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
◈ 108화. 거짓말쟁이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은 겉보기엔 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단자룡의 육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소정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진공자와 함께 움직이며 서장까지 다녀왔다지? 서장…….”
단려화는 그의 말을 칼같이 잘랐다.
“오라버니.”
“그래.”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슬쩍 눈을 피했다.
“……서장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좋은 추억보다 아픈 추억이 더 많은 서장행이다.
지금도 용추를 만날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니까.
단자룡은 빙그레 웃었다.
“알았다.”
동생의 이런 모습 또한 화령도에선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무탈하신가요?”
“어머니께서는 전과 다름이 없으시고 아버지께서는 아직 폐관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부친은 천하가 인정하는 최강의 무인이다.
그럼에도 마치 이제 막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무인처럼 하루도 수련을 거르지 않았다.
단려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욕심이 많아요. 대체 얼마나 강해지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단자룡은 그저 웃기만 했다.
동생은 모른다.
부친의 힘이 천하대전을 끝낼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단소룡이 무림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능력이 탁월한 것도 있었지만 그가 만난 기연도 무시할 수 없었다.
복용하는 순간 전신 세맥이 환골탈태한 것처럼 유연해지고 죽음에 이르지 않는 상처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태초의 상태로 되돌려준다는 천고의 영초.
기적 같은 구령부화초의 기운은 천하대전 마지막 싸움에서 단소룡을 회복시키며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아버지는 그때와 다른 전투 방식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다음에 맞게 될 상대는, 어쩌면 팔황문주 이상으로 까다로운 대적일 수도 있겠다고 하셨지.’
상대의 정체는 누구도 모른다.
부친조차 그자와 만난 것은 단 한 번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 누구도 당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부친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상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는 것이다.
부친이 폐관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이유였다.
짧은 정적 끝에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천하의 무인이 전부 덤벼도 이겨내실 만큼 강해지고 싶으신 모양이다.”
단려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그런데 결맹식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외부의 행사에 참여한 적은 없었잖아요.”
“이유가 무엇일 것 같으냐?”
“설마 저 때문인가요?”
“물론 내 동생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 하지만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다.”
“다른 이유가 더 있단 말이에요?”
“사천이 혈교의 움직임에 대비가 되어있는지 알고 싶었다.”
사천이 혈교에게 무너진다면 다음 목표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단려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본 혈교의 힘은…… 그들의 실혼인은 분명 얕볼 수 없는 상대예요. 하지만 진공자가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진무립을 언급하는 순간, 동생의 눈에 왠지 모를 따스함이 스치고 사라지는 걸 단자룡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를 마음에 두었느냐?”
화들짝 놀란 단려화가 손사래를 쳤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하하하. 알았다. 더는 거론하지 않으마.”
곱게 눈을 흘긴 단려화가 물었다.
“결맹식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실 건가요?”
“맹주님을 만나 뵙고 돌아갈 생각이다. 네가 잘 지내는 것을 보았으니 됐다. 나와 오래 있으면 네 정체가 탄로 날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자꾸나.”
단자룡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혈교와 사천의 싸움이 아니다. 사천이 무너진다면, 천산이 움직일 수도 있다. 그리되면 천하는 두 번째 환란을 맞게 될 거야.’
단자룡과 대군사 화윤이 경계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혈교와 천마신교가 밖에서 움직이고, 만일 안에서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이 있다면 강호에 천하대전 이상의 혈겁이 벌어질 것이다.
두 사람은 당초 내부의 적을 상천으로 의심했다.
단소룡이 만났다던 정체 모를 대적도 상천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수문화와 만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수문화는 쉽게 속내를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었으나 그가 말한 상천의 의지는 분명 진심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적이 더욱 무섭다는 것을, 천하대전을 경험한 무림의 선배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반드시 일이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동생에게 괜한 걱정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
그는 골목의 어둠 속으로 차분히 발을 내디뎠다.
연회장으로 돌아온 단려화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진무립을 볼 수 있었다.
“대주, 아니지. 이제 단주님이라고 해야겠군. 낮에 군중들의 그 눈빛을 보셨습니까? 크으!”
조영성이 취기 오른 얼굴로 탄성을 내뱉었다.
귀빈들의 감탄 섞인 눈빛, 경악을 금치 못하던 군중들의 시선이 마치 제 일처럼 기쁜 까닭이다.
“화령과 개방의 손님들까지 그 광경을 목도한 단주님의 명성이 천하로 뻗어 나갈 겁니다. 강남의 소천무군? 난 다음 대 천하제일인은 우리 단주님이 될 거라 믿습니다.”
곁에 앉은 국철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똑같은 얘길 몇 번이나 하는 거냐?”
당소소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데려가서 재우는 게 좋겠어.”
진무립은 실소를 머금고 술잔을 들었다.
“됐다. 오늘 같은 날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즐기게 둬라.”
조영성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역시 대주가 아니라, 단주님밖에 없다니까.”
그때 한쪽에 앉아있던 당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늘 단주님을 따라다니던 광녀 소저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순간 전신을 옥죄는 오싹한 한기와 함께 바로 뒤에서 섬뜩한 음성이 들려왔다.
“죽고 싶어요?”
“컥!”
기겁한 당우는 하마터면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곱게 눈을 흘긴 단려화가 진무립의 곁에 앉았다.
“누군 사천의 빛이네, 무림의 떠오르는 신성이네 하는데 나는 끝까지 광녀 소리만 듣네. 한 잔 따라봐요. 오늘은 먹고 죽어볼라니까.”
빙그레 웃은 진무립이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워주었다.
모두가 자신을 칭송하고 있으나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단려화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녀의 예리한 감각이 아니었더라면 혈교의 무인이 온 줄도 몰랐을 테니까.
“낮에는 정말 수고 많았어.”
그 한마디에 마음속 불만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스멀스멀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분히 내린다.
그녀는 진무립을 툭 치며 애써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도 오늘 제법 괜찮았어요.”
마주친 두 사람의 눈빛에 묘한 따스함이 깃들었다.
대전으로 가는 척, 동생을 뒤따라온 단자룡은 멀찍이 서서 빙그레 웃었다.
‘내 동생은 거짓말쟁이가 되었구나.’
* * *
결맹식의 다음 날 아침.
맹주 초평천의 집무실에 일련의 무인들이 모여 앉았다.
공위맹 측에선 초평천과 진무립에 적모개가, 반대편엔 단자룡과 양삼, 소걸개가 마주 앉았다.
초평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구려.”
단자룡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무인이 어찌 잠자리를 가리겠습니까. 과분한 환대에 충분히 즐기고 푹 쉬었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소걸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거지에게 바람을 막아줄 벽과 지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호사지요. 껄껄껄!”
적모개가 슬쩍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누가 저 꼴을 보고 거지라고 하겠어.”
깨끗이 빨았다곤 하나 자신의 옷은 곳곳에 기운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소걸개의 복식은 마치 명문가의 무인처럼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진무립이 적모개를 툭 치며 말했다.
“들리겠다.”
지그시 눈 감은 소걸개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들렸소.”
“…….”
개방의 두 방도가 다른 진영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앉은 것도 제법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초평천이 말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십시다.”
단자룡이 입을 열었다.
“예. 맹주님. 포달랍궁이 무너진 이상, 혈교가 사천을 침공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화령은 공위맹에서 도움을 청할 경우,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초평천이 물었다.
“비공식이라는 말은?”
대답은 양삼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 화령은 영주님의 의사에 따라 강남 밖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소 오만하게 보일 소지가 있으나, 지나치게 강대한 힘이 쉽게 움직인다면 무림이 무림답게 흘러가지 못하리라는 게 그분의 뜻이지요.”
천하제일인인 신룡의 존재, 십대고수의 다섯 명을 보유한 화령의 존재감은 그만큼 컸다.
무림에 분쟁이 생길 때마다 화령이 개입한다면 무림 방파들은 칼을 드는 대신 화령에 선을 댈 생각만 하게 될 것이다.
단자룡이 양삼의 말을 받았다.
“비공식이라는 말이 후방 지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선에서 전투를 벌일 무인들까지 지원할 의사가 있습니다. 이주에 사람을 두고 갈 터이니 언제든 편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볍게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법도 했으나 진지하게 파고들면 나쁜 제안은 아니다.
전쟁에서 얻는 전공과 명성을 모두 양보하겠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평천은 그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고맙소. 신중히 생각해보리다.”
화령과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소걸개가 나섰다.
“제가 개방의 소방주이자 중원무림맹의 일원이지만 아쉽게도 당장 뭔가를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돌아가서 이야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중원은 사천이 위기에 빠지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피를 흘리는 결정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평천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공위맹이 아닌 사천맹과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습니다. 공위맹의 힘이 사대거파를 능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선 그리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맹식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무립이 보여준 과감함, 빈틈없이 완벽한 일 처리를 목도한 이상 공위맹에 걸어봐도 괜찮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소걸개는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본 방의 사천 분타가 있다곤 하나 총단에서도 그간 끊임없이 서장의 정보를 수집해왔습니다. 이것은 총단에서 무혼광인을 분석한 자료입니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장 직접적으로 나설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라도 돕고 싶다는 것이 소걸개의 의지였다.
물론 이 결정에는 적모개의 설득이 일부 작용한 것도 있었다.
천무대를 궤멸로 몰고 간 무혼광인의 정보라면 작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책자를 훑어본 초평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갖췄다.
“우리 공위맹은 두 방파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화령과 개방의 손님들이 나가자 초평천이 진무립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무립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들이 전쟁에 개입한들 눈에 보이는 이득은 얻어갈 수 없습니다. 돕고자 하는 의지는 진심인 듯 보이니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이어서 적모개가 말했다.
“중원의 입장에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에 발을 걸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일 겁니다. 소방주가 주고 간 자료를 분석해 무인들에게 가르친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비사각주는 자료를 확인해보고, 그것을 필사해 사천맹에도 전해주게.”
적모개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사천맹과 공유하잔 말씀이십니까?”
“이곳 공위맹에는 호천단을 비롯해 사대거파의 제자들도 있네. 비록 뜻한 바가 다르다곤 하나 사대거파 역시 사천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가족일세. 사천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적모개는 초평천이 참으로 큰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천월과는 그릇이 다른 분이시구나.’
한천월이 고작 사대거파만을 포용하고자 한다면, 초평천은 사천 무림 전체를 품에 안으려 하고 있었다.
과연 한천월이 내민 손을 흔쾌히 잡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진무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자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판단이다.
하지만 초평천의 뜻이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계획을 세우면 된다.
‘우리가 내민 손을 잡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용하면 될 것이고, 알량한 자존심으로 도움을 뿌리친다면 그 또한 그들의 책임이지.’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맹주님. 상천의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모시거라.”
“예.”
문이 열리며 총사 수문화와 두 명의 대채주가 들어와 정중히 예를 갖췄다.
“공위맹의 맹주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그들과 마주 예를 갖춘 초평천이 자리를 권했다.
진무립과 시선을 교환한 수문화는 슬쩍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초평천이 말했다.
“살면서 상천의 총사와 마주 앉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결맹식까지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하하하. 저야말로 사천제일의 영웅과 이렇게 마주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웃음을 터트린 수문화는 문득 훗날의 일이 궁금해졌다.
‘옆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손자가 상천의 천주라는 걸 아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귀로 진무립의 전음이 귀신같이 파고들었다.
[허튼소린 하지 마라.] [여부가 있겠습니까?]옅은 미소를 띤 수문화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상천은 공식적으로 공위맹을 돕고자 합니다. 여기 있는 두 명의 대채주와 본 천의 정예 이백을 지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