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28
◈ 128화. 또 광룡이냐?
한계를 뛰어넘은 당천의 강렬한 일격에 지면이 움푹 꺼진다.
수십 명의 혈교도들이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즉사하자 무천극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조의 아들인가.’
일격을 쏟아내고 휘청이던 당천이 담장 밑으로 추락하자 진설란이 바람같이 움직여 그를 낚아챘다.
“대주! 괜찮아요?”
당천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놔라. 싸워야 한다.”
“시끄러워요.”
당천의 경이로운 일격은 추격하던 혈교도의 발을 잠시 묶어두는 데 성공했고, 그 틈에 사천맹 무인들은 썰물처럼 동문으로 빠져나갔다.
무천극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진다.
“큭큭큭. 당가의 자식이 고루한 늙은이들보다 낫구나.”
자인경이 곁으로 다가왔다.
“수라대가 돌아왔습니다.”
“당가는?”
“광룡이 그곳에 나타난 탓에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천극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또 광룡이냐?”
“송구합니다. 수라대가 먼저 돌아온 것을 보면 겁화천살대는…….”
자인경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사천에 넘어와서 거의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청성이 무너지고 아미가 반파됐으며 사천맹을 무너뜨렸다.
그 과정에 손실이라곤 아미에서 돌아오지 못한 소교주와 무인들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무립이 나타나는 곳마다 자신의 모든 계획이 헝클어졌으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무천극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열다섯 구의 혈야광인에 오십 구가 넘는 무혼광인이 있다. 수라대만 무사하면 됐다.”
그뿐 아니라 실혼인을 앞세우고 사천맹을 공격한 혈교도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실혼인은 언제든 다시 만들면 된다.
몸을 돌리는 그의 앞으로 수라대주 가진천이 나타났다.
“내리신 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광룡이 그곳에 나타났다고 했느냐?”
“예. 수라대의 피해가 커질 것 같아 회군했습니다.”
실혼인은 다시 만들면 되지만 혈교의 뼈대와도 같은 수라대를 소모하는 것은 큰 타격이 된다.
가진천의 판단은 적절한 것이었다.
무천극은 자인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추격은 네게 맡기겠다. 도망치는 놈들을 모조리 척살해라.”
“존명.”
자인경이 공손히 예를 갖추며 동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던 무천극이 미간을 좁히며 읊조렸다.
“그날 사천맹이 아닌 광룡을 끝장내야 했었다.”
생각할수록 후회가 밀려든다.
무천극은 한천월의 머리를 짓밟고 넘어섰다.
“놈이 당가에 나타났다면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앞장서라. 당가와 놈을 끝낸다.”
이미 사천맹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죽을 자리를 찾아오지는 않을 터.
지금은 불씨가 남은 당가를 처리하고 사사건건 계획을 망치는 진무립을 추격하는 게 우선이다.
가진천은 즉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존명.”
* * *
사천맹의 동문으로 수백 명의 무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천극이 가진천과 함께 당가로 향하고 있을 때, 숲속에 몸을 숨긴 진무립은 탈출하는 무인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 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사대거파의 후기지수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움찔거렸다.
진무립은 나직이 그들을 타일렀다.
“아직 아니야.”
구해야 마땅하나 숲을 벗어나 이쪽의 숫자를 노출해서는 안 된다.
무인들이 우르르 빠져나온 뒤, 천무대가 동문을 틀어막자 좌우의 담장으로 혈교도들이 넘실거리며 쏟아져 나온다.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괜한 짓을 하는군.’
저래선 포위당할 뿐이다.
이곳에서 동문까지는 무려 백 장이나 떨어진 거리.
도무지 전음이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진무립은 철궁에 철시를 걸었다.
끼기긱…….
부러질 듯 휘어진 활대가 나직한 신음을 흘린다.
단려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여기서 화살이 닿아요?]삼백 장의 거리는 궁황 투월초가 와도 쏘기 힘든 간격이었다.
[물론 안 닿지.]단전에서 쏟아져 나온 대해와 같은 내력이 날카로운 촉에 스며들었을 때, 진무립의 손가락이 시위를 놓았다.
팽!
시위를 떠난 화살이 어둑한 하늘로 맹렬하게 솟구친다.
피이잉!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간 화살이 이윽고 정점에 도달하더니 이내 먹잇감을 낚아채는 비조처럼 하강한다.
소리를 감지한 무인들의 고개가 하늘로 향하는 순간, 벼락처럼 떨어진 화살이 지면에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쾅!
예상치 못한 일격에 멈칫하는 혈교도들의 앞으로 연달아 화살이 틀어박혔다.
쾅! 쾅! 쾅!
적의 포위를 막고자 분전하는 천무대도 이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왔다!’
그 순간 뚝 떨어진 도신이 구양무의 검신을 후려쳤다.
카아아앙!
태광삼귀의 첫째, 폭귀 마사추를 상대로 고전하던 구양무는 일부러 일격을 허용하며 뒤로 미끄러진 것이다.
“퇴각! 숲으로 달려라!”
마사추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자존심도 없는 새끼네. 또 도망칠 셈이냐?”
“네놈의 상대는 나중에 해주마.”
도망치는 구양무를 추격하려던 마사추는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발을 멈췄다.
‘제기랄. 혈정(血淨)이…….’
전투에서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한 탓에 힘의 근원인 혈정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소교주 무초걸처럼 광증이 발현하고 만다.
“아우들아. 물러나자.”
“칫!”
때마침 피에 대한 갈증을 느낀 소위민과 상위겸도 마사추를 따라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태광삼귀가 물러났으나 혈교도들은 구양무와 천무대를 맹렬하게 추격했다.
동문 위에 올라선 자인경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매복이다.’
화살이 날아온 곳은 분명 숲속이다.
그런데 사천맹에 매복을 숨길만 한 병력과 여유는 없었다.
‘대체 누가? 설마 공위맹이?’
그들은 중소방파의 식솔을 호위하느라 지원을 보낼 무인이 없을 것이다.
설령 있다 한들 처참하게 무너진 사천맹의 무인들을 구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순간 자인경의 뇌리에 누군가의 얼굴이 번갯불처럼 스쳐 지나갔다.
“설마 또 광룡이란 말이냐?”
이곳은 놈에게 사지(死地)다.
조금 전 당가를 구한 놈이 대체 왜 죽을 자리로 기어들어 온다는 말인가?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짓을 벌일 놈은 그밖에 없다.
‘이곳엔 저들보다 압도적인 숫자의 무인과 실혼인이 있다. 거기에 주군까지 계시니 충분히 놈의 목을 딸 수 있다!’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려 가까운 수하를 찾았다.
“당장 교주님께 광룡이 나타났다고 전해라.”
눈이 닿은 부하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교, 교주께서는 지금 수라대와 당가로 가셨습니다!”
자인경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뭐라고?”
당장 소식을 전해야 했으나 누굴 보내도 무천극과 수라대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사천맹 무인들이 점점 숲에 가까워진다.
[후영.]진무립의 신호에 나무 위에 몸을 숨긴 후영이 시위에 화살을 건다.
‘어디 가봅시다.’
적과의 간격이 오십 장 안쪽으로 접어들 때였다.
[소소.]진무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당소소가 당우에게 눈짓했다.
비장하게 눈을 빛낸 당우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할 수 있다. 내가 구한다.’
오늘을 위해 암기는 마차가 가득 찰 정도로 챙겨왔다.
진무립의 말대로 거짓된 대협이 아닌, 진짜 대협으로 거듭날 기회다.
점점 가까워지던 거리가 십 장 안쪽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구하러 왔다! 사천맹은 당장 엎드려라!”
치솟는 강렬한 외침과 거의 동시에 숲에서 한 줄기 섬광이 솟구친다.
쐐애액!
무인들을 스쳐 지나간 화살이 추격하는 혈교도의 앞에서 터져 나갔다.
콰아앙!
“크윽!”
“조심해라!”
뒤늦게 합류한 구양무가 버럭 소리쳤다.
“엎드려라! 아군이다!”
사천맹 무인들이 엎드리기 무섭게 숲에서 화살과 암기가 장대비처럼 쏟아져 나온다.
슈슈슈슈슈슉!
진무립과 후영의 화살, 당소소와 당우에 은무대까지 암기를 쏘아내자 엄청난 숫자의 공격이 혈교도의 정면으로 쇄도한다.
카카카캉!
“크악!”
일부는 암기를 쳐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진무립의 화살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적의 추격이 주춤하자 진무립이 다시 외쳤다.
“전진!”
벌떡 일어난 구양무를 따라 퇴각하던 무인들이 빠르게 숲으로 들어온다.
신호에 따라 엎드리고 일어나길 반복한 사천맹 무인들이 거의 다 숲에 들어왔다.
진무립과 동료들은 지척까지 접근한 혈교도들에게 남은 암기와 화살을 모조리 퍼부었다.
후방에서 지켜보던 자인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숲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눈속임을 위한 것이겠지. 적은 많지 않다.’
판단을 내린 그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산개해서 좌우로 우회해라!”
그를 알아본 진무립의 눈이 반짝인다.
‘역시 저놈이 머리를 굴리는 놈이로군.’
하지만 이것 또한 대책을 세워둔 상태였다.
좌우로 넓게 퍼져 숲으로 들어온 혈교도들은 숨어있던 강유월과 호천단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크아악!”
숲의 곳곳에서 비명이 치솟는다.
시위를 건 진무립이 높은 나무로 뛰어올라 전장을 살폈다.
실혼인은 이제 막 동문을 넘었고, 무천극과 당가에 나타났던 고수들도 보이지 않는다.
‘좋아.’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맹렬한 기세로 쏘아진 다섯 줄기 섬광이 혈교도의 머리를 단숨에 꿰뚫었다.
전방에서 치열하게 적의 추격을 저지하고 있을 때, 적모개는 부상자들을 수습하며 동초개를 불렀다.
“부상자를 옮겨야 한다.”
조금 전과 달리 잔뜩 긴장한 동초개는 버럭 소리쳤다.
“가서 전하겠습니다!”
동쪽으로 달려간 동초개가 숲밖에 도착했을 땐 이미 관초걸과 무인들이 마차를 정비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부장님. 지금입니다!”
관초걸은 즉시 명을 내렸다.
“부상자를 데려와 마차에 싣는다.”
“예.”
흑의를 입은 삼십 명의 무인이 일제히 숲으로 달려갔다.
도합 삼십 대가 넘는 마차는 관초걸이 직접 발품을 팔아 구해온 것들이다.
관초걸은 두려움에 몸을 떠는 마부들에게 다가갔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의 목이 떨어지더라도 그대들만큼은 반드시 지켜낼 것입니다.”
긴장한 마부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시보다 백 배가 넘는 보수는 한 번쯤 목숨을 걸어봐도 좋을 만한 돈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덮은 빗줄기가 잦아들더니 먹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숲에 드리운다.
지부의 무인들은 부상자들을 빠르게 마차로 옮겼다.
천무대를 비롯한 상처가 얕은 무인들은 진무립의 지시에 따라 맹렬하게 숲을 사수했다.
생각 이상의 고전에 자인경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실혼인은…… 쓸 수 없다.’
진무립은 이미 자신이 실혼인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군의 전장이 아닌 적군의 전장에 실혼인을 투입했다간 무인들의 보조를 받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 늙은이들이라도 있었더라면.’
대설산맥에서부터 청성을 무너뜨리고 사천맹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은 쾌속 진격에 장로들을 뒤에 남기고 온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혈정이 고갈된 태광삼귀가 빠지고 수라대마저 없는 이상 취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놈들이 제아무리 독종일지라도 체력과 내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적 우위를 활용해야 한다.
“지친 놈들은 뒤로 빠져라! 차륜전이다!”
그때 남서쪽으로 들어가던 무인들이 포탄처럼 튕겨져 나왔다.
“크아악!”
숲에서 삼 장 밖으로 널브러진 시신에서 시꺼먼 독기가 피어오른다.
“당가는 절대 원한을 잊지 않는다!”
숲 밖으로 걸어 나와 일갈을 토해내는 인물은 바로 독왕 당조였다.
당가의 수습을 마친 그가 자소와 함께 무인들을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그의 인상착의를 파악한 자인경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당가라고?”
당조가 이곳에 있는 것도, 무천극과 마주치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설마 주군께서 당가로 향할 것을 알고 우회라도 했단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저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현실이었다.
“크윽!”
입술을 질끈 깨문 자인경은 엄습하는 심마를 쫓아내고 냉정하게 계산했다.
비까지 그친 지금 숲속에서 당가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물러나라! 숲에서 십 장 밖으로 물러나라!”
숲의 폭은 백 장 남짓.
‘부상자가 있는 이상 도주하는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숲을 벗어나게 한 뒤에 추격해도 늦지 않는다!’
혈교도들이 썰물처럼 물러나자 진무립은 숨을 고르며 웃었다.
‘머리가 좋은 게 네놈의 단점이다.’
무인들에게 물러날 것을 지시한 진무립은 당조와 당가 무인들을 불렀다.
“가진 철질려와 독을 모두 숲에 하독해주십시오. 추격을 조금만 늦추면 됩니다.”
“그리하겠소.”
아들과의 해후도 뒤로 미룬 당조는 무인들에게 명을 내리고 하독에 나섰다.
그로부터 잠시 후, 숲속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자인경은 앞으로 나섰다.
‘짧은 시간에 숲 전체에 독을 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했던 자인경은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분명 근방에 당가의 독이 숲에 깔려있을 것이다. 코와 입을 가리고 백 장 밖으로 우회해라.”
“예!”
수하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자인경은 좌측으로 움직여 빠르게 숲을 돌파했다.
‘역시 이곳까지 독을 살포하지는 못했군. 부상자를 데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
숲 밖으로 나온 자인경은 할 말을 잃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부상자를 태운 수십 대의 마차가 까마득하게 멀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방에서 달리던 진무립은 여유롭게 돌아보며 손까지 흔든다.
“…….”
머리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적의 술수에 완전히 놀아나고 말았다.
너무도 완벽한 패배에 추격할 의지조차 사라지고 만다.
허탈한 웃음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허, 허허허.”
같은 시각, 텅 빈 당가에 도착한 무천극의 시선은 정문 위의 대들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그런데 날 만나고 싶다면 다시 사천맹으로 와야 할 거다. -진무립(進武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