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3
◈ 103화. 합일(合一)
소걸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그 정도란 말이야?”
“내가 말하는 것은 무공이 아니라 진무립이라는 사람이다. 너도 그를 만나면 알게 될 거다.”
“궁금하군. 따로 만나볼 수 있을까?”
적모개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 여기에 없거든.”
“곧 결맹식이 열릴 텐데 자리를 비웠다고?”
“잠시 이곳을 떠나 폐관 중이야. 결맹식 전에는 돌아오기로 했으니 곧 만나볼 수 있을 거다.”
모락모락 피어나던 김이 서서히 잦아든다.
잠시 지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찻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가자. 맹주님께 인사는 드려야지.”
“그래.”
두 사람이 문을 열었을 때, 뒤에서 벌을 서던 동초개와 육봉개가 울먹이며 말했다.
“잘못했어요.”
* * *
커다란 분지 속의 고즈넉한 마을.
노을의 몽롱한 빛과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 속, 식욕을 자극하는 저녁의 냄새가 은은히 퍼져 나간다.
분지를 둘러싼 나지막한 언덕.
파릇한 잔디에 엉덩이를 붙인 육군명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평화롭군.”
우연히 지나치다 본다면 누구도 이곳을 상천의 산채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빨리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여인, 헐레벌떡 달려가는 아이들, 넉넉한 차림새는 아니었지만 이곳 사람들의 얼굴엔 구김살이 없었다.
같은 곳을 응시하던 유대하가 말했다.
“앞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곳입니다.”
“너는 왜 상천에 들어가게 된 거지? 무공도, 출신도 전혀 관련이 없잖아.”
유대하는 멋쩍게 웃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육형은 왜 소공자를 따르게 된 겁니까?”
“나도 저들과 같은 처지니까.”
육군명은 저들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무공만 드러내지 않으면 쫓겨 다닐 일 없는 자신도 오랜 세월 고독과 싸우며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쫓기는 삶 속,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은 저들은 자신보다 더욱 힘든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때 언덕 밑에서 단려화가 손을 흔들었다.
“거기서 궁상 그만 떨고 얼른 내려와서 저녁 먹어요!”
육군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누가 보면 우리 엄마인 줄 알겠어.”
유대하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여긴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 먼저 식사하고 오십쇼.”
두 사람이 앉은 곳의 바로 아래는 진무립이 폐관 수련 중인 연무장이었다.
“금방 다녀올게.”
육군명의 발이 한 걸음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속에서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고 주변의 초목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감지한 단려화가 단숨에 언덕을 뛰어 올라왔다.
“진공자의 기운이…….”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기운에 그녀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린다.
육군명이 바위에 가려진 입구를 보며 말했다.
“식사는 조금 미뤄야겠는데.”
요동치는 공기의 떨림은 사방을 비추던 횃불마저 꺼뜨렸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연무장이었으나 어둡지는 않았다.
진무립의 전신에서 붉으면서도 푸른 빛이 영롱하게 쏟아져 나와 주변을 밝혀갔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빛이 진무립의 등에 떠오르며 알 수 없는 복잡한 문양과 글씨를 만들어간다.
기신봉진대법(氣身封鎭大法).
남들보다 유달리 길었던 성장이 마침내 멈췄다.
동시에 오랜 세월 내력을 구속했던 봉인이 마침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기름을 발라둔 것처럼 매끄러운 기경팔맥을 따라 음양의 두 기운이 거침없이 질주한다.
쿵!
두 기운이 떨어지고 부딪치길 반복할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꿈틀거리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 정도의 충격에도 진무립의 혈맥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은 조금 전 복용한, 사천맹에서 받은 자호영단 때문이었다.
심맥을 보호하는데 탁월한 공능이 있는 자호영단은 음양의 충돌로 발생하는 파장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주고 있었다.
드드드드…….
공기의 진동에 따라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그로부터 반 시진이 지날 무렵.
쩌어엉!
마치 솥뚜껑끼리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터지더니 진무립이 앉은 자리가 석 자 남짓 움푹 꺼졌다.
쿵!
피어오른 먼지가 천천히 잦아들었고 붉고 푸른 빛이 서로를 흡수하며 햇살처럼 밝게 변해간다.
주변을 맴돌던 새하얀 빛무리가 점차 진무립의 육신으로 빨려들어 가는 기사가 연출됐다.
“후우…….”
내력을 완전히 갈무리한 진무립이 눈을 떴을 때, 번뜩이는 정광이 쏟아져 나와 마치 벼락 친 것처럼 연무장을 밝히고 사라졌다.
조용히 체내를 관조한 진무립의 얼굴에 짙은 희열이 번졌다.
‘됐다.’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혀온 음과 양의 기운은 더 이상 없다.
마침내 두 기운이 합일(合一)을 이루며 하나가 된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음양의 기운을 맞추고자 가둬두었던 막대한 양의 기운까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수습했다.
지금 진무립의 단전엔 세상 모든 것을 부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막대한 내력이 잠들어 있었다.
천천히 일어난 진무립은 꺼진 횃불 앞으로 다가가 장심으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화르륵.
숯불로 남아있던 불씨가 순식간에 커지며 이글거리는 불빛으로 변했다.
‘합일된 기운 속에서 음과 양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니.’
내심 놀란 진무립의 눈이 살짝 커지는 순간, 그의 주변으로 냉풍이 몰아치더니 연무장 전체가 하나의 빙굴로 변해버렸다.
음기를 떠올리자마자 내력의 성질이 급격히 변한 것이다.
“당분간 힘 조절에 각별히 신경 써야겠군.”
몸을 돌린 진무립은 얼어붙은 철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던 동료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무립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끝이…….”
“앗!”
기겁한 단려화가 눈을 질끈 감으며 돌아섰다.
기신봉진대법이 풀리는 과정에서 육신을 가려주던 봉인까지 풀리고 만 것이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아랫도리를 훑고 지나간다.
“…….”
진무립은 그제야 슬며시 낭심을 가렸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요.”
속으로 혀를 내두른 육군명이 상의를 벗었다.
“거짓말.”
어둠이 짙게 내린 부곡채.
몸을 씻은 진무립이 돌아오자 네 사람은 모처럼 탁자 앞에 둘러앉았다.
“먼저 먹지 그랬나?”
수저를 든 진무립이 식사를 시작했으나 세 사람은 먹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육군명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요하다.
겉보기엔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폐관에서 나온 진무립은 지금까지와는 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마치 날기 직전의 대붕이 잔뜩 웅크린 듯한 기분.
유대하 역시 그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으나 단려화만큼은 달랐다.
‘폭발 직전의 화산 앞에 앉아있는 것 같아.’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예리한 감각은 전과 달라진 진무립을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진공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어.’
그녀의 울대를 타고 마른침이 넘어갈 때, 진무립이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밥은 안 먹고 왜 그렇게 음흉하게 보는 거야?”
당황한 단려화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내, 내가 언제요!”
“봤지?”
“못 봤어요.”
“뭘?”
그녀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밥이나 먹어요.”
그때 문이 열리며 부곡채주 백채륜이 들어왔다.
예를 갖추던 그는 진무립의 변화를 감지하곤 활짝 웃었다.
“대공을 감축드립니다.”
“고맙다.”
그의 뱀 같은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이제 신룡을 쓰러뜨리고 천하를 거머쥘 일만 남았군요.”
화들짝 놀란 단려화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죠?”
백채륜은 혀를 날름 내밀었다.
“농담입니다.”
“…….”
그녀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왠지 주변에 자신을 못 놀려서 안달이 난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진무립이 물었다.
“광룡대의 진전은 어떤가?”
광룡대가 수련에 들어간 것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뭐…… 전보다는 제법 쓸만하게 변했습니다.”
진무립은 기분 좋게 웃었다.
칭찬에 인색한 그가 쓸만하다고 말한다면 엄청난 진전이 있었을 게 분명했다.
“혈교가 넘어오기 전에 써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군요.”
“어렵겠나?”
“가능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좋다.”
대화가 일단락되자 백채륜은 화제를 전환했다.
“공위맹에 개방의 소방주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문화는 어디까지 왔지?”
상천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총사 수문화는 지금 사천으로 오는 중이었다.
“결맹식 전에는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전혀 의외의 방파에서 공위맹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의외의 방파?”
백채륜은 단려화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강남의 화령입니다.”
“뭐라구요?”
그녀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릴 만큼 화들짝 놀랐다.
“누, 누가 온다고 하던가요?”
“소영주 단자룡과 칠경의 일인, 불패신도(不敗神刀)가 사천에 진입했다고 하더군요.”
“아아, 오라버니와 양숙부께서…….”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진무립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화령이라.”
은곡을 공격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악감정은 없었다.
전쟁에서 보인 은곡의 힘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
적어도 그들은 도의를 지키며 여인과 아이를 볼모로 잡지 않았고 저항하지 않는 자는 공격하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잘된 일이지.’
화령이 와준다면 공위맹의 격이 올라갈 터, 진무립은 다가올 결맹식이 기다려졌다.
“밥 다 먹었으면 일어나라. 돌아가자.”
* * *
나무로 울창한 산기슭.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자색 무복에 은색 수실로 승천하는 용을 새긴 무인들이 질풍처럼 내달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열과 속도를 유지하는 그들은 바로 화령의 고수들이었다.
후미의 시골 촌부처럼 까맣고 촌스러운 인상의 중년인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춘아. 자룡이한테 좀 쉬어가자고 전해다오. 술이 덜 깨서 죽겠다.”
그와 쏙 빼닮은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가 보면 환갑 지난 노인인 줄 알겠수. 뭐가 힘들다고 엄살이오?”
양삼은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이 새끼는 아부지 나이도 모르냐! 환갑은 작년에 지났어! 인마!”
양춘은 정말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버, 벌써?”
“이런 시벌. 뼈 빠지게 일해서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네.”
“거 바쁘게 살다 보면 좀 모를 수도 있지 뭘 또 삐져서 그래요? 그럼 아버지는 내 나이 알아요?”
“스물일곱이잖아. 내가 너랑 같은 줄 아느냐?”
“저 스물다섯인데요.”
“…….”
뒤의 소란을 들었는지 대열의 속도가 천천히 느려지며 멈추기 시작했다.
대열의 선두.
영준한 용모에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서서히 발을 멈춰간다.
무림 최강의 후기지수.
천하제일인의 아들이자 스스로 실력을 입증한 소천무군 단자룡이 바로 청년의 이름이었다.
혹자는 그가 이미 칠경을 넘어섰다 말하기도 했고, 다른 이는 그가 십대고수를 뛰어넘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단자룡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쉬어간다.”
“예!”
우렁찬 외침과 함께 무인들은 냇물을 찾아 물을 뜨기 시작했다.
후미로 걸어간 단자룡은 대나무 통에 담긴 물을 양삼에게 건넸다.
“양숙부. 물 좀 드십시오. 더위가 가실 겁니다.”
물통을 받아든 양삼은 아들놈을 쳐다봤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그 모습이 참으로 얄밉다.
“내가 그날 밤 술을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잔뜩 인상을 쓴 양삼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너 요즘 쟤랑 비무 안 하냐?] [춘이가 하자고 안 합니다.] [니가 좀 하자고 해. 내 대신 흠씬 패줘라.]양춘을 힐끔 쳐다본 단자룡이 빙그레 웃었다.
[시간 날 때 시도해보겠습니다.] [시도만 하지 말고 꼭 패줘. 꼭.] [하하하. 알겠습니다.]냇가로 내려가 물을 채워 넣은 단자룡은 그늘에서 지도를 펼친 연소정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남았지?”
“이 속도라면 닷새는 걸릴 겁니다.”
단자룡은 나무에 기대앉으며 물었다.
“잘 지내고 있겠지.”
동생에게는 홀로 나선 첫 무림행이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소정은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분명 잘 계실 거예요.”
“마도림의 소공자라는 청년은 어떤 사람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