만 난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곧장 고개를 내려 배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 어, 어떻게 된? 허.”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도 잘 안 나온다는 게 진짜였다. 나는 제대로 말도 못 맺은 채 배만 만지작거렸다.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물론 몸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어리둥절해하는데 내 의문을 정령들이 해결해 주었다.
― 갑자기 웬 구슬이 팟! 하고 터지더니 네 상처를 치료했어!
― 맞아! 엄청 굉장했어. 팟― 콱! 하고 빛이 났다니까.
― 아냐, 쿠오오오! 팡! 하고 빛났어.
정령들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총동원해 내게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으로 싸웠으나 딱히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나는 구슬이라는 말에 그게 캐서린의 구슬이란 걸 알아챘다.
‘아, 그때 챙겼던 구슬!’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니 구슬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 상처를 치료하며 힘을 다해 없어진 모양이었다.
역시나 그때 내 손목의 상처가 사라진 건 구슬의 힘 덕분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신했다.
‘와, 살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웃고만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 어이가 없어졌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죽지 않아 감격스러우면서도 정령들이 왜 일어나라고 한 건지 깨닫고 나자 망연자실했다.
“저건 왜 안 없어지는 건데.”
여전히 문이 닫히지 않은 채로 우두커니 존재감을 과시하는 탓이었다.
다행히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열릴 것만 같았다.
안쪽에 있는 아델쿠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문을 박박 긁고 있었다.
― 키에에에에!
기이한 울음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저대로라면 문을 부수어 기어 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악룡과 눈이 마주치자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델쿠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정령에게 물었다.
“왜, 왜 문이 안 사라졌지?”
― 중간에 예식이 멈춰서인 것 같아. 되돌려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나는 정령들의 황당한 진단에 어이가 털렸다. 이래선 내가 앞에서 비장하게 죽음을 선택한 것도 소용없었다는 뜻이다.
허탈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어떻게 하지? 무, 문을 부수면 쟤가 나올 것 같고, 내버려 둬도 쟤가 부수고 나올 것 같아! 끄앙!
― 쟤가 자꾸 노려봐! 무서워 죽겠어!
정령들이 부산스럽게 종알거리며 얼른 나보고 어떻게 해 보라고 재촉했다.
정령들까지 무서워하는 존재를 일개 정령사인 내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다고 저러는 걸까?
나도 방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를 어찌하나, 하고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였다.
“어, 어어?”
나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라 문을 삿대질했다.
돌연 문 주변을 검은 기운이 감싸는가 싶더니 스스로 닫히기 시작한 탓이었다.
― 키에에에!
아델쿠스는 닫히는 문에 당황하며 문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하지만 닫히는 문을 막을 길이 없었다.
‘무, 뭔데! 쿨타임이라도 있었던 건가? 나 성공한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이대로 사라져 준다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상황이 돌아가는 듯했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완전히 닫혔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문이 본래 있던 지하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된 얼굴로 문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저러다 또 갑자기 문이 확 열려서 나오면 몹시 곤란했다.
다행히 문은 이변 없이 지하로 사라졌다. 예식이 치러졌다는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자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문 너머에 있던 존재를 뒤늦게 알아채고 두 눈을 홉떴다.
어째서인지 아키드가 웬 검을 땅에 박은 채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었다.
숨이 거친 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아, 아, 아키드?”
설마 그새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싶어 심장이 철렁했다.
내 부름에 아키드가 고개를 들었다. 먹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던 청회색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하…….”
마치 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한 태도. 나는 그의 반응이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가 고개를 푹 숙여 감정을 추스르는가 싶더니 입술을 열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던 말이었다. 웃기까지 하니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아키드!”
나는 제단에서 한달음에 내려가 아키드에게 달려갔다. 이를 본 아키드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벌렸다.
나는 있는 힘껏 그에게 안겼다. 다시 만난 품은 역시나 따뜻하고 포근했다.
“흐어엉!”
그래서 왈칵 눈물이 터져 버렸다. 아키드가 나를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했다.
“많이 놀랐나 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품에 더더욱 파고들었다.
내심 돌아가는 상황이 무척 무서웠는데 애써 아닌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키드를 보니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왜 하필 유일한 정령사라서 이런 무시무시한 예식에 먹잇감으로 불려왔나.
나는 그저 아키드랑 백년해로하는 게 꿈이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내 덕질과 알콩달콩한 부부 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나.
이러다 또 더 나쁜 놈이 나타나서 내 일상을 파괴하려 들면 어쩌나, 하는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키드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목소리 끝이 갈라져 파르르 떨렸다.
“이번에도 늦었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 겁니다.”
“흐어엉, 아, 아닛, 흡, 안, 늦었, 흡, 늦었잖아요!”
“늦었다는 거예요, 안 늦었다는 거예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하는 말에 아키드가 씨익 웃었다. 눈물을 훔쳐 주는 손길이 더없이 따뜻했다.
이렇게 다정한 남편을 두고 세계 평화를 위해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선택지가 없었다지만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조금 더 발악해 볼걸.
나는 아키드를 다시는 빼앗기고 싶지 않아 그의 품에 도로 파고들며 엉엉 울었다.
아키드는 말없이 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카타콤으로 끌려온 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말은 안 해도 내게 하고픈 말이 많을 터였다.
얼추 감정을 다스린 나는 뒤늦게 그가 아까 무엇을 하고 있던 건지 궁금해졌다
분명 처음 보는 검을 땅에 박고 있지 않았던가?
문이 사라지기 전까지 검 주변이 빛나던 장면까지 떠오르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 어떻게 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