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litary Chef of a Ruined World RAW novel - Chapter (201)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01화(201/471)
201화 보닝 나이프
“나에 대해…… 뭔가를 본 거냐?”
“정확하게 본 건 아니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직감이 왔다.”
내 요리를 통해, 전에 없던 수준의 [점성술]을 펼친 박태준 병장.
그 태준이 녀석이.
내 미래와 관련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게. 네가 이룬 업적을 훔쳐야 한다는 거라고?”
“당사자가 주는 거니까. 훔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군. 받아 가야 한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
이 녀석이 이룬 업적을.
내 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안 그래도 능력에 비해 엄청나게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나다만.
“지금보다도 더. 과대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건가.”
“그래.”
이미 부대원들은 나를 반쯤 초인처럼 생각하고 있다.
여러 가지 오해가 겹쳐서 생긴 일.
그게 마냥 나쁘지는 않다는 판단하에.
어느 정도 방치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태준이 녀석의 [점성술]까지 내 업적으로 삼으라고?’
내 직업은 요리사.
나는 요리사 주제에 광범위한 정보 능력까지 발휘한…….
진짜 초인이 되어 버리는 거다.
안 그래도 하늘로 치솟은 평가.
그게 아예 천장을 뚫고 우주까지 상승하겠지.
그런 짓을 해야 한다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거야?”
“말했다시피. 나도 잘은 모른다. 능력이 강해졌다고 해서, 불편한 부분마저 사라진 건 아니니까. 하지만, 분명 도움이 될 거다.”
도움이 된다, 라…….
‘뭐, 안 되진 않겠지.’
군단의 리더는 강한 자여야 한다.
그 전제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
내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헛소문이 퍼질수록.
그 진위와 상관없이 군단원들은 안정감을 느낄 테니.
그 부분만 해도, 이점은 확실한 셈.
문제가 있다면.
‘내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건데.’
멸망의 날 이후.
어쩌다 보니 일이 잘 풀린 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예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평가는 내 능력을 고려하면 지독하게도 과대평가 된 상태.
그 평가를 일부러 유지하고는 있다만.
‘솔직히…… 정신적으로는 조금 버겁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는 광일이와 비슷한 문제로 트러블이 있지 않았던가.
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나머지.
그 강력한 전사인 전광일 상병이.
내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지.
단순한 착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강하다는 착각을 받게 되면 동시에…….
‘기대감이 생기지.’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영준이라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나로서는…… 당혹스럽기만 한 기대감.’
지금까지는 정말 운이 좋았다.
어찌어찌 구르다 보니 어떻게든 그 기대감에 부응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런 과도한 기대와 평가를 받을 때면.
그 중압감에 압사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종종 있었다.
리더로서.
나는 언제나 강한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바.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지.’
내가 그 정도 수준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아는 인간은 정말로 극소수.
전광일 상병, 이민재 병장.
그리고 눈앞의 태준이 녀석과 서수혁 상병 정도가 아닐까.
엄청난 중압감을 지고 살아가야 하지만.
그걸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여기서 그 평가가 더 올라가야 한다니.’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길래,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걸까.
“……너무 부담스럽다면, 그냥 못 들은 거로 쳐도 된다.”
“아니. 그럴 순 없지.”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듯.
내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박태준 병장.
하지만.
못 들은 거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군 생활이란 게 원래 좀 그렇잖냐.”
조금 버거운 건 사실이지만.
군대란 게 원래 그렇다.
힘든 게 당연한 거거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
“그러면, 해야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저 녀석이 역대 최고의 컨디션으로 뽑아낸 점성술.
거기서 나온 결과가 그리 말하고 있다면.
이건 무조건 따라야 한다.
“정말 괜찮은 거냐?”
“나 하나 고생하는 거야 할 만하지 뭐. 몸이 힘든 것도 아니니까. 충분히 견딜 만해.”
“…….”
나를 바라보는 박태준 병장의 표정에는.
조금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여길 떠날 생각은 없다만…….”
“응?”
“혹시 너무 힘들거나 하면, 언제든 놀러 와라.”
원체 눈치가 좋은 편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 부대에서 나와 가장 오래 친하게 지냈던 게 이 녀석이다.
내가 버거워하고 있다는 걸 금방 알아챈 거겠지.
피식.
“뭐야, 걱정해 주는 거냐?”
“동기 좋다는 게 뭐겠냐. 네가 아무리 대단한 취급을 받게 되더라도. 결국, 넌 내 동기다.”
“…….”
“너무 힘들다 싶을 때면 쉬러 와도 좋아.”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맘고생 좀 하는 거야 뭐. 처음 전입 왔을 때 음식물 쓰레기 옮기던 거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지.”
약간의 정신적인 고생 정도야.
다른 병사들은 격렬한 전투 속에서 결국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렇게 죽어 나간 병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에 비하면 후방 지원직인 나는 얼마나 편한가.
내가 하는 고생 따위, 고생도 아니다.
‘약간의 중압감 따위.’
충분히 버텨 낼 수 있을 테고.
그리함으로써.
나와 병사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고 한다면.
‘버텨 내야만 할 테니까.’
* * *
함께하던 병사들은 모두 423대대에 남기로 한 뒤.
나는 간만에 찾았던 423대대를 떠나.
“……신 병장님이다.”
“군단장님. 복귀하신 건가.”
나는 ‘비마나’가 자리 잡은 춘천.
군단의 본진으로 복귀했다.
혼자서 비마나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원래도 좀 특별하게 보는 느낌이 있기는 했다만.’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의 시선.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고 해도.
조금 달라져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군단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고 있기는 하다만.
나도 결국은 병장.
즉, 일개 병사다.
기본적으로 같은 부대원들에게는 친근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군단장이고 뭐고.
나를 바라보는 병사들도 꽤나 친근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만.
“…….”
“꿀꺽.”
지금은 조금 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치.
‘뭐, 저게 정상이겠지?’
이번에 내가 보낸 길드 메시지.
그 내용은 박태준 병장이 알아낸 것이었고.
내가 한 것은 그걸 해석해서 전달하는 정도에 불과했으나.
‘토벌전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나도 대충 전해 들었지.’
내가 보낸 메시지로 인해.
자신들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했을 괴물들을 손쉽게 처치한 병사들.
지금까지도 내가 이룬 업적이 이것저것 많았다.
실제로, 병사들도 이제는 내 요리로 일어나는 기적에는 조금 덤덤해진 편.
하지만.
이번 일은 내 요리나 전투 능력이 발휘될 여지가 없었다.
병사들이 그들 스스로.
다른 괴물들을 사냥할 수 있게 해 준 것.
‘좀 더 크게 와닿았겠지.’
본인의 능력이 그 정도가 아니란 것은 그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
객관적인 능력으로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을 상대로 압도적인 싸움을 펼칠 수 있었던 것.
요리로 인한 효과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고 있겠지.
그리고.
태준이 녀석의 말에 의하면.
나는 지금보다도 더 명성을 쌓아야 하는 모양이니.
“다들 고생 많았다.”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입을 열었다.
* * *
태준이 녀석 덕분에 피해를 크게 억제하긴 했지만.
군부대에서 풀려난 괴물들은 아직도 많았다.
“병사들 모아서 바로 간다.”
“옙.”
대부분의 괴물은 태준이 녀석이 알려 준 ‘카운터 픽’들을 보냄으로써 해결됐지만.
나머지는 그런 식의 해결이 불가능한 괴물들.
그 녀석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순수하게 강한 힘이 필요하게 되는데…….
“말씀해 주신 지역 중 일부는 이미 다른 조장님들이 달려갔습니다.”
“그쪽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대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슬슬 진짜 보스 몬스터도 얘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강해진 전광일 상병.
얼마 전에 새로운 권속을 얻은 이민재 병장.
지금까지 일 처리에서 실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서수혁 상병까지.
그들이 토벌에 나선 이상.
온전한 괴물이 머무르고 있다고 한들, 충분히 토벌할 수 있을 테니까.
“나도 빨리 일해야겠네.”
다른 조장들에게만 맡기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혹시 그 괴물들이 퍼져 나가서 곤란한 일을 벌이기 전에 빠르게 토벌에 나서려 했는데.
“아, 신 병장님!”
“응?”
병사들과 함께 비마나를 나서려는 순간.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저 멀리서 공병 한 명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거 챙겨 가시랍니다.”
“이건?”
그 공병이 급하게 달려와서 내게 건넨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물건.
“저번에 주문하신 거, 이제야 완성됐다고…….”
“아아.”
내가 특별 제작을 의뢰한.
바로 그 물건이었다.
* * *
-쿼어어어어억!!!
이성 따위는 없어 보이는 괴물.
그 수백 마리가 주변의 건물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두꺼운 근육 마시르] [매우 고밀도의 근육으로 인해,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종족입니다.] [초월적인 근력을 통한 강력한 전투 능력을 자랑하지만, 뇌마저 근육으로 이루어진 나머지 지능이 높지는 못합니다.]‘강함은 리자드 정도인가?’
[전투력 측정기]로 지켜본 바로는.우리 부대에 나타났던 괴물들은.
리자드와 비슷한 수준.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 숫자도 우리 부대에 나타났던 리자드들과 비슷했다.
근처에 있는 군부대는 독립 중대라 했으니.
상당히 소규모 대대였던 우리 부대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강력한 수준의 괴물들이 나타났다는 거겠지.
‘지금 우리 부대라면 어렵지 않게 토벌할 수 있다.’
하지만.
태준이 녀석의 말 대로라면.
나는 최대한 과대평가를 받아야 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흠.’
보아하니.
꽤 강력한 괴물 같아 보이긴 한다만.
‘이거 먹힐 것 같은데?’
나는.
최대한 화려한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둥실…….
“어. 이건?”
“신 병장님이다.”
괴물들과의 격돌이 일어나기 직전.
나는 [보조 셰프]를 사용했다.
허공에 떠오르는 것은.
한 자루의 매우 얇고 작은 식칼이었다.
“……어?”
“왜 한 자루 밖에…….”
보조 셰프를 사용하면 원래는 열 자루에 가까운 물건을 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단 한 자루의 식칼만을 띄웠다.
물론…….
그 한 자루가 평범한 식칼일 리는 없지.
얼마 전.
박 씨 할아버지가 새롭게 만들어 준 무기.
[식재료 감별(강화)] [소리식도] [명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중급 대장장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명품.]이 식칼의 원재료는.
무예를 익히기 전의 전광일 상병을 쓰러트렸던 녹색갈기 부족의 전사.
그가 사용하던 거대한 도끼였다.
[하라-발의 머드 혼 엑스] [강인한 전사가 직접 사냥한 마수로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위대한 전사의 손에 들려 수없이 많은 전투를 거듭한 끝에 질 높은 마력이 깃들었습니다.]그 거대하던 도끼가.
지금은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식칼로 변했다.
‘보닝 나이프.’
일명.
뼈칼이라고 부르는 식칼이다.
‘이렇게만 보면 그때 사이즈는 떠오르지도 않는구만.’
내가 손에 쥐고 사용하는 두 칼.
[독고구식]과 [검정중식]은, 가능한 한 긴 사이즈로 제작되었다.내가 직접 쥐고 휘둘러야 하는 무기.
저번에도 뼈저리게 경험했다만.
거대한 적들에게 사용할 것까지 감안하면 무기의 크기는 클수록 좋거든.
그럼에도.
이 녀석을 이 크기로 만들어 달라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쓸 칼이 아니니까.’
[보조 셰프]이 스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칼이다.
이 스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면적이 작을수록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말이 보조 셰프지.
허공을 날아다니는 주방 도구들이다.
크기가 작은 만큼 더 빠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겠지.
[소리식도]를 작게 만든 것도 그 이유 때문.문제는 크기가 작은 만큼 위력도 약해진다는 점.
애초에.
[보조 셰프]는 공격력이 그렇게 강한 기술은 아니다.‘요리사로서 주어진 스킬이니까.’
스탯 만큼은 내 스탯을 따라가나.
다른 특성과 스킬은 적용되지 않는 만큼 위력이 강할 수가 없는 것.
오히려 방어용 스탯…….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요리에 적합한 스킬.
[네펜데스]의 독으로 공격력이 어느 정도 강화되었다고 한들.특성의 효과를 받지 못하는 한, 파괴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
하지만.
‘그런 식으로 끝나면 조금 아쉽잖냐.’
그 단점을 무마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칼.
[소리식도] [한 종족의 대전사가 될 수 있었던 위대한 전사와 그 전사의 목숨을 빼앗을 뻔한 강대한 마수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보조 셰프]의 효과로는 특성을 공유받지 못한다고?그렇다면.
[오랜 기간을 거대한 도끼로써 활용되었던 만큼.] [그 위력은 형태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요리 도구.
그 자체가 쓸 만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자체적으로, 특성 – ‘머드 혼의 돌진’이 적용됩니다.]파앙!
그 작은 크기만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보닝 나이프.
-크륵!?
작고 빠른 만큼 그 움직임을 눈치채기는 힘들다.
무언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 듯, 뒤를 돌아보는 괴물이었으나…….
콰아아앙!!!
근육으로 뒤덮인 괴물의 어깨.
그 어깨가.
큰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