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l God who Regressed Back to Level 2 RAW - Chapter (438)
세계수 점화 장치와, 흑색의 봉인함.
성지한은 수련장 내부에서 두 EX급 아이템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실험을 해 보았다.
여러 시도 중, 가장 유의미했던 건 서로 붙여 놓는 것.
두 아이템은 서로 밀접해질수록, 공허의 기운을 짙게 뿜어냈다.
그것도.
‘상당히 질이 높은 공허였지.’
성지한은 자신의 왼쪽 얼굴을 매만졌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커진 얼굴의 균열.
예전에는 그래도 어떻게 보면 상처 같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얼굴과 얼굴 사이에 보랏빛의 틈이 확실히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서 뿜어져 나온 걸 흡수만 했는데도 이 정도인데…….’
EX급 아이템이 내뿜는 기운만 흡수했는데도, 예전에 비해 확실하게 발전한 얼굴의 공허.
아무래도 흑색의 관리자가 아이템을 직접 만들어서 그런가.
지금껏 공허의 기운을 많이 다뤄 봤지만, 정밀함이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 이것만 옆에서 흡수했는데도, 얼굴의 공허가 늘어났지.
거기에.
‘아직 확실히 감은 잡지 못했지만, 정밀한 공허는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것 같단 말이지…….’
자신이 어디에 있든, 지구의 세계수를 불태워서 힘을 회수해 올 수 있는 세계수 점화 장치.
그리고 외부와의 교류를 완전히 차단하는, 흑색의 봉인함.
두 아이템 다 각자 방향은 달라도, 공간의 제어와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추측의 단계일 뿐. 확실히 결과물을 내려면 더 많은 공허를 흡수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발전에도 끝이 있었다.
‘이제는 옆에서 흡수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네.’
스스스스…….
붙여 놓은 두 아이템에서, 예전처럼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기운.
하나 이건 이제 더 이상 성지한의 힘을 강화시켜 주질 못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진일보가 필요한 시점.
‘이거 아예 얼굴의 공허처리장에 흡수시킬까.’
성지한은 세계수 점화 장치를 보면서 그리 생각했다.
어차피 쟤들 바람과는 달리, 누르지도 않을 거.
공허처리장에 아예 넣어서 흡수시켜 버리면 지금보다 훨씬 공허가 발전할 거 같은데.
다만.
‘너무 힘이 강해졌다간, 지금의 균형이 깨질지도 모르지.’
공허처리장과 적색의 관리자의 손.
성지한의 몸에 이식된 두 힘은, 원래 관리자의 손 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가 봉인되고, 공허처리장은 이번에 발전하면서 힘의 우열 관계가 비슷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두 EX 아이템을 공허처리장에 넣어서 이를 강화시키면.
힘이 공허처리장 쪽으로 급격히 쏠릴 수 있었다.
‘당장은 그렇게 과도한 공허가 필요하지 않으니, 아이템을 넣지 말자.’
무작정 공허처리장을 업그레이드했다간,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성지한은 지금 말고, 더 힘이 필요한 순간에 이를 얼굴의 균열에 넣기로 했다.
“인벤토리.”
성지한은 인벤토리 안에 두 EX급 아이템을 넣어 두곤, 수련장을 나섰다.
사실 여기서 수련할 것이 이것 외에도 많았지만.
‘일단 레벨 600부터 찍어야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레벨 600이 되어 챌린저 6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으니까.
* *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챌린저 게임 매칭.
[상대 플레이어가 모두 사망합니다.] [게임이 종료됩니다.]가볍게 적을 쓸어버린 성지한은, 레벨 업 메시지가 나오질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레벨 진짜 안 오르네요. 이래선 이번 토너먼트에서 600도 못 되겠네.”
일주일도 남지 않은, 성지한의 두 번째 토너먼트.
대성좌도 참여하려면 챌린저 5를 가야 하니, 사실 이번에 그들이 참여할 기회는 날아간 거나 다름없었지만.
성지한의 레벨 업 속도가 더 빨라질 수가 없어서, 이제 기준을 챌린저 6이 아니라 7로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원래 그 정도 레벨에선 레벨 업이 쉽지 않아요…….
-근데 챌린저 7이면 성좌 레벨 몇까지 참여 가능한 거임? 참여 요강 해석 좀 해 봐.
-성좌 레벨 9까지 가능한데,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제한적임. 20퍼센트?
-20퍼센트면 경쟁률 엄청나겠네;
적색의 손이 상품으로 나온 아레나 토너먼트.
저번 토너먼트에서 아소카가 손을 봉인하긴 했지만, 참여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았다.
손이 봉인되어 적멸을 쓸 수 없는 성지한이면, 성좌 레벨 8도 싸울 만하고.
레벨 9면 충분히 이길 거라 예상되었으니까.
-레벨 9가 참여한다면 역시 우주천마가 우승하려나?
-레벨 9에 강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그 이름만 오가는지 모르겠네;
-아니, 그놈 그만큼 괴물이잖아…….
-패배한 적 없지 않나? 우주천마.
그리고 성좌 레벨 9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 동방삭이었다.
방랑하는 무신과 함께, 우주의 성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우주천마.
일검을 들고 행성에 착지하여, 모든 걸 쓸어버리는 그의 악명은 워낙 소문이 나서.
레벨 9 성좌 중에서는, 그가 가장 유명한 축에 속했다.
-그래도 그가 꼭 나온단 보장은 없음. 자리가 20퍼센트밖에 없는데, 9레벨 성좌들도 이번에 대거 지원할 거 아님? 경쟁에서 밀리면 탈락이지.
-이거 근데 무슨 기준으로 토너먼트 참가자들 뽑는 거야?
-선착순이라던데?
-오…… 선착순이면 진짜 안 나올지도?
-레벨 9끼리 실력은 차이 나도, 신청서 제출 속도는 공평하겠지 ㅋㅋ
성지한은 외계의 채팅창 내용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선착순이라…… 동방삭을 지금 마주치긴 껄끄럽긴 하지.’
비록 동방삭의 현 신분은 무신의 종이지만.
성지한은 그가 무신보다 월등한 무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초월적인 무인과, 토너먼트에서 벌써 만나는 건 손해인데 말이지.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지한은 토너먼트 관련해서 활발히 올라오는 채팅을 둘러보다가, 일단은 배틀튜브를 껐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토너먼트.
만약 여기에 동방삭이 출전한다면, 철저히 대비를 해야 했다.
성지한이 그렇게 이 경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방을 나왔을 때.
[……지한아. 너. 얼굴 왜 그래?]거실에서 둥둥 떠 있던 성지아가 굳은 목소리로 성지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허가 너무 강해졌는데…… 균열도 커지고.]“아, 이거 수련의 결과야. 힘 좀 얻었어.”
[……힘 좀 얻었다고 이야기하기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아.]“이거?”
툭. 툭.
성지한은 자신의 금 간 얼굴을 가리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금방 부서지긴. 일 년은 버틸걸?”
[일 년은 금방 아니야?]“일 년이면 충분히 오랜 시간이지. 그 전에 모든 일이 끝나 있을 테니까.”
무신과의 분쟁이나, 적색의 관리자의 불을 다루는 것.
이 모든 일은, 분명 일 년 내에 끝이 날 거라고 성지한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허처리장의 힘이 강해져서, 몸이 일 년을 채 버티지 못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이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다니…… 그러면, 그 얼굴도 공허도 사라져 준다니? 네 몸은 어떻게 하게?]“그거야 뭐. 지금처럼 성장해서, 이 공허를 컨트롤하면 되잖아?”
[……성장이 실패하면?]“성장 실패라니, 그런 불가능한 가정은 안 해. 그것보다.”
그는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스윽.
그의 손가락이, 성지아의 자물쇠를 가리켰다.
“누나는 이 자물쇠 언제 풀 거야? 초심자의 아레나도 끝났잖아. 이제 그만 사람으로 돌아오지그래.”
[……그러려고 했는데, 아직은 조금 더 이 몸으로 할 일이 있어.]“뭔 일? 세아도 세계 랭킹 2위인데. 더 후원을 할 필요가 있나?”
[세아랑 관련된 일은 아니야.]그러면서 성지아가 물끄러미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세아랑 관련된 일이 아니면…….
“설마 나야?”
[응.]“뭐 신안으로 예언 본 거라도 있어?”
[신안은 아니지만, 본 건 있어.]“뭔데?”
성지아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얼굴은 공허에 잠식되고, 몸은 불에 타올랐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꾹꾹 눌러 담다가, 결국 터져 버렸어…… 한계를 넘진 못했지.]“흠. 어디서 그랬는데?”
[나도 잘은 몰라. 다만, 네 얼굴 위로, 여러 무기가 허공에서 반짝이고 있었던 것 같아…….]성좌의 무구를 말하는 건가.
그럼, 투성이겠군.
“거기서 터진 거면 괜찮아.”
[뭐…… 뭐가 괜찮아? 네가 사라졌는데!]“그 별, 무신이 사는 곳이거든. 거기서 모든 힘을 쏟아부었으면 됐지.”
[……그다음엔 어쩌려고? 얼굴은 공허에 잠식되고, 몸은 불타 사라졌는데!]“뭐…… 다 방법이 있어.”
성지한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정작 그 ‘방법’이란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미쳤다고 거기서 자폭을 하겠냐? 나 지금까지 벌어 둔 GP, 다 쓰기 전까진 못 죽는다.”
[그래…….]“어. 세계 1위로 떵떵거리며 살다 가야지 무슨…… 다 살아날 방법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방법이 뭔데 그래서?]“나한테 스탯 영원이란 게 있는데, 그거로 복구하면 돼. 자세한 건 나중에 보면 알 거야.”
성지한은 성지아의 추궁을 그렇게 넘기며, 그녀의 자물쇠를 다시 가리켰다.
“그러니 내 걱정 말고 열쇠나 쓰셔요.”
[……그건 좀 더 있다 쓸게.]“아 진짜. 그러다가 못 풀면…….”
[야, 나도 너처럼 다 방법 있거든?]이 누나가 똑같은 말로 카운터를 치네.
성지한이 잠깐 할 말을 잃었을 때.
[그러니까 열쇠 이야긴 그만해. 나 간다.]“어딜 가?”
[화장실.]“돌이잖아, 누나.”
[……좀 대충 그런 줄 알고 넘어가!]성지아 석상이 둥둥 떠오르며 안방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어휴 저 인간 진짜 열쇠 언제 쓰냐.’
이쯤 되면 그냥 돌멩이로 사는 게 편한 거 아냐?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공허의 마녀로 있겠다는 마음이야 고맙긴 하다만.
‘전력상으론 솔직히 큰 도움 안 될 텐데…… 그냥 인간이나 됐음 좋겠는데 말이지.’
지금 직면한 상대들을 보면, 성지아의 성좌 권능은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 힘으로 도와주려고 하느니, 그냥 인간 빨리 돼서 마음이나 편하게 해 줬음 좋겠다만…….
‘뭐…… 입장이 바뀐 상태였다면 나도 저렇게 나왔겠지.’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성지아가 떠난 자리를 잠시 지켜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슬쩍 한숨이 나왔다.
* * *
무신의 별, 투성.
[동방삭. 토너먼트에 지원해라. 거기서 성지한의 손을 가지고 오라.]“알겠습니다. 무신이시여.”
동방삭은 무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명령을 받고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흐음…….”
삑. 삑.
눈을 가늘게 뜨면서, 신중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노인.
피티아는 옆에서 그걸 보더니 입가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동방삭 할아버지. 지원할 줄은 알지? 모르면 내가 도와줄까?”
“……사람을 바보로 아나? 아레나에 지원서 내는 걸, 누가 못 한다고!”
“아니 어째 모양새가, 어르신이 힘들게 IT 기계에 적응하려는 것 같아서. 젊은 내가 도와주려 했지.”
“젊은? 피티아 네가 나보다 훨씬 늙었을 텐데?”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저기요. 훨씬은 아니거든?”
“인류의 시초 이브랑 비교하기엔, 내가 너무 젊지.”
“야, 얼굴은 내가 더 어려!”
“허허. 겉가죽 가지고 평가를 하면 되나?”
스으윽.
동방삭이 그러면서 오른손을 한 번 휘두르자.
도포가 흔들리며, 그의 몸이 순식간에 작아졌다.
그와 함께 수염이 사라지고, 주름이 펴지며.
동방삭의 모습은, 정정한 노인에서 순식간에 어린아이로 변모했다.
“이렇게 손짓 한 번으로 어린아이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일세.”
“어…… 순식간에 바뀌네. 근데 너 좀 귀엽다?”
“어릴 때부터 한 인물 했지.”
스으윽.
그러면서 습관처럼 턱에 수염을 쓰다듬으려 손을 가져가던 동방삭은.
“아…….”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미끄러뜨렸다.
콰직!
땅바닥에 떨어진 채, 박살이 난 스마트폰.
금이 간 액정에는, 아레나 지원 화면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