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x Level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560
제 1559화
꽤 늦은 시각이다.
잠에 구속되는 삶은 아니게 되었다지만 잠이라는 것은 하나의 휴식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데이비는 잠을 싫어하진 않는 편이었다.
그날은 영지 문제를 해결하다가 그도 모르게 책상에 엎드려 남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평소 자는 시간이 아님에도 이렇게 뻗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일이다.
데이비는 오랜만에 자신의 꿈을 자각할 수 있었다.
“음…….”
당장은 지켜보는 것 정도의 꿈이지만 온전한 신격이 된 이후 이런 묘한 느낌의 꿈을 꾸는 일이 가끔씩 있다.
그가 보는 것은 늘 그렇듯 평온하며 활발한 느낌이 드는 하인스였다.
“어라?”
다만 지금의 그가 가진 기억과 달리 몇 가지가 조금 변해있었다.
당장 주변의 물건 중 그가 못 본 것들이 제법 존재했으니까.
그림의 기법만 보면 에반젤린의 그림이 분명해 보이는 것들이 몇 개 걸려있었다.
이곳은 자신이 아는 곳이 아닌가? 설마 또 평행선 같은 것인가.
하는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시야에 담았다.
늘 보던 인물들이 좋은 표정을 지은 채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으아아아!!”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비명이 짙게 울려 퍼진다.
이에 급히 몸을 움직여 소리가 난 곳으로 갔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분명 그가 사용하는 개인 집무실인데…….
“내가 X, 가업이고 나발이고 당장 사표 쓴다!”
울상을 지은 채 미친 듯이 서류를 처리해나가는 청년이 보인다.
데이비는 청년을 보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벨?”
아벨 올 라운. 페르세르크와 데이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바로 녀석이었다.
멍한 얼굴로 불러보지만, 그는 데이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일거리가 줄어들질 않아…….”
퀭한 몰골로 말하는 걸 보니 단순한 엄살은 아닌 듯 보인다.
녀석이 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아벨은 아직 어린 아기인데.
멍한 얼굴로 보고 있자니 책상 한켠에 놓인 편지의 내용이 시야에 담겼다.
요지는 간단했다.
에이리아와 페르세르크. 그리고 일리나만 데리고 1주간 부부 여행을 갈 생각이니 그동안 영지를 잘 보살피라는 내용이었다.
또 한 쪽엔 사고 많이 치는 형제자매들을 잘 조율할 수 있는 건 너뿐이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보아 이곳의 아벨은 아무래도 하인스 자체를 담당할 후계로써 키워지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긴 하네. 비화나 초단이는 맞지 않고 내가 본 다리안과 에반젤린도 결국은 마찬가지.’
남은 가능성은 막내 트리아나 정도인데 결국 아벨이 제격이라는 소리일 테니까.
쾅!!
그때 집무실 창문이 벌컥 열리더니 너무도 익숙한 얼굴로 다리안과 에반젤린이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어쩌긴 뭘 어째. 잡았지. 어휴……. 미식연구부서 그 인간들은 가면 갈수록 도망 실력이 늘어나냐.”
“마지막에 배신해서 서로 팔아먹지 않았으면 놓쳤을 거야…….”
“그런 인간들을 아버지는 매번 금방 가서 잡아 오시더니.”
지친다는 말을 내뱉으며 집무실 한쪽 소파에 늘어지는 다리안과 그런 그의 반대편 소파에 추욱 늘어지는 에반젤린이 보였다.
“나 방송도 해야 하는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며칠간 휴방한다고 공지 때린 거 다 봤어 이 멍청아.”
“물어 뜯기고 싶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다리안과 에반젤린의 모습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과거 다리안의 가능성 문제로 한 번 본 적이 있던 모습과 닮았다.
그때보다는 조금 더 활발한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형님. 제가 부탁 하나 해도 됩니까?”
“아벨. 존댓말 그만해. 오글거리니까.”
“이쪽이 편합니다. 그보다. 대답은요?”
“그래. 말해봐.”
드러누운 채 늘어지는 목소리로 다리안이 손을 들어 까딱였다.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서 두 분 중 한 분이 저 대신 영지 물려받으시면 안 됩니까?”
그 한마디에 에반젤린과 다리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툭하면 서로 물고 뜯는 꼴은 마치 지금의 데이비와 현아를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형제자매는 형제자매라는 것일까.
에반젤린과 다리안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닥쳐라. 아벨. 어디 형을 나락에 빠뜨리려고.”
“아벨, 너도 물어뜯기고 싶어?”
아무래도 저 둘은 영지에 앉아서 서류를 보는 일이 싫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 일은 아빠가 너한테 맡긴 거잖아. 우리한테 맡기면 영지민들만 고생이라고.”
“그래도 나도 쉬고 싶단 말입니다.”
“네가 요령이 없는 거야. 아빠 봐. 놀러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
뒤이어 아벨이 제가 아버지와 같습니까? 라고 묻는 듯싶었지만 더는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아빠는 너한테 영지 당장 물려줄 생각이 없을걸?”
“아버지 기준에 맞으려면 넌 지금부터 10년은 더 배워야 할 거다.”
눈치 빠르게 튄 자신들의 선견지명을 찬양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고생해. 아벨.”
“그러고 보니 두 분 이전에 연무장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시다가 건물 하나 거하게 해 먹으셨죠?”
“…….”
에반젤린과 다리안이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를 바라본다.
“이거 아버지께 말씀드릴까요?”
“아이고! 우리 동생이 힘들다는데 도와야지!”
“암! 까짓거 휴방 공지까지 했는데 뭐 더 방송한다고! 쉬어 쉬어! 아벨! 누나가 도와줄게!”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둘을 보며 아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이 기지배는 어디 갔답니까?”
“누구. 트리아나?”
그 말과 동시에 이번엔 창문이 아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비친 것은 일리나와 같은 황금빛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였다.
조금 틀린 점이 있다면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이 성녀 복이라는 사실이었다.
“……갔다 왔어. 오라버니. 언니.”
담담하게 말하며 다가온 녀석은 곧바로 다리안이 앉았던 소파에 추욱 늘어지듯 앉았다.
“어딜 갔다 온 거야.”
아벨의 질문에 트리아나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대답했다.
“메기 아저씨랑 타르타로스 지하산맥.”
“거긴 또 왜.”
“이오 언니랑 정화작업 갔다 왔어.”
담담하게 말하지만, 아벨은 본능적으로 알아챈 듯 보였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고?”
“오라버니……. 여기 묻은 피 안 보여?”
“보여.”
“그런데 놀다 왔다고 말하는 거야?”
“응.”
너무 당당한 대답에 트리아나는 고개만 돌려 혀를 찼다.
“이래서 눈치 빠른 오라버니는 싫어.”
너무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에 아벨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임마 성경을 둔기로 쓰지 말랬지.”
“손맛이 좋은데…….”
이 몰골을 보는 데이비는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트리아나의 손에는 검은 피 같은 것이 잔뜩 묻은 성서가 쥐어져 있었다.
실제로 한두 번이 아닌지 녀석은 성서의 겉표지에 묻은 피를 익숙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검을 쓸 거면 검만 쓰고 책으로 쥐어팰 거면 그냥 메이스를 들고 다녀.”
“싫어…… 둘 다 쓸 거야. 검은 아빠가 만들어준 거고 성경은 여신님이 준 거란 말야.”
가장 어린 막내이자 귀염둥이의 포지션을 잡고 있는 트리아나의 고집에 아벨은 더는 제지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네가 다치면?”
그 질문에 트리아나는 멍한 얼굴로 잠시 고민하다가 눈을 반짝였다.
“아빠가 나 대신 혼내준다?”
“널 한때 미식연구부서와 같이 놀게 두면 안 됐어…….”
진지하게 후회하는 아벨과는 별개로 다리안이나 에반젤린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트리아나. 뭐 건진 건 있어?”
“이거.”
이윽고 트리아나가 맹한 어조로 허리춤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응? 코어야?”
“응. 웜 킹의 코어. 이거 팔면 꽤 비싸다고 들었어.”
“아직도 돈 모으는 거야?”
에반젤린의 질문에 트리아나는 맹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니. 아빠 생일이 조만간이야.”
“…….”
“설마…… 선물도 준비 안 한 거 아니지? 그동안 받은 게 있는데 선물 한 번 안 해주는 건 너무 뻔뻔하지 않을까.”
그 말에 에반젤린과 다리안이 동시에 시선을 돌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 그럴 리가 있냐. 언니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까먹…….”
“장담하는데 저 멍청이는 까먹었을걸?”
“야!”
다리안을 향해 역정을 내보지만, 트리아나의 맹한 시선은 이미 에반젤린에게 꽂혔다.
“비화 언니도 선물 준비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언니……. 진짜로 까먹었어?”
“그…… 그럴 리가…….”
어떻게든 시선을 피하려 하지만 트리아나는 담담하게 그녀를 올려다본다.
“응…… 까먹었어…….”
결국, 에반젤린은 백기를 들었고 트리아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오라버니들. 나 선물로 쓸만한 거 구해올게.”
“어…… 어어 그래 갔다 와…….”
“트리아나. 저 멍청이가 이상한 짓 안 하게 감시 잘해야 한다?”
트리아나는 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안절부절못하는 에반젤린을 끌고 문으로 나가버렸다.
이후 데이비는 두 사람이 뭘 하려는 건지 궁금증이 들어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뒤편에서 아닌 척하면서 아벨의 일을 도와주는 다리안의 모습이 보였지만. 어차피 이건 꿈이니까.
단순히 데이비의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트리아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모험가의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같이 다니는 이는 없어 보이지만 익숙하리만치 모험가 길드로 들어가 S 급으로 지정된 의뢰서 두 장을 뜯어버렸으니까.
“저기…… 트리아나. 그거, 네 실력으로 괜찮은 거 맞아?”
에반젤린이 나름 걱정을 담아 묻자 트리아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크게 위험하거나 그렇진 않겠지만…….”
“괜찮아. 언니가 지켜주잖아.”
그 말에 에반젤린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이 요망한 동생이 의뢰를 해결하려고 버스 기사를 불렀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버스 기사가 에반젤린이고.
“그래……. 가자…… 가…….”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대륙의 남부에 있는 늪지대였다.
본래라면 한참이 걸릴 거리고 사실 하인스까지 의뢰가 올 일도 없지만 S급 이상의 의뢰는 대개 전 대륙으로 퍼져나가는 편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르르륵…… 그륵…….
늪지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정체 모를 언데드 같은 것들이 그녀들을 반기기 시작한다.
“비켜봐.”
“아냐. 이건 내가 할게. 언니는 이 근방에서 자라는 플레임플라워를 찾아줘. 그거 모으면 엄청 예쁜 선물이 될 거야.”
트리아나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은빛의 대검을 한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예의 그 피 묻었던 성경을 나머지 한 손에 쥐고는 조용히 읊기 시작했다.
-전능하옵신 여신께 당신의 어린양이 아뢰옵나이다.
고고하게 기도하는 전투 성녀처럼.
그녀의 주변으로 순백의 신성력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
“성국에서 인정한 유일한 전투 성녀라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에반젤린은 무시한 채 트리아나는 계속해서 기도를 올려 나갔다.
-당신의 손길이 닿는 곳에 자비를 갈망하는 이가 있게 하시옵고, 당신의 자애가 모든……모든…….
갑자기 말을 하던 트리아나가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트리아나?”
“…….”
고결하게 자세를 잡고 기도를 하던 그녀의 맹한 표정이 살짝 찌푸려진다.
-여신님…… 그냥 은총 주세요.
화아아아악!!!
동시에 이전보다 더 강렬한 신성력이 쏟아져나오며 주변을 휘감았고, 트리아나는 만족스러운 듯 맹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여신님 최고.”
-그아아아아아!!!
이윽고 늪지대의 괴물들이 일제히 그녀들의 살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자 트리아나는 곧바로 한발 내디뎠다.
그리고. 경건하게. 그리고 숭고하게…….
빠아악!!!
성경으로 괴물 하나의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서거걱!!
동시에 은빛의 섬광이 엄청난 중량을 담아 일제히 놈들을 갈라버린다.
종횡무진 밀고 들어가는 트리아나의 행동에는 망설임 따윈 없었다.
성녀로서 누군가를 치료할 때 상처를 치료하는 것보다 상처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제거하면 마음의 병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그녀의 지론은 제 언니, 오빠들의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 수준이었다.
저 가녀린 소녀가 성경과 대검으로 몬스터들을 찢고 가르는 걸 보고 있으면 동생 교육을 잘못시킨 건 아닐까 싶은 걱정도 드는 그녀였다.
다만 처음 걱정과 달리 녀석들은 트리아나의 신변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아니 어지간해선 막내동생을 해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에반젤린의 생각이었지만 그걸 보고 있는 데이비는 이해할 수가 없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신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아이이니…….
실제로 에반젤린 또한 딱히 그녀에게 위험이 닥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잡담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트리아나. 전에 대량 피해자가 발생했던 서 대륙 국지전에 너도 갔었지?”
“응? 응. 갔었어. 거기 아픈 사람들 치료해야 하니까.”
“별일 없었지?”
에반젤린의 질문에 트리아나는 잠시 침묵했다.
“안 그래도 애가 맹한 게 영 걱정인데…….”
미친 듯이 괴물들을 도살하며 나아가는 트리아나의 뒤를 따르며 에반젤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별일 없었어. 그냥……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했어.”
“그럼 다행이네.”
그때 몬스터 한 마리가 트리아나를 지나쳐 에반젤린을 향해 파고들어 왔다.
척 봐도 돌연변이 개체. 아마 의뢰서에 적힌 수많은 희생자를 낸 기생형 몬스터이리라.
가히 섬광과도 같은 속도였다.
“아 근데 그 왕국의 왕자가 그런 말은 했었어.”
“뭐라고 했는데?”
“자기 부인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냐고. 들어오기만 하면 원래 10번째 부인이어야 하는데 최측근 정실로 인정해주겠다고, 그래서 그 인간 머리…… 응?”
콰드득…….
갑작스런 소리에 트리아나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에반젤린이 기생형 돌연변이 몬스터를 한 손으로 완전히 으깨놓고 있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S급 기생형 돌연변이 몬스터의 최후는 너무 한순간이었다.
“그 왕자. 이름.”
조금 전의 장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에 트리아나가 맹한 얼굴로 움찔하듯 물러났다.
조금 전 자신이 다치면 데이비가 대신 혼내줄 거라며 당당하게 말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저기 언니. 괜찮은…….”
“그 x새끼. 이름.”
뭔가 말이 험해졌다.
“아니 이미 나한테 맞아서…….”
“그 x새끼, 이름.”
세로로 찢어진 동공. 흉악하게 터져 나오는 드래곤 피어는 어찌나 지독한지 주변 전체를 휘감아 이미 늪지대의 몬스터들을 가까이 오기도 전에 죽여버리고 있었다.
폭압적인 공포에 심정지가 오는 원리인 것일까.
그렇기에 아무리 맹한 트리아나라도 그녀를 말리지 않으면 정말로 큰일 난다는 판단이 선 듯했다.
“언니 일단 진정 좀 하고…….”
“그 나라. 바르티움이지? 굳이 찾을 필요 없겠네.”
“일단 진정해! 손버릇이 나쁘길래 이미 떡이 되도록 쥐어팼으니까!”
급기야 에반젤린의 타깃이 왕자에서 국가로 변했다.
게다가 그녀는 망설임 없이 하인스에서 기다리고 있을 녀석들에게도 연락을 보낸다.
삐릭.
-바르티움 왕자가 트리아나에게 첩실로 들어오라고 수작질을 부린 모양인데. 어떻게 할래.
동시에 개량된 아티펙트에 문자들이 떠오른다.
-아벨-
뭐요? 혼인요청도 아니고 첩실? 첩시이일? 그냥 혼인요청도 어이가 없는데 지금…….
-다리안-
그거 미쳤네. 거기 어디야. 내가 간다. 딱 기다려.
우우웅!!!
뒤이어 다른 문자도 하나 도착했다.
-비화-
에반젤린. 길 닦아놔.
그냥 두면 대참사로 번질 것 같은 모습이다.
이에 구경하던 몸을 이끌고 데이비가 두 사람에게 간섭하려던 그 순간.
화아악!!!
누군가가 데이비의 팔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흡!”
마치 물속에서 끌어올려 진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정신을 차렸을 때 본 것은 비화였다.
그녀는 걱정스런 얼굴로 데이비를 보며 물었다.
“아빠. 괜찮아요?”
“어? 괜찮냐니 무슨 일 있었어?”
그 질문에 비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뭔가 끙끙거리시길래. 어디 아픈가 하고.”
그렇게 말하며 비화는 안도한 듯 물러났다.
“잠깐 트리아나를 보러왔어요.”
그 말과 함께 비화는 가볍게 창문을 타고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이후 숨을 조용히 고르고 있던 나는 문득 내 안에 있던 여신이 준 부적 하나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뭐야. 뭐가 없어진 거지?”
의문이 들지만. 사실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괜히 힘이 빠지는 느낌. 다시 한번 그 꿈을 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눈을 감는다.
하지만. 데이비는 그 꿈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저 밝은 아침이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아빠. 왜 웃어요?”
이윽고 멍하니 앉아있던 데이비는 자신의 앞 소파에 앉아 고풍스러운 척 커피를 음미하는 비화를 보았다.
“내버려 둬, 좋은 꿈 꿨으니까.”
그래. 꿈이면 뭐든 못 꿀까. 꽤 흥미롭고 좋았던 꿈이었던 것 같다.
기억능력이 좋은 탓에 잊히진 않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자란 모습을 보는 꿈이라는 건 묘하게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킥킥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 헬창부에서 정식 요청서가 왔습니다.”
“요청서? 뭔데?”
“그게…… 대륙연합의 이름으로 지구의 올림픽 같은 것을 개최하면 어떻겠냐고…….”
평화의 상징. 화합의 상징인 올림픽이라…….
확실히 티오니스에도 비슷한 게 있지만, 대부분은 검술대회. 마법대회 같은 대전식이 많다.
막상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렇기에 의심이 갔다.
“이거. 그 멍청이들이 생각한 건 아닐 거야. 레밀리아냐?”
“네. 저하.”
“그러면 그렇지. 상세한 계획서 올리라고 해. 괜찮으면 전폭적으로 밀어줄 테니.”
그 후 데이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우리 막내 딸랑이나 하나 사주게.”
“쿡쿡 소박하시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