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4
◈ 134화. 이걸 내가?
나직한 구릉 너머에서 전장을 주시하던 새침한 인상의 여인, 남궁설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니. 어떻게 될 거 같아요?]다부진 체구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 남궁도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어렵다.]천하의 모든 눈과 귀가 집중된 대규모 전쟁.
남궁세가 역시 이 싸움의 결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천이 혈교에게 무너진다면 강남 무림도 안심할 순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독을 이용해 실혼인을 제거하는 방책은 훌륭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보유한 독과 암기에도 한계가 있는 이상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남궁세가에선 혈교의 소식을 듣기 무섭게 무인을 파견했으나 아직 중경을 지나지도 못한 상태.
천산을 경계하는 중원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고 화령은 폐관에 든 신룡의 의지에 따라 공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만일, 화령이나 중원이 움직인다면 천산 또한 움직일 것이고 그리되면 전화는 천하로 번져 나갈 테니 누구도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는 남궁도의 귀에 재차 동생의 전음이 들려온다.
[저기 저 사람이 광룡 진무립이죠?]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적의 후방을 교란하며 경이로운 신위를 선보이는 진무립이 있었다.
그의 곁으로 복면을 끌어 올린 여인이 바람같이 따라붙는다.
[저 여인은 광녀 유화일 테고요.]합류한 두 사람은 감탄이 나올 만큼 절묘한 호흡으로 종횡무진 적진을 누비기 시작했다.
남궁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룡 진무립. 보통이 아니다.’
듣던 것 이상으로 강렬하고 매서운 검술은 눈을 떼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단려화를 지켜보던 남궁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저 여인의 검술,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분명 기억에 있는 무공 같은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동생과 달리 진무립의 현란한 움직임에 빠져든 남궁도는 그녀의 말을 일축했다.
[그만 떠들고 전장에 집중해라.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아.]들판의 전투가 치열함의 극에 달할 무렵, 혈교의 장로들이 스며든 벽산은 지독한 혈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발한 머리, 가쁜 숨을 몰아쉬던 흑백쌍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십 년간 서장을 종횡하며 적수가 없던 장로들이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고 고작 이각.
자신 둘을 제외한 전원은 참혹한 주검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백노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저 말입니까?”
백채륜의 뱀 같은 눈이 차갑게 빛났다.
“상천의 부곡채주 백채륜입니다.”
“네놈들은…… 세상을 속이고 있었구나.”
이들의 힘은 혈교가 입수한 정보와 천양지차였다.
흑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교주께서 반드시 원한을 갚아주실 게다.”
“큭큭큭. 감히 혈마 따위가.”
백채륜의 입가에 떠오른 살소가 몸서리치게 오싹했다.
“그만 죽어 주십쇼.”
그의 손이 까딱이는 순간, 사방에서 쏟아진 시꺼먼 물결이 순식간에 흑백쌍노를 집어삼켰다.
슈아악!
진무립의 검 끝에서 뜨겁고 차가운 열기가 줄기줄기 솟구친다.
사방으로 번뜩이는 가공할 검광에 달려들던 자들이 화살같이 튕겨 나갔다.
“크아아악!”
괴로운 비명에 자인경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네놈이 아무리 날뛴다 해도 혼자 결과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의 일격에서 무혼광인 스무 구를 잃었으나 그것뿐이다.
선두에 나선 혈야광인이 맹위를 떨치자 공위맹의 피해는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반면 실혼인을 앞세운 아군의 피해는 미미하다.
그들은 지시에 따라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실혼인의 보조에 충실했다.
‘광룡의 발만 묶으면 된다.’
자인경은 수라대 부대주 금위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두 구를 데리고 광룡을…….]콰앙!
그때 옆에서 땅거죽이 들썩이더니 흐릿한 인영이 전방으로 폭사했다.
“광룡!”
명령도 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에 자인경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누구냐!”
“우리 대장이야. 미안하지만 말릴 겨를이 없었네.”
현진학이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인경의 눈매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이쪽의 지시에 따르기로 하지 않았는가!”
생각지 않은 변수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흑사칠랑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만큼 필요한 곳에서만 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전장을 응시하던 무천극이 담담하게 말했다.
“놔두어라.”
현진학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고맙소.”
무천극은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흑랑 구중천의 후계자라.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
“은자 천만. 받는 만큼 돈값은 확실히 하겠소.”
이어서 검랑 서천휘가 전방으로 쇄도하며 장우기를 쫓았다.
현진학이 멋쩍게 웃는다.
“정말 계획이란 게 없는 놈들이라니까.”
무천극과 자인경의 시선이 전방으로 돌아갈 때였다.
어느새 지척까지 도달한 장우기가 진무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쏴아아!
광풍을 동반한 주먹이 공간마저 찢어발기며 은광검으로 쏘아진다.
‘이놈은?’
진무립은 즉시 방향을 틀어 검을 회수했다.
검신을 한 끗 차이로 스쳐 간 주먹이 지면에 틀어박힌다.
쾅!
움푹 꺼진 지면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고개를 휙 돌린 장우기의 눈에 진무립의 영준한 용모가 담긴다.
“정말 재수 없게 생겼네.”
“극찬 고맙군.”
“칭찬 아니다.”
땅에 박힌 주먹을 뺀 장우기가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뭉개주마.”
물러나는 진무립을 향해 수십 개의 권영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흑랑 구중천의 독문무공, 화천권 호폭창(虎暴槍)의 초식이 삼십여 년 만에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과거 신룡과 무승부를 거둔 절세 신공.’
물러나는 속도보다 달려드는 속도가 빠르다.
훌쩍 뛰어오른 진무립의 검신이 허공에 둥근 원을 그렸다.
쿠콰콰콰쾅!
그 위로 육중한 연타가 쏟아지더니 진무립의 신형이 포탄에 박살 난 바위처럼 튕겨 나갔다.
“무립!”
다급하게 몸을 날리는 단려화의 앞에 서천휘가 나타났다.
“갈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는 흑사칠랑. 의뢰를 수행하는 중입니다.”
그녀는 그제야 눈앞의 사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검랑 서천휘!’
스승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젊은 시절의 스승과 두 번 싸워 승부를 내지 못한 고수.
서천휘는 비록 십대고수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실력만큼은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검사였다.
더불어 흑사칠랑은 어지간한 중소방파 하나는 순식간에 지워버릴 수 있는 강자들이다.
‘하필 이들이…….’
지면에 처박힌 진무립이 벌떡 일어나는 순간, 그 위로 수십 다발 포탄이 떨어지듯 엄청난 권영이 쏟아졌다.
진무립은 다급하게 우측으로 몸을 굴렸다.
쾅! 쾅! 쾅! 쾅!
내지르는 주먹마다 태산마저 쪼개버릴 듯 엄청난 기운이 쏟아진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한 진무립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괴물이군.’
일격 일격의 위력만큼은 지금까지 상대한 그 어떤 적보다 강렬하다.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한 진무립이 순식간에 범위 밖으로 빠져나갔다.
장우기는 눈에 불을 켜고 쫓아왔다.
“나보다 아주 조금 잘생겼다고 우쭐대는 거냐!”
“이 새끼는 집에 거울도 없나.”
인상을 찌푸린 진무립의 코앞으로 맹렬한 주먹이 스쳐 간다.
그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장우기를 지켜보던 무천극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법이로군.’
기대 이상이다.
진무립을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의 기세는 길들이지 않은 맹수처럼 사납고 강렬했다.
장우기가 후방을 교란하던 진무립을 막아내자 숨통이 트인 혈교의 공세는 더욱 맹렬해졌다.
전장을 주시하는 현진학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혈야광인이라…… 공위맹에서 그토록 경계하는 이유를 알겠군.’
한 구마다 두세 명씩 보조를 맞추는 혈야광인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벽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가볼까.’
그는 자인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광룡과 광녀는 묶었다. 이제 독왕과 노인네들만 묶으면 될 거 같은데.”
안에서 지탱하던 독왕과 호천단 고수들.
밖을 교란하던 진무립과 단려화, 광룡대와 천무대까지 발이 묶인 이상 독왕과 노고수들이 공위맹의 핵심 전력이었다.
자인경은 서두르지 않았다.
“지금처럼 실혼인을 앞세우고 피해를 줄이는 게 최선이다.”
서두르다 피해가 커진다면 사천을 장악해도 의미가 없다.
다소 시간이 걸려도 차근차근 적을 무너뜨려야 한다.
자인경은 기울어가는 태양을 쳐다봤다.
‘지금쯤 장로들께서 벽산에 도착하셨을 텐데.’
벽산은 중경으로 통하는 우회로.
멀리 보이는 벽산에 혈교의 깃발이 세워진다면 견고한 원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직입니까?’
전장을 주시하던 무천극은 현진학을 바라보았다.
“가라.”
은자 천만의 거금을 들인 만큼 언젠간 써먹어야 할 전력이다.
진무립을 때려죽일 기세로 몰아치는 장우기의 싸움에 거짓은 없었다.
벽산으로 간 장로들에게 소식이 없는 이상 이들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지요.”
고개를 끄덕인 현진학이 남은 흑사칠랑과 함께 몸을 날렸다.
딱딱히 굳은 얼굴로 주변을 응시하는 초평천은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조금만 더 버텨주게.’
몇 번이고 나서고 싶었으나 그럴 때마다 적모개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아직 상대의 수장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평천의 소매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적모개는 외곽을 바라보았다.
쾅! 쾅! 쾅!
혈교도의 후방에선 연신 땅거죽이 뒤집히며 폭음이 터져 나온다.
장우기와 경천동지할 승부를 펼치는 진무립은 좀처럼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적모개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계획대로라지만 너무 박진감 넘치게 밀리는데……. 설마 진짜 밀리는 건 아니겠지?’
눈앞으로 육중한 주먹이 바위처럼 떨어지자 진무립의 상체가 갈대처럼 흔들렸다.
쉬익- 콰쾅!
“크악!”
간발의 차이로 비켜나간 주먹에 뒤에 있던 혈교도 두 명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어?”
당황한 장우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안.”
훌쩍 물러난 진무립의 눈이 원진으로 접근하는 흑사칠랑을 발견했다.
진무립은 미소를 속으로 감추며 적모개를 찾았다.
[서쪽이다. 시작해라.] [알았소!]적모개는 즉시 용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좌측!]고개를 끄덕인 용추는 목봉을 흔들어 혈야광인을 밀쳐냈다.
계획에는 그와 함께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
당조를 찾은 적모개는 미간을 찌푸렸다.
혈야광인과 두 구의 무혼광인, 그리고 수라대원들의 맹공을 받아내는 당조는 도무지 움직일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바람같이 내달린 흑사칠랑은 순식간에 원진을 포위하며 혈교도 사이에 스며들었다.
‘이런!’
저들이 온 이상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당가의 무인. 당가의 무인이어야 한다.’
낭패한 적모개의 머리가 복잡해질 때였다.
후방에서 육군명을 살피던 당우가 결연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중독에도 개의치 않고 적장의 목을 베어오다니.’
육군명뿐만이 아니다.
아군의 퇴각을 돕고자 한계 이상의 힘을 쏟아냈던 당천.
쏟아지는 적의 칼날에 맞서 맹위를 떨치던 진무립과 단려화.
그뿐 아니라 이 자리의 모든 동료가 목숨을 걸고 적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여전히 당가의 망나니에 불과하다.
‘나도 할 수 있다.’
지면을 박찬 당우는 품 안의 비수를 꺼내며 아군의 후미로 몸을 날렸다.
당가의 무복을 발견한 적모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음을 날렸다.
[거기 말고 좌측!]당우는 반사적으로 방향을 틀었고 얼굴을 확인한 적모개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우였냐!’
무복을 보고 전음을 보냈더니 하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걸렸다.
잠시 멈칫하는 사이 당우가 동료들을 비집고 나아간다.
단숨에 일선으로 치달은 당우가 적의 목으로 비수를 그어갈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쭉 뻗어 나온 목봉이 눈앞의 적을 후려쳤다.
“컥!”
갑자기 앞이 뻥 뚫리자 당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이어서 혈교도를 후려친 목봉이 휙 꺾이더니 지면을 강타한다.
쾅!
귓전을 때리는 강렬한 폭음과 함께 뿌옇게 치솟은 흙먼지가 시야를 방해한다.
누군가 당우를 발견하고 외쳤다.
“삼공자! 물러나시오!”
당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나도 할 수 있다!’
정신을 차린 당우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일장을 쏟아냈다.
쏴아아!
물결처럼 쏟아져 나간 독장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진 순간.
콰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시꺼먼 독무가 피어오르더니 흙먼지가 하늘로 말려 올라갔다.
순간 전장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며 모두의 시선이 당우의 앞으로 쏟아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십여 명의 적이 시꺼먼 얼굴로 꿈틀거렸고.
더불어 수십 명의 적이 중독된 상태로 휘청거린다.
“…….”
동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당우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이걸……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