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41)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41)화(41/177)
#41.
파엘 강으로 향하는 내내 엘레나와 데미안은 티격태격했다.
어쩐지 더더욱 살벌해진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시선을 스르르 피해 버렸다.
‘역시 가망 없는 거지?’
세상에, 좋아질 기미가 어쩜 이리도 안 보인단 말인가.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아키드와 시선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지?
청회색 눈동자가 나를 기민하게 살피는 듯했다. 내가 시선을 피하지 않자 그가 작게 고개를 수그리며 아랫입술을 꾹 말았다.
본의 아니게 눈싸움에서 이긴 내가 얼떨떨해하는데 마차가 파엘 강에 도착했다.
“우와.”
나는 파엘 강의 야경을 보고 감탄을 내질렀다. 엘레나의 말대로 파엘 강의 밤은 아름다웠다.
알록달록한 조명을 설치해 둔 터라 강 위에서 오색 빛깔의 연주가 이뤄지는 것 같았다.
물감이 풀어지듯 강물 위에 흔들리는 조명이 제법 예뻤다. 물결이 칠 때마다 색색 옷을 입은 정령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내가 넋 놓고 있는 동안 배에 올라탄 세 사람이 동시에 내게 손을 내밀었다.
“로에나, 이쪽으로.”
아키드가 입을 열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렴.”
대공비가 손을 더 뻗었고.
“자, 이 손 잡고 타라.”
대공이 이에 질세라 손을 더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갑자기 경쟁이 붙은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내 선택에 아키드가 제외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키드의 손을 잡고 폴짝 뛰어 배 위에 올랐다.
그러자 대공이 곁에서 “아쉽군. 물에 빠뜨릴 수 있었는데” 같은 살벌한 농담을 내뱉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내가 뭐 잘못했나?’
내가 대공을 쏘아보려는데 엘레나가 대공을 부리부리하게 노려보았다.
‘너부터 밀어 줄까?’ 하는 눈빛이라 그건 그것대로 조금 무서웠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배에 탑승하자 마도구가 빙글빙글 돌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이라 그런지 강물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새까만 어둠 같은 강물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후 아키드가 내 어깨를 지그시 뒤로 밀며 말했다.
“너무 가까이서 보진 마세요. 밤이라 위험하니까.”
“아.”
어깨를 지그시 감싸는 손길에 놀라 쳐다보니 아키드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그는 내가 돌아볼 줄은 몰랐는지 움찔하면서도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조명을 따라 아키드의 얼굴이 알록달록해졌다.
청회색 눈동자가 얕게 흔들리는 건 물 때문인지, 흔들리는 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키드의 너머로 데미안의 등이 보였다. 엘레나와 데미안이 배의 끝과 끝에 앉아 서로를 등지고 있는 탓이었다.
아키드의 눈동자가 어느새 잠잠해졌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로에나.”
그러곤 손을 내미는가 싶더니 내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지금은 안 무서워요?”
이제부터 무서워해 보겠습니다.
나는 괜히 몸을 부르르, 떨며 그의 손을 잡았다.
“무서운 것 같기도.”
“그럴 것 같았어요.”
아키드가 눈을 반달로 곱게 접으며 손에 깍지를 꼈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몸이 더워지려 했다.
내가 손부채질을 하며 시선을 피하는 순간, 엘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아주 기이한 것을 봤다는 듯 나와 아키드를 기민하게 살폈다.
그때 언제 뒤를 돌았는지 데미안이 엘레나에게 말했다.
“부인도 무섭습니까?”
그러며 선심 쓰듯 자리에서 일어나 엘레나에게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
“당신은 날 무서워해야 할걸요. 밀어 버리기 전에 도로 앉으시죠?”
엘레나가 살인 예고를 하자 데미안이 흠칫, 떨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커흠!”
대공이 헛기침하며 괜히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는 게 구차해 보였다.
엘레나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도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정말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뱃놀이였다.
* * *
소풍을 다녀온 후, 나는 용기를 내어 대공을 찾아갔다. 그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탓이었다.
“제 다이어리 언제 주실 거예요?”
내 물음에 대공이 눈을 끔벅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아아, 그거. 어디에다 뒀더라.”
“네?”
“서재에 뒀었나……. 아니다, 침실이었나. 흐음.”
아니, 이 사람이!
남의 물건을 가져가 놓고 어디다 뒀는지도 모른다니. 이런 무책임한 사람을 보았나!
내가 어이없어 입술만 뻐끔거리는데 대공이 손가락으로 제 뺨을 톡톡, 두드리며 내 애간장을 녹였다.
진즉 돌려주지 않았을 때부터 수상하다 싶었는데 발뺌을 할 모양이었다. 약이 오른 나는 그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말했다.
“돌려주세요. 주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말이다, 새아가.”
대공이 의자 등받이에 기댔던 상체를 내게로 기울였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에 언뜻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뭔가 낌새가 예사롭지 않아 뒤로 주춤하는데 대공이 물었다.
“대체 그 안에 뭘 써 둔 게냐? 마도구까지 이용해 잠금을 해 두었던데.”
“그냥 일기장이에요.”
“고작 일기장에 그런 고가의 잠금장치를 해 두었다고?”
대공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설마 열어 보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그럼 안 되나요? 이 정도 사치는 상관없잖아요.”
“뭐, 그렇기는 하지.”
대공이 한풀 꺾인 태도로 등받이에 도로 몸을 기댔다. 그러곤 하는 말이 가관이다.
“찾아보아라.”
“…….”
“찾으면 돌려주지.”
대공이 빙그레 웃으며 약을 올리는 탓에 머리 뚜껑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참다못해 톡 쏘아붙였다.
“거짓말쟁이.”
“그 정도는 흠도 아닌데.”
시아버지고 뭐고 일단 들이받고 싶어졌다. 애를 상대로 어쩜 이런 짓궂은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그렇게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는데 대공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아실을 시켜 내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돌려주려고 했다.”
진즉 주셨으면 좀 좋아요?
내가 눈을 흘기며 다이어리를 빼앗으려는 찰나였다. 대공이 느른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새아가. 아키드가 지나다니는 경로는 왜 적어 둔 게냐?”
“!!”
툭.
다이어리가 내 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내 심장도 덩달아 툭, 떨어졌다.
아실이 다이어리를 주워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굳은 채 가만히 있었다. 대공이 키득거리며 턱을 괴었다.
“다들 네가 변했다 해도 믿지 않았는데, 다이어리를 보니 확실히 변하긴 한 것 같더구나.”
“…….”
“네가 아키드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리 정성을 쏟을 줄은 몰랐어. 보고 깜짝 놀랐지.”
“……어, 어떻게.”
나는 아실에게서 다이어리를 받아 품에 숨기며 말을 더듬었다. 아마도 내 눈동자는 지진이 난 것처럼 덜덜덜 흔들리고 있을 터.
대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잠금장치가 허술하더군. 내가 좀 손을 봐 두었으니 다른 이들이 열어 보지 못할 거다.”
이미 너님이 보았잖아요.
“다이어리 도둑.”
내가 울컥하며 힐난하자 대공이 어깨를 움찔했다. 내가 설마 눈물을 보일 줄은 몰랐다는 듯이.
“나는 그저 잠금장치가 잘 되나 확인을 하려고 했던 거다. 혹시 누가 훔쳐볼 수도 있으니.”
그 누군가가 바로 너님이겠죠.
나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공의 변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래서 검은 머리 대공은 믿지 말랬지.
나는 하델루스 대공에 대한 평가에 고민할 것도 없이 최하점을 주었다.
“미워요!”
내가 꽥, 소리를 지르자 대공과 아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대공의 방을 뛰쳐나왔다.
‘가만 안 둘 거야!’
나는 복수의 칼날을 갈며 곧장 대공비의 방으로 향했다.
“어머…… 읍!”
내가 막 문을 열어 대공이 내게 시켰던 스파이 짓을 고해바치려는 찰나, 언제 뒤따라왔는지 대공이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입을 막았다.
그러곤 대공비가 들을세라 후다닥 이동하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읍읍읍!(이거 놔요! 당장 일러바치러 갈 테니까!)”
“진정하거라.”
“읍읍읍!(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이 사기꾼!)”
내가 발을 버둥거리며 완강하게 거부하자 대공이 신음을 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을 비틀며 반항하는데 대공이 외쳤다.
“초상화!”
“……?”
“네가 이곳에 시집오기 전에 그렸던 아키드의 초상화를 주겠다.”
나는 아키드의 초상화라는 말에 모든 반항을 멈추고 대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대공은 내가 입질을 보이자 슬그머니 입을 풀어 주었다.
“설마 복도에 있는 초상화를 뜯어 주시겠다는 건 아니겠죠?”
그건 이미 매일 아침 찾아가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다고요.
내가 믿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자 대공이 말했다.
“그거 말고, 다른 화가가 그린 다른 구도의 초상화다. 복도에 걸리진 않았지만 완성도는 높아.”
아마도 여러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 복도에 전시한 모양이었다.
내가 일부러 뜸을 들이니 대공이 횡설수설 말을 보탰다.
“원한다면 다 주지. 그러니 제발 대공비에겐 말하지 말거라. 화도 좀 풀고.”
“콜.”
나는 언제 화가 났냐는 양 싱긋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지금 주세요.”
또 딴소리하지 마시고.
내 불신의 눈초리를 본 대공이 냉큼 새끼손가락을 걸며 나를 초상화가 보관된 창고로 데리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