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0
◈ 100화. 마지막 밤
운룡각의 정문으로 맹주의 사자가 들어섰다.
우가산을 필두로 서장행에 참여했던 무인들은 일제히 집결해 예를 갖췄다.
“광무대주 진무립의 직위를 부각주로 높이고 자호영단을 하사한다.”
“감사합니다.”
씩 웃은 진무립의 손에 부각주의 직인과 손바닥만 한 목곽이 쥐어졌다.
이어서 육군명과 단려화, 유대하와 서장행에 참여했던 모든 후기지수가 차례로 상을 받았다.
임무에 참여한 후기지수에겐 단숨에 십 년 치 내력 상승의 공능이 있는 소령단(小靈團)과 은자 백 개의 수당이 지급됐다.
힘써 싸운 유대하와 단려화에게는 소령단에 은자 오백 개와 천 개가, 혈위사신과 싸워 승리한 육군명과 당천에게는 장월단(壯越團)과 은자 천 개가 지급됐다.
맹주의 사자가 돌아가자 후기지수들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야?”
조영성이 손에 쥔 목곽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사숙조께서 노망이 나셨나.”
그만큼 이번 논공행상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우가산은 흑영대주 지월인에게 전낭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 저녁, 연회를 열 생각이다. 부하들을 데리고 성도에 가서 식자재를 사 오고 솜씨 있는 숙수들을 데려와라. 중소방파의 무인들도 초대할 생각이니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연회가 무슨 의미인지 짐작한 지월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가산은 후기지수들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연회를 열 것이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자리이니 사문의 어른들을 초대해도 좋다. 해산하라.”
“예.”
무인들이 흩어지자 진무립은 전각의 뒤편으로 조용히 움직였다.
[당문경과 당중호는?]지붕 밑 그림자가 일렁이며 서진환의 전음이 들려왔다.
[뇌옥의 일 층에 감금된 상태입니다.] [역시 편의를 봐주는 모양이군.] [예.]사천맹은 죄의 경중에 따라 뇌옥의 일 층부터 지하 삼 층까지 수감되는 구역이 다르다.
오십 년 형에 처한 죄수가 지하도 아닌 지상 일 층에 감금되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일 층이라면 탈옥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겠어.] [물론입니다.]곰곰이 생각하던 진무립은 나직이 말했다.
[오늘 저녁, 연회가 열리는 순간 탈옥이라도 하면 좋겠군.] [그렇게 될 것입니다.]서진환의 기척이 사라지자 진무립은 차갑게 눈을 빛냈다.
‘갈 땐 가더라도, 감히 나를 건드린 놈을 그냥 두고 갈 순 없지.’
운룡각을 나서는 진무립에게 은밀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이전에 자신을 쫓던 비각의 무인보다 더욱 은밀한 것을 보아 맹주 한천월이 직접 손을 쓴 듯했다.
진무립은 개의치 않고 정무원으로 향했다.
“운룡각 부각주 진무립이다. 강유월 노사님을 뵙고자 한다.”
이젠 맹에서, 아니 사천에서 진무립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예를 갖춘 위사는 소식을 전하고 나왔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정무원에 들어서자 감시자의 시선이 씻은 듯 사라졌다.
정무원의 노고수의 눈까지 속일 자신은 없는 모양이었다.
대신 그를 대신해 주변의 노회한 눈빛들이 진무립을 따라붙는다.
주변을 슬쩍 돌아본 진무립은 슬며시 웃었다.
‘역시 맹에 불만을 가진 영감들이 많은 모양이군.’
따가운 눈빛이 다수였으나 호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사대거파 내부에서도 불만을 내비칠 만큼 파장이 컸다.
곧이어 두 사람은 강유월의 처소 앞에 도착했다.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안으로 들이게.”
문을 열고 들어간 진무립은 강유월과 하종보를 보며 말했다.
“두 분은 언제나 함께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강유월이 반갑게 웃었다.
“정무원에 갇힌 노인네들이 뭐 할 일이 있겠는가? 가끔 떠나는 임무를 제외하면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일세.”
“부각주가 되었다고 들었네. 축하하네.”
하종보가 손으로 자리를 권하며 축하하자 진무립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두 분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진무립이 자리에 앉자 강유월은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자네가 예까지 오는 것은 처음이로구먼. 무슨 일이신가?”
다향의 은은함과 함께 진무립의 기감이 퍼져 나가며 주변을 살폈다.
진무립의 진중한 표정에 하종보가 말했다.
“아무래도 차나 한잔 마시자고 온 것은 아닌 모양일세.”
“바로 보셨습니다. 지금부터 나눌 이야기는 당분간 두 분께서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당분간?”
“오늘 밤까지 말입니다.”
속뜻이 숨겨진 말이다.
진무립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사천 무림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천의 미래라.”
두 노고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 사건에서 사대거파와 그 외 방파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것을 묻는 연유가 무엇인가?”
“사상누각을 무너뜨릴 폭풍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누각이란 사천맹을, 그것을 무너뜨릴 폭풍이란 혈교라는 걸 둘은 모르지 않았다.
특히나 혈교의 힘을 직접 경험한 강유월은 그들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본 맹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절실히 느끼고 있네.”
“맹에는 변화가 필요 없습니다.”
두 노사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군. 그게 무슨 말인가?”
“높은 자리의 오만한 무인들을 모두 쳐내고, 권력의 달콤함에 젖어있는 맹주를 끌어내릴 수 있겠습니까?”
“…….”
자칫하면 맹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될 만큼 위험한 발언이다.
하지만 진무립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가지만 썩었다면 쳐내면 그만이지만 뿌리까지 썩은 나무는 살려내기 어려운 법입니다.”
두 사람 다 진무립의 말뜻을 안다.
하지만 쉽게 입을 열어 대답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는 오늘 밤 사천맹을 떠납니다.”
노사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맹을 떠나겠다고?”
“이대로는 안 됩니다. 썩은 나무를 대신할 튼튼한 나무를 세울 생각입니다.”
진무립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떠나기 전에 두 분을 찾은 것은 새로운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주십사 부탁하기 위함입니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오늘 저녁 운룡각의 연회에 참여해주십시오.”
진무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만일 이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라면 미련을 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떠난 뒤, 한동안 실내에 깃든 무거운 정적은 사라질 줄 몰랐다.
썩은 나무를 대신할 새로운 나무.
사천 무림에 사천맹이 아닌 다른 연맹을 세우겠다는 말이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진인.”
하종보의 음성에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강유월도 다르지 않았는지 마른세수를 하며 멋쩍게 웃었다.
“저녁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차분히 생각을 해보십시다.”
* * *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점점 빛을 잃어간다.
서산에 걸린 불그스름한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자 사천맹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횃불이 사방을 환히 비추는 옥사 앞.
입구를 지키고 선 두 명의 간수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은 안 올 것 같고……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 같군.”
“그냥 확 쏟아졌으면 좋겠구만. 괜히 으스스하기만 하니 귀신이라도 나올 것만 같네.”
“자네도 그런가?”
그때 갑자기 불어온 광풍에 사방을 비추던 횃불이 훅 꺼져버렸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
“오늘따라 바람까지 지랄맞군. 어서 교대하고 술이나 한잔했으면 좋겠네.”
“내가……. 아니군. 벌써 교대시간인 모양이야.”
귀신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전방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내는 열쇠를 던지듯 건네며 말했다.
“불은 자네들이 켜게나.”
“수고했네.”
교대한 간수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자 근무를 마친 두 사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작하지.] [예.]서진환은 부하를 데리고 조용히 옥사에 진입했다.
두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텅 빈 일 층의 옥사에는 오로지 그들만이 있을 뿐이었으니까.
구석진 방, 쇠창살 너머로 족쇄를 찬 당문경과 당중호가 보인다.
“각주님.”
“누구신가?”
“맹주님의 명을 받아 왔습니다.”
당중호의 얼굴엔 화색이, 당문경의 얼굴엔 의문이 떠올랐다.
“맹주님께서?”
서진환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예. 두 분은 지금부터 지하 삼 층으로 방을 옮기신 겁니다.”
당문경은 그제야 한천월의 뜻을 짐작했다.
지하 삼 층은 누구의 출입도 불가능한 곳.
그곳에 수감된 자신들을 찾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서진환을 따라 나온 두 사람은 짙은 어둠 속으로 접어들었다.
“어디로 가는 겐가?”
“맹주께서 마련하신 안가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우선 내력부터 풀어주게.”
“그건 불가능합니다.”
“뭐라고?”
당문경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순간, 뒤따르던 은무대원이 번개같이 두 사람의 마혈과 아혈을 찍었다.
부릅뜬 당문경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아아, 함정이었는가!’
복면을 내린 서진환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감히 그분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 * *
은무대가 두 사람을 은밀히 옮기고 있을 때, 운룡각에선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산해진미로 가득한 수라상 앞에 운룡각의 후기지수와 중소방파의 무인들이 둘러앉았고, 악공의 연주가 넓은 대전에 울려 퍼지며 연회의 흥취를 더했다.
연회장의 한쪽 구석엔 우가산을 비롯한 중소방파의 대표들이 모여앉았다.
“맹주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당주들을 일제히 각주로 승격시키다니요?”
“말은 우리와 사대거파를 동등하게 대하겠다고 하는데 왠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당에서 각으로 승격했을 뿐 하는 일이 달라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마방을 관리하는 일, 전서구를 관리하는 일.
식자재를 검수하는 일에 무기와 의복을 관리하는 일 등 자신들이 맡았던 것은 그야말로 허드렛일뿐이었다.
우가산은 말없이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과연 정무원의 노사들이 움직일 것인가.’
확신은 없었다.
아무리 공명정대한 무인일지라도 출신은 사대거파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온다면 뜻이 있는 자들에게 움직일 명분을 줄 것이다.
진무립은 썩은 부분은 버리고 깨끗한 부분만 취해 사천 무림을 재구성할 생각이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주던 진무립의 귀로 한 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당문경과 당중호를 안가로 옮겼습니다.]은수련의 목소리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단려화의 시선을 좇아 닫힌 문을 쳐다봤다.
“왔구나.”
“네. 분명 두 분이에요.”
곧이어 문이 열리며 강유월과 하종보가 들어왔다.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가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물었다.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영문 모를 질문에 의문 섞인 시선이 쏟아진다.
두 노사는 무거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네.”
“말씀하십시오.”
“혈교에게서 사천을 지킬 자신은 있는 겐가?”
새로운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부러질 것이라면 썩은 나무를 붙잡고 버텨서라도 폭풍에 대비하는 것이 낫다.
진무립은 자신 있게 말했다.
“피를 흘리지 않을 거란 말씀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시선을 교환한 두 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의 이상에 발을 걸쳐보겠네. 다만 핑곗거리는 자네가 만들어줘야겠어.”
정무원과 사천맹을 떠날 핑계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림행에 나서겠다고 하시면 되질 않겠습니까?”
하종보가 빙그레 웃었다.
“좋은 핑계로군.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니 말일세.”
“그럼 수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말이 끝난 순간 진무립의 고개가 우측 천장으로 향했고, 목석처럼 딱딱하게 굳은 무인이 대들보 밑으로 추락했다.
콰직!
상다리가 부러지며 사방으로 음식이 튄다.
신호를 받은 은수련이 감시자를 제압하고 떨어뜨린 것이다.
“웬 놈이냐!”
놀란 무인들이 벌떡 일어나 병기에 손을 올렸다.
혈도를 찍힌 흑의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어떻게?’
맹주조차 이 장 밖에선 알아채지 못하는 은잠술이었기에 현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고맙다. 한천월. 내게 떠날 구실까지 만들어주는구나.’
미소를 감춘 진무립은 술상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맹주가 보낸 살수다.”
정말 자신을 노린 살수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감시자라는 말보다는 살수라는 말은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기엔 더욱 효과적이었으니까.
“사, 살수라니!”
당혹감이 물결처럼 번져 나간다.
“당문경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벌어진 일처럼.”
진무립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이곳에 계속 남아있는 한 이와 같은 일은 끊임없이 벌어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날카로운 비수가 내 목에 닿는 날이 오겠지. 그대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떠날 수밖에 없다.”
그간의 과정을 모두 지켜봐 온 후기지수들은 차마 말릴 수도 없었다.
호시탐탐 숨통을 끊겠다고 노리는 상대와 같은 지붕 아래 머물 수는 없으니까.
우가산이 당황한 중소방파의 책임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척, 공정한 척해봐야 실상은 보시는 대로요. 소공자를 이대로 잃을 수는 없소이다. 우리 마도림은 현 시간부로 사천맹을 떠나겠소.”
조금 전까지 흥겹게 울리던 풍악이 씻은 듯 사라지며 참담한 공기가 대전을 채워간다.
진무립이 발을 내딛는 순간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노사님들께서 이 자리에 오신 이유는…….”
강유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 무림은 달라져야 하네. 우리 두 사람은 저 친구와 함께할 것이네.”
“함께 하시다니요. 마도림에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두 노사는 진무립에게 시선을 던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따라 모여들었을 때, 진무립은 사방을 돌아보며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나는 썩어빠진 사천맹을 대신할, 모두와 상생하는 새로운 연맹을 만들 생각이다.”
말이 끝나는 순간 돌아선 진무립은 그대로 전각을 나섰다.
하나둘 그를 따라나서는 가운데 육군명은 부하들에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나 역시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야. 또 보자.”
후일을 기약한 육군명을 끝으로 진무립 일행은 연회장을 떠났다.
무거운 정적 속, 활짝 열린 문으로 세찬 바람이 들이치는 가운데 누군가 나직이 말했다.
“사천맹을 대신할…… 연맹이라니.”
“모두와 상생하는 연맹.”
진무립이 남기고 간 충격적인 말은 한동안 귓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털썩 주저앉은 조영성은 술잔을 손에 쥐며 중얼거렸다.
“나도 노사님들처럼 무림행이나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