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l God who Regressed Back to Level 2 RAW - Chapter (129)
포탈 너머의 풍경은 살풍경한 실험 구역과는 전혀 달랐다.
녹음이 우거진 아늑한 공간.
‘정원 같군.’
정중앙에는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앞에 한 폭의 그림 같은 미녀가 앉아 있었다.
금발의 녹안을 지닌, 백색 로브를 입은 여인은 테이블 위 수정구에서 마나를 불어넣다가.
“……어?”
성지한이 포탈 너머로 튀어나온 걸 보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빠르게 신색을 회복하고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님이 오셨군요.”
그녀의 입이 서서히 열리며 고운 음성이 들려오자 시청자들의 감탄 섞인 댓글이 이어졌다.
-오오… 대박…
-헤…헤으으으응…!!!!
-이 정도면 예전 시즈루급 아님?
-ㅇㅇ; 또 다른 여신의 출현이네 ㄷㄷㄷ
-이 채널 은근 눈 호강할 기회가 많다니깐ㅋㅋ
-근데 엘프 맞나? 귀가 기네.
-엘프 맞는 듯. 근데 콜로세움에서 본 엘프보다 더 예쁜데?
-ㄹㅇ 말로만 듣던 하이 엘프라도 되나?
상식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토 시즈루.
그녀의 얼굴이 공개된 이후, 대중들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그녀가 세계 최고의 미녀일 거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이번에 게임에서 나온 엘프는 그런 시즈루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성지한이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예전에 네가 보여 줬던 엘프군.’
[그래. 저게 진짜 엘프다.]세계수 연맹의 엘프는 모두 이렇게 생겼다면서, 아리엘이 보여 준 엘프 형상.
눈앞의 여인은 그것과 딱 일치했다.
“실험체가 포탈을 통해 탈출하다니…… 참 신기한 케이스군요.”
성지한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던 엘프는.
스으윽.
수정구를 로브 소매로 쓸어 이를 수거했다.
그리고 텅 빈 책상을 가리키며.
“인간 분.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온화한 어조로 성지한에게 티타임을 권유했다.
툭툭.
그녀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리자.
원목 테이블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찻잔이 두 개 불쑥 올라왔다.
찻잔에서는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맑고 깊은 향의 차가 차올라 있었다.
-분위기 미쳤네
-밑에서는 지옥의 혈전을 치르고 있는데 여기만 천국이구만
-남자라면 이건 거절할 수가 없따
-ㄹㅇ머리로는 뭔가 이상한 걸 알아도 몸이 움직일 듯 ㅋㅋㅋㅋ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분위기.
하지만.
[저 잡것이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차향을 주의해라. 주인.]아리엘이 팔 안에서 급히 경고를 보내 왔다.
그녀 말대로, 차의 향이 퍼져 나가자.
정신이 몽롱해지며, 기분이 고양되고 있었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있었군.’
어째 보니 안 그래도 아름다운 눈앞의 엘프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흐읍-
성지한은 호흡을 고르며 몸의 이상 현상을 정상으로 돌렸다.
무혼으로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상태라, 이 얄팍한 간계 정도는 가볍게 파훼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베어 버리고 싶군.’
엘프에게는 저번 생에 쌓인 원한이 컸기에 이를 게임에서라도 풀어 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퀘스트…… 깨야지.’
성지한은 에픽 퀘스트의 내용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실험 구역을 만든 주체와, 실험 목적을 알아내라는 퀘스트.
여기서 전자는 이미 해결했지만, 실험 목적에 관해서는 아직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주인. 무지개 잎의 향은 그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저 잡것의 목을 단번에 쳐 버리는 게 어떻겠는가.]‘아니, 잠깐 장단에 맞춰 주자.’
털썩-
성지한이 원목 테이블의 건너편 자리에 앉자.
이를 본 엘프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제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래. 이 장소를 만든 게 당신이었나? 왜 이런 걸 만들었지?”
성지한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여나 대답해 주면 바로 퀘스트가 클리어될 거라 기대하고 질문한 것이었지만.
“후후…… 성질이 급하시군요. 차 한잔 들면서 천천히 이야기해요.”
엘프는 대답을 피하며, 자기 찻잔을 우아하게 입에 가져다 댔다.
“안 드시려나요? 차가 잘 우려졌는데.”
차를 마신 후, 성지한에게도 권유하는 엘프.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향이 조금 전보다 더욱 짙어졌다.
성지한이 예전 수준이었으면,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 정도로.
그 향기는 은밀하고 집요하게 그에게 개입하려 들었다.
-왜 자꾸 차를 먹이려고 들지?
-뭔가 수상한데 ㅋㅋㅋㅋ
향과는 영향이 없는 시청자들은, 이에 이상함을 느끼고.
[만렙일등이가 1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성지한님 조심하세요!! 차 자꾸 먹이려고 들어요! 1등 사수해야죠!!]채팅을 못 보는 성지한을 위해서, 1만 GP나 들여서 후원을 하는 극성팬까지 생겼다.
채널 구독자가 수백만이 되면서, 성지한이 설정해 둔 최소 금액 1만 GP를 넘겨 후원하는 케이스가 종종 나타났는데.
이번에도 열성팬 한 명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정신 차리라고 거금을 투척한 것이다.
‘좀 미안한데.’
하지만 이미 자리에 앉아서, 장단을 맞춰 주기로 한 이상, 상대방에게 넘어가는 척은 해 주어야 했다.
성지한은 후원 메시지에 나중에 응답하기로 하고.
찻잔에 손을 뻗어 이를 단번에 마셨다.
청량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 나가더니.
‘호오…….’
몸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신체의 제어권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물론 성지한이야 무혼을 통해 한 호흡만에 이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지만.
‘뭐 하나 보자.’
일단 이 상태를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
“후훗…….”
엘프는 딱딱하게 굳은 성지한을 보곤,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에게 다가가, 몸을 주물럭거렸다.
“특이한 개체네…… 레벨은, 그다지 높지 않은데.”
엘프가 신기하다는 듯이 성지한을 쳐다보았다.
“이 신체 능력…… 이런 폐급 종 출신으로 가능한 건가?”
툭. 툭.
성지한을 만지던 엘프는 그의 몸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그곳에 피가 슬쩍 묻자, 이를 햝은 그녀는.
“……이거.”
대번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연구소로 보낼 재목이다.”
그녀는 로브자락 안에서, 수정구를 꺼내더니.
원목 테이블에 내던졌다.
피시시시-
테이블에 녹색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엘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움직인 그녀는.
“&!$!#.”
조금 전과는, 내뱉는 음성이 판이하게 달랐다.
아까는 게임 속에서 자동으로 번역이 되는 언어였다면, 이번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음성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혹시 아나?’
[엘프어다. 상위 실험체, 찾았다…… 라고 하는군. 근데 어떻게…….]아리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어 가려고 할 때.
[생존자가 50명 남았습니다.] [게임이 곧 종료됩니다.]‘뭐야. 벌써 다 죽었어?’
서바이벌의 게임이 종료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니, 무슨 게임이 벌써 끝나?
그런 기분은 성지한만 느낀 게 아니었는지.
“#$&!#!#$&$!#.”
[쓰레기 종족. 서바이벌이 뭐 벌써 끝나냐고 욕하고 있다.]엘프들이야 재생력이 미친 수준이니.
인간처럼 서바이벌이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진 않겠지.
그녀는 로브 소매에 손을 집어넣더니, 손바닥만 한 나뭇잎을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