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1
◈ 111화. 폭풍전야
각주들은 자신들과 다른 진무립의 의견에도 섣불리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라면 분명 염두에 둔 생각이 있을 거란 믿음에서였다.
초평천이 물었다.
“금상각주의 말처럼 혈교의 칼끝이 우리 공위맹부터 노릴 수가 있네.”
혈교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공위맹의 전략은 확실하다.
전력상 우위에 있는 사천맹과 그들이 충돌하면 후방의 수장을 잡고 전쟁을 빠르게 끝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의 칼이 공위맹부터 노린다면 그 전략은 폐기해야 한다.
의문 섞인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진무립이 말했다.
“판천라마를 공위맹으로 데려오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선 그의 신병을 확보해 모처에 대피시킨 뒤, 혈교가 대설산맥을 넘으면 그에게 서장을 되찾게 할 생각입니다.”
강유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포달랍궁이 무너졌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 확인하질 않았는가?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포달랍궁은 무너졌으나 라마승이 전멸한 것은 아닙니다. 판천라마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흩어졌던 라마승들이 모이겠지요. 혈교는 그것을 걱정해 이곳 사천까지 추격대를 보낸 겁니다.”
“으음.”
수뇌들의 무거운 침음성이 대전에 나직이 깔렸다.
생각을 정리한 적모개가 말했다.
“일리가 있는 의견입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서장에 이변이 생긴다면 적은 적잖이 동요할 게 분명합니다.”
진무립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혈교를 패퇴시키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포달랍궁의 서장 탈환을 도와준 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근거지를 잃은 혈교를 완벽하게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포달랍궁과의 연계는 장기적인 행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성각주 장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단주의 말대로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에겐 판천라마를 도와 서장을 되찾을 만한 고수가…….”
그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무인의 숫자는 사천맹보다 많다.
하지만 고수의 숫자가 명백히 부족하다.
만일 진무립이나 호천단의 고수들이 빠진다면 일선에서 싸워줄 고수가 부족해진다.
특히나 진무립만큼은 절대 서장에 보낼 수 없었다.
모두가 진무립의 능력을 신뢰하고, 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무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든 중소방파의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초평천은 진무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성각주의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네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의견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생각해둔 복안이 있느냐?”
대답은 망설임 없이 나왔다.
“상천의 고수들에게 맡겨보시지요.”
“서장은 적진이다. 그들이 우릴 돕겠다곤 하나 과연 그 위험을 무릅쓰고 서장까지 다녀오려 하겠느냐?”
모두가 초평천과 같은 생각이었으나 진무립은 자신 있게 눈을 빛냈다.
“이번 일은 저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계획대로 진행시키겠습니다.”
* * *
한낮의 뜨거운 태양에 지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어느덧 찾아온 완연한 여름.
잔뜩 달아오른 관도 위에 한 무리의 무인들이 올라섰다.
“나 참. 더럽게 덥네.”
인상을 찌푸린 육군명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구시렁거렸다.
부곡채에서 기다리던 유대하들은 맹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진무립과 길을 나선 참이었다.
단려화가 손 그늘을 만들며 말했다.
“힘들어도 조금 참아요. 여긴 쉴 곳도 없단 말이에요.”
사방을 둘러봐도 광활한 평야뿐, 어디에도 햇살을 피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유대하가 곁을 달리던 용추에게 물었다.
“안 덥습니까?”
용추는 콧방귀를 뀌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나 같은 고수는 고작 이 정도 더위에 지치지 않아.”
“등은 다 젖었는데요?”
“등이 우울해.”
“…….”
선두의 진무립은 잠시 멈춰 서더니 바닥의 돌 몇 개를 쥐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뜨겁게 달아오른 돌이 천천히 식어가더니 이내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유대하가 묘한 얼굴로 말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요.”
씩 웃은 진무립은 돌맹이를 동료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받아라.”
얼음장처럼 차가운 돌로 가슴을 문지른 육군명이 탄성을 터트렸다.
“크으! 시원하다.”
그때 하늘에서 커다란 흑조가 원을 그리더니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속도를 올리자.”
진무립을 필두로 달리기 시작한 일행은 반 시진이 지난 뒤 나지막한 야산의 기슭에 도착했다.
나무 그늘 아래 몸을 피한 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산 위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은무대 부대주 은수련이 나타났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진무립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곳이냐?”
“아닙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반나절 거리의 청진현 인근입니다. 대주가 대원 다섯과 함께 감시하는 중입니다.”
진무립이 전해준 비사각의 정보를 토대로 은무대가 판천라마의 은신처를 찾아낸 것이다.
진무립은 은수련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 많았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 숙였다.
“쉴 곳을 마련해두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기슭에서 백 장가량을 올라가니 졸졸 흐르는 개울과 나무로 만든 그늘이 있었다.
부하들과 합류한 진무립과 동료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청천현으로 출발했다.
* * *
아름드리나무로 빼곡한 숲속.
회색 마의를 입고 죽립을 눌러쓴 사내가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간 사내의 눈앞에 깎아지를듯한 절벽과 그 아래로 커다란 마을이 나타났다.
절벽에 걸린 노을이 빛을 잃어가는 시간.
주변을 살핀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숲속으로 돌아가더니 작은 바위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사라진 자리에 서진환이 나타났다.
‘순찰 주기가 불규칙하군. 그 정도로 경계하는 걸 보면 안에 부상자가 있는 건가?’
며칠이 지나도록 인근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저들의 경계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때 후방에서 은밀한 기척이 느껴지더니 부하의 전음이 귀에 꽂혔다.
[대주. 흑조가 돌아왔습니다. 천주님께서 곧 오실 모양입니다.]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이곳으로 모셔라.] [예.]대답이 들려오기 무섭게 부하의 기척이 사라졌다.
완사계는 공동에 들어선 뒤에야 죽립을 벗었다.
“왔는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손야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사계가 작게 끄덕이며 물었다.
“잠은 좀 잤는가?”
손야탁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충분히 쉬었네. 이제 교대로 순찰하지.”
호공 소유붕을 유인해갔던 손야탁은 하루 전 도착한 상태였다.
“불존께서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네.”
“오늘은 유독 길게 주무시는군.”
“완쾌하실 날이 머지않은 모양일세.”
혈마 무천극의 혈천장은 몇 달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만일 고강한 내력을 가진 판천라마가 아니었더라면 스치는 순간 즉사했을 것이다.
완사계가 벽에 기대앉을 때, 눈을 뜬 판천라마가 몸을 일으켰다.
“불존. 기침하셨습니까?”
“손님을 데려왔구나.”
순간 완사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님이라고?’
벌떡 일어난 완사계와 손야탁의 고개가 입구로 향했다.
곧이어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경계할 것 없다. 죽일 생각으로 온 게 아니니까.”
한 발 나선 완사계가 상대의 시야에서 판천라마를 가렸다.
“누구냐.”
나직한 음성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그 순간, 전방에서 화르륵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타오르는 나무토막이 공동의 한복판에 던져졌다.
한 걸음 옆으로 움직인 진무립은 두 사내의 뒤에 앉은 라마승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젊군. 그대가 판천라마인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상대의 나이는 많이 쳐줘도 자신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풍기는 기도는 천중수(千重水)에 몸을 담근 것처럼 육중하다.
‘단자룡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세상엔 괴물이 참 많다니까.’
진무립의 태도에 눈썹을 꿈틀거린 손야탁은 거친 일갈을 토해냈다.
“이놈! 무례하구나!”
그때 뒤에 앉은 판천라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러나라.”
“불존. 소인이 당장 이놈을 쫓아내겠습니다.”
진무립을 뚫어지게 쳐다본 판천라마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두 사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들은 판천라마를 지척에서 모시는 오대사자.
서장에서도 혈마와 일부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 자신들에게 눈앞의 인물이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 말하니 놀란 것이다.
“저 사내가 대체 누구길래…….”
진무립은 자신의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불까지 켜줬는데 딱 보면 모르나? 사천에서 이만큼 잘생긴 인물이 누가 또 있을까?”
그 순간 완사계의 뇌리에 불현듯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다.
“광룡 진무립?”
진무립의 입가에 오연한 미소가 번졌다.
“알았으면 비켜라. 너희 대장과 할 이야기가 있다.”
두 사자가 어쩔 바를 모르며 머뭇거리자 판천라마가 입을 열었다.
“물러나라.”
“예. 불존.”
앞으로 나선 판천라마의 전신에서 은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두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자 전신이 간질거리는 듯한 기묘함이 느껴진다.
진무립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신기한 재주를 가졌군. 뭘 하는 거냐?”
진무립을 위아래로 훑어본 판천라마의 눈빛이 이내 원래의 빛을 되찾아갔다.
“금강적사안(金講的査眼)이라고 하지.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법이다.”
“그래서 내 본질을 꿰뚫어 보았나?”
“네가 정말 마도림의 소공자 진무립인가?”
“아닌 것 같나?”
판천라마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였다.
“네가 가진 힘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그 나이에 가질 만한 힘이 아니로구나.”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극도로 위험하다.
금강적사안을 터득한 이래, 이토록 위험한 느낌을 주는 상대는 진무립이 처음이었다.
진무립은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그 능력이 진짜라면 혈마한테 당하기 전에 도망치지 그랬나.”
“피할 수 없는 싸움도 있는 법이지.”
“나와 혈마를 비교하면 어떤가?”
말없이 진무립을 응시하던 판천라마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본좌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라.”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으나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진무립은 그와 마주 앉았다.
“서장을 되찾게 도와주지.”
공위맹의 수장도 아닌 새파랗게 젊은 고수가 자신도 하지 못한 일을 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진무립의 힘을 가늠한 판천라마는 그게 가능한 일인지 묻지 않았다.
“그 대가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
“없다.”
뒤에 시립한 완사계가 믿기 어려운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농을 하는 것인가?”
진무립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들이 무너지는 바람이 이쪽은 귀찮은 일을 떠안게 됐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혈교를 놔두고 한가롭게 농담하러 올 시간이 있겠냐?”
“…….”
말문이 턱 막힌 완사계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입만 뻥긋거렸다.
손을 들어 두 사람의 입을 막은 판천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도움을 받지. 그러나 본 궁에서 말하는 은혜는 민초의 은원과 그 무게가 다르다. 언젠가 오늘의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다.”
“그러시든가.”
진무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가를 마련하고 내일 아침 사람을 보내지. 움직이기 전까지 그곳에서 쉬어라.”
할 말을 끝낸 진무립은 그대로 공동을 떠났다.
두 사람이 만나고 고작 일다경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두 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본 궁이…… 저자와 손을 잡은 건가? 이렇게 순식간에?’
정신을 차린 완사계가 다급하게 말했다.
“불존. 공위맹은 고작 사천의 중소방파들이 모인 집단. 서장을 되찾기는커녕 혈교의 무혼광인조차 막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저자가 강할지라도 한두 명의 힘으로 되찾을 만큼 서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섣불리 손을 잡았다가 이쪽의 위치라도 노출…….”
“그만.”
단칼에 그들의 말을 자른 판천라마는 확신에 찬 얼굴로 눈을 빛냈다.
“그와 손을 잡는다면 가능한 일이다.”
* * *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는 서장을 피해 가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햇살 아래 마방의 말마저 녹초가 되어 주저앉는다.
눈처럼 새하얀 외벽, 웅장하게 치솟은 포달랍궁의 본궁 위로 더위에 지친 전서구가 추락하듯 떨어졌다.
잠시 후, 족제비 같은 눈매의 청년이 빠른 걸음으로 교주의 처소를 찾았다.
“주군. 호공이 전사했습니다.”
오랜 세월, 교를 위해 일해온 충신의 죽음에도 무천극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천수경장이냐?”
무천극의 지낭, 서천지봉(西天智鳳) 자인경은 쓴웃음을 삼켰다.
“아닙니다. 진무립입니다.”
“큭큭큭. 이번에도 그놈인가?”
자조 섞인 웃음소리에 오싹한 살기가 담긴다.
곧이어 무천극이 몸을 일으키자 자인경은 마치 태산이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출정을 준비해라. 진무립이고 사대거파고 전부 쓸어버린 뒤, 사천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천수경장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고개 돌린 무천극의 눈에 짙은 살광이 번뜩였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자인경은 즉시 자리에 부복했다.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