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4
◈ 124화. 함정과 책략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겁화천살대가 염화교를 쫓아 추격에 나섰다.
“역시 매복인가!”
눈 밑까지 복면을 끌어 올린 이들은 뒤를 힐끔 쳐다보더니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놓치지 마라! 당가로 돌려보내선 안 된다!”
겁화천살대가 마치 철새 무리처럼 일제히 그 뒤를 추격한다.
나무 위로 솟구친 현유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심하군.”
기척 하나 제대로 감추지 못해서 매복을 들키고 말았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곁으로 뛰어오른 이곽이 수염을 매만지며 나직이 침음했다.
“흐음.”
“걸리는 게 있는 얼굴이로군.”
당가의 지원치고는 숫자가 너무 적다.
그러나 그들이 신법을 전개하는 속도를 보면 정예를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내 걱정이 좀 과한 듯하네.”
그때 나무 밑에서 조위성이 물었다.
“나와 싸웠던 놈은 언제 오는 거야?”
현유립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군사 자인경은 분명 당가의 지원대를 구하기 위해 진무립이 올 것이라 예측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무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울창한 숲 너머로 당가가 보이는 언덕 위.
수백의 무인들이 잔뜩 웅크린 채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볼까.’
한 무리의 무인들이 정문을 나선 지 일각이 지났다.
차분한 눈빛으로 당가를 지켜보던 수라대주 가진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존명.”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백의 무인이 비조처럼 언덕 밑으로 쏘아진다.
당가의 담장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가운데, 망루에서 이들을 발견한 무인이 다급하게 종을 치기 시작했다.
댕! 댕! 댕!
담장 너머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가진천은 선두로 나서며 말했다.
“담을 넘는 순간 실혼인들을 풀어라.”
당가의 역사를 논할 때 독과 암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만큼 실혼인을 앞세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예.”
번개같이 뽑혀 나온 가진천의 소검이 전방을 향해 쏘아진다.
콰아아앙!
흔적도 없이 무너진 담장, 그 너머로 한 무리의 무인들이 득달같이 모여든다.
“적이다!”
“혈교의 기습이다!”
가진천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군.’
그래도 상관없다.
자신들은 서장 최강을 자랑하는 수라대.
거기에 다섯 구의 혈야광인과 스무 구의 무혼광인까지 대동한 이상 패배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항하는 자는 모두 죽여라.”
“예!”
같은 시각, 겁화천살대로부터 도주하던 무인들의 곁으로 검은 복면을 착용한 여인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이러다 잡히겠어요. 속도를 더 올려요.]그녀는 맡은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단려화였다.
이들이 복면을 쓰고 당가의 무인으로 위장해 접근했던 것도.
단려화가 매복한 혈교도들 사이에서 일부러 기척을 내어 도망칠 이유를 만든 것도 모두 진무립의 계획이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사기가 점점 짙어진다.
선두에서 달리던 유대하는 눈을 빛내며 신법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소공자와 자소사태에게 달렸군요.]단려화는 진무립의 얼굴을 떠올리며 답했다.
[잘하고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그가 나서서 실패한 일은 없었으니까.]그녀는 이번 전쟁도 모두 진무립의 뜻대로 돌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혈교의 군사 자인경이 한 수 앞을 내다보고 매복을 준비했다면, 두 수 앞을 내다본 진무립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당가의 지원대를 멈춰 세웠다.
추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부터 삼백 장이 떨어진 작은 공터.
자소는 지원대를 이끌고 온 당성에게 간략히 요점만 설명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당성이 물었다.
“사태께서는 방금 혈교놈들의 계책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지. 지금쯤 당가는 놈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게야. 숲에 매복하고 자네들을 기다리는 적은 마도림의 광룡대가 유인하고 있네. 더 나아갔으면 분명 매복에 걸렸을 테지.”
“매복이라니…….”
잠시 망설이던 당성이 입을 열었다.
“본 가에는 독왕이신 형님께서 계시니 충분히 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천맹에서 구원을 요청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 않으면 막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독왕 당조의 동생이기도 한 당성은 가주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 투철한 인물이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당신들이 도착하면 몰락하는 속도를 조금은 늦출 수는 있겠지만 결과까지 바꿀 수는 없을 것이오. 사천맹은 끝이오.”
“순망치한이라 했네. 사천맹이 끝난다면 지척에 있는 본 가가 무사할 수 있겠는가?”
“당가는 이곳을 떠나야 하오.”
“떠나다니? 집을 두고…….”
대화가 길어지려는 찰나 자소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단 이렇게 하세. 이곳에서 당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 일단 나와 돌아가서 전황을 살핀 후 당가가 무사하다면 함께 사천맹으로 가세나. 시간이 없네.”
입술을 지그시 깨문 당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일단 사태의 말씀에 따르지요.”
당성을 비롯한 일백의 무인들이 몸을 돌렸다.
그들과 함께 가는 자소의 귀로 진무립의 전음이 틀어박혔다.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수비 위주로 버티시면 저쪽을 정리하고 가겠습니다.]신법을 전개하며 뒤를 돌아본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은 안심하고 몸을 돌렸다.
아미파에서 실혼인의 위력을 경험한 그녀라면 절대 위험을 자초하지 않을 터.
이젠 눈앞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때다.
때마침 진무립의 심부름을 떠났던 서진환이 바람같이 나타났다.
그의 등에는 떠날 때 보지 못했던 철궁과 철시로 가득한 두 개의 전통이 메여 있었다.
“송구합니다. 성도의 대장간에서 급하게 구한지라 품질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활을 건네받은 진무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은무대의 시선에 모여든 가운데 진무립은 등을 돌렸다.
“움직이자. 광룡대와 함께 놈들을 섬멸한다.”
“예.”
* * *
적의 추격을 피해 무려 이각이나 도주를 이어가던 광룡대는 마침내 그들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높게 치솟은 거목으로 빼곡한 숲속, 사방에서 농밀한 사기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염화교가 앞으로 나섰다.
“후후후. 제법 애 좀 먹었다. 당가의 쥐새끼들아.”
“당가의 쥐새끼라니요?”
복면에 가려진 단려화의 입술이 슬며시 올라갔다.
“우린 당가의 무인이 아니에요.”
“뭐라?”
염화교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주초는 등에 지고 있던 커다란 관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광룡대원들이 빠르게 다가와 자신의 무기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이, 이 자식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염화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광룡의 부하들일 것이오.”
목소리와 함께 우측 수풀 너머에서 혈위사신 세 사람이 나타났다.
반가운 얼굴이 나타나자 유대하는 복면을 내리며 살기 짙은 미소를 보였다.
“오랜만이다.”
적사곡에서 유대하를 상대했던 이곽이 웃음을 터트렸다.
“껄껄껄! 누군가 했더니 자네였구만.”
“오늘은 그날과 다를 거다.”
“과연.”
현유립이 광룡대를 살펴보며 물었다.
“광룡은 어디에 있는가?”
손바닥에 침을 탁 뱉은 유대하는 검파를 단단히 움켜쥐며 말했다.
“알 거 없다. 네놈 따위는 우리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겁이 없군.”
염화교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명을 내렸다.
“길게 끌 것 없다. 광인들의 봉인을 풀어라.”
“존명!”
적의 후방에서 관뚜껑이 허공으로 치솟자 유대하도 명을 내렸다.
“수비다. 원진을 형성하고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라. 후영이 중앙에서 사방을 지원한다.”
“예!”
광룡대가 일제히 원진을 갖추자 유대하는 단려화를 바라보았다.
“소저께 어려운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이미 사전에 논의한 내용이기에 무슨 의미인지 안다.
그녀는 복면을 한층 더 높게 끌어 올리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은 말아요.”
말이 끝나는 순간 전방에서 염화교가 득달같이 짓쳐 들었다.
“나를 속인 죗값은 목숨으로 치러야 할 게다!”
허공으로 치솟은 도가 번뜩이며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원진이 좌측으로 회전하더니 한경의 도가 기다란 섬광을 남기며 치솟았다.
육중한 기세를 쏟아내는 도신의 충돌.
콰아아앙!
격렬한 폭음과 함께 한경의 발이 네 치 남짓 지면을 파고들었다.
두 걸음 물러난 염화교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나 이렇게 쉽게 공격이 막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 정말 대주야?”
“뭐라고?”
협곡을 나온 뒤 벌이는 첫 실전이니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턱이 없다.
상대의 기세를 보아 정면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힘들지 몰라도 원진을 형성한 상태에선 충분히 버틸 만해 보였다.
원진의 중심을 지키던 후영이 한마디 툭 던진다.
“저 새끼 눈에서 불 나오겠다. 그만 자극해라.”
“이것들이…….”
이를 바드득 가는 염천교의 뒤로 열 구의 무혼광인과 두 구의 혈야광인이 달려든다.
“저들이 진짜다! 조심해라!”
유대하의 목소리가 하늘로 치솟을 때, 번개같이 달려든 혈야광인의 손에 시뻘건 기운이 모여들었다.
혈야광인에 맞서는 방법은 이미 진무립에게 듣고 온 상태.
전방의 한경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외친다.
“땡중!”
“중이 아닐세!”
버럭 소리친 전유는 분노를 담아 날아드는 일장에 봉을 내질렀다.
시뻘건 장력과 봉 끝의 투명한 기운이 부딪치는 순간.
콰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손목으로 시큰한 통증이 밀려든다.
튕겨 나가는 전유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이거 진짜 괴물일세.”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다.
턱!
미끄러지던 전유의 등을 후영이 발로 멈춰 세웠다.
“꼭 발로 막아야 했는가?”
“손이 없잖아.”
말이 끝나는 순간 전유의 귓불을 스치며 한 줄기 섬광이 혈야광인에게 쏘아졌다.
쐐애액!
놈의 손이 화살을 쳐낸 순간이었다.
쾅!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간 화살 파편이 놈의 몸에 틀어박혔고.
주춤하는 혈야광인의 등 뒤로 단려화가 솟구친다.
쉬익!
수평으로 그어가는 투명한 검신에 태산마저 갈라낼 듯 엄청난 기운이 모여들었다.
콰지지직!
목을 파고드는 섬뜩한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녀의 검신이 혈야광인의 목을 절반쯤 파고들었을 때.
“계집!”
후방의 염화교가 득달같이 달려들며 단려화를 공격했다.
속으로 혀를 내두른 단려화가 혈야광인을 발로 박차며 물러났다.
‘뭐 이렇게 단단해?’
이런 괴물을 무 썰 듯 서걱서걱 베어낸 진무립이 새삼 위대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단려화가 머물던 자리에 염화교의 도가 뚝 떨어졌다.
쾅!
지축이 흔들리며 땅거죽이 치솟는다.
그 직후, 어느새 지척까지 달려든 광인들과 겁화천살대원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카카카캉!
팔방에서 쏟아지는 맹렬한 공격이 견고한 원진을 쉴 새 없이 두드린다.
병기를 맞대는 광룡대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에 한층 더 내력을 끌어올려 대항했다.
“뚫리면 안 된다!”
풍연의 결연한 외침이 선명하게 귓속을 파고든다.
겁화천살대는 지금까지 광룡대가 실전에서 싸워본 적 중에 가장 강한 상대.
그러나 협곡에서 상대했던 흑의인들을 떠올리면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만하다.
중앙의 후영을 중심으로 한 원진은 적의 맹렬한 공세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치열하게 저항했다.
단려화의 견제를 받는 혈야광인과 간격을 두고 공격하는 무혼광인도 광룡대의 방어를 좀처럼 뚫지 못했다.
무공의 상승뿐만 아니라 마치 그물망처럼 잘 짜인 조직력은 이들이 협곡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룬 성과였다.
염화교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광인의 틈새를 비워두지 마라!”
“존명!”
우렁찬 외침과 함께 간격의 사이사이로 겁화천살대원들이 달려든다.
그러자 후영의 활시위에 연속에서 화살이 걸리더니 동료들의 어깨너머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쾅! 콰콰콰쾅!
“크윽!”
“조심해라!”
눈으로 좇기도 어려울 만큼 엄청난 연사에 짓쳐 들던 겁화천살대원들이 연달아 뒤로 튕겨 나갔다.
후영이 씩 웃으며 재차 화살을 걸었다.
“이거 할 만한데?”
주초가 가져온 관에는 아직 백여 대의 화살이 더 남아 있는 상태다.
위기마다 쏘아지는 후영의 화살은 삼백의 적에게 둘러싸인 아군에게 숨통을 틔워주었다.
겁화천살대는 혈교에서 수라대 다음으로 강한 부대.
광인까지 보유한 이들의 고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보통이 아니군. 천무대라도 이렇게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할 것인데.’
지켜보던 현유립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우리도 가세하지.”
이곽이 동의하듯 끄덕이며 창대를 쥐었다.
“이곳에 지원대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당가로 되돌아갔다는 것과 같네. 여길 서둘러 정리하고 수라대를 지원해야 할 거야.”
조위성이 졸린 눈을 비비며 투덜거렸다.
“칫. 난 육군명인가 하는 놈이랑 싸우러 왔는데.”
이곽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실망할 것 없네. 싸우고 싸우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테니까.”
“가지.”
지면을 박찬 현유립의 신형이 화살처럼 튀어 나갈 때였다.
좌측의 수풀 너머에서 흐릿한 섬광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더니 무혼광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콰직!
둔탁한 소리에 이어 검붉은 피가 비에 섞여 쏟아져 내린다.
현유립의 시선이 주먹에 맞은 것처럼 푹 꺼진 나무에 틀어박혔다.
나무에 깊게 박혀 춤을 추는 그것은 묵직한 철시(鐵矢)였다.
‘화살이라고?’
존재를 확인하게 무섭게 강렬한 기세의 화살들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