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0
◈ 120화. 근방에 사는 사람
무려 천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줄지어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남동쪽의 아미산이었다.
멀리 작은 들판이 보이는 산자락에 도착한 그들은 서서히 속도를 줄여갔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지요.”
이들을 통솔하는 은천대주 여자령이 발을 멈췄다.
하나둘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유광이 여자령에게 다가와 물었다.
“대주께서는 어째서 법명을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속가에서 본산으로 올라간 지 일 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올겨울쯤에는 법명을 내려주시겠지요.”
“아아. 그래서…….”
그때 현무대주 유광의 고개가 들판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아미의 여승들이 있었다.
여자령이 벌떡 일어났다.
“저들이 대체 왜?”
그녀는 즉시 몸을 날렸다.
사천맹 무인들을 발견한 정경당주 정인도 적잖이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여자령이 정인에게 예를 갖췄다.
“사저. 어째서 이곳에 계시단 말입니까? 설마 본산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린 청성이 공격당한다고 해서 지원을 가는 길이었다.”
“청성이라고요? 분명 적이 아미로 향했다는 소문이…….”
마주 선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했구나.”
* * *
며칠간 쏟아진 폭우에도 도관에 붙은 불은 꺼질 줄 모르고 활활 타올랐다.
처참히 무너진 도관, 시산혈해의 한복판에서.
오연하게 사방을 둘러본 무천극은 지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시시하구나. 사천 무림은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질 않는단 말이냐?”
간단한 계략에 넘어가 집을 비우고 떠난 이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포달랍궁을 상대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자인경이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쯤 청성을 떠난 무인들과 아미에서 올라오는 여승들이 합류했을 겁니다.”
무천극은 다른 것을 물었다.
“공위맹의 움직임은?”
왠지 눈앞의 적보다 진무립이라는 아이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공위맹에 소속된 중소방파는 집을 비우고 모두 중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우둔한 사대거파 놈들과는 조금 다르군.”
“차라리 잘됐습니다. 사천맹을 먼저 부수고 그들을 상대하는 편이 본교의 입장에서도 낫습니다.”
“음.”
나직이 침음한 무천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인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미로 향한 이들을 잡고 가면 사천맹과 당가에선 눈치를 채고 대비할지도 모릅니다.”
“바로 사천맹을 치면?”
“여기서 사천맹까지는 하루 거리입니다.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기습할 수 있겠지만 자칫 전투가 길어지면 협공을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길어질 것 같으냐?”
“이대로 비가 계속 내린다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날씨엔 독공의 위력이 현저히 줄어든다.
비에 젖은 상태에선 하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답은 정해졌군. 비가 그치기 전에 당가와 사천맹을 부순다.”
자인경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채비하겠습니다.”
* * *
먹먹한 하늘 아래.
금빛 무복을 입은 쉰여 명의 무인이 거침없이 들판을 질주한다.
하늘을 힐끔 쳐다본 후영이 쓴소릴 내뱉었다.
“날씨 한 번 지랄맞군.”
내리다 그치길 반복하는 비로 인해 조금만 방심하면 발이 땅에 푹푹 빠진다.
한경이 그의 말을 받았다.
“비 많이 맞으면 머리 빠질 텐데.”
후영이 전유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땡중은 그런 걱정 없어서 좋겠다.”
전유가 점잖게 타이르듯 말했다.
“그만하시게. 본인은 수양이 깊어 그냥 넘어가지만 그러다 벌 받는 날이 올 걸세.”
“수양 대신 모공이 깊었어야 했는데.”
전유의 민머리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이 새끼가.”
선두에서 뒤를 힐끔 쳐다본 유대하가 빙그레 웃었다.
풍연이 다가와 말했다.
“부대주.”
“대주.”
“아, 그렇지. 대주.”
화공단주가 된 진무립을 대신해 광룡대주에 임명된 유대하였다.
“말씀 좀 해주십시오. 협곡에서 우릴 가르친 자들. 대체 그들은 누굽니까?”
“그들이 말을 안 해주던가?”
“자신들은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소공자에게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내가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나중에 그분을 만나면 직접 물어봐라.”
“큭.”
그들의 눈앞에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이 목표로 삼았던, 성도에서 동쪽으로 한 시진 거리에 위치한 평촌(平村)이었다.
유대하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을에 들어간다.”
* * *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방울이 안개로 뿌연 죽림에 스며든다.
안림원의 아늑한 집무실.
비선당주 문강유와 지도를 놓고 이야기하던 초무강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왔군.”
곧이어 정문으로 위사가 뛰어들어오더니 초무강에게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림주님. 풍청문주와 식솔들이 도착했습니다. 일단 객당으로 모셨습니다.”
“금방 가지.”
문강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북천도문만 도착하면 끝이로군요.”
“지금쯤 혈교가 대설산맥을 넘었을 테지. 우리도 움직일 준비를 해야 하네.”
“다녀오십시오. 이곳은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초무강이 밖으로 나갔다.
분주한 것은 마도림의 총단만이 아니었다.
대검문의 옛 장원 또한 사천 전역에서 모여든 이들로 북적거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처마 아래.
활짝 열린 창문 안으로 작은 방안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우리 아버지 괜찮으시겠지?”
주근깨로 가득한 여자아이가 대꾸했다.
“혈교는 정말 무섭다고 그랬어. 사람도 잡아먹는대.”
그 말에 눈이 큰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아버지가 잡아먹힌단 말이야?”
“그럴지도 몰라.”
옆에 앉아있던 얼굴이 새까만 아이가 끼어들었다.
“쟤네 아버지랑 너네 아버지랑 같은 부대잖아. 죽으면 같이 죽는 거 아니야?”
“헐. 그러네.”
그때 창문 밖에서 초유림이 불쑥 나타났다.
“뭘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어? 이거나 먹어.”
초유림이 내민 커다란 바구니에는 당과가 잔뜩 담겨 있었다.
“우와!”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산더미처럼 있으니까 숨기지 말고 먹고 싶으면 언제든 부엌으로 가.”
“고마워.”
“잘 먹을게. 헤헤.”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초유림이 피식 웃었다.
‘애들은 단순해서 좋다니까.’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왜소한 체구의 사내아이가 물었다.
“유림아.”
“말해.”
“광룡대협이 너와 사촌이지?”
“응.”
“그분은 어떤 사람이야?”
그 말에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현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젊은 고수.
진무립은 무인을 꿈꾸는 아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격에 산을 가르고 장강의 물길조차 단숨에 뛰어넘는다던데 그게 사실이야?”
초유림이 떨떠름한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봤다.
‘그게 가능하면 사람이냐?’
잠시 고민하던 그녀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만 가능한 줄 알아? 마음만 먹으면 번개랑 바람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지. 구름도 타고 다녀.”
아이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뱉는다.
“우와!”
“하,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
초유림은 도도하게 턱 끝을 들어 올렸다.
“나랑 엄청 친하니까 시간 나면 한번 만나게 해줄 수도 있어.”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
창틀에 주저앉은 초유림은 품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냈다.
마개를 열자 안에서 향긋한 주향이 새어 나온다.
아이들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그거 술 아니야?”
“어허. 관심 꺼. 너희들한텐 아직 무리야.”
초유림은 술을 한 모금 들이켜더니 어른스럽게 탄성을 터트렸다.
“크으~.”
“우와. 너 정말 대단하다.”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듯한 눈빛들이 제법 마음에 든다.
초유림은 씩 웃었다.
“장차 무림 최고의 여협이 되려면 이 정도 술은…….”
아이들의 시선이 갑자기 자신이 아닌 등 뒤로 옮겨갔다.
“응?”
고개 돌린 곳엔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진 모친 정인령이 있었다.
초유림은 호리병을 들어 보이며 싱긋 웃었다.
“어머니. 오늘따라 물맛이 조금 쓰네요.”
“나와.”
“인생의 쓴맛을 보여주실 건가요?”
* * *
조금 전 진무립 일행과 헤어진 자소는 어느새 성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잠시 발을 멈춘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어디서 그와 같은 자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밤낮없이 달린 진무립과 그의 일행은 무려 사흘 거리를 하루 반으로 압축해 성도 인근까지 도착한 것이다.
자신이 따라가기 벅찰 만큼 참으로 경이로운 속도였다.
숨을 고른 그녀는 다시 신법을 전개했다.
‘어서, 어서 사천맹으로 가야 한다.’
진무립과 헤어져 성도로 온 것은 사천맹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적의 위치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사천맹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그들을 설득해 공위맹과 합류해야 살길이 보인다.
성도의 남문을 넘어간 그녀는 복잡한 대로를 빠르게 지나쳐 단숨에 북문을 나섰다.
* * *
청성을 불태운 혈교도들은 짧은 휴식 끝에 동진을 시작했다.
큰 싸움을 앞둔 이상 서두를 것은 없다.
저항하는 자는 모조리 베었고 도망치는 자도 포위망에 걸려 전멸했으니 사천맹에선 청성의 변고를 모를 것이다.
그들은 대열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좁힌 채 인적 없는 숲을 따라 은밀히 움직였다.
그로부터 두 시진 후.
도강언(都江堰)을 피해 북상했다가 방향을 돌린 그들 앞에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교주님. 저곳에서 쉬어가겠습니다.”
무천극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혈교도들은 숲의 곳곳에 몸을 숨기고 휴식에 들어갔다.
“푸르군.”
황량한 서장과는 매우 다르다.
무천극은 발을 옮기며 모처럼 느긋하게 풍광을 감상했다.
잎새를 타고 흐르는 빗방울 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산새의 지저귐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탐나는 땅이다.”
곁을 따르던 자인경이 나직이 말했다.
“곧 주군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지.”
작게 끄덕이는 무천극의 고개가 살짝 우측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있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서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뚝 떨어졌다.
흑천대주 흑염공이 부복하며 말했다.
“확인하겠습니다.”
“됐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으니 십 장 밖에서 따라오라.”
“존명.”
흑천대가 꺼지듯 사라지자 무천극은 직접 발을 옮겼다.
비에 젖은 수풀을 지나간 두 사람 앞에 삼 장 너비의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엔 숲에 어울리지 않는 둥근 탁자와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남녀가 있었다.
앞으로 나선 자인경이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면사를 쓴 사내가 천천히 고개 돌렸다.
“근방에 사는 사람입니다.”
남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무천극은 서슴없이 발을 옮겼다.
“한잔하고 싶군.”
자리에서 일어난 면사여인이 앉으라는 듯 사내의 뒤로 옮겨간다.
탁자 앞에 마주 앉은 무천극이 잔을 들었다.
사내가 기울이는 호리병을 타고 투명한 술이 쪼르르 흘러내린다.
“사천 땅에 오래 살았는가?”
잠시 생각하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대충 일 년 정도 지낸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어디에서 살았는가?”
“중원의 북쪽에서 살았지요.”
“중원의 북쪽이라…….”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두 사람은 잔을 비웠다.
무천극의 뒤에 선 자인경은 가늘게 뜬 눈으로 두 사람을 주시했다.
면사에 가려진 두 사람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나 자인경은 확신했다.
‘뭔가 있는 놈들이다.’
상대가 풍기는 기도를 보아 무공을 익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무천극이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기도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을 무인은 많지 않았다.
이번엔 무천극이 호리병을 들고 사내의 잔을 채워주었다.
“내가 그곳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산을 넘고 강을 넘어야겠지요.”
“자네의 생각에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사내는 모르지 않았다.
“강에 흐르는 거친 물살은 외인을 허락지 않을 것이고, 앞을 막아선 산은 귀하가 넘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할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대답을 마친 사내가 술잔을 든다.
묘한 눈길로 그를 응시하던 무천극이 물었다.
“이름은?”
술을 단숨에 들이켠 사내는 소리 나게 잔을 내려두며 면사를 걷었다.
수려한 용모를 가진 사내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번진다.
“진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