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litary Chef of a Ruined World RAW novel - Chapter (470)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470화(470/471)
470화 결함 (4)
밤의 귀족 생명력은 엄청나다.
심장이나 뇌와 같은 부위가 회복될 여지도 없이 순식간에 터져 나가거나.
혹은 신성력과 같은 힘으로 회복력을 저하시키는 게 아니라면.
그들을 소멸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반 조금 안 되게 뱀파이어화된 내 회복력만 봐도.
저들이 종으로서 가진 힘이 얼마나 강대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회복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그 귀족 중에서도 강한 힘을 얻었다고 했던 아리엘라는.
저리 말하고 있었다.
“너희는…… 이런 거로는 잘 죽지 않는 거 아니었나?”
“원래는 그렇죠. 하지만…….”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적이 괜히 천적은 아니란 거죠, 뭐…….”
내가 아리엘라를 사냥할 때 사용했던 신성력조차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신성을 두른 공격에 당한 상처의 회복이 늦어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태양은 이들의 진짜 천적.
아리엘라는 권속들이 그 빛의 대부분을 막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에 직접 닿은 그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피. 피를 가져다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녀석들의 회복력은 그 피에서 기인한다.
양질의 피를 가져다준다면, 잃어버린 힘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저를 만족시키려면…… 어지간한 피로는 불가능할 거예요.”
“…….”
아리엘라의 수준이 너무나도 올라갔다는 게 문제였다.
과거 나와 싸웠을 때 그녀의 회복에 필요한 피의 질이 1 정도였다면, 지금은 수백은 되겠지.
그리고.
반이나마 뱀파이어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밖에 돌아다니는 저 괴물들의 피는…… 질이 높지는 않다.’
애초에 저 의사가 실험용으로 만들었던 놈들이다.
아리엘라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질이 높은 피가 들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권속들 역시 저 태양에 직격당해 그 힘을 대폭 잃은 상태.
권속들의 피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식칼을 들고는.
내 손목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내 피라면 어때.”
“…….”
“이만한 양질의 피는 어디 가서 못 구할 텐데.”
그런 내 말에.
창백하게 식어 가던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열기가 띈다.
“그건……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하네요…….”
그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칼을 움직여, 손목의 혈관을 베어 내고자 했으나.
“하지만.”
팍.
“역시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식욕을 억제하며 말했다.
“주인님도 아실 테지만 권속의 맹약으로 묶인 저는 다른 무엇보다 주인님의 안전과 명령을 우선시하도록 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주인님의 피로 회복을 하려면…… 아마 꽤 많은 양을 마시게 될 거예요. 그러면 주인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질 것이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 밖에서 싸우고 있는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았다.
“주인님이 저 흉측한 잡종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확률도 줄어들겠죠. 저는…… 그런 선택은 하지 못한답니다.”
“내가 강제로 먹인다면?”
스르륵 하고.
그녀의 몸통 일부분이 안개로 변하더니.
그 안쪽의 장기가 드러난다.
두근, 두근…….
맥박을 치고 있는 장기.
인간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심장.
“저를 살리느라 주인님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녀는.
그 심장 위에 자신의 손톱을 가져다 댔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주인님을 살리는 길이다…… 그런 판단을 하게 되겠죠, 아마?”
“…….”
그 말을 들은 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후퇴한다.’
여기서 아리엘라를 잃을 수는 없는 일.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내 발아래의 그림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를 [그림자 장막] 안에 집어넣은 뒤.
이곳에서 이탈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어?”
손끝에 느껴진 것은.
저 장막 안에 손을 집어넣을 때 느껴지는 그 이상한 연기에 닿는 듯한 감촉이 아닌.
딱딱한 땅의 감촉.
‘장막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림자 장막은 내가 아닌 아리엘라의 능력이다.
본래 그녀의 그림자에 있던 이계를 내 그림자 밑으로 옮겨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과거.
아리엘라와 처음 교전했을 때.
나와 그녀는 그림자 장막 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 전투가 끝난 것은.
[그림자 장막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마력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그림자 장막이 취소됩니다.]아리엘라의 힘이 너무 약해져.
장막을 유지할 수조차 없을 때였다.
“…….”
바로 지금처럼.
‘침착하자. 침착하게 생각해.’
아리엘라가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를 먹여서 회복하려고 해도.
저곳에 모여 있는 괴물들 그만한 양질의 피를 구하기는 힘들다.
내 피를 대량으로 먹인다면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선택을 하면 내 목숨이 위험해지기에, 아리엘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그 선택을 회피할 것이다.
전장에서 이탈하려고 해도.
장막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저 사실들이 가리키는 바는…… 단 하나.
“……잠깐, 잠깐만 기다려.”
나는 그 단 하나의 결론을 분명히 깨닫고 있음에도.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피가 아니라도 널 회복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어.”
“…….”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지금까지 시도도 못 해 봤고, 아마 시간도 꽤 걸리겠지만 이거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주인님.”
하지만.
그런 아리엘라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가세요.”
“…….”
내가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그 하나의 결론을 내뱉었다.
* * *
“밖에서 싸우고 있는 저 무례한 기사라면…… 어떻게든 주인님이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벌어 줄 수 있을 겁니다. 저자가 시간을 끌어 주는 동안에…… 최대한 멀리 도망가셔야 해요.”
“그럼 너는.”
“저는…… 뭐,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해 봐야지 않겠어요?”
노력이라.
밖에서는 지금도 아리엘라의 권속들이 의사의 실험체들에게 속속들이 사냥당하고 있었고.
의사는 그나마 마운틴이 붙잡고는 있으나, 그 전황도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한들.
그녀가 맞이할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안일했다.’
이 지옥도가 펼쳐진 서울에 이렇게 가볍게 와서는 안 됐고.
저 의사를 이렇게 쉽게 믿어서도 안 됐다.
사실.
어지간해선 이 서울에서 안일한 생각을 품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저 의사를 쉽게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실수를 한 이유는.
‘저 의사는……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녀석과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나와 닮은 점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도 내게 솔직했지.’
심지어는.
지금 이렇게 적으로 돌아선 상황에서도.
녀석은 내게 언제나 솔직했다.
‘하.’
그렇기에 믿었으나.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대모한테 자신만만하게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속으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저 [대모]는 내가 크게 후회하는 순간이 오면 다시 나를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이렇게 후회할 만한 일이 생기다니.
‘내가 가는 길이 후회와 고통만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했던가.’
괜히 후회라는 이름을 단 신격이 아니다.
그녀의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후.”
그리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여기서 좀 기다려라.”
“……예?”
내가 식칼을 쥐고 몸을 옮기자.
아리엘라는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물었다.
“기다리라니. 그게 무슨……?”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다 알겠는데. 되는 방법이 하나 있잖아.”
나는 부서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결국, 양질의 피만 있으면 회복할 수 있다는 거 아냐?”
대부분 융합체의 피는 저질이다.
내 피를 먹일 수도 없다.
“그럼 뭐, 답은 정해져 있네.”
나는 씨익 웃으며.
지금도 울려 퍼지는 지진의 원인을 바라보았다.
마운틴을 향한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존재.
이 전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괴수.
“저놈의 피를 구해다 주마.”
“……주인님!”
의사의 피라면.
이 녀석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가셔야만 합니다!”
발목을 붙잡는 손길.
아리엘라는 하나 남은 손으로 내 발목을 붙잡으며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개소리.”
나는 힘없는 그 손길을 뿌리치며.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부대원 두고 안 간다.”
대모의 경고대로.
벌써부터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저는 부대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 무슨 소리를.”
여기서.
더 이상 후회할 만한 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저번에 말했을 텐데, 너와 네 권속들이야말로……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내 친위대다.”
“…….”
“너 없으면 날 누가 지키라고?”
그런 내 말에.
아리엘라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그 여자와 추종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뭐?”
“주인님을 따르는 그 추종자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와 추종자들.
즉.
내 친위대가 되기를 자청했던 정수아와 부대원들.
“그들을 새로운 친위대로 삼으세요.”
그들을.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하는 말이었으니까.
* * *
정수아와 부대원들을 새 친위대로 삼으라니.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답했다.
“그 녀석들이 친위대 자리를 탐낼 때는 그렇게 경계하더니?”
“경계한 이유를……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전에는 경계한 적 없다느니 뭐니 둘러대기라도 했으나.
지금의 그녀는 그딴 여유도 없다는 듯.
“저 잡종이 한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
“확실히 저는 결함이 있답니다.”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저와 제 아이들은…… 결국은 밤의 주민이니까요.”
나는 그 말이.
저 녀석들이 밤에만 활동 가능하다는 약점을 얘기하는 것인 줄 알았다.
“낮이든, 밤이든 간에…… 결코 양지로는 갈 수 없는 입장이죠.”
하지만.
녀석이 하려던 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주인님과 그 동족들에게 있어서 저는 결국 한 마리의 괴물에 불과하니까.”
그 말에.
나는 그제야 그녀가 하려는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은 귀족의 영토가 아니고…… 저희는 주인님의 종족에게 괴물이라 불리는 이들이랍니다.”
그녀는 괴물이다.
그냥 괴물이라면 그나마 타협점이라도 있으나.
수없이 많은 인간.
심지어 부대원들마저 학살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땅에서만의 얘기도 아니에요.”
그렇기에.
그녀를 수용하는 데에는 많은 거부 반응이 있었다.
“제 고향에서도…….”
그 후로도.
소수의 간부를 제외한 부대원들에게 뱀파이어들의 존재는 기밀로 다뤄졌다.
“귀족들은 음지의 존재로 여겨졌거든요.”
나 역시.
군단의 전력과 권속의 전력을 전혀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다르잖아요?”
“…….”
“아주 착실하게 양지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주인님에 대한 충성도 확실해 보이더군요.”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은 강하다.
그만한 힘을 가진 그녀가 어째서 정수아와 그 일행들을 경계했는가.
처음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친위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군단장을 보필하는 이들.”
하지만, 이제야.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무력 하나만을 내밀며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결국.
밤의 귀족은 밤…… 음지에 속하는 존재.
“그 외의 부분에 자격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답니다.”
양지에 속하는 우리 부대와는.
결코, 융화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지금이야 제 무력이 커 보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게 저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뿐. 지금같이 태양에 노출되고 만다면…… 저는 그 무력마저 하찮아지고 말죠.”
“…….”
“모자란 무력도…… 저 무례한 기사가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을 테니…… 무력은 저 기사에게, 보필은 그 여자에게 맡기세요.”
나는 이를 꽉 깨문 채.
그녀의 말을 덤덤히 들었다.
“괴물의 힘을 다룬다는 건…… 군단 같은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단체의 장에게는…… 위험한 약점이잖아요? 지금 주인님께서는…… 그 약점을 위해, 다른 자격 있는 이들을 멀리하고 계시죠.”
내가 친위대 안건을 거절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부대원들을 곁에 둔다면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의 힘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제 욕심 때문에 이 역할을 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뻔한 일이잖아요?”
“…….”
“이런 위험한 요소는 떨쳐 내고…… 더 어울리는 이들을 곁에 두도록 하세요.”
그 말에.
나는 이를 꽉 깨물고.
그녀의 말에 반박하고자 했으나…….
“개소리……!”
“더 어울리는 이들이라.”
그 순간.
내 말보다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 점은 고맙네요.”
“……?”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해요. 오히려 백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지만…… 더 나은 게 있다고 해서, 굳이 덜 나은 걸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곳에 있는 것은.
“은인을 곁에서 보필하기 위한 인력은.”
“너희들…….”
이미 진작에 전장을 이탈했다고 생각했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답니다.”
“왜, 여기에……?”
정수아와 부대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