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2
◈ 102화. 공위맹(共爲盟)
사천맹의 분열.
내부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진실이 빠르게 드러난 탓에 진무립과 마도림을 비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도림의 이탈과 동시에 사천맹을 이탈한 중소방파들은 하나둘 이주(利州)의 들판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천맹의 처사에 내적갈등을 이어가던 사대거파의 무인들도 무림행을 구실 삼아, 또는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는 핑계를 대고 중소방파와 뜻을 함께했다.
사문에서 강제할 방법도 없었다.
먼저 떠난 정무원 출신의 노사부들이 그들을 비호했기 때문이다.
사대거파는 한천월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무인을 추가로 파견해 가까스로 맹의 붕괴를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일 장 너비의 정문 위에 웅혼한 필체로 쓰인 현판이 걸렸다.
공위맹(共爲盟).
말 그대로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연맹의 이름이다.
사천맹처럼 높은 담장도, 멋들어진 전각도 없었지만 여기엔 그곳에 없는 것들이 있었다.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
해보자는 열의로 가득한 무인들에게 침식의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무를 잘라다 만든 목책은 내부를 충분히 가릴 만큼 견고했고, 급조한 건물은 비바람을 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누구의 입에서도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비록 몸은 고될지언정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르익은 따스함이 여름의 더위로 변해가는 계절, 결맹식을 앞둔 이주의 들판으로 각지의 무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멀리 공위맹의 현판이 보이는 길 위에 두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고급스러운 자색 장삼에 붉은 영웅건을 묶은 중년인이 손으로 햇살을 가렸다.
“저곳인가?”
게슴츠레 눈을 뜬 깔끔한 청년이 실실 웃었다.
“목책이라니. 우리 개방에도 있는 담장이 없네요.”
“안에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청년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쇼. 사부. 제자가 그 정도로 눈치 없는 놈은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고. 가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청년이 물었다.
“저곳에 계신 적모개 분타주는 사부님의 친구라고 하셨죠?”
“그렇지. 나도 십 년 만에 보는 것이다.”
“사부. 분타주의 말대로 말입니다.”
청년은 가까워지는 공위맹의 현판을 응시하며 말했다.
“정말 공위맹이 사천맹을 포기하고 손을 잡을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구설수가 많다지만 중소방파를 전부 합칠지라도 사대거파의 힘에 미치지는 못할 텐데 말입니다.”
혈교가 서장을 일통한 소식은 중원에서도 화제였다.
사천이 당한다면 중원도 전화에 휩싸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보려고 온 것 아니냐? 둘러보고 적모개의 말이 타당하면 공위맹의 손을 잡고, 아니다 싶으면 사천맹도 가봐야지.”
이들이 사천맹으로 가던 발길을 이곳으로 돌린 것은 결맹식을 축하할 겸 적모개와 이야기를 나누고 공위맹의 전력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냉막한 인상의 위사들이 절도 있게 예를 갖췄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저희는 공위맹의 결맹식을 축하하고자 개방에서 온 사절입니다.”
“개방이란 말입니까?”
살짝 커진 동공에 요대 옆의 금빛 수실이 보인다.
뭔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여섯 번 꼬인 매듭은 육결제자의 상징이었다.
‘요즘 거지들은 먹고살 만한가?’
이곳에 머무는 적모개를 비롯한 거지들도 하루가 멀게 강에 나가서 씻고 돌아왔다.
심지어 적모개와 동초개는 어디서 구했는지 비단옷까지 걸쳐 입고 다녔다.
그러나 눈앞의 중년인처럼 금실로 매듭을 달고 다니는 자는 없었다.
‘개방의 소방주가 유난히 깔끔을 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신분패를 내보인 청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개방의 삼결제자 육봉개입니다. 여기 계신 제 사부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철표개 방주님의 제자이자 과거 천하대전에서 신룡대협과 함께 싸우신 소걸개 소방주이십니다.”
거기서 말이 끝나자 소걸개는 제자의 팔을 툭 쳤다.
그러자 육봉개는 아차 싶은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아, 천하이십사대고수이자 무림 칠경(七勍)의 일원인 취운보(取雲步) 소걸개가 바로 이분이십니다.”
위사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십사대고수는 처음 들어보네.’
보통 일신으로 꼽히는 단소룡을 제외하고 이황, 삼제, 오왕을 묶어 십대고수로 부른다.
물론 그 밑으로 칠경과 칠군을 포함하면 스물넷이 되기는 하지만 이십사대고수란 표현을 쓰는 이는 없었다.
“개방의 소방주란 말씀입니까?”
소걸개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바로 천하대전에서 신룡대협의 오른팔로 활동했던 그 소걸개요.”
멀뚱히 쳐다보던 위사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본인이 무림의 이름 높은 고수라지만 그리 어려워할 것 없소. 본인 또한 그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오. 껄껄껄!”
소걸개는 껄껄 웃으며 위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위사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들어간 소걸개는 슬며시 주변을 살폈다.
장석 하나 깔리지 않은 흙바닥은 깔끔하게 다져져 있었고, 곳곳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부들이 사방에서 건물을 올리고 있었다.
‘표정이 나쁘지 않군. 살펴볼 가치는 있겠어.’
집안을 보려면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부터 살펴야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오가는 무인들의 표정엔 그늘이 없었다.
위사는 두 사람을 제법 깔끔한 단층 건물로 안내했다.
“맹주님께선 현재 회의 중이십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고맙소. 그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소걸개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깔았다.
“공위맹이 상천과 연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오?”
사천에는 상천의 대산채가 두 개나 있다.
당장 이곳 이주에서 동쪽으로 닷새만 가면 부곡채가 나온다.
그들이 혈교를 막고자 공위맹을 지원하고자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으니 궁금한 것이었다.
위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저도 소문은 들었으나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위사가 예를 갖추고 떠나자 소걸개는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칫. 얼굴이라도 보나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혈교보다 더 비밀스러운 놈들이 상천인데 여길 찾아오겠습니까?”
“어허, 낭설조차 함부로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 개방이거늘.”
소걸개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짓자 육봉개는 히죽 웃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알겠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쇼. 저는 소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중원맹에서 하던 것처럼 함부로 막 돌아다니면 안 된다.”
“예.”
소걸개가 안으로 들어가자 육봉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여기 뒷간이 어디지?”
때마침 동초개가 그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보시오. 여기…….”
말을 하던 육봉개의 눈이 매듭을 발견하곤 살짝 커졌다.
“뭐요?”
고개 돌린 동초개도 육봉개의 매듭을 발견했다.
‘개방?’
삼결 매듭을 발견한 둘의 시선이 서로의 얼굴에 닿았다.
‘본 방의 제자인데…….’
상대의 깔끔한 얼굴을 본 동초개의 미간이 좁아졌고.
‘땟국물이 없다?’
동초개의 말끔한 얼굴을 본 육봉개의 눈빛도 살짝 흔들렸다.
얼굴의 개기름과 땟국물은 개방의 상징.
둘에겐 있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는 말 없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본 방에서 소걸개 소방주님을 제외하곤 우리보다 깔끔한 거지가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본 방에서 사부를 제외하고 나보다 깔끔한 거지는 본 적이 없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같은 추측을 떠올렸다.
‘이 새끼. 첩자 아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동초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기회다!’
이제 막 태동하는 공위맹이다.
여기서 첩자를 잡아 공을 세운다면 더 이상 똥은 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슬며시 매듭을 감춘 동초개는 짐짓 점잖게 말했다.
“말씀하시구려.”
육봉개도 매듭을 손으로 가리며 웃었다.
“여기 뒷간이 어딥니까?”
“오, 때마침 나도 뒷간에 똥을 푸러 가던 중인데 잘됐군. 따라오시오.”
“고맙습니다.”
싱긋 웃은 육봉개는 동초개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특유의 구린내조차 나질 않는군. 감히 본 방을 사칭해?’
속내를 감춘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적 드문 건물 뒤로 돌아갔다.
“여기가…….”
천천히 돌아서던 동초개는 번개같이 주먹을 날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육봉개도 주먹을 내질렀다.
퍼퍽!
“컥!”
“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둘의 고개가 휙 넘어간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둘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인중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에 눈이 돌아간 그들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첩자 놈이 감히!”
“누가 할 소릴!”
삼결제자에게 경천동지할 무공이 있을 리 없지만 하수에겐 그 나름의 방식이 있는 법.
당초엔 나름의 무공을 전개하는 듯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개싸움이 되어갔다.
그렇게 용을 쓰며 싸우기를 일각.
뒷간에 가던 용추가 둘을 발견하곤 물었다.
“니들 거기서 뭐 하냐?”
상대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던 동초개는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외쳤다.
“형님! 이놈은 첩자예요!”
“첩자?”
발끈한 육봉개도 쌍코피를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이놈이 첩자요! 개방에 이토록 깔끔한 거지가 어디 있단 말이오!”
“내가 할 소리다. 이놈아! 대관절 씻고 다니는 거지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용추는 멍하니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너희 둘 다 씻었잖아.’
서로의 머리를 움켜쥔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 뒹굴기 시작했고 이내 주변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대체 뭘 하는 거지?”
어느새 다가온 우가산이 용추를 툭 치며 말했다.
“말려라.”
“네.”
성큼성큼 걸어간 용추는 둘의 목덜미를 낚아채 양쪽으로 번쩍 들었다.
“형님! 저놈이 첩자라니까요?”
“개방을 사칭하는 주제에 누구더러 첩자라는 거냐!”
그때 소란을 감지한 소걸개가 달려왔고 때마침 회의를 마친 적모개도 나타났다.
“지금 거기서 뭘 하는 거냐?”
“동초…… 어? 소걸개?”
“적모개?”
서로를 발견한 그들이 아는 척을 하자 동초개와 육봉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퉁퉁 부은 눈두덩이에 시퍼렇게 멍든 낯짝이 가관이다.
한쪽 구석에 얌전히 꿇어앉은 두 제자가 팔을 들고 벌을 서는 가운데, 단출한 방 안에 적모개와 소걸개가 마주 앉았다.
“오랜만이구나.”
“그간 잘 지냈나?”
빙그레 웃는 두 사람은 씁쓸한 마음을 속으로 감췄다.
같은 시기에 입문한 두 사람.
방주의 제자로 무림을 종횡하는 소걸개와 달리 역도를 스승으로 모신 적모개는 한직을 떠돌고 있으니 둘 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적모개는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리 멀지도 않더라.”
“방주께서는 잘 계시지?”
“늘 똑같지 뭐. 네 부탁대로 공위맹의 결성 소식은 천하에 돌렸다. 누가 올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적모개는 고마운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그거면 충분해. 저녁에 따로 한잔하기로 하고 일 이야기부터 끝내자. 사천맹으로 갈 생각이었지?”
속내를 들킨 소걸개가 멋쩍게 웃었다.
“그래. 네가 공위맹과 손을 잡았다기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온 거야. 사천맹의 상황이 그렇게 안 좋냐?”
적모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긴 틀렸어.”
“그래도 객관적인 전력은 사대거파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잖아. 그걸 무시하고 손을 잡을 만큼 이곳에 뭔가가 있는 거냐?”
적모개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있다.”
“분명 소공자라는 사람이겠군.”
“그래. 난 당금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을 손에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진공자를 꼽을 거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네가 본 신룡은 어떤 사람이냐?”
개방에서 소걸개만큼 신룡을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걸개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는 단소룡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동의할 거라 확신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적모개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내가 본 소공자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