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riage Life in the Grand Duke Family Is Too Easy, Though RAW novel - Chapter (90)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90)화(90/177)
#90.
“언제 오셨어요? 저 보러 오신 거예요?”
메이벨이 생기 어린 음성으로 대공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대공을 많이 의지한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딱히 널 보러 온 게 아니라…….”
“보고 싶었어요, 대공님.”
메이벨이 칭얼거리듯 대공의 품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까 나와 차분하게 대화하던 그녀와는 딴판이었다.
‘뭐지, 이 기시감은?’
저건 내가 대공에게 하던 짓과 비슷했다. 상대에게 아주 잘 보이기 위한 아부성 애교.
원래라면 내가 하려던 행동을 메이벨이 선수 친 탓에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 대공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장난투로 물었다.
“새아가, 새로 배운 보행법이냐. 출발 자세가 영 이상한데.”
“설마요.”
“그럼 걸을 줄 몰라서 그러고 있는 건가? 왜 그러고 있어, 이리 오지 않고.”
“하루 새에 갓난아기가 될 리 없잖아요, 아버님.”
“그러고 서 있기만 하길래 퇴행했나 했지.”
말이나 못 하면.
만나자마자 농담을 건네는 대공에 내가 뚜한 표정을 짓자 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얼른 와서 인사하라는 듯했다. 아무래도 내가 매번 배꼽 인사를 해 주어서 그것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환대를 안 해 주니 허전하기라도 한가. 어차피 메이벨이 앞서 다 했는데 내가 또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메이벨 앞에서 그 짓을 하자니 민망해서 머뭇거리며 다가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오셨어요?”
“환대가 시원치 않구나. 기껏 네가 여기 있다길래 찾아왔건만.”
“네? 저를 보러 오신 거라고요?”
난 당연히 메이벨을 보러 온 줄 알았다. 여기는 그녀의 방이었고, 메이벨의 반응도 그의 방문에 익숙한 듯 보였으니까.
“에이프릴 후작에게서 연락이 왔다. 네가 드론의 중개 유통권을 부탁했다고.”
“아아, 네.”
“섭섭하구나. 어쩜 나만 쏙 빼놓고 대공비와 짠 것도 모자라서 유통권까지 친정에 바치다니.”
아무래도 사업에 끼워 주지 않은 것에 섭섭함을 토로하려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대공의 이런 반응을 얼추 예상한 터라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에이, 설마 제가 아버님을 빼고 그랬을까요.”
“그럼?”
“잠시, 귀 좀.”
내가 메이벨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메이벨이 보고 있는 터라 대놓고 말하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메이벨은 드론이라는 낯선 단어에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대공이 메이벨을 한 번 힐끔거리더니 낮게 말했다.
“메이벨, 멀리 물러나 있거라.”
“네? 지금요?”
메이벨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매를 붙잡았으나 대공은 얄짤없었다.
“그럼 내가 나갈까?”
“아니에요.”
메이벨은 나와 대공을 번갈아 바라보다 마지못한 듯 저만치 테이블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이편을 계속 힐끔거렸다.
하여튼 사업에 관해서는 대공도 칼 같았다.
대공이 메이벨이 멀어진 뒤에야 상체를 기울였다.
이젠 귓속말할 이유도 없건만 참으로 철저했다. 내가 그의 귀에 두 손을 모아 대고 말했다.
“북부에서 렌털 서비스가 인기 있던 건 이미 들으셨죠? 이걸 황실과 연계해 기사단에 보급하면 수익이 어마어마할 거예요.”
“그래, 네 배가 아주 부르겠구나. 설마 자랑하려고 귀를 빌려 달란 것이냐.”
“아이참, 제 배만 부를까요? 사실 황실과의 거래는 아버님께 맡길 생각이었어요.”
“대공비가 아니라?”
대공이 의외라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긴 황실과의 거래는 엘레나를 통하는 게 편한 탓이었다.
사실 나도 황실과의 거래는 엘레나에게 맡길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황족의 친인척 특혜로 보여 드론의 가치가 희석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북부에서의 렌털 서비스를 엘레나와 하고 있으니 황가와의 거래는 데미안이 맡는 게 모양새가 좋았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으니 특혜라는 논란을 막기도 용이하고.
“아버님께서 맡으시는 쪽이 훨씬 공과 사를 구분하기 쉬울 테니까요.”
“쪼그만 녀석이 제법이군.”
대공이 만족스러운지 느른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내 의중을 단번에 이해한 모양이었다.
잠시 황가와의 거래를 틀 방도를 서로 논의하고 나서야 대공과 나는 메이벨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메이벨은 다소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적을 보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대공이 메이벨을 쳐다보는 순간, 그녀는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는 양 표정을 싹 풀었다.
난 그 찰나의 영악함에 눈을 깜박였다.
‘내가 잘못 봤나?’
한순간이지만 나에게 적의를 보였던 것 같은데.
너무 찰나에 스쳐 지나간 표정이라 조금 헷갈렸다.
만약 제대로 봤다 해도 나로선 그녀에게 밉보일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린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게다가 내가 아는 원작 속 메이벨은 이런 거로 상대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잘못 본 거려니, 하고 고개를 도리질했다.
저 해맑은 미소를 보아라, 여주인공의 햇살이 느껴지지 않는가.
메이벨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대공에게 아이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마지막 날 연회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정기 회의의 마지막 날엔 꼭 황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꽤 규모가 커서 수도 전역이 축제 분위기라고 들었다.
메이벨도 그 명성을 들었는지 은근히 가고 싶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런 큰 연회라니, 무척 재밌겠네요. 저는 연회에는 가 본 적이 없어서 어떨지 너무 궁금해요.”
“하긴 황궁 연회장이 제법 예쁘긴 하지. 엘라도 제법 좋아했고.”
“아버님, 아직도 그렇게 부르세요?”
어머님이 알면 경을 치실 텐데?
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쳐다보자 데미안이 씨익 웃으며 입가에 검지를 대었다.
“너만 고자질하지 않으면 된다. 엘라가 없을 때만 이렇게 부르고 있거든.”
“저를 믿으세요, 아버님?”
내가 눈을 깜빡이며 짓궂게 되묻자 데미안이 큭큭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설마 내가 말할까, 싶은 얼굴이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말을 아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써먹어야지, 하는 사악한 마음은 꼭꼭 감춘 채로 말이다.
“저어, 대공 전하. 혹시 그 연회에 저도 갈 수 있을까요?”
“연회에 가고 싶으냐?”
“그냥, 앞으로 백작가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연회 분위기 정도는 익혀 두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어쩜, 여주인공은 생각하는 것도 선량하기 그지없었다.
나였다면 저런 이유보다는 맛있는 음식과 멋진 황궁 건물을 구경하고 싶어서 데려가 달라고 떼를 썼을 텐데 말이다.
데미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벌써부터 그런 걸 신경 쓴 게냐.”
“그냥, 앞으로 만나게 될 백작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요.”
메이벨이 두 손을 모아 수줍게 말했다. 볼에 홍조까지 띠며 부탁하니 거절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나는 대공이 거절하기 전에 냉큼 말했다.
“제 시녀로 데려갈게요.”
“새아가 네가 말이냐? 전문 시녀가 아니라 불편한 게 많을 텐데.”
“그렇다고 아버님께서 데리고 가시면 모양새가 별로잖아요.”
어린 시녀를 데리고 다니는 귀족 남자라니. 아동학대로 고소당하기에 딱 좋았다.
게다가 메이벨은 대공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소문까지 무성한 존재였다.
물론 그녀의 얼굴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데미안이 데리고 가면 단번에 들킬 터였다.
차라리 또래인 내 시녀로 데리고 가는 게 가장 말 나오지 않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데미안이 턱을 쓸며 말했다.
“하긴 어린아이를 부려먹는다고 욕을 먹겠구나. 내 생각을 해 주다니, 기특한 것.”
그러곤 내 머리를 헝클이며 씨익 웃었다.
딱히 데미안을 위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저렇게 포장을 해 주시니 부응해 주는 건 인지상정.
나는 한껏 가슴을 쭉 펴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럼요. 저는 언제나 아버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답니다.”
제 맘, 아시죠?
윙크까지 하자 데미안이 폭소했다. 한눈에도 날 귀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내 매력에 빠진 거지.
그간 열심히 아부한 보람이 있어.
후,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나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데미안과 주거니 받거니 장난을 주고받았다. 해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메이벨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래. 그럼 메이벨이 입고 갈 만한 적당한 드레스를 준비하도록 하마. 명색이 하델루스가의 가신 가문 딸인데, 모양 빠지게 가도록 둘 순 없지.”
“좋은 생각이세요. 어쩜 아버님은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지요.”
어차피 내 돈도 아니라 적당히 호응했더니 데미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돈 필요하냐?”
“필요하다고 하면 주시려고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을 텐데요.
내가 양손을 모아 슬그머니 내밀자 데미안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주다 뿐이냐? 수도에 건물을 사 달라 하면 사 줄 의향도 있는데.”
진짜? 진짜, 진짜로?
내가 두 눈을 초롱초롱히 뜨자 데미안이 큭큭거렸다.
“물론 네가 하는 거 봐서. 아직은 좀 마음이 덜 동하는군.”
“어린이를 괴롭히면 나쁜 사람이랬어요.”
“그 어린이가 보통 어린이가 아니라서 괜찮을 것 같구나.”
“어머님이 어디 계시더라.”
내가 몸을 빙글 돌리자 데미안이 잽싸게 나를 붙들며 말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내가 고자질쟁이를 키웠어.”
그걸 이제 알다니. 아버님은 바보가 분명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그러니 잘하시오’ 하는 몸짓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