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14
◈ 114화. 광룡대의 하산
사천맹을 은밀히 주시하고 있던 개방의 거지들은 이변을 감지한 즉시 공위맹에 연락을 취했다.
소식을 접한 진무립은 때마침 도착한 검산채주 대중경을 대동하고 안가에 머무는 판천라마를 찾아갔다.
비에 젖은 아담한 장원.
처마 밑에 선 세 사람은 떨어지는 빗방울의 눅눅한 공기를 마시며 인사를 나눴다.
“이자는?”
“대중경이다. 상천의 검산채주지.”
판천라마는 대중경의 창백한 얼굴과 진무립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 부하인가?”
낯빛이 마치 눈처럼 새하얀 사내는 마주 선 것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진무립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봉을 감시하던 사천맹 무인들이 주검으로 발견됐다는군.”
“…….”
진무립이 화제를 돌리자 판천라마는 다시 묻지 않고 처마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혈교가 대설산맥을 넘은 모양이로구나.”
“그래. 움직일 때가 왔다.”
진무립은 대중경을 바라보았다.
“변경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전면전이 벌어지면 판천라마를 도와 서장을 되찾아라. 모든 계획은 네게 맡기겠다.”
“예.”
그 말을 끝으로 진무립은 몸을 돌렸다.
빗속으로 들어서는 진무립의 등 뒤로 판천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무립.”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속에서 진무립은 고개를 돌렸다.
“혈마는 검법과 장법을 능숙하게 사용한다. 특히나 그의 혈천장은 마치 시귀독(屍鬼毒)처럼 육신을 갉아먹는 사공이지. 둘 중 하나를 경계해야 한다면 검보다는 장을 조심해라.”
“고맙군.”
“내가 서장을 되찾게 된다면, 그대는 언젠가 반드시 우릴 도운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그런 건 됐고 전쟁이 끝나면 술이나 한잔……. 아, 중은 술을 안 마시나?”
판천라마는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곡차라면 상관없다.”
“그럼 그것으로 하지.”
“좋은 곡차로 준비해두겠다.”
“그래. 기대하마.”
떠나는 진무립의 뒤로 대중경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잠시 후, 진무립이 빗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판천라마가 대중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지금부터 자네의 계획을 들어보지.”
대중경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는 내가 복잡하게 계산할 것을 바라시고 임무를 맡기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런 쪽은 내가 아닌 백채륜이 훨씬 나으니까.”
“계획이 없다는 말인가?”
판천라마를 담은 대중경의 두 눈이 강렬한 안광을 토해냈다.
“서장을 되찾을 때까지, 당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존재를 죽여드리겠습니다.”
대중경을 바라보던 판천라마의 시선이 저 멀리 담장 너머의 숲으로 옮겨갔다.
“진심이로군.”
내리치는 빗방울도 튕겨 오를 것만 같은 엄청난 기운이 담장 너머에서 느껴진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대중경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깃들었다.
“나는 거짓은 말하지 않습니다.”
안가를 나선 진무립을 숲속에서 단려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이야기가 끝난 거예요?”
“그래.”
“지금쯤…… 철수가 시작됐을 거예요. 혈교가 조금만 더 늦게 넘어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만일 그들이 사대거파가 아닌 중소방파부터 노린다면, 아니면 그들의 진로에 운 나쁘게 중소방파가 있다면 지금의 상황에선 손쓸 방법이 전혀 없었다.
“시기는 늦지 않았다. 헛된 자존심만 내세우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다.”
“자존심을 내세운다면요?”
진무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가자.”
“공위맹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
진무립이 첫발을 내디딘 곳은 동쪽이 아닌 남서쪽.
동공에 담는 것은 평야로 이어지는 들판이 아닌 울창한 숲 너머의 대설산맥이다.
진무립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손님이 오셨는데 인사는 해야겠지.”
* * *
깎아지를듯한 협곡.
협곡 사이로 황폐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버려진 마을에 부슬비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마을의 전경이 보이는 큼직한 바위 위에 십여 명의 흑의인이 연기처럼 나타났다.
[조용하군.] [공진단(共震團)의 효용이 드러날 시기다. 망신당하기 싫으면 오늘은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을 거다.]복면에 가려진 입술이 씰룩거렸다.
[공진단까지 복용하다니 복 받은 놈들이야.]공진단은 무려 삼십 년의 내력을 더해주고 혈맥의 탁기까지 제거해주는 놀라운 영단이었다.
[그분께서 선택하신 자들이다. 가자.]시선을 교환한 그들이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릴 때, 마을 입구에서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엄청난 기세의 화살이 공간을 찢고 날아들었다.
쐐애액- 콰직!
산개한 흑의인들을 간발의 차이로 지나친 화살은 바위를 꿰뚫고 뿌리까지 파고들었다.
그 엄청난 속도와 위력에도 흑의인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이 정도 화살은 얼마 전부터 지겹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진입.”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흑의인들이 일제히 목책을 뛰어넘었다.
쉬익!
그들의 발이 땅에 닿기 직전, 좌우에서 살갗이 아려올 만큼 강렬한 살기가 솟구치더니 수십 개의 암기가 비 오듯 쏟아졌다.
흑의인들은 즉시 검병을 출수하며 암기를 받아쳤다.
카카카카캉!
사방으로 불똥이 튀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암기를 쳐내 가는 손목으로는 육중한 힘이 느껴진다.
“오조.”
폐가 안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봉을 든 민머리의 사내, 전유와 장병기를 든 무인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죽인다.”
“전보다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땡중.”
“누가 땡중이냐?”
섬뜩하게 눈을 빛낸 전유의 봉 끝이 원을 그리듯 회전하더니 강맹한 기세로 내질러졌다.
‘제법이군.’
무시할 수 없는 날카로움에 정면의 흑의인은 피하지 않고 도를 마주쳐갔다.
콰앙!
폭음과 함께 비에 젖은 땅거죽이 움찔한다.
부딪친 두 사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며 사이 공간에 공백을 만든다.
“이조.”
또다시 폐가 안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곧장 좌측에서 튀어나온 한경이 전유의 빈자리를 채우며 도를 휘둘렀다.
“개새끼들. 오늘은 반드시 끝장을 본다.”
이를 바드득 간 한경의 눈에 지독한 독기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튀어나온 광룡대원들 역시 모두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슈아악!
그들이 발산하는 섬뜩한 기세에 해지고 넝마가 된 무복이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호선을 그리던 한경의 도신이 정면에서 방향을 틀어 다섯 가닥 도초를 뿌렸다.
그 무시 못 할 위력에 흑의인들은 즉시 간격을 넓혔다.
목표를 잃고 떨어진 도가 지면을 강타한다.
쿠콰콰콰쾅!
고여있던 흙탕물이 역류하는 폭포수처럼 치솟는 순간, 한 자루 날카로운 창두가 물의 장막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왔다.
소리 없는 날카로운 창술은 삼조장 주초의 은성마령창(隱聲磨靈槍).
순식간에 눈앞에서 세 가닥으로 갈라진 창두가 흑의인들의 옷깃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서걱!
예상을 웃도는 날카로움과 강맹함에 언제나 냉정을 유지하던 흑의인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솟구쳤던 흙탕물이 가라앉기 무섭게 일선의 광룡대가 후퇴하더니 사방에서 재차 암기 다발이 쏟아진다.
카카카카카캉!
거친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가던 불꽃이 사그라들자, 이번엔 네 대의 화살이 곡선을 그리며 흑의인들을 압박해갔다.
그들이 화살을 받아치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폐가의 벽이 포탄에 적중한 것처럼 터져 나가더니 안에서 일조장 풍연과 무인들이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오늘은 누구 하나 죽기 전엔 안 끝날 거다.”
지난 일 년간, 죽을 각오로 수련에 임한 풍연은 늘어난 주름살만큼이나 무위도 엄청난 진보를 이룬 상태였다.
쏴아아!
빗소리와 함께 검 끝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가닥 검영이 시야를 가득 채워간다.
“내가 막지.”
날카로운 눈매의 흑의인이 앞으로 달려나가며 검초를 흩뿌렸다.
따다다다다당!
검극과 검극, 검신에 검신이 날카롭게 부딪치자 떨어지는 빗방울이 안개로 산화한다.
“지금이다!”
후영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의 건물 너머에서 수십 명의 무인이 쏟아져 나왔다.
흑의인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열 명의 흑의인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작은 공터에 밀집한 상태.
공세를 조절한 광룡대의 계책에 말려든 것이다.
“오늘은 적당히 하기 힘들겠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독기만 품고 달려들던 자들이 이젠 머리까지 쓰는 냉정함을 겸비했다.
흑의인들이 각오를 다지며 병기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후방에서 살갗을 저밀듯한 살기가 느껴지더니 번쩍이는 섬광이 날아들어 전장의 한복판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운석이 떨어진 듯 경천동지할 일격은 한순간 그들의 뇌리에서 전투 중이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고절한 내력이 실린 나직한 목소리는 협곡을 휘감고 하늘로 솟구쳤다.
잠시 후, 새하얀 무복에 백색가면을 쓴 인물이 비를 뚫고 나타났다.
풍연은 요동치는 가슴을 억누르며 검파를 움켜쥐었다.
“백사(白蛇).”
상대는 광룡대 전원이 한 번에 달려들어도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
실력에 자신감이 붙은 지금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사내는 그만큼 엄청난 괴물이었다.
백사라고 불린 사내, 백채륜은 가면에 미소를 감추며 입을 열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젠 이곳을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광룡대원들의 눈빛이 옅은 떨림을 보인다.
“정말…… 끝이란 말인가?”
죽어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다가왔으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오늘까지 온 그대들을 칭찬해주고 싶군요. 가세요. 이주의 공위맹에서 그대들의 주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경이 물었다.
“공위맹은 뭐냐? 대주께서 그곳에 계신단 말인가?”
백채륜은 여비를 넣은 전낭을 그들 앞에 툭 던지고 돌아섰다.
“나가면 알게 될 일입니다.”
“잠깐!”
풍연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
“뭡니까?”
“네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대주와는 무슨 관계지?”
진무립이 아무런 인연도 없는 자에게 자신들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만한 고수가 자처해서 자신들을 가르쳤다는 것은 두 사람이 각별한 관계라는 것과도 같았다.
“그건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직접 물어보시길. 후후후.”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가 사라질 무렵, 자리에 남아있던 흑의인들도 연기처럼 함께 사라졌다.
결국 궁금증을 풀지 못한 광룡대원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끝인가.”
“크흐흐.”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물밀 듯 몰려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비해 눈에 띄게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과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는 전에 없던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드디어 나가게 되는구나.”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자신들이 갇혀 있는 동안, 바깥세상 또한 빠르게 변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진무립이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풍연이 몸을 추슬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대주께서 기다리실 거다.”
쉰 명의 광룡대.
지옥 같은 수련을 이겨낸 그들이 다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 * *
사시사철 흰 눈으로 가득한 궁가산의 중턱,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피처럼 시뻘건 무복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검붉은 장포에 섬뜩한 이무기를 새겨넣은 중년인이 절벽 끝으로 발을 옮겼다.
“비가 내리는가.”
발밑으로 짙게 깔린 운무는 마치 눈 덮인 바다를 보는 듯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자인경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교주께서 적의 경계망을 힘으로 돌파한 모양입니다.”
교주 무천극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보낸 것 아니더냐?”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 아이도 세상을 경험할 나이가 됐다. 화살은 쏘아졌고 이제 죽고 사는 건 그놈의 팔자겠지. 그보다 천수경장의 종적은 아직인가?”
눈으로 보지 못한 사천의 무인보다 직접 싸워본 판천라마가 무천극의 입장에선 더욱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자인경은 자신 있게 말했다.
“싸움이 벌어지면 반드시 서장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에 대비해 혈염대(血染隊)에 혈야광인 다섯 구와 무혼광인 스무 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무천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완성된 혈야광인의 힘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그들과 마주친다면 판천라마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남은 것은 사천을 정복하는 일뿐이다.
운무 아래로 펼쳐질 사천 땅을 떠올리던 무천극은 장포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