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
◈ 1화. 마도림의 소공자
사천성 중경.
한낮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가운데 턱밑에 큰 점이 있는 사내가 복잡한 시전을 가로지른다.
눈 한 번 부라리면 알아서 길을 터줄 만큼 험상궂은 사내는 대로변의 작은 객잔에 뛰어들었다.
“형님! 형님!”
한낮부터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던 중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
월도(月刀)를 탁자 옆에 비스듬히 세워둔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는 중경 낭인들의 수봉(首峰) 묵인표였다.
“지금 한가롭게 술이나 마실 때가 아니오.”
“뭐야?”
“한달음에 달려왔더니 죽겠군. 일단 목 좀 축이고 설명하겠소.”
점박이 사내, 흑두는 목이 타는지 탁자 위의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흑두가 값비싼 용화주(溶花酒) 단숨에 들이키자 낭인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 저, 저 새끼가 미쳤나? 그게 무슨 술인 줄 알아?”
“그건 대검문의 표행에 참여한 형님이 해남에서 어렵게 구해온 거란 말이다!”
묵인표는 가볍게 손을 들어 흥분하는 낭인들을 말렸다.
“때려죽일지 갈라 죽일지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한다.”
단숨에 용화주를 비운 흑두는 낭인들의 따가운 눈총에 멋쩍게 웃었다.
“미안하오. 난 그런 술인 줄 몰랐지. 형님 말씀처럼 날 어떻게 죽일지는 들어보고 정하시오.”
“그럴 참이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호들갑을 떤 것이냐?”
“초이린을 기억하시오?”
“초이린?”
고개를 갸웃하던 낭인 중 누군가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삼십 년 전쯤에 실종된 사천제일미 초이린? 마도림 태상림주 초평천의 딸을 말하는 거냐?”
“맞소. 그 초이린이오.”
둘의 대화에 이어서 묵인표가 말했다.
“천하제일미라 해도 손색없는 미색에 무재까지 뛰어난 사천 제일의 기재였지. 갑자기 그 여자 얘기를 왜 꺼내는 것이냐?”
“초이린의 아들이 돌아왔소.”
시종일관 담담하게 대꾸하던 묵인표는 처음으로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초이린에게 아들이 있었다고? 천음지체(天陰之體)의 몸으로 죽지 않고 아들까지 낳았단 말이냐?”
마도림의 초이린에게 천음지체가 발현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뛰어난 오성으로 어떤 것에서든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고 무공을 익힐 경우 내력이 기하급수로 증가하지만 전신의 혈맥이 얼어가다 종국엔 죽음에 이르는 저주.
죽기 전에 세상을 돌아보겠다며 홀연히 사라진 그녀가 아들을 남겼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믿기지 않는 말에 낭인들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때, 흑두가 차분한 어조로 강조하듯 말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오. 마도림이 한바탕 뒤집혔단 말이오.”
묵인표는 조금 전의 흑두처럼 술병을 잡아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무공을 익혔다더냐?”
사천 제일의 무재로 칭송받던 초이린. 그녀의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이 무공을 익혔다면 만만치 않을 고수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소.”
낭인들을 이끄는 묵인표는 뒤를 봐주는 대검문으로 인해 적지 않은 이익을 얻고 이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새로운 고수의 등장은 마도림에게서 중경의 패권을 빼앗은 대검문에 악재가 될 수도 있는 일. 비록 세가 기울었다곤 하나 한때 사천제일세를 자랑했던 마도림은 아직까지 대검문의 가장 큰 적이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는 월도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검문에 다녀오마.”
***
마도림은 며칠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태상림주 초평천의 밀명을 받고 사천을 떠났던 내림원주가 어느 날 갑자기 소공자라는 인물을 데리고 돌아온 탓이다.
하지만 누구도 소공자를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의 얼굴이 사천제일미로 칭송받던 초이린과 너무도 쏙 빼닮은 것이다.
초이린을 기억하는 나이 든 일꾼들 사이에선 아직도 소공자의 귀환이 큰 화제였다.
“부친이 오대산의 사냥꾼이었다지?”
“얼굴을 보면 부친도 꽤나 잘 생겼던 모양일세. 한쪽만 잘나서야 어디 그런 인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난 처음 본 순간 아가씨께서 돌아오신 줄 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 뭔가.”
“자네도 그랬는가? 나도 하마터면 아가씨라고 부를 뻔했다네.”
소공자의 외모는 늙은 하인들 사이에서만 거론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인과 무인을 가릴 것 없이 마도림의 젊은 여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소공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의 처소 앞을 서성거렸다.
결국 태상림주 초평천은 외손자의 처소를 한적한 곳으로 옮겨줘야 했다.
작은 집 하나가 통째로 들어설 법한 실내.
하지만 가구라곤 침상 하나 달랑 놓여있는 큰 방은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 풍경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방 한번 더럽게 크군.”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수려한 외모의 청년, 진무립(進武立)은 마도림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난 오늘까지도 달라진 환경이 어색했다.
‘어머니 때문에 오기는 왔다만.’
진무립의 모친, 초이린을 치료하기 위해 당시 마도림은 막대한 재물을 쏟아부어 천하 각지의 영약을 긁어모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차도를 볼 수 없었고 곳간이 비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집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마도림주였던 초평천은 급히 추격대를 편성했고 자표대주였던 상호군은 오랜 추격 끝에 산서성 오대산에서 출산 직전의 그녀를 발견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배신감을 느낀 초평천은 딸과의 절연을 선언했다.
하지만 천륜은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집안에서 딸의 흔적을 지우고 살아온 초평천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니 그때의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초평천은 결국 상호군을 보내 진무립을 데려오게 했고 진무립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조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모친이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부모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무립은 어머니가 안고 간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옛 생각에 잠긴 진무립이 하릴없이 방안을 서성이고 있을 때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공자님. 무림학(武林學) 강론 시간입니다. 내림원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숨이 푹 나왔다.
마도림에서의 일과는 틀에 박힌 것처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새벽에는 명상을, 조반들 들고나선 마도림의 무공을 배운다.
씻고 나서 점심을 먹고 무림사의 전반을 배운 뒤 다시 무공을 익힌다.
저녁엔 외조부인 태상림주와 함께 식사를 하고 그것이 끝나면 촛불 아래에서 무공서를 읽어야 한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진무립의 혼잣말이 들렸는지 시비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공자님?”
“간다.”
체념한 듯 허탈한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연 진무립은 고개 숙인 시비 성요에게 말했다.
“앞장서라.”
“예.”
중경 북림(北林)에 자리한 마도림의 총단은 지나칠 정도로 거대해 자칫하면 안에서 길을 잃을 정도였다.
대나무로 빼곡한 숲속의 장원.
죽림은 담장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안쪽에도 가득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하는 길이 모두 숲의 오솔길 같았다.
하지만 총단의 규모에 비해 거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진무립이 태어난 다음 해 천하를 휩쓴 팔황혈사(八皇血死)에 마도림이 휘말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때 사천제일세를 자랑했던 마도림은 중경의 패권까지 대검문에 빼앗긴 실정이었다.
앞서 나가는 성요를 따라가던 진무립은 작은 죽림 속에 세워진 정자에 도착했다.
“원주님. 소공자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이마에 검상을 새긴 초로의 노인, 진무립을 머나먼 산서성에서 이곳까지 데려온 내림원주 상호군이 정중히 예를 갖췄다.
“오셨소이까? 소공자.”
진무립은 성큼 계단을 올라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기왕 할 거 빨리 끝내지.”
진무립의 하대는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상호군이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급하십니다그려.”
“영감이 하는 강론인지 뭔지는 재미가 없거든.”
“허허허.”
진무립의 직설적인 말에 상호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모습에서 초이린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을지라도 무림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라오. 괴롭더라도 며칠 만 더 참아주시구려.”
상호군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진무립은 귀찮은 내심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투정을 부리든 냉정하게 거절 의사를 표하든 어차피 반 시진이 지나기 전엔 떠날 수 없었다.
“시작해.”
상호군은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당금 무림의 정상에 오른 무인들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라오. 범인의 실력으론 절대 싸워선 안 될 상대이니 소공자께선 잘 새겨들으셔야 하오.”
“이곳에서 그런 놈들과 만날 일이 있겠느냐마는 기억은 해두지.”
“무림에선 이황(二皇), 삼제(三帝), 오왕(五王)을 묶어 천하 십 대 고수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시오?”
엄밀히 말하면 상호군이 말한 이름 위에 한 명이 더 있었다.
천하대전(天下大戰)에서 적의 수장을 꺾고 무림을 구한 영웅, 신룡(神龍) 단소룡이다.
하지만 그는 십 대 고수에 함께 묶이기엔 차원이 다른 고수.
세인들은 천외천의 경지에 오른 신룡을 제외하고 나머지 열 명을 십 대 고수로 부르고 있었다.
진무립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들어보긴 했다만 사왕이 언제 오왕이 됐나?”
“최근 무림에 혜성같이 나타난 신진 고수가 있다오. 바로 무면산왕(無面山王)이라는 자이지요.”
진무립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무명 한 번 기괴하네.”
“무인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자 신비로운 무인이기도 하지요. 수많은 풍문이 있다만 혹자는 삼두육비의 괴물이라 하고 혹자는 어린아이를 잡아먹어 정력을 유지하는 음적이라고도 하더이다.”
진무립의 웃음이 실소로 변했다.
“떠도는 소문을 마냥 믿을 건 아니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제대로 미친놈이군.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최근 무림에서 기세를 올리는 상천(相天)의 천주라오. 천하 각지에 흩어져 각자도생하던 산적들을 통합해 수장의 자리에 오른 놀라운 인물이지요.”
천하 산적을 일통한 신비 고수.
그의 등장으로 통합된 산적들은 과거와 달리 명확한 규칙에 따라 행동했다.
인원과 운송 규모에 따라 통행세를 받았으며 추가금을 지불하면 목적지까지 호위를 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흉한 소문이 퍼진 것은 상천의 등장으로 입지가 위태로워진 표국들이 단합해 악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상호군을 멀뚱히 쳐다보며 눈을 껌뻑이던 진무립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어디의 누구?”
“무면산왕은 상천의 천주라오. 걸왕과 동수를 이뤄 갓 오왕의 자리에 오른 황하 용왕을 삼백 초 만에 제압한 고수지요. 그가 용왕의 자리를 대신해 오왕에 올랐습니다.”
진무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음. 애들 잡아먹어 정력을 유지하는 음적에.”
“삼두육비의 괴물.”
“알아. 가만 좀 있어.”
“예.”
“황하 용왕을 제압한 삼두육비의 음적. 무면산왕?”
곱씹듯 나직이 읊조리던 진무립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괴상한 무명이 내 거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