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34)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34)화(34/177)
#34.
“아니긴.”
에셀 공작이 웃으며 반박하자 엘레나가 딴청을 피웠다.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는데도 엘레나가 넘어가는 걸 보면 정말 친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어머님이 내 칭찬을 하실 줄이야.’
하긴 요 근래 나는 정말 완벽한 며느리이긴 했지.
괜스레 뿌듯해진 나는 에셀 공작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잊고 어깨가 으쓱여졌다.
그때였다. 어디서 한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서늘한 음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밌게들 하는가.”
“대공 전하.”
에셀 공작이 하델루스 대공을 발견하자 꾸벅 예를 갖추었다.
엘레나는 언제 웃었냐는 양 표정을 굳히며 대공을 쳐다보았다. 오늘 일이 많았는지 대공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쪼르르 다가가 배꼽 인사를 했다.
“산책 중이셨어요, 아버님?”
“그래. 좀 쉴까 해서 산책을 나왔는데 오히려 더욱 피곤해졌군.”
대공이 미간을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요 근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많이 바쁘다더니 정말 피곤한 모양이었다.
하델루스 대공이 에셀 공작에게 형식적으로 물었다.
“머무는 데 불편한 건 없습니까.”
“예. 보시다시피.”
에셀 공작도 덩달아 표정이 어두웠다. 언뜻 대공을 혐오하는 것도 같은 기색이라 의아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기분.
‘뭐야? 뭔데, 이 분위기?’
아무래도 하델루스 대공과 에셀 공작은 사이가 무척 나쁜 모양이었다.
그때 에셀 공작이 엘레나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저야 뭐, 일도 일이지만 오랜만에 옛 친우를 만나서 즐겁지요. 누가 자꾸 제 편지를 없애 버려서요.”
왠지 그 누구가 하델루스 대공인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하델루스 대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결국 그가 참지 않고 말했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자꾸 연락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저와 엘레나의 순수한 우정을 곡해하지 마시죠.”
“순수? 순수가 다 얼어 죽었군. 네가 어릴 적에 엘레나를 따라다닌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너만 할까, 데미안.”
어느새 두 사람의 말이 짧아졌고 분위기는 한층 차가워졌다.
‘치정이다. 이건 치정 싸움이야.’
나는 뒤늦게 대공과 에셀 공작의 신경전의 의미를 알아채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삼각관계 로맨스 소설 하나는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곁에 팝콘이 없어 아쉬움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엘레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애 보는 앞에서 오해 살 행동은 하지 말죠.”
그러면서 내 눈을 슬그머니 가리는 게 아닌가.
‘저기요, 어머님. 저는 보고 싶은데요! 손 좀 치워 보세요.’
뒤늦게 내 존재를 인식한 두 사람이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한창 재밌어지려는 순간에 엘레나가 초를 쳐 버린 것이다. 엘레나가 하델루스 대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공, 내 편지에 손댔어요?”
“실수입니다.”
“실수라기엔 여기 오기 전에 두 통이나 보냈습니다만.”
에셀 공작이 얄밉게 딴죽을 걸자 하델루스 대공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러자 엘레나가 에셀 공작을 저지하며 대공에게 말했다.
“다음부턴 실수하지 마요.”
“여부가 있을까요.”
엘레나의 당부에 데미안이 즉각 대답하며 씨익 웃었다. 한눈에도 에셀 공작 보라는 미소였다.
어쨌든 부부이니 남편의 편을 들어 주는 모양새였다. 에셀 공작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게 다정히 말했다.
“나중에 수도에 오게 되면 내 딸을 소개해 주마. 또래이니 분명 잘 지낼 거다.”
네? 악녀님을요?
내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에셀 공작이 말을 이었다.
“아주 착한 아이란다. 조금 덤벙대기는 하지만 분명 좋은 친구가 될 거야. 그치, 엘레나?”
“캐시라면, 뭐.”
엘레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의 뜻을 비쳤다.
악녀님이 착할 리가 없을 텐데요…….
자기 자식이라 객관화가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엘레나까지 긍정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에셀 공작이 씨익 웃으며 인사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에셀 공작이 사라지자 엘레나가 가자미눈을 한 채 따져 물었다.
“편지, 가지고 있죠?”
“아뇨. 이미 태웠습니다.”
“허.”
엘레나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태워요?”
“실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실수로 더글러스의 편지만 골라 태울 수도 있군요.”
“예. 가능하던데요.”
대공이 이죽거리자 대공비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때 엘레나가 미심쩍은 얼굴로 입을 뗐다.
“설마 에비스 광산 일로 그런 거라면…….”
“부인은 제가 그런 쫌생이로 보입니까?”
“예.”
“잘 보셨군요. 아직도 배가 아픕니다.”
대공이 냉큼 대답하곤 배 아파 죽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대공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다 알고도 데미안의 편을 들어 준 모양이다. 그래도 대공 체면에 배가 아파서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흐음, 여전히 사이가 나쁘군.’
이제는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 날이면 괜히 심심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대로 두다간 또 스파크가 팍팍 튈 것 같아 중재에 나섰다.
“저 다리 아파요.”
내가 얼른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데미안이 제 팔을 엘레나에게 내밀었다.
“모셔다 드릴까요?”
“로에나, 가자.”
하지만 엘레나가 그것을 깔끔히 무시하고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얼결에 엘레나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니 대공이 멀뚱히 선 채 어깨를 들썩이며 큭큭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하여튼 누가 성격 파탄자 아니랄까 봐.’
나는 대공을 이상한 놈 보듯 힐끔대곤 도로 앞을 보았다.
* * *
한가로운 오후, 하델루스 대공이 대뜸 나를 불렀다.
“새아가.”
“네, 아버님.”
“새아가.”
“네, 말씀하세요.”
“새아가.”
뭐야, 나 지금 녹음기랑 대화하고 있는 거 아니지?
나는 서재에 온 후로 다른 말은 없이 계속 ‘새아가’만 부르는 대공을 마뜩잖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부르길래 뭔 일이 있나 싶었는데, 와 보니 단내가 폴폴 나는 케이크와 과일이 트레이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딱 봐도 나를 위해 준비한 게 다분한 간식 상에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공의 눈빛이 딱, 뇌물을 바치는 눈이었으니까!
내가 이젠 대꾸도 하지 않자 대공이 턱을 괸 그대로 또다시 공포의 새아가를 운운했다.
“새아가.”
“자꾸 이러시면 저 나갑니다.”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려 하자 대공이 내 손을 잡아 저지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도로 소파에 풀썩 앉았다.
“성격도 급하긴. 내 너를 위해 친히 디저트도 준비시켰는데.”
“먹지 못하게 쳐다만 보게 하고 계시잖아요.”
“아무래도 대공비가 내게 삐친 거 같지?”
대공은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다! 대공은 디저트에 손도 못 대게 포크를 제 손에 쥐고 나를 약 올리고 있었다.
‘진짜 가만 안 둬.’
절로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아키드 얼굴 봐서 참는다. 후욱후욱.
차마 손으로 케이크를 먹을 수는 없어 대공의 손에서 흔들리는 포크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딱히 모르겠는데요.”
“아니야. 요즘 자꾸 나를 피하는 것 같단 말이다.”
그럼 네놈을 안 피하고 배겨?
나는 요 근래 대공의 짓궂은 장난을 되새겨 보았다.
대공비만 보면 시비를 거는 통에 조금 좋아지려던 사이도 아주아주 나빠졌다.
대공비는 이제 대공만 봐도 눈살을 찌푸리며 백스텝을 할 경지에 올랐다.
아내가 저를 피하는 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아버님의 눈치는 발바닥에 달려 있는 모양이다.
눈앞에 맛난 디저트를 그림의 떡으로 만든 당사자라 나의 평가는 무척 박했다.
내가 다소 불퉁한 표정을 한 채 그를 바라만 보자 대공이 중얼거렸다.
“역시 더글러스의 편지를 태워서려나.”
“네?”
여기서 갑자기 에셀 공작이 화두에 오르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지보다는 오히려 아버님의 철딱서니 없는 입방정이 대공비를 열받게 하는 것일 텐데.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이러는 건가?
성격이 왜 이 모양이지?
내 머릿속에서 대공의 혹평이 연이어 벌어질 동안 대공이 포크로 디저트를 똑 떠서 내게 내밀었다.
“아.”
“아.”
나는 대공의 명령에 따라 입을 크게 벌려 디저트를 받아먹었다. 오래 참다 먹어서인지 더럽게 맛있었다.
내가 곧잘 받아먹자 대공이 다른 케이크도 떠서 두어 차례 더 먹여 줬다.
어째서 포크를 제 손에 쥐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아버님의 장단을 맞추었다.
그렇게 케이크 하나를 뚝딱 할 무렵이었다. 대공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새아가.”
“?”
“네가 에셀 공작을 좀 감시해 다오. 어쩐지 너한테는 관대한 거 같거든, 그 자식.”
뭐시라?
나는 난데없는 스파이 제안에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 이 아버님이 고작 케이크로 나를 회유하려 하다니.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려는 찰나, 대공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