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dicine-Selling Crown Prince RAW novel - Chapter 614
614화. Epilogue
내 이름은 데미안 카이엔.
한때는 황태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호위.
지금은 새로운 마계왕을 보좌하는 호위……라고 해야 할까.
“그으으윽…….”
“…….”
“그웨어어에어얽…….”
“…….”
“그궈어어어엉어어억…….”
“……전하.”
“그우어억…… 엉?”
“그만하시지요.”
“하지만, 배가 너무 부른걸?”
“하지만, 제가 너무 불편합니다.”
“내 트림이?”
“예.”
“인생 최대급의 과식 때문에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소화를 원활하게 해보려고 애를 쓰며 힘겹게 내뱉는 이 필사적이고 눈물겨운 트림이?”
“예.”
“인정사정없네.”
“하지만, 제 귀도 전하의 위장 못지않게 괴로워서 말입니다.”
“그럼 괜찮네.”
“어째서 말입니까?”
“내 귀가 괴로운 건 아니잖아?”
“…….”
마계왕의 공식 보좌관, 데미안 카이엔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다 용왕비 때문이라고.
“설마하니 그렇게 끝도 없이 사람 뱃속에 음식을 집어넣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우리 할머니 생각나더라.”
“할머님 말입니까?”
“어. 조금만 준다면서 고봉밥 퍼주시고, 간식 조금만 먹으라면서 이따만큼 수북하게 담아오시고, 아직 배도 안 꺼졌는데 우리 강아지 배 안 고프냐고 계속 또 물으시고. 괜찮다고 그러면 우리 새끼 피골이 상접했다면서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고.”
“…….”
“아무튼 진심 죽는 줄.”
주군이 용왕굴 출구를 나서며 넌더리를 냈다. 그가 당했던 용왕비의 식고문(?)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처음엔 주군도 무척 행복해했다. 몇 년 만에 제대로 맛보는 아삭 탱탱 겉절이에 수육이라며 온갖 반찬들을 흡입하며 황홀해했다. 그러나 그 행복과 황홀감에도 한계(?)가 있었다.
옆에서 보면서도 솔직히 진짜로 배 터지는 줄 알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백미는 후식 상을 웅장하게 가득 채운 31가지 풍미의 용왕비 왈, 떡스킨 라빈스, 아니, 온갖 떡의 후식 폭격이었다.
“제삿상에도 떡을 그렇게까진 안 올린다고오오…….”
지금도 속이 안 좋은지 안색도 안 좋은 주군.
그런데 내년에 또 초대를 받게 될 거라니.
차라리 내년 김장철 즈음에는 미리 마계로 피신해 계시라 조언해야 할까. 그건 좀 안 내키는데. 마계에 다녀오면 잔병 하나씩은 꼭꼭 얻어오시는 처지라서. 그럼 그걸 지상계에서 셀프로 치료하느라 제법 귀찮아지셔야 해서. 그게 마계왕으로서 지닌 권능에 대한 소소한 대가라서.
궁리하던 데미안은 나름의 묘책을 떠올렸다.
“그럼 전하. 내년까지 단련을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단련?”
“예.”
나름 진지한 마음으로 말했다.
“소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겁니다. 1년의 시간이 있으니 충분하시지 않을까요.”
“……차라리 푸드파이터 너튜버로 데뷔하는 게 빠를 듯.”
“푸드파이터가 뭡니까?”
“그런 게 있어. 그런데-”
이쪽을 향한 주군의 눈빛이 샐쭉해졌다.
“넌 왜 멀쩡하냐?”
“예?”
“아니, 생각해보니까 그렇잖아. 똑같이 먹었는데. 나는 셀프로 온갖 혈을 다 찌르고 난리를 부려도 이렇게 소화가 안 내려가서 고생인데. 그런데 너는 왜 멀쩡한 거냐고.”
“아아.”
“아아는 무슨. 솔직히 말해. 너, 꼼수 부렸지?”
“아닙니다.”
“아니야?”
“예.”
“그럼 어떻게 그렇게 편해?”
“셀마근 조종술 덕분입니다.”
“……뭐?”
“전하께서 전수해주신 셀프 마나 근육 조종술 말입니다. 그걸로 위벽과 창자의 근육 운동을 강제로 폭증시켰습니다.”
“그게, 된다고?”
“예. 전하 덕분에요.”
“…….”
“혹시 기억나십니까? 9년 반 전에, 전하께서 제게 별궁 입원격리를 명하셨던 때가 말입니다.”
“어. 기억나지. 너 빼놓고 몰래 마계에 다녀오려고 그랬던 거 말이지?”
“예.”
“그런데 그게 왜? 셀마근 조종술이랑 그게 무슨 상관이길래?”
“그때 너무 심심했거든요.”
“심심? 입원 생활이?”
“예.”
고개를 끄덕였다.
절로 입가에 쓴웃음이 피어났다.
“온종일 할 일도 없이 병실에만 우두커니 있으려니 미칠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 그래서였을 겁니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한두 가지를 정해서 파고들게 되더군요.”
“그때 셀마근 조종술에 몰빵을 했던 거구만?”
“예. 그걸 포함해서 이것저것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저것이라니?”
“예를 들자면…… 일기 쓰기랄까요.”
“일기? 네가?”
“네.”
별궁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열며 황당하다는 눈초리를 보내어 오는 주군. 혹시 일기를 쓰는 이쪽의 습관을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거겠지. 그 생각에 입가에 떠올랐던 쓴웃음이 한결 짙어졌다.
“처음에는 저도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 뭐랄까요. 나름 괜찮더군요.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기록하며 기억에 남기기에도 좋고. 처음에는 짤막했던 분량도 점점 늘어나고.”
“아주 소설을 썼겠구만.”
“거의 그럴 뻔했습니다.”
“그래애?”
“네.”
“무슨 내용인데?”
“비밀입니다.”
딱 잘라서 말했다.
주군의 물음이지만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조금 민망해서였다. 당연했다. 처음엔 그저 너무나 무료해서, 심심풀이로 쓰기 시작했던 일기. 그 일기의 말미에 상상력을 얹어서 조금씩 첨부한 내용이 전하와 연관된 것이라는 말을 당사자에게 차마 어떻게 말하겠는가 말이다.
“…….”
절대로.
절대로 못 한다.
그걸 말할 바엔 차라리 마계 가장 깊은 곳의 나락으로 셀프 다이빙을 하고야 말겠다.
나름의 굳은 결의(?)를 다지며 시치미를 뚝 떼었다.
“원래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요.”
“……쓰읍. 아닌데. 일기는 남한테 들켜서 공개되려고 쓰는 거라 들었는데.”
“전혀요.”
“맞는데.”
“아닙니다.”
“그래도 나한테만 살짝 알려주면 안 돼?”
“안 됩니다.”
“명령이다.”
“거절합니다.”
“하극상이야?”
“차라리 목을 베시지요.”
“……쯧.”
인상을 팍 찡그리는 주군. 그럼에도 결국엔 순순히 항복(?)하고야 말아주시는 인간적인 주군. 이래서 주군을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겠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렇다고 일기를 보여드릴 수는 없다. 그런 의지를 담아 재빨리 게이트로 먼저 들어가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주군? 앙부아즈의 왕녀님은, 아직도인 겁니까?”
“……어?”
“9년이나 주군을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그동안 들어왔던 수많은 혼담을 모조리, 일언지하에 거절하기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흐음. 화제를 바꾸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인데.”
“하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면 평생 전하만 바라보다가 미혼으로 늙어 죽을 기세인데.”
“어, 그래서 이미 교제는 시작했는데?”
“……예?”
“시작했다고. 교제. 지난달부터.”
“정말이십니까?”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이냐?”
“…….”
그건 아니긴 하다.
공간을 넘어가는 와중에 느껴지는 약간의 멀미 같은 감각. 쉼 없이 흘러가는 별빛의 향연. 그 속에서 주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튼 뭐, 그렇게 됐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응. 비밀이야.”
“……흐음. 그건 좀 아닌데요. 연애는 남한테 썰 풀려고 하는 거라 들었는데 말입니다.”
“전혀?”
“맞습니다.”
“아니거든.”
“그래도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응 안 돼.”
“부탁입니다.”
“거절할 거야.”
“이거 솔로에 대한 갑질 아닙니까?”
“차라리 솔로에 대한 폭정으로 목이라도 베어줘?”
“……쳇.”
웃음이 나왔다.
전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게이트가 닫혔다. 주위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루스의 워낭소리 충만한 포효성. 꾸꾸의 장난기 섞인 화답까지. 별궁이었다. 문득, 오늘은…….
“일기에 쓸 이야깃거리가 많겠다는 생각 하고 있지, 지금?”
“…….”
“다 보인다. 다 보여.”
“……시간이 늦었습니다. 침실로 올라가셔서 쉬시지요.”
“싫은데.”
주군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입원 병동부터 들를 거야. 오늘 오후 회진 못 돌았잖아.”
“하지만 전하. 오늘은 심한 과식을 하셨으니 하루 정도는 회진을 쉬셔도…….”
“안 돼. 내 환자들이야. 그어어어얽. 어휴. 속이야.”
“…….”
“아무튼 따라올 거라고 하지 마. 네가 옆에 서 있으면 환자들이 불안해해. 하여간 인상은 무뚝뚝-해가지고. 그러니까 너 먼저 올라가서 일기나 쓰고 자라. 나는 이따가 쉴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 일기, 언젠가는 내가 꼭 보고 만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내기라도 하든가.”
“얼마든지요.”
어깨를 툭, 쳐오는 주군.
그걸로 인사를 대신하고선 걸음을 돌리는 주군.
그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별궁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러고도 한참을 제자리에서 우두커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개인 숙소로 돌아왔다.
“……후우.”
나름 길었던 하루였다.
하지만 바로 쉬고 싶지는 않았다.
책상 서랍 가장 깊은 곳의 일기장을 꺼내었다. 이 일기장이 몇 권째인 걸까. 벌써 10년 가까지 써왔으니 족히 수십 권은 될 텐데. 그만큼 쌓인 이야기도 많을 터인데.
“…….”
사각사각,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
이 소리는 매번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흐릿하던 기억도 선명하게 되살리곤 한다. 지금도 그렇다. 불현듯, 주군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때…….’
주군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검투장에 계속 갇혀 지내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주군을 만나지 못하였을 가상의 또 다른 이쪽이 겪어야 했을 인생을, 약간의 추측을 섞어서 매일의 일기 말미마다 조금씩 기록해본 것은. 그렇게 또 다른 가상의 삶의 궤적이 오늘날까지 켜켜이 쌓인 것은.
“…….”
처음엔 흥미로 시작했던 가상의 이야기.
지금 와서 보면 그럴듯해진 또 하나의 삶.
주군을 만나지 못하여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만난 상상 속의 자신. 그 쓰라린 나날을 극복하며 마침내 성장하고 궁극의 경지에 다다라 스스로의 힘으로 마계왕의 속박을 이겨낸 자신.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그건 아마도.
‘그 세상의 나는…….’
마침내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만나지 못한, 원래는 함께하여야 했을, 운명의 주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데 그와 엇갈려 마주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삶이 이렇듯 투쟁뿐인 피투성이 길로 흘러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렇듯 비틀려 삭막해진 운명을 되돌리고 싶다는 감정 또한.
그래서인 거겠지.
사각사각, 펜촉이 다시금 움직이는 소리.
마무리를 향해 쓰이는 가상의 이야기.
그 일기 틈새의 이야기 속, 스스로의 엇갈린 운명을 깨달은 자신이 마침내 결심을 품은 것은. 운명의 주군이 살아가는 차원 너머의 세상. 이세계의 그가 죽었어야 했을 양화대교. 그곳을 향해 인연의 끈을 던진 것은.
그리고 마침내, 주군을 이 세상으로 불러오게 된 것은. 가상의 이야기 속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운명의 매듭을 현실의 자신에게나마 안겨주게 된 것 또한.
“…….”
펜을 내려놓았다.
방금 쓴 내용을 읽어보았다.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쓴, 가상의 이야기 속 자신이 현실의 자신에게 주군을 이어주게 되는 결말이라니. 그런 덕분에 현실의 자신이 지하의 검투장에서 주군과 만나게 된 것이라니. 보면서도 허무맹랑하기가 짝이 없었다. 스스로 써놓고도 조금은 민망해졌다. 남에게는, 특히 주군께는 절대로 보여주지 말아야겠다는 새삼스러운 확신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다.
이렇듯 결말까지 썼는데.
그러니 제목이라도 붙여둠이 좋지 않을까. 과연 이걸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훗날 마계왕이 될 주군을 불러오는 검황 데미안 카이엔의 이야기. 새삼 다시금 치미는 낯간지러움.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제목을 붙여보자면…….
“……마검황이 좋겠군.”
이정도면 썩 괜찮다.
데미안 카이엔의 입가에 남모를, 흐뭇한 미소가 맺히었다.
– 약 파는 황태자,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