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l God who Regressed Back to Level 2 RAW - Chapter (21)
* * *
매니저 제로.
그녀가 지닌 기프트는 다름 아닌 ‘육성’이었다.
‘서포팅 기프트, 육성.’
서포팅 기프트.
게임 외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주는 이 능력은, 튜토리얼 시절만 해도 쓸 만하지가 않아 외면받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튜토리얼이 종료되고 난 이후.
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기프트의 등급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포팅 기프트는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육성은 최상급의 능력으로 꼽혔지.’
기프트 ‘육성’.
이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이는 튜토리얼 때만 해도 몇 명에게만 추가로 10퍼센트 정도의 경험치 버프를 주는 능력이어서, 크게 주목 받지 않았다.
튜토리얼 때 경험치 버프는, 각 길드가 GP를 지불해서 구매할 수 있는 성장의 축복 효과랑 똑같았으니까.
중복도 되지 않으니, 굳이 이 기프트를 지닌 사람을 중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튜토리얼 시기가 지난 이후에는 달라졌다.’
튜토리얼 이후에는, 길드에서 GP로 경험치 버프를 살 수 없었고, 거기에 기프트 ‘육성’의 범위가, 튜토리얼 시기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다.
경험치에만 작용하던 것이 튜토리얼 이후엔, 스탯 성장 속도와 기프트 등급 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적용되는 능력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또한 길드 고위직에 있을수록 육성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점도 알려지며, 외면받던 이 기프트는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유명 길드의 관리자 직책이라면 기프트 육성은 꼭 가지고 있어야 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는 이가 매니저 제로였지.’
매니저 제로.
그녀는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 내에서도 별종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입가를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철가면을 썼는데, 살갗이 드러난 입가에는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성녀가 치료해 주겠다고 했지만, 악마와 거래한 대가라며 한사코 이를 거부했지.’
그래서 처음에는 이하연과 제로를 연결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얼굴을 제외하고는 목소리나 체형, 하는 행동이 제로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특유의 제스처도 그렇고, 도박 중독인 것도 그렇고.
‘애초에 제로란 이름이 된 이유가…….’
매니저 제로.
그녀는 주정뱅이고, 도박 중독자였다.
그리고 도박 중독자의 결말이 흔히 그렇듯, 그녀의 재산은 언제나 ‘제로’였다.
-지한, 지한! 나, 너. 잘 안다고. 너는 승부사 성 씨잖아!
-좀 알려 줘 봐. 요즘 뭐에 걸면 되겠어!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의 파티 자리에서.
이민자라 겉돌던 성지한에게 다가온 매니저 제로는, 자기도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무작정 승부 예측을 해 달라고 성지한을 귀찮게 했다.
하지만 막상 예측을 해 줘도, 그녀는 뚜렷한 주관이 있었다.
-지한, 그래. 이 친구 어때. 디에고 마시드. 무슨 SSS등급 기프트 이름이 ‘축구의 신’이야. 언제 적 축구 가지고. 참나…… 이 인간, 쳐발리겠지? 이 친구 상대편에 걸면, 나 돈 딸 수 있겠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SSS급 등급을 뭐 개나 소나 주는 줄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디에고 마시드는 발릴 거라고! 쳐 발릴 거라고!
-나는 분명히 말했다. 마시드가 이긴다.
-치, 네 승률 다 알고 있어. 62퍼센트잖아. 이번엔 38퍼센트, 네가 지는 케이스겠지!
제로가 그런 소리를 할 때면, 언제나 성지한이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Shit…… 미친놈이 축구만 할 것이지. 왜 캐논 볼을 치고 있어.
-SSS급 기프트가 그냥 나오는 줄 알았냐.
-아니야, 아니라고. 다음엔 내가 이길 거라고!
-넌 그냥 도박 하지 마.
-후후, 세상이 가능성으로 충만할 때. 그것을 무시하기란 힘든 일이지…….
-제로, 너한텐 잃을 가능성밖에 없어.
-닥쳐.
아무리 충고해도 듣지 않고, 보드카를 퍼마시면서 해롱해롱하던 제로.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가면은 절대로 벗지 않은 채로 한탄만 일삼았다.
-너 말이야. 씨. 왜, 이제 와서 강해진 거야.
-네…… 네가 한국에서 지금처럼 강했으면. 내 친구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나쁜 새끼…….
-아니,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은 없지. 내가 나쁜 년이지…… Shit…….
술주정까지 심한 제로.
그녀는 심각한 알코올, 도박 중독자였다.
일반 회사라면, 언제든지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에서 2군 길드장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독보적인 육성 능력 때문이었다.
‘차원이 달랐지.’
그녀가 제공하는 경험치 버프 비율만 해도, 최소 100퍼센트에서 시작했다.
그녀가 길드 2군에서 키워 낸 인재만 해도 한 트럭이었다.
‘제로는 꼭 내가 포섭해야 해.’
눈앞의 여인.
가면을 쓴, 화상 자국투성이인 제로와는 180도 다른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왠지 성지한은 그녀가 제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기프트만 확인한다면, 확신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선 영입이 불가능하다.’
재벌가 출신이자,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이성 길드의 부장 이하연.
그에 비해 성지한은 유망하지만 아직 브론즈 플레이어일 뿐이니, 지금의 그가 이하연을 자신의 세력으로 영입할 방법은 없었다.
‘일단 제로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찾았다는 데 의의를 둬야겠군.’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하연의 앞에 서 있던 임가영이 그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대답해 주십시오. 성지한 씨. 대체 아가씨가 맨날 하는 소리를 어떻게 안 겁니까?”
성지한은 살벌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가영에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예전에 성씨 채널 운영할 때, 채팅 창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문구라서요. 구독자셨다기에 혹시나 해서 말한 겁니다.”
“……아가씨, 그 문구를 채팅방에 쓰셨습니까?”
“으, 음. 글쎄? 이 주제는 이제 그만하지 않을래. 가영아?”
그냥 둘러댈 생각이었는데, 정말 썼나 보군.
성지한은 임가영의 어깨를 붙잡고, 다시 앞으로 나서는 이하연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성지한에게 여유가 느껴지자, 이하연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그녀는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구독자의 채팅까지 기억해 주시고, 참 세심하시군요. 성지한 님.”
“별말씀을요.”
“어쨌든…… 이렇게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지한 님을 이성 길드로 영입하고 싶어서예요.”
“이성으로 말입니까?”
“네, 성지한 님. 일단…….”
이하연이 본격적으로 영입을 제안하려고 할 때.
성지한은 그녀의 말을 툭 끊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날이 좋지 않군요. 조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아. 그, 그렇군요.”
성지한이 이렇게 이야기도 듣지 않고,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던 탓일까.
이하연은 잠시 당황한 얼굴을 드러냈지만, 곧 표정을 추슬렀다.
“그래요. 조카분이 컨디션이 안 좋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러면…….”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성지한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았다.
“전화번호를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 번호요?”
“네.”
전화번호 이야기에, 뒤편에 있던 임가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성지한에게 번호 달라고 하다가, 무참하게 까였던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내 번호 아직도 안 알아냈군.’
그간 일이 너무 많아서, 자기 번호는 아직도 알아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핸드폰 쓸 일도 없었고.
성지한은 임가영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아, 죄송하지만. 제 폰 번호가 기억이 안 나서요.”
“……네?”
성지한의 대답에, 이하연의 웃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엥?”
그의 옆에 있던 윤세아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었다.
폰 번호를 왜 몰라?
“세아야, 내 번호가 뭐였지?”
“…….”
태연하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는 삼촌.
성지한은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였지만.
‘아냐, 최근 들어 갑자기 똑똑해진 삼촌이 자기 번호를 모를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윤세아는 머리를 굴렸다.
이건 무슨 의도가 있는 걸 거야.
‘길드 가입 이야기가 그렇게 듣기가 싫은 건가. 아니면…… 밀당?’
두 가지 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아까 삼촌이 넋 놓고 저 사람을 바라보기는 했지.’
그녀는 둘 중, 조심스레 밀당 쪽으로 추측했다.
그렇다면 그 의도에 맞게, 도와줘야지.
“삼촌 폰 번호, 나도 모르는데.”
“그래?”
“응, 물론 내 폰에야 저장되어 있는데. 마침 폰을 집에 두고 와서…… 없네.”
윤세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빈손을 펼쳤다.
사실 그 주머니 안쪽에는 핸드폰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거기까지 눈치채진 못했다.
“흠, 나도 위에 놔뒀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혹시 명함이 있으면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네.”
핸드폰 번호를 기억도 못하고, 거기에 마침 폰도 위에 놔뒀다고?
삼촌과 조카가 둘 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가 있나.
‘…….’
이하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애써 웃으며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여기 있어요.”
그녀가 명함을 건네자, 이를 받아 든 성지한은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이쪽으로 연락드릴게요. 세아야, 갈까?”
“응, 삼촌.”
윤세아는 이하연 일행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성지한과 같이 펜트하우스행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모습을, 형식적인 미소만 지은 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이하연은.
드르르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 자기 폰 번호를 모른다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핑계로 까이다니.
나 이하연이?
성지한이 노골적으로 자신만 계속 뚫어지게 바라볼 때만 해도, 영입 제안이 부드럽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풋.”
“뭐.”
“아닙니다. 아가씨.”
“할 말 있으면 하세요. 가영 씨.”
“없습니다.”
이하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임가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지만, 입꼬리 한쪽이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할 말 있잖아, 너.”
“그저, 옛날에 절 그렇게 비웃던 아가씨의 모습이 생각나서요. 풋.”
“으으…….”
이하연은 이를 악물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까여서, 임가영에게도 비웃음을 사다니.
‘두고 봐. 성지한…….’
어떻게든 꼭 영입해서, 네 입에서 부장님, 더 나아가 아가씨 소리까지 나오게 해 주겠어.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이하연은 눈을 빛냈다.
* * *
엘리베이터 안.
“삼촌, 근데 그렇게 밀당하는 거. 좀…… 별로야.”
윤세아는 삼촌에게 여자로서 충고를 하고 있었다.
“뭔 소리야? 밀당이라니.”
“날 거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이거 노린 거 아니야? 쯧, 그거 너무 올드 해. 옛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라고. 요즘은 돌 직구가 좋아.”
“……너,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거냐?”
성지한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에헴, 이 조카가 눈치 백 단인데, 완벽히 이해했지. 삼촌이 진짜 폰 번호를 모를 리가 없잖아.”
“아닌데, 나 진짜 몰라.”
“어, 진짜? 010-384…… 이거잖아?”
“아! 맞다. 역시 그 번호였나.”
성지한이 드디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세아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 몰랐어? 자기 폰 번호를?”
“응.”
“……아까 알려 줬어야 했나? 으으, 내가 괜히 삼촌의 연애 사업을 방해한 건가?”
“연애? 내가 이하연이랑?”
“응, 삼촌도 아까 넋 놓고 쳐다봤잖아.”
심각한 알코올, 도박 중독자인 제로랑 연애를?
성지한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됐어. 도박 중독자는 질색이니까.”
“……그래?”
자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박 중독이었으면서.
이런 게 동족 혐오인가?
‘뭐…… 내가 삼촌 연애를 방해한 건 아닌가 보네.’
진심으로 싫어하는 성지한을 보며, 윤세아는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