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l God who Regressed Back to Level 2 RAW - Chapter 694
외전 23화
‘그가 왜 여기에…….’
성지한은 가라앉은 눈으로 동방삭을 바라보았다.
어비스의 안쪽에서 강림 전까지는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갑자기 거대한 태극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다니.
그때.
머리 한쪽이 찌를 듯이 아파오면서.
‘이건…….’
하나의 기억이, 뇌리에 떠올랐다.
[크, 큰일 났어……!]아이와 놀아 주고, 소피아의 엄마가 큰일이 났다며 부른 것까지는 지금까지와 비슷한 장면.
하나, 그 후.
스스스…….
동방삭의 태극이 거꾸로 움직이자, 세상 전체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빌딩의 창이 모두 깨져 나가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역행하는 태극 속에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물론.
이 사람들 중에는 소피아와 엘리도 포함되어 있어서.
[지한…… 내, 내가 엘리를……] [아빠! 아빠……!]그는 딸과 부인이 태극 안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 돼!!!]두 눈이 뒤집힌 성지한은 동방삭을 어떻게든 막아서려고 했지만.
[유감이구나.]푸슉!
동방삭의 검에 찔린 그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똑같이 태극에 빨려 들어가 전신이 갈려 버렸다.
[동…… 방삭……]죽기 직전.
증오를 가득 담아 동방삭의 이름을 담았던 성지한.
그의 절절한 원념을 마지막으로.
뇌리에서 떠올랐던 짤막한 장면은 끝이 났다.
“큭…….”
동방삭에게 무력하게 패배했던 자신의 최후.
이걸 보고 나니, 성지한은 기억 속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비스의 주인…… 태극의 망혼인가.’
동방삭에게 패배했던 성지한의 파편.
그들이 뭉쳐, 원혼처럼 남아 있던 것이 태극의 망혼이었다.
헌데 그 중에 하나가 소피아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었던 건가.
예전에 태극의 망혼이 왜 그렇게 동방삭을 증오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파편의 힘이 융합됩니다.]파아아앗……!
성지한의 신체에 빛이 번쩍이며.
몸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스탯 청만 운용할 수 있었지만.
기억을 보고 나니 ‘미국의 검’으로 불리던 현 성지한의 힘까지 같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청 2 정도의 보조는 가능하겠어.’
이렇게 능력이 주어진 건, 이번에야말로 동방삭을 막아 달라는 건가.
성지한은 가라앉은 눈으로 거실 창밖으로 걸어 나갔다.
스으윽……
그의 몸이 반투명해진다 싶더니, 그대로 창을 통과하고 나오자.
가만히 수염만 쓰다듬던 동방삭이 입을 열었다.
“검을 꺼내게.”
태극의 망혼이 겪었던 과거와는 달리.
검을 꺼낼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주는 동방삭.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눈앞의 상대는.
무신의 명을 받아 인류를 멸망시키려던 무신의 종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오히려 성지한과 협력하여 아크의 문제를 해결했던.
이후의 동방삭과 느낌이 비슷했다.
“동방삭……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건.”
그 질문에, 동방삭의 손이 잠시 멈칫하는 듯싶더니.
“자네가 스스로 알아내야 할 문제네.”
그가 수염을 쓰다듬은 손을 뒤로 뻗자, 태극이 거꾸로 돌아갔다.
슈우우우…….
“여기서의 나는 적이네.”
그러면서, 서서히 일그러지는 공간.
빛으로 이루어진 태극마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하게.”
그러면서, 가벼이 검을 휘두르는 동방삭.
하나 성지한은 잘 알고 있었다.
가볍게 보이는 저 일격이, 천지를 가를 거라는 걸.
‘이에 대항하려면…….’
스스스…….
성지한의 등 뒤에서도 태극이 떠오른다 싶더니.
음과 양으로 나뉜 두 형상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타난 건.
동방삭의 것과 비슷하나 반투명한 형상의 검.
“일원一元…….”
번뜩이는 동방삭의 눈.
검과 검이 맞닿자.
파아아앗……!
태극마검의 빛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다.’
일원은 태극마검의 윗 단계.
가진 힘의 차이가 현격하여 검을 단번에 부수진 못했지만.
일원을 활용하면 충분히 우위에 설 수 있다.
거기에.
‘강상보단 확실히 약해.’
동방삭의 완성형이나 다름없던 무림제국의 황제 강상.
그와 일백 년을 같이 수련한 성지한은 전투에도 완전히 숙련되어 있었다.
‘제압하자.’
자신 있게 뻗어나가는 일원.
그의 검이 태극마검을 부수려는 순간.
스스스스…….
태극에서 10개의 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빛으로 번뜩이는 마검.
“놀아 보세.”
동방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슈슉……!
열 자루의 태극마검이 일제히 성지한을 노렸다.
***
전투가 시작된 지 10여분 후.
스스스…….
성지한은 점점 옅어지는 일원을 보면서 눈빛을 가라앉혔다.
‘……힘이 부족하군.’
아무리 이쪽 성지한의 힘까지 끌어 썼다 해도.
이 정도의 청 스탯을 가지고 일원을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서 검을 완성했지만.
10분 쯤 되자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에 반해, 동방삭은…… 아직 힘이 남아 있어.’
10자루의 태극마검을 운용하며 성지한을 압박했던 동방삭.
그의 검은 일원에 의해 수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아무리 검이 부서져도 태극에서 검이 계속 튀어나와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동방삭에게 공세를 가하기에는 절대적인 힘이 부족한 상황.
‘태극의 크기가 반 정도 줄긴 했는데…….’
동방삭도 힘의 소모가 없는 건 아니다.
성지한이 약해진 태극을 보면서 희미해져 가는 일원을 어떻게든 부여잡을 때.
“지한! 내가 왔다!”
위쪽에서 배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라이 마법을 썼는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돕도록 하지!”
파아앗!
배런은 태극을 향해 강력한 마법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대마법이라 할 만큼 강력한 공격 마법이었지만.
스스스…….
역행하는 태극은 이를 모조리 흡수해 버렸다.
“아니……!”
이를 보자 눈을 크게 뜨는 배런.
나름 회심의 일격을 가했는데,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하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휙!
동방삭이 팔을 한번 움직이자.
쩌저적……!
배런이 쳐둔 배리어가 일제히 깨져 나가면서,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 거 참 도움 안 되네……
-아니 배런은 분명 강력한 마법사인데, 맨날 깨지는 모습만 보게 됨 ㅋㅋㅋ-상대가 너무 나빴지 뭐 -ㄹㅇ 이 노인네 너무 괴물임;
그래도 추락하는 와중에 어떻게 정신을 차렸는지.
슈우우우…….
배런은 낙하를 멈추고 다시 공중에 떠올랐다.
“큭…… 미안하군. 도움을 주긴커녕, 방해만 되다니…….”
응?
배런 입에서 미안하단 소리가 나온다고?
‘현실의 배런도 아니고…… 여기선 세계 랭킹 1위라 상당히 거만할 텐데?’
성지한이 그의 사과를 듣고는 눈만 깜빡일 때.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돕는 게 낫겠나? 얼마든지 말해 달라.”
배런은 한술 더 나아가 성지한에게 지시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어…… 그래. 그럼 건물 안 가족부터…….”
“가족? 아. 엘리와 소피아는 다 대피시켰다!”
“어, 언제?”
“네 가족이 내 가족 아니더냐! 네가 걱정할 거 같아 먼저 챙겼다!”
아니, 언제부터 그랬어?
성지한이 황당해하며 배런을 바라보자.
“넌 내 생명을 두 번이나 살려 준 은인…… 이번엔 내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
그가 비장한 얼굴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여기의 성지한은 대체 얼마나 배런과 깊게 교류한 거야?
-ㅎㄷㄷㄷ 뭐야 배런 왜 이래 이런 애 아니잖아;
-이야 오래 살다보니 이런 배런도 보네……
-ㄹㅇ 감동이다 야 ㅠㅠ
-사람이 되기도 하는구나……
-두 번 살려 줬대잖아 ㅋㅋㅋ
이런 타입의 배런은 처음이라 시청자들이 경악하고 있을 즈음.
“가족이라.”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동방삭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자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를 버티고 서 있었던 건가?”
“…….”
“어쩐지, 충격을 다 받아 내더라니.”
동방삭의 말대로.
성지한은 천지를 가를 태극마검의 일격을 일원으로 모두 흡수해 왔다.
이는 사실 비효율의 극치.
공격을 죄다 막기보다 흘려내고 적절히 피했으면.
일원은 이렇게 희미해지기 전에 동방삭에게 유효한 피해를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등 뒤에는 잠깐이지만 온기를 나눈 이들이 있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들은 구궁팔괘도의 허상이며.
진짜 가족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건물이 무너지도록.
소피아와 아이가 잔해에 깔리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성지한이 다시금 의지를 다지자.
“무극無極에 닿기 위해선, 먼저 무정해져야 하네.”
동방삭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무극을 입에 담았다.
“무극……?”
무극無極.
무림제국의 황제, 강상만이 도달한 경지.
아크에서 성지한이 이를 완성하기 위해, 그와 같이 100년을 수련했지만.
결국엔 이에 도달하지 못하고, 일원을 양산하여 미트라를 제압하지 않았던가.
‘지구에 돌아온 이후론, 무극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무극은 강상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그리 결론을 지은 성지한은 모든 일을 끝낸 후.
이에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여기서.
동방삭이 무극을 거론하는 거지?
성지한의 두 눈동자가, 살짝 흔들릴 즈음.
“이 모든 것은 무극을 위한 과정…….”
스스스…….
동방삭의 기세가 일변하고.
태극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싶더니, 거기서 태극마검 수십 자루가 나타났다.
“내, 기꺼이 악역을 맡도록 하지.”
그리고 그 검은.
파아아앗……!
지금처럼 성지한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 퍼져 나갔다.
그와 싸우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부수겠다는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검의 움직임.
“이놈이……!”
배런이 날아가는 태극마검을 붙들기 위해 포스를 가동했지만.
푸슉!
검은 붙들리기는커녕, 그의 몸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커어억……!”
“배런!”
“지, 지한. 길드로……! 거기에 다 피신…….”
그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슈우우우…….
태극마검에 빨려 들어가 사라진 배런.
성지한은 이를 악물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빌딩의 숲, 맨하탄의 마천루는.
동방삭이 작정하고 파괴하려 드니까 건물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다 막을 순 없어. 이걸 멈추려면, 동방삭을 노려야 한다.’
성지한이 모든 힘을 쥐어짜 일원을 다시 붙들었지만.
스스스…….
오히려 동방삭은 성지한과의 거리를 벌려 나갔다.
“환상 속의 아이에게도 잔정을 준다면, 자네는 결코 무無에 도달할 수 없네.”
“동방삭! 전 애초에 무극에 도달할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성지한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럴 리가.”
동방삭의 형체가 희미해지며.
“성지한. 본심을 따르게…….”
그의 말이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본심을 따르라니.
이 말은, 벌써 몇 번이고 들은 말 아니던가.
성지한은 두 눈을 부릅떴지만.
‘일단, 길드로……!’
배런의 유언대로.
피신시킨 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 본부 빌딩으로 날아갔다.
허나.
“감정은, 깎일수록 무뎌지니…….”
메아리치는 동방삭의 음성은.
“내가 이를 도와주겠네.”
성지한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리고.
태극마검이 길드 본부에 꽂힌다 싶더니.
파아아앗……!
빛의 검이 일시에 어둠을 토해 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에 파묻혀 가는 건물.
“아…….”
성지한이 길드 본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게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망연자실해 있는 그의 눈앞으로.
[구궁팔괘도가 붕괴했습니다.]메시지가 떠오르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빛이 다시 느껴진다 싶을 즈음.
“우와…… 무신님. 벌써 해결하셨어요?”
옆에서 윤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