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174)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74)화(174/177)
#174.
엘레나가 향한 곳은 황궁이었다. 그날 다툰 후 한 번도 황궁에 걸음 하지 않았던 터라 자카리는 당황한 채 그녀를 맞았다.
“안팎의 일로 어수선할 텐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내놔.”
엘레나가 다짜고짜 부리부리한 눈으로 요구했다. 멱살까지 잡힌 자카리는 무얼 내놓으란 건지 몰라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시종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엘레나의 표정은 흡사 ‘하인트의 미친개’ 시절을 방불케 했다.
당장이라도 땅에 꽂아 박을 듯한 태세에 자카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어릴 적 숱하게 업어치기당했던 입장인지라 그녀의 기세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가 그녀의 손을 다잡으며 물었다.
“내놓고 싶어도 뭘 달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누이. 말만 해. 뭐든 내놓을 테니까.”
바짝 저자세로 나가자 엘레나가 그제야 멱살을 놓아주며 말했다.
“네가 내 남편 고생시킨 피해보상 내놓으라고.”
“피해보상이라……. 계산은 어떻게 하고 싶어?”
부드럽게 묻는 자카리는 속으로 흡족해졌다. 노발대발하고 돌아가 이혼이라도 하려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데미안부터 챙기는 탓이었다.
‘역시 사이가 좋아진 게 확실하군.’
아마도 로에나 하델루스의 영향으로 보였다. 그녀가 시집간 이후로 대공가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자카리의 표정은 이어지는 엘레나의 말에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우선…….”
엘레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피해보상에 대해 낱낱이 읊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한 것처럼 착착착 내뱉는 내역을 듣던 자카리가 중도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누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피해보상치고는 너무 많…….”
“물론 이번 흑마법 사건을 종결시킨 건은 별개로 보상해야 할 거야. 이 정도면 후하게 쳐준 셈이지.”
대차게 후려쳐 놓고 후하다고 평가하는 게 어이없었다. 자카리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물었다.
“이런 식으로 화풀이하는 거구나.”
엘레나가 무엇을 위해 왔는지 짐작한 탓이었다. 조금 허탈하기는 했으나 화가 나진 않았다.
어쨌든 그녀가 저와 완전히 절연하려는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이대로 남매 자격을 박탈당할 줄 알았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애초에 누이를 속인 대가치고는 적은 셈이지.”
결국 항복을 선언한 자카리가 시종장에게 내역을 옮겨 적으라 지시했다.
기어이 공증까지 받아 낸 엘레나는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황당한 요구를 이었다.
“그리고 황궁 친자감별사도 한 명 데려가야겠어.”
아키드 하델루스를 입적시킬 때도 확인하지 않던 친자감별을 갑자기 거론하자 자카리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설마 또 사생아가 생긴 건가, 우려된 탓이었다.
“친자감별사라니. 왜? 설마 대공이 또 사생아를 낳아 왔어?”
“아니.”
“그럼…….”
자카리가 왜 친자감별사가 필요하냐고 물으려는데 엘레나가 폭탄선언을 내뱉었다.
“내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녀석이 등장해서 말이야.”
“!!”
“그 애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친자 확인서가 확실해야 뒷말이 더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어느새 엘레나의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그녀는 마치 앞으로 있을 일이 기대된다는 듯 밝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누이의 순수한 웃음에 자카리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 * *
아키드와 내가 엘레나를 찾아 나서려던 차에 마침 우리와 엇갈렸던 메이가 엘레나가 향한 곳을 알렸다.
다행히 가출은 아니었다.
“대공비님께선 황궁으로 향하셨어요.”
“황궁에는 갑자기 왜?”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나쁜 일은 아닐 거예요. 오랜만에 활기차 보이셨거든요.”
어머님이 활기찰 때는 데미안을 골려 줄 때뿐인데.
나는 정말 괜찮은 건가 싶었으나 메이가 워낙 긍정 에너지를 펼치는 탓에 뭐라 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님이 돌아오면 알려 달라 전한 후 나와 아키드는 우리 방으로 향했다.
침실 로비에 도착하자 비치된 소파에 앉은 우리는 남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재회하고 나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 보지 못해 쌓인 얘기가 많았다.
“아깐 왜 그렇게 당황했어요?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이야기하자면 긴데…….”
아키드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돌연 비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비전의 기회가 한 번이라는 건 데미안에게 들어 익히 알았지만 그 내용을 깊게 들은 건 처음이었다. 물론 내게 말할 수 있는 것만 추린 설명인 듯했다.
“자파르시아를 만났다고요?”
“예. 그가 예식을 막고 카타콤을 무너뜨릴 검을 주면서 제 출생의 비밀을 알려 주었습니다.”
“잠깐만, 설마 그 검이 자파르시아가 준 거였어요?”
카타콤에 그냥 버리고 오길래 그리 중요한 물건이 아닌 줄 알았다. 황당해진 나와 달리 아키드는 태연했다.
“예.”
뭐가 문제냐는 얼굴에 나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그걸 그냥 버리고 온 거예요……? 그 귀한 걸?”
“로에나의 상태가 제겐 더 중요했으니까요. 검이야 뭐, 성에 널렸지 않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암룡이 직접 하사한 검을 그렇게 내팽개치고 오다니.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검을 향해 잠깐 애도를 표했다.
아키드에게 내가 너무 소중한 탓에 검이 홀대를 받았구나, 저런. 쯧쯧.
물론 그만큼 그가 나를 우선했다는 사실이 더더욱 감동이었다.
“출생의 비밀은 뭐였는데요?”
보나 마나 생모의 행선지 정도를 알려 주었겠거니 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나는 아키드가 본래 데미안과 엘레나의 아들이었으며 데미안이 비전으로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에 기함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자파르시아가 직접 두 눈으로 보게 해 주었으니까요.”
자파르시아가 보여 준 거라면 확실했다. 그가 딱히 인간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나는 이 말도 안 되게 꼬여 버린 관계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럼 그동안 아버님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게 다 어머님을 위해서였다는 거야?’
한 번도 아키드가 사생아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충격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헤퍼 보이기만 했던 시아버지가 실은 홀로 엄청난 비밀을 안고 산 고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그간 아버님을 성격 파탄자1이라고 한 걸 사과합니다.’
나는 데미안의 침실이 있는 방향을 힐끗하며 속으로 속죄했다. 그리고 아키드가 진짜 부모님을 찾은 걸 축하했다.
“이제 정말 진짜 가족이 되었네요. 물론 그전에도 진짜 가족이었지만 그래도…… 그간 아키드도 내심 출신 때문에 고민 많았으니까.”
여러모로 아키드에겐 좋은 일이라 순수하게 축하하니 아키드가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실 아직 잘 실감이 되지는 않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급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머니가 이혼을 결심하고 계셔서…….”
“이혼이요?!”
“아, 물론 더는 이혼할 생각은 없어 보이셨습니다. 다행인 일이죠.”
아키드가 씨익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데미안의 사정을 듣고 난 후라 이혼당하지 않은 게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그래, 꼬인 건 풀면 되니까.’
물론 데미안이 돌린 시간의 기억을 엘레나는 알지 못했다. 아마 그때처럼 단란하기는 쉽지 않겠지.
그래도 더는 데미안이 고행길을 잇지 않아도 되니 나름대로 해피엔딩이었다.
그때 아키드가 말했다.
“그리고 진짜 가족이 된 건 로에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네?”
“세체르에게 들었습니다. 로에나가 유이나이면서 로에나 본인이라는 것 말입니다.”
“!!”
“축하해요, 로네도 그간 고민이 많았을 텐데 다행입니다.”
“…….”
“이젠 에이프릴 가문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게 되겠네요. 저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
“……제가 로에나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괜찮은 거예요?”
“예?”
아키드가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애써 다잡았다.
이미 죽을 뻔하던 순간 과거 전염병으로 죽기 전까지 그에게 했던 못된 짓을 모두 기억했다.
그 기억을 안고 아키드를 대하려니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마 아키드에게도 기억이 있었다면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로네.”
“당시의 전 아키에게 상처 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었으니까요. 혹시 나중에라도 그 기억들이 돌아온다면 후회할 수도…….”
횡설수설하며 불안에 떨던 때였다. 따뜻한 온기가 내 뺨에 가득 와 닿았다.
나는 양 뺨을 모두 붙잡힌 채로 아키드에게 바짝 끌려갔다. 그의 표정은 내 걱정과 달리 평온하기만 했다.
“사실 저도 그리 떳떳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결혼 직후 로네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알아요.”
아키드는 나름대로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거다. 그걸 달리 받아들이고 삐뚤게 군 건 내 잘못이 맞았다.
“아뇨. 낯선 타지로 온 로네를 배려하지 못한 건 제 잘못이 맞습니다. 당시 저는 저만 힘들다고 여겼으니까요.”
“아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아키드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미소 지었다.
“그러니 묵은 과거는 잊고 새로 시작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