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1
◈ 101화. 떠나는 무인들
사천맹을 밝히던 횃불이 거센 바람에 하나둘 꺼져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단숨에 사천맹을 나선 진무립은 숲길에 접어들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선물은 잘 받아가마.’
자업자득이다.
애당초 한천월이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인물이었으면 오늘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소공자.”
우가산의 말에 정신을 차린 진무립은 일행에게 말했다.
“지금쯤 지부장이 성도 동문 밖에 말과 마차를 준비해두었을 거요. 난 잠시 들렀다 갈 곳이 있으니 다들 먼저 가시오.”
떠나기 전, 반드시 처리할 일이 남아있다.
진무립의 곁으로 단려화가 따라붙었다.
“저도 함께 다녀올게요.”
두 사람의 신형이 숲속으로 사라지자 일행은 잠시 멈춘 행보를 재개했다.
* * *
구름에 달빛마저 가린 캄캄한 숲속.
무너져가는 작은 관제묘에 도착하자 어둠 속에서 은수련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두 놈은?”
“지하에 가둬두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재갈을 물고 밧줄에 꽁꽁 묶인 두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진무립을 보는 순간 당중호의 눈에는 은은한 두려움이, 당문경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진무립은 당중호의 재갈을 벗겼다.
“과, 광무대주. 살려주시오. 나는 그저 시키는 일밖에 한 것이 없소!”
늘 자신만만하고 동료들을 깔보던 오만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늑대를 앞에 두고 겁에 질린 한 마리 양을 보는 듯했다.
스르릉.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투명한 검신이 뽑혀 나온다.
“내가 네놈을 살려둬야 할 이유를 말해봐라.”
당중호는 눈물까지 흘리며 간절히 말했다.
“악의가 있어서 그대를 음해한 것이 아니오. 나도 살아야 했소. 방계의 자식으로 태어난 내가 무림에서 살아가는 길은 이것밖에 없었단 말이오!”
“네놈의 신세 한탄을 듣자고 이곳까지 잡아 온 게 아니다. 날 음해할 때처럼 대가리를 굴려보란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모르겠나?”
당중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 진무립이 원하는 답을 내놓아야 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슨 답을 해야 만족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저 시키는 것만 했을 뿐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당중호는 그제야 자신이 중심에서 겉돌며 이용만 당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나직한 탄식이 끝나는 순간, 은광검이 번뜩이며 그의 목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검신의 피를 털어낸 진무립은 당문경의 재갈을 풀었다.
“죽여라.”
“그 전에 네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진무립이 슬며시 손을 들자 은수련이 단려화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린 밖에 나가서 기다리도록 해요.”
진무립의 등을 바라보던 단려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에게는 한없이 따스하지만 적에게는 참으로 냉철하구나.’
어쩌면 그것이 상천을 세우고 유지해온 힘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나가자 진무립은 당문경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말했다.
“지금 내가 네놈의 머리를 잡아채고, 지금 네놈이 내게 머리를 잡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당문경은 이를 바드득 갈며 독기 어린 눈빛으로 쏘아봤다.
“죽여라.”
진무립의 두 눈에 그보다 더욱 시린 빛이 떠올랐다.
“죽이고 말고는 내가 정한다. 천하의 그 누구도 내 앞에서 함부로 끝을 정할 수는 없다.”
“참으로 광오하구나.”
“멍청한 네놈과는 다르게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진무립은 당문경의 머리를 지면에 사정없이 처박았다.
콰직!
“큭!”
신음과 함께 부러진 이빨이 튀어나온다.
진무립은 당문경의 귓가에 속삭였다.
“뇌옥에서 적당히 뭉개고 있다가 혈교와의 전쟁이 시작되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날 건든 대가가 고작 그 정도에서 그치면 곤란하지.”
순간 당문경의 뒷목을 타고 끔찍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끄으윽!”
“아침이 밝으면 성도와 사천맹엔 이런 소문이 퍼질 거야. 뇌옥에 가둬둔 당문경과 당중호가 한천월의 은밀한 도움 속에 탈옥했다. 죄인의 처벌과 논공행상은 그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고 말이지. 과연 사천맹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철철 쏟아진다.
진무립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독하고 무서운 인물이었다.
화르륵.
홍염이 피어오르며 지옥의 불길처럼 엄청난 열기가 당문경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당문경의 두 눈에 진무립의 광기 어린 미소가 떠오른다.
“너는…… 대체 누구냐?”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자가 일개 방파의 후기지수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억울했다.
타오르는 불길이 치켜든 검신에 깃들었다.
“그걸 지금에서야 궁금해하니까 네가 진 거다.”
푹.
뚝 떨어진 검극이 정확히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 * *
진무립과 마도림, 더불어 정무원의 두 노사까지 맹을 떠났다는 사실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날이 밝기 무섭게 사대거파의 각주들이 중목원을 찾았다.
“맹주님!”
“진정하게. 나도 들어 알고 있네.”
애써 태연한 척하는 한천월이었으나 내심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탈을 막기 위해 다소 과한 보상까지 내리며 마음을 돌리려 했음에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 맹을 떠나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맹의 위신이 추락했다곤 하나 사대거파가 건재한 이상 사천 무림의 중심이 이동하는 일은 없을 터.
‘설마 혈교와의 전쟁에서 발을 빼고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냐?’
만일 사천맹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싸움에서 빠진 마도림이 다시 사천 무림의 중심에 들어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머리에 복잡한 생각이 번지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비각주 정운창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맹주님. 뇌옥에 가둬둔 당대협과 당중호가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한천월과 각주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맹주님께서 은밀히 손을 써 탈출시켰다는 소문이 성도와 맹 내에 파다합니다.”
벌떡 일어난 한천월이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지금까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해명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정운창은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한천월의 두 눈에 지독한 독기가 떠올랐다.
‘후회할 것이다.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 것이야.’
* * *
잘 닦인 관도 위를 열 대의 마차와 백여 기의 인마가 질풍같이 질주했다.
두 노사와 같은 마차에 오른 적모개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왜 하필 이 노인네들이랑 같이 태우는 거야? 사람 불편하게.’
후미의 마차에는 운남에서 복귀한 사결제자들과 동초개가 타고 있었다.
조금 비좁아도 그곳에 타려 했는데 진무립이 한사코 이곳에 태운 것이다.
적모개가 이들과 함께 움직이게 된 것은 바로 닷새 전의 일 때문이었다.
저녁 무렵 대뜸 찾아온 진무립은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앞으로 네가 우리의 비각주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냥 그런 줄 알고 부르면 바로 나갈 수 있게 짐 싸.”
“…….”
적모개의 다음 행보는 그렇게 결정되고 말았다.
‘전쟁이 벌어지면 한천월보다는 진공자를 믿는 편이 낫긴 하지.’
진무립의 통보는 다소 의외이기도 했다.
개방은 중원무림맹 소속.
그런 개방의 일원인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끌어들인다.
‘이쯤 되니 나도 내가 거지가 맞는지 모르겠네.’
언제부터인가 자기 전에 목욕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변했다.
헛웃음을 흘리자 강유월이 물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우신가?”
“노사께서는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갑작스럽게 끌려가게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나는 내 의지로 나선 것일세.”
“진공자가 정말 사천 무림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적어도 그곳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네.”
한천월은 절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진무립을 따라나섰다.
두 번의 임무를 함께하며 지켜본 진무립이라면 충분히 사천을 바꿀 만한 능력이 있는 사내였으니까.
선두에 선 진무립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동쪽과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
진무립은 즉시 말머리를 북쪽으로 틀었다.
단려화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여기는 중경으로 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우린 중경으로 가지 않아. 닷새 전에 전서를 보냈으니 지금쯤 총단에서도 움직이고 있을 거다.”
“어디로 가는데요?”
“이주(利州)다.”
“이주?”
진무립이 말한 곳은 사천의 동북면에 자리한 도시로 섬서와 중원, 그리고 사천을 잇는 변경이었다.
“우리의 새로운 터전이 될 곳이지.”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것은 충분히 보았다.
폐쇄적인 사천 무림을 바꾸려면 다른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
이주는 위치상 외부와의 교류에 매우 적합한 장소.
무엇보다 사천맹보다 훨씬 동쪽에 있었기에 혈교와의 싸움에서 먼저 피를 볼 일도 없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뒤.
거대한 사천평야를 가로지른 이들은 따사로운 봄의 도래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록에 물들어가는 들판의 끝자락.
멀리 북쪽으로는 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는 사천과 외부를 가로막은 웅장한 산맥이 보인다.
서쪽으로 작은 강을 낀 평야에는 군진을 연상케 하는 목책이 세워져 있었고 안에선 족히 수백은 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은…….”
강유월의 말에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공사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앞으로 나선 진무립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우리가 도착했습니다!”
메아리처럼 퍼져 나간 외침이 목책을 넘는 순간, 안에서 백발이 성성한 다부진 체구의 노인이 나타났다.
목책 위에 올라선 초평천은 진무립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어서 오너라.”
쾅!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한 살기가 사방으로 솟구치며 집무실이 무너질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진노를 고스란히 받은 정운창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매, 맹주님. 고정하십시오.”
각주들이 말리자 한천월은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고 내력을 회수했다.
비 오듯 식은땀을 쏟아낸 정운창은 매우 조심스럽게 마지막 말을 꺼냈다.
“더불어…… 중소방파의 무인들이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 * *
가벼운 봇짐을 짊어진 무인들이 하나둘 숙소를 나서기 시작했다.
비어가는 운룡각의 전경이 왠지 씁쓸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설란은 때마침 나타난 철검대 부대주 장호에게 물었다.
“그대도 떠나는 건가요?”
장호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사백께서 일단 사문으로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결국은…….”
“상부에서 소공자를 그리 대한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공을 세운 마도림의 소공자조차도 그 대접을 받았는데 우리 중소방파가 어찌 버티겠습니까.”
진설란은 처연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렇군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사대거파의 오만함이 얼마나 심각한지 몸소 겪었으니까.
마음 같아선 자신도 모든 것을 내려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곁을 스쳐 지나가던 장호가 발을 멈췄다.
“소저.”
“네.”
“사천맹에는 미래가 없고, 진공자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저께서도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녀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중목원의 최상층.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선 한천월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맹주님. 나가서 오해를 푸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들을 이대로 보내선 안 됩니다.”
한천월은 정운창의 조심스러운 제안을 단호하게 잘랐다.
“되었다. 공백을 대체할 자를 선별하고 사대거파에 추가로 무인의 파견을 요청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