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litary Chef of a Ruined World RAW novel - Chapter (100)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0화(100/471)
100화 환자식 (2)
“뭐, 뭐야 이 맛은!”
“맛있어……!”
‘복수자들’이라는 이름의 그룹.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누가 만든 요린데.’
솔직히 나보고 공간 마법사니 뭐니 하면서 감탄할 때.
약간은 서운했다.
‘내 요리는 아직 먹지도 않았으면서 말이야.’
진짜를 보여 주기도 전에 다른 부분에서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요리사로서 조금은 서운했단 말이지.
하지만 뭐.
결국은 시간문제였다는 거다.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다른 감정이 희석된 것일까.
묘하게 인간미 없이 무뚝뚝하게 굴던 인간들.
복수를 위해 괴물을 처치할 때 외에는 그 표정이 밝아질 일이 없을 것처럼 보였으나.
-와구와구.
-후루룩…….
-쩝쩝.
지금.
급하게 밥을 씹어 넘기는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활력이 돌았다.
“쩝쩝. 아무리 제대로 된 요리를 안 먹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그렇지.”
“제기랄, 너무 맛있잖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 안에 요리를 쑤셔 넣는 사람들.
저러다 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맛있다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구만.’
그 풍경을 보다 보니 아빠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이게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푸하! 잘 먹었습니다!”
입이 어지간히 큰 모양인지, 엄청난 속도로 식사를 마쳐 버린 남자.
그가 그릇을 비우고 잘 먹었다고 선언한 순간.
띠링.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나타났다.
[요리를 통해 상태 이상을 치료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엥?’
동시에 몸 안에 경험치라 불리는 기운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뭘 치료했다고?
[상태 이상 – 영양실조] [몸 안의 영양이 불균형을 일으킵니다. 신체 능력이 붕괴합니다.] [활동 가능한 신체 능력 유지를 위해,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됩니다.] [능력치가 감소합니다.]‘아…… 저 사람들을 [식재료 감별]로 둘러볼 때, 그런 문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요리를 먹인 내게도 나타난 메시지.
상태 이상이 치료된 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이봐. 잠깐만.”
식사를 마친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 이봐. 잠깐만.”
“와구 와구…… 뭐야, 밥 먹는 데 방해되게.”
“요리를 다 먹으니까. 디버프가 해제됐어.”
“뭐?”
“아니, 그게 다가 아니군. 능력치가 엄청나게 상승했어……. 버프 스킬 같은 건가? 아무리 일시적이라고 해도 그렇지. 능력치가 이만큼 오른다고……?”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햇빛도 들지 않는 던전이다 보니, 채소 재배는 불가능.
영양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불균형은 몸을 붕괴시키기 마련이다.
‘나도 예전부터 신경 써야 했던 부분이고.’
급양대에서 정해 주는 메뉴만 요리하면 되던 신세에서 직접 영양을 고려한 메뉴를 짜야 했으니.
꽤 머리 아팠지.
이들은 애초에 식재료가 한정적이라, 머리를 굴려 볼 기회조차 없었던 거고.
‘그나마 각성자의 마력이 그 붕괴를 막아 왔던 거야.’
신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꾸준히 마력이 소모된다.
그것이 하나의 디버프로써 작용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건강식 백반 세트]내 요리로 인해 영양이 보충된 순간.
그 디버프가 치료돼 버렸단 거겠지.
‘반대로 말하면. 이 사람들은 디버프를 안고도 괴물들과 싸우면서 생존해 온 이들이란 거지?’
그 디버프가 해제됐다.
이 동맹의 능력이 급격하게 상승한 셈.
‘이왕 만들어 주는 거, 영양도 고려해서 만든 것뿐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작동하게 될 줄은.
심지어 상태 이상이 치료되면서 내게 들어오는 경험치의 양도 엄청났다.
한 사람의 상태 이상을 치료했을 때 들어오는 경험치가 부대원들을 위한 식사 일주일 치를 만들었을 때와 비슷한 양과 비슷할 정도.
몰려 들어오는 기운을 받아들이기 버거울 정도였다.
“……굉장하군.”
식사를 마친 창수가 슬쩍 다가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디버프가 해제된 거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거라 쳐도. 요리를 먹는다고 능력치가 상승하다니. 이것도 마법인가? 인챈트라든가, 뭐 그런…….”
“그냥 요리인데요.”
“마법이 아니라고?”
그때였다.
구석에서 한 남자가 요리를 들고 일어나는 게 보였다.
“마법이 아니라면 무슨-.”
“잠시만요.”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하는 창수였으나.
나는 그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십니까?”
“아. 죄송…….”
그 남자를 발견한 창수가 말했다.
“범석 씨? 무슨 일입니까.”
“그게. 정말 별건 아닙니다만.”
남자는 오히려 이런 일로 시선이 끌리자 민망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어 본 건 처음이라, 아버지에게도 조금 맛을 보게 해 드리고 싶어서…….”
“아버지?”
“……저 방 안에 누워 있는 사람 중 한 분이 제 아버지십니다.”
역시.
요리를 들고 일어날 때 혹시나 했는데, 멈추길 잘했다.
“그 요리는 당신 먹으라고 만든 거니까, 다 드십쇼.”
“그래도.”
“저 사람들을 위한 요리는 따로 만들 예정이거든요.”
“예?”
요리는 그저 잘 만든다고 전부가 아니다.
식사의 대상이 되는 손님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요리.
“그건 당신들처럼 그나마 멀쩡한 사람들 먹으라고 만든 요리고. 저 사람들은 환자잖습니까.”
“아…….”
“환자식으로 만들어야죠.”
그 얘기를 듣고 눈을 크게 뜨는 남자.
“저 사람들을 위한 요리도 만들 생각이었던 겁니까?”
“당연한 소리를. 일부만 굶길 거면 차라리 요리를 안 하는 게 낫죠.”
그러자.
범석이라는 남자는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이래?’
잘은 모르겠지만.
그가 얌전히 물러난 것을 확인한 뒤.
창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환자식에는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요.”
“도움이라. 아까도 말했지만, 뭐든지 말만 하시오.”
“아까 죽인 어인들의 시체 있잖습니까.”
“그건 왜……?”
그나마 멀쩡한 이들을 위한 음식은 내가 가져온 재료들로 처리했지만.
환자식은 이왕이면 신선한 재료를 쓰는 게 나을 테니까.
“줬다 뺏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재료로 써도 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왕이면 신선한 재료를 쓰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으나.
그 말을 들은 창수가 기겁하며 대답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은데.
“어차피 각성용으로 데려온 거 아닙니까? 그거 좀 쓴다고.”
“그게 아니라. 괴물을 먹겠다는 거 아니오.”
“……아.”
아차.
부대에서는 몬스터를 요리해 먹는 문화가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생각 못 했는데.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을 다시 먹는다는 게 꽤 꺼림칙한 일이란 걸 까먹었네.’
그런데.
창수가 기겁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괴물의 사체를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기는 하고 하는 말이오?”
“……?”
그 말을 듣고.
나는 물론, 병사들 역시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괴물의 사체를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냐고?
‘우리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삼시 세끼를 몬스터 요리만 먹는 사람들인데.
나와 창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병사들이 말했다.
“거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신 병장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맞지. 특히 다른 것도 아니고, 요리 관련된 분야라면야…….”
“으, 으음.”
부대원들까지 이렇게 말하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가만있지 않을 거요.”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창수.
아무래도 이들이 저 어인들의 고기를 먹지 않은 건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인데.
뭐, 그거야 나중에 알아볼 일이고.
나는 곧바로 어인의 시체에 다가가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꽤 처참하구만.’
각성에 사용되는 과정에서 꽤 험하게 죽어 나간 괴물들.
몬스터의 재료를 활용해 능력을 발휘하는 생산직의 입장으로 보면, 뭐 이렇게 험하게 다뤘냐고 인상부터 찌푸려질 비주얼이지만.
지금은 뭐.
상관없겠지.
마법사들을 시켜 물을 끓인 뒤.
괴물들의 살점을 물 안에 넣고 푹 삶아줬다.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 꺼내 뒀던 쌀을 물 안에 담아 조금 불려 주었다.
‘대충 다 익었나.’
조금 시간이 지나 살점이 다 익었을 때쯤.
채를 집어넣어 살점을 모두 건져 낸 뒤.
푸서서서석…….
식칼을 옆으로 눕힌 뒤, 살점들을 모두 으깨 버렸다.
‘육질을 좀 거칠게 다뤘어도, 어차피 으깨 버릴 재료라면 상관이 없거든.’
내가 만들려는 요리는 꽤 단순한 것이었다.
‘환자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죽.
그리고 신선한 재료도 있고 하니.
‘어죽.’
사실.
부대에 구조 요청을 하고 기절해 버린 그 남자에게도 이런 요리를 해 줄까 생각했었다.
아예 기절해 있는 사람인 만큼 잘못하면 기도로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고 해서 참았지.
‘저 사람들은 정신을 놓아 버렸을 뿐, 입에 넣으면 본능적으로 씹기는 하는 것 같으니.’
부드러운 죽이라면 부담 없이 넘어가겠지.
마지막으로 요리의 위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슬쩍 비벼 주었다.
[특별 소스]를 뿌리면 마무리.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중급 요리사의 삶의 활력이 담긴 다스무르 특제 어죽]“완성입니다.”
“이걸 먹이면 되는 겁니까……?”
요리가 완성되자.
몇몇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요리를 받아 들었다.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들의 가족이라고 했지.’
어죽을 받아든 그들은 그릇을 들고 방 안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복수자들’ 중 한 명이 슬쩍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어차피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들인데, 정성껏 요리해서 먹여 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가족들에게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야.
의미 없는 일이라고?
‘글쎄올시다.’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잖냐.
“아버지. 저 왔습니다.”
“……바아…….”
범석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한 노인의 앞에 앉아서 말했다.
하지만.
아들이 찾아왔음에도 알아보기는커녕,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는 노인.
“……큭.”
그 모습을 보자 분노가 차오른 것일까.
이를 악무는 범석.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은 그는 숟가락을 움직여 어죽을 한 숟갈 펐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재료가 좀 그렇긴 한데, 환자식이랍니다. 이 사람이 만든 요리는 저도 먹어 봤는데 엄청 맛있더라고요.”
혼잣말하며 어죽을 담은 숟가락을 노인의 입에 가져다 대는 범석.
이런 보살핌이 꽤 오래된 것일까.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 손놀림이었다.
그렇게 한 숟갈, 한 숟갈.
노인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어죽.
“……감사합니다.”
이윽고.
그릇을 모두 비운 범석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 드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군요.”
“다행이네요.”
“어차피 맛을 느끼실 수도 없을 테니, 자기만족에 불과할 테지만요.”
쓰게 웃으며 말하는 범석.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맛을 못 느낀다니? 무슨 소립니까.”
“예? 보이는 대로입니다.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놓아 버린지라.”
이 남자.
아무래도 뭘 착각하고 있나 본데.
“제가 맛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요리를 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범석.
그 순간.
“범석아? 너냐?”
“……!?”
범석의 등 뒤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네.’
그 목소리를 들은 범석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영혼 없는 눈동자로 허공만 바라보던 노인은 없었다.
거기 있는 것은.
“아, 아버지!?”
“아들. 맞지? 얼굴은 비슷한데,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했어.”
범석의 아버지였다.
“끄응. 악몽이라도 꾼 것 같구나.”
“기적이야…….”
“그나저나. 여기는 대체 어디냐? 너는 왜 그렇게 살이 빠졌고.”
“차근차근…… 다 설명해 드릴게요. 아버지.”
“뭐, 뭐냐 갑자기. 다 큰 놈이 남사스럽게!”
범석이 눈물을 흘리며 제 아버지를 품에 안았다.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으으, 몸이 왜 이렇게 찌뿌둥하지?”
“여, 여보? 정신이 든 거야?”
“뭐가 이리 어두워. 불이라도 켜야…….”
“엄마아아아……!”
마음의 상처로 인해 정신을 놓아 버렸던 사람들.
그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막 정신이 든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을 보살피던 가족들은…….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껴안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사람들. 정신을 차린 건가?”
“갑자기……?”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난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고 슬쩍 뒤로 물러나 방을 나왔다.
“뭐야. 신 병장님이 또 뭔가 하셨나 본데.”
“이번에 또 무슨 짓을.”
그중에는 부대원들도 껴 있었다만.
난 신경 끄고 뒤로 물러났다.
‘나도 부모님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당장 걱정해 봐야 의미는 없으니까.’
당장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부모님들을 만나러 갈 수 있을 만한 힘을 키우는 것.
그러기 위해선.
‘끄으. 배고파 죽겠네.’
일단.
요리하느라 못 먹은 식사부터 해결해야지.
* * *
범석은 눈물이 흐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언제나 거인처럼 굳건해 보이던 아버지.
그가 괴물들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정신을 놓아 버린 모습을 본 뒤.
범석은 다짐했었다.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한다. 내 인생을 모두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다짐은 더욱더 굳건해져 갔다.
범석의 삶은 복수를 위한 것이 되었다.
괴물들을 쳐 죽일 때.
범석은 아버지의 복수라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힘든 전투였음에도 피로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큰 희열을.
하지만, 아주 가끔.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괴물 놈들을 쳐 죽이고.
젖은 몸을 이끌고 본거지로 돌아온 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보살피다 보면 가끔씩 드는 생각.
‘……이딴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괴물들을 아무리 쳐 죽인들.
정신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복수한다고 날뛰는 것도……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복수를 포기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 또한 아니다.
답이 없는 상황 속.
범석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없다는 두려운 상상을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복수에 매진하기를 택했다.
그래.
그 아버지가 눈을 뜨기 전까지는.
“그래……. 내가 누워 있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흐윽. 예.”
범석은 그동안의 일을 아버지에게 설명해 드렸다.
그러면서도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범석의 아버지는 잠깐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고맙다. 아들.”
“아버지…….”
“끄응. 내심 나이에 비해 정정한 편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설마하니 이 나이에 정신줄 놓고 아들한테 뒷바라지나 시키는 꼴이 될 줄은 몰랐지.”
“하하……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잖아요.”
“그래도 이제 아비도 정신을 차렸으니까. 가족끼리 같이 고생해 보자꾸나.”
“고생하자니, 뭘요?”
“뭐냐니.”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답하는 노인.
“앞으로도 살아가긴 해야 할 것 아니냐.”
“아…….”
그 말에 범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복수만 생각했지.
복수 외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일단은 이 도시의 이상 현상이란 걸 해결해야겠지. 그러려면 저 군인 양반들이랑 협력해야 할 테고.”
“그, 그렇죠.”
“끄응. 애비가 도움이 될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일단은 그 각성? 그것부터 해야 뭐라도 될 것 같은데.”
범석의 아버지가 정신을 놓고 멍하니 지낸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갑작스럽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수해와 괴물의 등장.
그로 인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평생 동안 이룬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어. 이제 난…… 살 자신이 없다.’
그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놓아 버렸던 것.
하지만 지금 그는 어떠한가.
“내가 멍청했지.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고, 남아 있는 걸 생각하지 못했었어.”
“…….”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를 게다. 앞으로는 같이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 보자꾸나.”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살아온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긍정적이고, 삶에 대한 활력으로 가득 찬 모습.
“……아버지. 고백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음? 뭐냐?”
범석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주눅 들어 말했다.
“아버지가 정신을 놓고 있는 동안. 저는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