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l God who Regressed Back to Level 2 RAW - Chapter 716
외전 45화
‘태극의 망혼이 내 감각까지 공유했다니…….’
윤세아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싶더니, 다 이놈들 때문이었나.
성지한은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파편을 바라보았다.
동방삭이 진 안에 넣어 줘서 얼굴 조각이 두 개 더 추가되어 있는 태극의 망혼.
‘이놈들이랑도 벌써 10년이나 지났던 건가.’
어두컴컴한 어비스의 바닥.
시간의 흐름은 굳이 측정하지 않은 채로 수련에만 열중했었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망혼의 이야기에 따르면.
벌써 10년이 지났고, 여기서 오래 버텨 봤자 천 년이 한계라는 거군.
‘……그동안 전혀 진전이 없었네.’
10년.
무극과 초월체를 극복하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투자했으면 어느 정도 진전은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10년이나 지났다고?] [그동안 이룬 건 전혀 없군……] [내가 뭐라고 그랬나. 천년이건, 만 년이건 불가능할 거라 하지 않았나.]태극의 망혼이 이야기하는 대로.
성지한은 그동안 이룬 게 없었다.
그도 10년 동안 논 건 아니었지만.
무극과 초월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니들이 내 성취를 어떻게 안다고?”
성지한은 자신을 야유하는 태극의 망혼을 보며 한마디 했다.
이놈들은 뭐 이렇게 단언하는 거야?
[너의 모든 게 공유되지는 않지만.] [너의 감정, 네가 느끼는 감각은 우리도 느낀다……]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꺾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막막함이 점차 커지고 있지 않는가.]성지한은 답변을 듣고는 표정을 굳혔다.
그러니까 윤세아가 감각 공유를 통해 느꼈던 것처럼.
여기에 있는 태극의 망혼들도, 성지한이 지금 느끼고 있는 막막함과 절망감을 다 알고 있다 이거군.
옆에서 10년 동안 개고생했던 걸, 쯧쯧거리면서 본 건가.
‘……이대로는 답이 없다.’
10년간, 맨땅에 헤딩을 해 보았지만.
길은 전혀 찾지 못했다.
밖에서 동방삭이 자신을 신뢰하는 게 미안해질 만큼.
지금은 이룬 성취란 게 없었으니까.
이런 지하 밑바닥에 틀어박혀서 고안한다고 한들, 무극과 초월체를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답이 나올까?
[동방삭은……] [이기지 못한다……]성지한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옆에서 초를 치는 파편을 보며.
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동방삭이 이놈들을 왜 여기 몰아넣었을까?’
구궁팔괘도의 유지를 위해서?
아니면, 밖에 풀어두었다가 윤세아의 경우처럼 미트라가 이용할까 봐?
성지한은 바닥에서 꿈틀대는 자신의 파편을 바라보면서 의문을 지녔다.
이 어비스의 바닥에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수련에 방해만 되는 태극의 망혼들.
동방삭을 증오하지만 또한 그를 이길 수 없다고 절망감을 느끼는 이들은.
성지한이 벽을 넘는 데 있어서 전혀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았다.
수련에 있어선 완전한 방해물.
그런데 여기에 몰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지한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비록 일부지만 내 감각을 공유한다고 했지.’
그럼 역으로.
이쪽에서도 저들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건가?
성지한은 태극의 망혼을 둘러보며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정말로 느껴지는군…….’
성지한은 망혼이 느끼는 감각을 역으로 느꼈다.
어비스의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굴욕감.
동방삭을 보았을 때의 공포감과 이를 느끼며 들었던 수치심.
10년간 수련에 열중하는 성지한을 보면서.
되도 않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성과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중적인 감정까지.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이들에게 자리하고 있었구나.’
시작은 같은 성지한이었어도.
태극의 망혼이 품고 있는 감정의 결은 모두 달랐다.
그리고 성지한이 태극의 망혼에 대해 알아가자.
[나를 지켜보는가……] [패자의 밑바닥을 보아서 무엇하려고.] [너는 유일한 성공작. 우리를 보다간 여기에 물들 것이다……]밑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 싫어서인지.
이제 와서 걱정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성지한이 감각 공유를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곤, 그 시도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런 거였나.’
성지한은 태극의 망혼을 보면서.
동방삭이 왜 이들을 여기에 몰아넣었는지, 점차 감이 오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왜 여기 있는지 알겠다.”
스으윽.
그 말에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는 태극의 망혼.
성지한은 이를 보며 씩 웃었다.
“너희랑 같이 일하라고 몰아넣은 거였어.”
* * *
[……일?] [설마, 네가 하고 있는 그 무모한 시도를.] [우리보고 하라는 거냐?]성지한의 말에 태극의 망혼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이들은 동방삭을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했으니.
자신들이 어찌 ‘무극’에 도전하겠냐는 태도였다.
“솔직히 이야기하지.”
성지한은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극이고, 초월체고, 내 재능으로는 천년이 지나도 이를 뛰어넘는 걸 만들지 못한다.”
[솔직이고 자시고.] [그건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참 토를 많이 다는군 그래.
성지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내’가 백 명, 천 명 같이 도전한다면…… 천년 안엔 답이 나오지 않겠나?”
동방삭이나 미트라 같은 천재 중의 천재는.
능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할 수 있었다.
‘하나 나는 아니었지…….’
성지한은 자신이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걸, 10년의 삽질을 통해 겸허하게 인정했다.
그렇다고 해도 성지한이 또 재능이 없는 편은 아니었으니.
이렇게 감각이 공유되는 또 다른 ‘자신’이 모두 모여서.
같은 방향을 보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너는 우리와 다르다.] [청색의 관리자까지 한 너와.] [패자에 불과한 우리들은 재능 차이가 확연하다.] [우리가 가세한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정작.
성지한의 말을 들은 태극의 망혼은 자신이 없는 기색이었다.
이들 중에는 ‘미국의 검’이라 불리며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성지한도 있었지만.
그냥 도박 중독자로 살다가 태극에 휘말려 사라진 이도 있었으니까.
같은 성지한이라고 해도 재능은 똑같지 않았다.
[세아를 보면, 도와주고 싶지만……] [네가 뭘 하는지…… 사실 이해조차 못 한다. 나는.] [괜한 시간 낭비야.]아무리 이들이 한 때 어비스의 주인으로 군림하며 공허의 힘을 다뤘다 한들.
‘청색의 관리자’인 성지한이 다루는 힘은 이보다도 더 고차원적이었으니.
이들은 당장 도움이 되기보다는, 발목만 잡을 확률이 컸다.
하지만.
“990년이나 남았지 않나.”
성지한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동안 내가 아는 걸 가르쳐 주겠다. 모든 걸 다.”
[네가……?]“그래. 내가 가능했으니, 너희도 가능하다.”
990년.
혼자서 답도 없는 방황을 지속하느니.
또 다른 ‘나’를 가르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겠지.
모래사장에 바늘 찾기도.
혼자서 하는 것보단 여럿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다.”
[그럼……?]“무극을 꺾고, 초월체를 통제하게 되면…….”
스으윽.
성지한은 태극의 망혼을 하나하나 다 빠짐없이 바라보았다.
“구궁팔괘도 속 세계를 모두 복원하겠다.”
[뭣……?] [구궁팔괘도 속의 세계를 복원한다고……?!]“그래.”
그곳은 이들이 모두 태극마검에 의해 죽기 직전 상황을 보여 주던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미련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도 했다.
“엘리란 아이는 참 붙임성이 좋았지. 딸이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인 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성지한은 기억나던 세계를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그다음에 보았던, 아들 현우에겐 미안하다. 엘리를 잃었을 때의 기억 때문에 쉽사리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녀석이 세아한테 붙어 있기도 했지만…… 내 마음 씀이 부족했다.”
[……]“그리고, 여기서 9다리 한 놈은 누구냐? 여자 좀 적당히 만나라. 미친놈아.”
그 말에, 심히 꿈틀거리는 성지한의 다리.
저놈이었구만.
성지한은 피식 웃곤 말을 이어 나갔다.
“아크의 초월체는 너무 강했다. 그 힘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었지. 하지만, 무신의 탑에 봉인된 초월체는…… 통제 가능하다. 너희가 도와만 준다면.”
나에게 배워서 나를 도와라.
그러면 너희의 세계도 복원하겠다.
이런 성지한의 약속에.
꿈틀. 꿈틀.
태극의 망혼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우리가 몇이나 되는지 아느냐?] [초월체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수많은 세계를 어찌 다 살리겠나.] [혹여 가능하다고 치자. 그래도, 여기에 초월체의 힘을 쏟아버린다고?] [창조의 권능을 여기에 모조리……?]무신의 탑에 봉인되었음에도 강력한 초월체의 힘.
하지만 태극의 망혼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의 무너진 세계를 죄다 창조하려면.
초월체가 지닌 힘을 대부분 투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 힘 다 써 버리지 뭐. 그게 뭐 어때서?”
하나.
성지한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반문했다.
“미트라는 초월체로 거창한 대의를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뭐 거창한 거 할 거 없이. 그냥 사욕을 위해 쓰자고.”
사욕을 거론하는 성지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해 보였다.
[사욕이라……] [하. 하……] [그게 네가 내린 결론인가?]창조의 힘을 내 맘대로 쓰겠단 결론에.
당황해하는 태극의 망혼.
하지만.
꿈틀. 꿈틀…….
그들은 하나둘씩 성지한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나의 사욕은 일단…… 윤세아를 살릴 거고.”
그러면서 손가락을 하나 핀 성지한은.
“현실 세계도 계속 안전하게 지킬 거다.”
한 개를 더 펼쳤다.
“양자택일 따위는 하지 않아. 둘 다 이룰 거니까.”
스윽.
성지한은 자신이 펼친 손가락 2개를 태극의 망혼에게 뻗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나처럼 마음껏 욕심부려라.”
욕심을 부려라. 이루어 줄 테니.
그 말에.
[하. 욕심……] [욕심을 마음껏 부리라고……] [……처음으로 네가 마음에 드는군.] [좋다. 당장 가르쳐라.] [동방삭은 몰라도…… 나 자신은 뛰어넘을 테니까.]어비스의 바닥.
성지한의 파편이 널브러진 지옥도에서 기이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성지한의 시도를 조소하며 패배할 거라던 망혼.
그들에게서 처음으로 의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꿈틀. 꿈틀……,
자신의 파편이 모여들자.
성지한은 생각했다.
‘그래. 한 명이 안 되면…… 천 명의 내가 한다.’
동방삭이고 미트라고.
천 명의 내가 천 년간 머리를 쥐어짜면.
답이 나오겠지.
‘이게 나의 해법이다.’
이는 또한.
태극의 망혼을 여기에 모두 모은 동방삭의 해결책이기도 할 터.
망혼을 바라보던 성지한의 눈에 굳은 결의가 서렸다.
그렇게.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 * *
어비스의 지하.
“……정말 빠르게 줄어드네요.”
윤세아는 공허의 마녀 표면에 자리한 구궁팔괘도가 사라지는 걸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까 조금 지워진 게 10년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대체 몇 년이나 지난 거야?
“것 참 성격이 급하구나. 그가 어련히 잘할 것인데. 차분히 기다리거라.”
“그래도…… 그 지옥에서 10년을 보낸 것도 끔찍했는데. 수백 년을 혼자 있으면 미치지 않겠어요?”
“지옥이라…… 그건 있기 나름이지.”
그러며 느긋하게 수염을 쓰다듬던 동방삭은.
파아아앗……!
공허의 마녀의 몸에 새겨진 구궁팔괘도에서.
일제히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눈을 크게 떴다.
“호오…….”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구궁팔괘도의 반응.
“어……? 어 벌써 끝난 거예요?! 할아버지, 왜 저래요?!”
“허허. 차분하라 했거늘.”
“저걸 보고 어떻게 차분해져요!”
[세아야 좀 진정해…… 그리고 저분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무신이셔……]몸이 번쩍거리는 공허의 마녀 쪽에서 그리 말하자.
그제서야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는 윤세아.
그렇게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며, 구궁팔괘도의 변모를 바라볼 즈음.
슉!
구궁팔괘도의 정중앙에 희끄무레한 것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일제히 그리로 빨려 들어가는 구궁팔괘도.
그렇게 중첩된 진이 완전히 사라지자.
스스스…….
마녀의 석상 앞에서.
“동방삭.”
성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답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