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l God who Regressed Back to Level 2 RAW - Chapter (511)
적색의 세계수를 소멸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던 태극마검.
오랜 수련 끝에 동방삭은 이 검을 완성시켰지만.
그 자신은, 무언가 미진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검의 파괴력, 아직 부족하군.
투성에서는 태극마검의 수련을 금지당했기에, 언제나 머릿속으로만 이를 생각하던 동방삭은.
여기에 있을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좌의 무구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상공.
그때만 해도, 무신에 대해서는 주인을 향한 존중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 성좌의 무구를 볼 때면.
가슴속에서 하나의 충동이 일어났다.
-일검에 무너뜨리고 싶다.
왜일까.
무신에게는, 충성스러웠는데.
왜 저 성좌의 무구를 볼 때면, 태극마검으로 저 하늘을 무너뜨리고 싶을까.
동방삭은 이 기이한 충동을, 억제하려고 했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서는, 어느새 하나의 검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아소카의 죽음 이후, 스스로의 기억을 봉인하는 과정에서.
-이제부터 모든 걸 잊고, 무신에게 충성하겠지만…… 단 하나만은 잊지 않겠다. 성좌의 무구가 가득한 이 하늘을, 일검에 베겠다는 일념만을.
그는 모든 걸 잊는 와중에도.
태극마검으로 투성의 하늘을 무너뜨리겠다는 결심만은 깊이 새겨 두었다.
그리하여, 완성한 검이 은하검흔銀河劍痕.
은하에 검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일개 검결에 사용하기엔 광오하기 짝이 없는 무공명이었지만.
‘……그 이름. 너무나도 어울리는군.’
태극마검을 쥔 성지한은.
금방 은하검흔의 힘을 파악했다.
다른 무인이 자신의 초식에 이런 이름을 가져다 대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동방삭이 만든 이 검은, 과연 이름에 걸맞았다.
‘다만 그의 태극마검 없이는, 이 은하검흔…… 영원히 쓸 수 없겠어.’
은하검흔에 대해 이어받은 성지한은, 자신이 이걸 쓸 수 있는 기회가 한 번뿐임을 깨달았다.
동방삭의 모든 깨달음이 집결된 태극마검을 쥘 때만 가능하고.
그의 검이 사라지면, 은하검흔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검결이 되겠지.
뭐, 이 태극마검을 유지한 채 백 년 천 년 수련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지.’
성지한은 빠르게 은하검흔의 습득에 대해선 포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수준이 맞아야지 배우지.
이 검은, 무의 천재인 동방삭조차 오랫동안 고안해서 만들어 낸 거라.
흉내도 낼 수가 없었다.
안 되는 거에 미련 가지지 말고, 가장 효율적인 활용법이나 떠올리자.
‘단 한 번 쓸 수 있는 검…… 이거 잘 써야겠는데.’
무신의 힘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제대로 맞춰야지.
괜히 이상한 상황에 힘을 쓰다간, 아까운 검기만 날리게 된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멸신결의 모든 구결을 익혔습니다.] [혼원신공混元神功이 무극멸신武極滅神으로 변화합니다.] [스킬 등급이 EX로 오릅니다.]‘무극멸신?’
성지한은 혼원신공의 이름이 뒤바뀐 걸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혼원신공 스킬 설명 마지막에.
[멸신결을 모두 터득하여 그 안의 극의를 깨우치면 무공의 새로운 이름을 찾아, EX급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다.]EX급으로 올릴 수 있단 이야기가 있었지.
‘은하검흔도 그렇고, 천수강신도 아직 극의를 깨우쳤다기엔 이른 거 같은데…….’
스킬 등급 올려 주는 거야 고맙게 받겠다만.
은하검흔이야 태극마검을 쥐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길가메시에게 미치지 못하는 천수강신도 극의를 깨우쳤다고 평가해 주는 건가?
이거 기준을 모르겠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무극멸신의 설명을 열어 보았다.
[무극멸신武極滅神]-스킬 등급 : EX
-혼원신공의 진정한 주인, 동방삭이 방랑하는 무신을 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권능.
-규격 외의 존재인 동방삭의 무재武才가 담겨 있지만, 시스템의 한계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칭호 ‘무신’을 장착할 시, 무재의 구현도가 올라간다.
‘와, 시스템의 한계가 나오다니…….’
동방삭의 재능이 얼마나 규격 외면, 이게 구현이 안 될 정도지?
천재인 건 알았지만, 진짜 차원이 다르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지금껏 사용했던 무공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확실히 뭔가 다르군.’
그의 무재 일부만 이어받았음에도.
지금까지 사용했던 무공이, 어디가 어설펐는지 바로 짚을 수가 있었다.
이런 게 천재의 재능인가.
‘원래는 그가 할 일을, 범재인 내가 하게 됐네.’
동방삭과 아소카.
두 천재들이 해야 할 임무를, 자신이 최종적으로 맡게 되었으니 그 짐이 무겁긴 했지만.
그러니 더욱.
‘확실하게 무신을 처리하겠다.’
성지한은 마음을 다지곤,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파아아앗……!
해저에서 하늘로 드높게 치솟던 빛이 일제히 검으로 모이고.
바닥의 구궁팔괘도가 새하얗게 빛났다.
그러자,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생명력이 급격하게 꺼져 나갔다.
아마도.
진 안에 봉인되었던 세계수가 사라지는 과정이겠지.
이걸 본 길가메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세계수가 완전히 사라지려 들지 않느냐……! 마, 막아야 하지 않겠나?”
“이미 먹을 만큼 먹었잖아. 생명력.”
“그건 너고! 나는 아직 부족하단 말이다!”
그놈 참 시끄럽네.
그냥 지금 제거할까.
성지한이 길가메시의 처우에 대해 잠시 고민할 때쯤.
지이이잉……!
검이 뽑힌 봉인진이 무언가를 비추었다.
* * *
봉인진 안에서 나타난 건, 하나의 우주 공간.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저건…… 투성이군.”
“그래? 저렇게 보니 별로 크지 않네.”
“아마 달보다 훨씬 작을 거다. 무신이 움직이는 것인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데…….”
길가메시가 그렇게 봉인진 안을 살피는 사이.
지이이잉…….
성지한이 들고 있던 태극마검의 끝에서, 미세한 빛이 저 안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화아아악!
봉인진 안에서 비추던 모습이 확대되더니.
작은 암석 구체에 불과하던 투성을 본격적으로 비추었다.
그리고.
투성의 대지가 드러나자, 저 화면 속에 검의 형상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성지한은 처음엔 이게 뭘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위이이잉…….
저 검의 형상에 태극마검이 공명하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검의 형상이 생기는 곳으로 착지한다는 건가.’
동방삭이 투성 가는 건 걱정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네.
근데 이러면.
‘이놈…… 필요 없는데?’
성지한은 길가메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혹시나 투성에 갈 방법이 없어지면, 보험용으로 쓰려고 살려 두고 있었는데.
이걸 보니,
“……왜 그렇게 보지?”
“야, 오래 살았지?”
“자, 잠깐. 죽일…… 셈이냐?”
“어, 후환은 남겨 두지 않는 주의라서.”
성지한이 단언하자, 길가메시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기, 기다려라. 내, 내 권능! 내 권능에 대해 궁금하지 않느냐!”
“천수강신?”
“그렇다! 너는 안 통하지 않았는데, 나는 된 이유……! 그걸 알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권능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아, 세상에 미스테리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리고.”
스으으으…….
성지한의 몸에서, 푸르른 예기가 흘러나왔다.
“권능은 이미 완성했어.”
“뭣…….”
“네 천수강신도, 이미 터득한 거로 나오더라고.”
“그럴 리가……!”
성지한이 권능을 완성했단 이야기에, 길가메시의 눈이 암담해졌다.
이대로라면 진짜 죽는다.
어떻게는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던 그는.
봉인진 화면 속에서, 무신을 발견하곤 그쪽에 손가락을 뻗었다.
“자, 잠깐! 저거 봐라! 무신. 무신이 이걸 감지하고 있다!”
길가메시의 지적대로.
무신은 가리키는 지점에 서서, 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착지 지점을 바꾸어 보아도, 무신은 금방 따라와서, 대비를 하고 있는 상황.
“착지 지점을 알면, 거기에 미리 함정을 깔아 버릴 텐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황금의 탑을 저기서 세우는 게 어떻겠나?”
“바벨탑?”
“……그래. 바벨탑 말이다. 함정을 피해서, 그리로 워프하는 거지!”
검의 착지 지점을 보여 주면서, 바벨탑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른바 양동작전으로 가자는 건가.
“널 믿을 수가 없는데.”
“계약서를 쓰자! 난 확실하게 널 운반하고, 넌 확실하게 날 살려 주도록!”
“넌 저놈한테 사기 계약을 당해 놓고도, 계약서를 쓰고 싶냐?”
“그래서 보완했다……! 계약의 주체의 이름에, 배틀넷에서 쓰는 이름까지 모두 병기하기로.”
“……너 설마 쟤한테 사기를, 이름 바꿔치기로 당한 거냐?”
성지한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내자, 길가메시가 항변했다.
“그는 분명히, 그때만 해도 엔키두의 이름을 썼다! 내가 몇 번이고 확인했거늘……!”
“엔키두? 엔키두면 그 강철 거인 이름 아니냐?”
“그래. 날 구해 준 그에게 고마워서, 이름 좀 쓰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었지…….”
그러면서 길가메시가, 말을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너야 내가 실험실에서 씨만 뿌리던 쓰레기로 보이겠지만. 내 삶도 그리 여의치는 않았다. 자식을 많이 볼 때만 해도 적의 일족은 날 대우했지만, 내가 점차 생식 능력이 떨어지자 교체해야 하는 거 아니냔 의견이 나오고 있었지…….”
“넌 그전까지 잘 지내긴 했잖아. 네 여자들만 죽어 났지.”
“그렇다고 죽을 순 없지 않으냐! 내 대체재를 생산하기 위한 실험이 이루어지던 그때, 나에게 무신이 접근했지…… 이 판을 엎지 않겠냐고.”
“판을 엎는다라.”
이게 태초에 있었던 일인가.
성지한은 태극마검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직은, 힘이 유지되는 중이지만, 풀 스토리를 듣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겠군.
“그때의 내 감정이 어땠을 것 같으냐? 적의 일족의 종마로 살면서, 충성을 바쳐 온 지난날을 잊고. 그들을 배신해야 하는…….”
“아, 됐고. 네 감정은 중요치 않으니까 짧게 중요한 사실들만 말해.”
“……큭. 뭐, 그래서 무신은 나를 실험실에서 빼내고, 더 나아가 공허와도 연결을 시켜 주었다.”
“공허와?”
성지한은 그 말에 눈쌀을 찌푸렸다.
공허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레나의 주인은 길가메시를 공허의 소명을 저버린 배신자라고 했지.
임무를 끝마친 그는,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어야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그땐 그냥 그런가 싶었지만.
이 말을 해 준 게, 아레나의 주인인 걸 떠올리니.
뭔가 꺼림칙해졌다.
그는 적색의 관리자와 결탁했던 공범이었으니까.
“너 공허에서 뭔 힘을 얻은 거냐?”
“……공허의 존재에게서 천수강신을 얻었다. 공허의 구속구를 개조한 것이라 하더군. 이 힘으로 지구에 뿌리내린 세계수와, 적의 일족을 제압하라고 했다.”
여기까진, 아레나의 주인의 설명과 일치하는군.
하지만.
‘무신이 공허와 접점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천수강신의 성질도 공허랑은 워낙 궤가 다르단 말이지.’
상대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스탯 ‘영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천수강신.
이 성질은 공허가 추구하는 목적.
필멸必滅과는, 영 상반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길가메시의 문제까지 신경 쓰기엔 여유가 없어서 고민해 보질 않았는데.
직접 그의 입으로 이 사실을 들으니, 확실히 의아한 점이 있었다.
성지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질문했다.
“그거, 누가 줬지?”
“누가 줬냐니?”
“혹시 모자 쓴 놈이 직접 줬냐?”
“……맞다, 아레나의 주인이 전수해 주었다.”
적색의 관리자와 결탁한, 아레나의 주인이 직접 알려 준 천수강신이라.
‘뭔가 적색 놈이랑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이거.’
적색의 세계수와 길가메시의 천수강신만 통하는 것도 그렇고.
어째 영 찝찝하단 말이지.
좀 전까지만 해도 이 현상에 대해선 그냥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놔두고 길가메시를 치워 버릴까 했지만.
아무래도, 이건 풀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깐 태극마검을 쥐느라 확인하지 못했지만.
[스탯 ‘적’의 왜곡도가 30 오릅니다.] [스탯 ‘적’의 왜곡도가 30 감소합니다.]스탯 적의 왜곡도도, 팍 튀었다가 원래대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적색의 관리자와 관련된 의문점은, 일단 풀고 가야 해.’
이러면 결국, 이놈과 계약서를 써야 하는 건가.
후환이 될까 봐 영 살려 두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가 없군.
‘……음, 근데 이름을 바꾼 사기에 당했다 그랬나.’
아까 들을 때만 해도 뭐 이런 멍청한 놈이 있나 싶었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관리자 모드를 켰다.
그리고 속으로, 시스템에 문의했다.
‘관리자 권한으로 이름 수정되냐?’
엔키두도 했다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질문에.
[‘청색의 관리자 성지한’은 배틀넷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존재입니다.] [이름을 완전히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시적으로는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명성이 너무 높아, 이름 변경 시 관리자 권한이 1분당 100 소모됩니다.]시스템에선 일시적인 수정만 가능하단 답이 들어왔다.
성지한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 건지, 이름 하나 바꾸는데 관리자 권한을 1분당 100씩 쓰긴 했지만.
‘되긴 되네?’
일단은,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다.
성지한은 바로 수정 시도를 해 보았다.
그러자 곧.
“……그래서 어쩔 생각이지? 성지훈.”
길가메시의 입에서, 뒤바뀐 이름.
‘성지훈’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