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5
◈ 135화. 마지막 계책
상대편에 당가가 있는 이상 독의 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갑자기 진의 한복판에서 피어오른 독무는 피할 겨를조차 없었다.
“물러나라! 중독이 퍼진다!”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는 중독에 혈교도들이 주춤하는 사이, 당우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은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삼공자의 무공이 언제 저렇게…….”
“대체 그동안 삼공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당가의 무인조차 놀랄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란 인물은 바로 당우 자신이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
자신의 독장이 그만한 위력을 발휘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당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하면 할 수 있는 놈이었잖아?’
혈교도 사이에 스며든 독랑 막월은 술렁이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지? 설마 계획에 대해 듣지 못했나?’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당우의 공격에 맞춰 독탄을 던지고 흑연번사장(黑連繁死掌)을 퍼부은 인물은 바로 그였다.
‘여기 더 머물다간 들키겠군.’
막월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지며 잠시 멈췄던 전투가 재개됐다.
적모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천운인가.’
원래대로라면 당조가 독장을 퍼붓는 사이 후방에서 독랑 막월이 주변을 중독시키는 게 약속된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가 발이 묶인 사이 절묘하게 당우가 나섰으니 이번만큼은 약간의 운이 작용한 게 사실이었다.
그때 초평천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삼계(三計)!”
그와 동시에 당가의 무인들은 남은 독탄을 모조리 전방에 던지며 온 힘을 다해 장력을 퍼부었다.
파파파파팡!
원진의 주변으로 시꺼먼 독무가 피어오르자 혈교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사방에서 얼굴이 검게 물들어가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공위맹의 계획에 맞춰서 독랑 막월이 갖고 있던 독탄을 흑사칠랑이 은밀히 터트린 까닭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자인경은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주군. 생각보다 독의 피해가 큽니다. 일단 물러났다가 정비 후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어차피 저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라.”
무천극은 담담하게 몸을 돌렸다.
“퇴각!”
자인경의 신호와 동시에 혈교도들이 일사불란 움직이며 퇴각을 시작했다.
초무강과 접전을 펼치던 가진천이 훌쩍 물러났다.
“운이 좋구나.”
“…….”
초무강은 쫓지 않았다.
아니, 쫓을 기력이 없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부하들이 위태로워진다는 일념에 지금까지 사력을 다해 그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천을 막아낸 탓에 천무대와 광룡대도 수라대에게 밀리지 않고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적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 진무립을 쫓아가던 장우기의 앞으로 서천휘가 끼어들었다.
“퇴각입니다.”
장우기는 거칠게 반발했다.
“안 돼!”
“당신의 고집으로 동료들이 죽어도 상관없습니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고집을 피울 수도 없다.
서천휘의 어깨 너머로 진무립을 노려보던 그는 아쉬움을 삼키며 돌아섰다.
“칫. 가면 되잖아!”
신법을 전개한 장우기가 퇴각하는 혈교도들을 뒤쫓는다.
뒤를 힐끔 쳐다본 서천휘의 눈동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단려화를 담았다.
‘제자를 잘 키웠군요. 천대협.’
삼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르자 반가운 기분까지 든다.
단려화는 멀어지는 서천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압도당했어.’
힘과 속도, 정교함과 움직임 등 모든 부분에서 상대는 자신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결코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지도 비무를 한 듯한 기분에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때 진무립이 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돌아가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진무립을 따라 돌아섰다.
추격전은 없었다.
혈교와 공위맹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물러나자 치열했던 첫 번째 전투가 막을 내렸다.
바람마저 잦아든 고요한 전장은 지독한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바닥에 쓰러진 무인의 숫자는 공위맹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략 오백여 구의 시신을 남긴 공위맹과 달리 혈교는 고작 이백여 구의 시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 시진이 넘는 사투에도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친 것은 양쪽 다 매우 조심스럽게 전투에 나섰기 때문이다.
공위맹은 철저하게 방어 위주로, 혈교는 철저하게 실혼인을 앞세워 피해를 최소화하며 싸운 결과였다.
전장에서 멀찍이 물러난 공위맹 무인들은 파악산과 벽산의 사이에 진을 치고 부상자를 수습했다.
공위맹이 머물던 파악산으로 옮겨간 혈교도들도 휴식을 취하며 내부 정비에 돌입했다.
멀찍이 떨어진 구릉 너머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남궁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혈교는 생각 이상으로 냉정하네요.”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버틴 공위맹은 정말 대단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퇴각한 혈교는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전장을 응시하는 남궁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떻게 버티긴 했으나…… 전력 차이가 너무도 심하구나.’
눈으로 직접 본 혈야광인의 힘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만일 원진을 펼치지 않고 정면에서 맞붙었다면 승패는 순식간에 갈렸을 것이다.
‘다시 붙으면 막아낼 수 있겠는가?’
공위맹이 특단의 대책 없이 재차 원진을 형성해서 싸운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궁도의 생각은 사방에 몸을 숨긴 모든 세작의 생각과 동일했다.
서쪽 하늘에 걸쳐진 석양과 함께 더위가 한풀 누그러졌다.
노을 진 전장을 응시하던 진무립이 천천히 돌아섰다.
돌아오지 못한 오백여 명의 무인 중엔 마도림의 무인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을 결정한 순간부터 각오한 일이지만 가슴이 쓰라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슬픔은 잠시 뒤로 미룬다.’
저들의 희생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남은 계획을 완벽하게 성공해야 했다.
그것은 비단 진무립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남은 모든 무인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애써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초평천이 진무립의 어깨를 매만졌다.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진무립은 애써 옅은 미소를 보였다.
이들의 목숨을 책임진 조부의 괴로움은 자신보다 더욱 클 것이다.
“이제 한 걸음 남았습니다.”
“그래.”
시신을 뛰어넘은 초평천의 시선이 산기슭의 혈교도들에게 닿았다.
“반드시 혈채를 받아내자꾸나.”
“물론입니다. 그보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라?”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혈마 무천극. 그는 제 손으로 끝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초평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놈을 네가 상대하겠다는 말이냐? 그건 안 될 말이다.”
손자의 실력이 후기지수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건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혈마는 이 할아비에게 맡기거라.”
진무립의 단호한 표정은 바뀔 기미가 없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반드시 놈을 잡겠습니다.”
입을 다문 초평천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만일 이 아이가 잘못된다면…….’
초평천의 망설임이 길어지자 진무립은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믿고 맡겨주십시오.”
눈빛과 표정을 보아하니 제 어미의 고집을 쏙 빼닮았다.
“다시 생각해볼 마음은 없느냐?”
“없습니다.”
“허허허.”
헛웃음을 흘린 초평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놈 고집하고는…….”
고집을 꺾어보겠다고 싸우다가 집 나간 딸을 생각하면 그냥 들어주는 게 나을 것 같다.
초평천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네 뜻대로 하거라. 단, 만일을 대비해 고수들을 데려가야 한다.”
진무립도 마주 웃었다.
“상천의 무인들이 소손의 계책에 동참할 것입니다. 반드시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조손이 마주 보며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당우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언제 그런 독공을 익힌 거지?”
조영성의 얼굴에는 여전히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곽도진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설마 그간 실력을 숨겨왔단 것인가?”
쏟아지는 시선 속에 당우는 자신의 두 손을 거울처럼 쳐다봤다.
“허허. 나한테 이런 숨겨진 재능이…….”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소소가 가주 당조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삼공자에게 따로 무공을 전수하셨습니까?”
사정을 아는 당조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걸음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당조의 미소를 본 당소소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가 웃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변해가고 있구나.’
자신밖에 모르던 당천이 동료들을 위해 희생하고 겁쟁이 망나니였던 당우가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기에 언제나 무뚝뚝하던 당조가 미소까지 보이고 있으니 새삼 이들의 변화가 피부로 와닿는다.
이 변화의 시작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그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든 그녀의 눈동자에 무수한 별 무리가 떠올랐다.
‘나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밤이 내린 파악산의 정상.
피해가 미미한 혈교도들은 가히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동료의 죽음에 무딘 그들의 입장에선 크게 슬플 것도 없었다.
어차피 빈자리는 누군가로 인해 채워진다.
그것이 혈교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인경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벽산으로 간 장로들에게서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설마 당했단 말인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그 노인네들이라면…… 그대로 중경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전대 교주의 신임을 받던 그들이라면 무천극의 명을 어기고 중경으로 갔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하지만 낙관하기엔 나타나지 않은 상천의 무인들이 마음에 걸린다.
‘분명 공위맹과 손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오든 안 오든 다음 싸움에선 무조건 결착이 날 것이다.
자인경이 변수에 변수까지 계산해 다음 계획을 정리하고 있을 때 조용히 흑천대원이 다가왔다.
“군사. 교주님께서 수뇌들에게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알겠네.”
무천극은 어제까지 초평천이 사용하던 막사에 머물고 있었다.
자인경을 비롯한 수뇌들은 속히 무천극의 막사로 모여들었다.
동료들과 함께 멀찍이 앉아 쉬던 현진학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주변을 철통같이 감시하던 눈이 사라졌다.
장우기가 진무립과 죽어라 싸운 것을 모두 목격한 까닭이다.
‘제법이로구나. 공위맹.’
사실 이 모든 것은 진무립과 적모개의 계책이었다.
의뢰인을 배신하지 않는 흑사칠랑이 그 계책에 따르게 된 것은 혈교의 의뢰를 받기에 앞서 현진학이 공위맹의 의뢰를 먼저 받았기 때문이다.
성도 인근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사천맹이 무너지고 의뢰인이 죽었음을 알려온 개방도는 은자 천만을 약조하고 새롭게 의뢰를 했다.
그것은 바로 혈교의 의뢰를 받으라는 것.
물론 단순한 장우기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흑사칠랑은 그들의 의뢰대로 성공적으로 혈교에 합류했다.
그리고 어젯밤, 혈교의 감시망을 뚫고 은밀히 찾아온 누군가가 오늘의 계획을 전달했고 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다.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자들이다.
미소를 감춘 현진학은 은밀히 주변을 살폈다.
[장청. 실혼인의 위치는 파악했나?]진무립과 적모개가 전해온 두 번째 계획은 바로 실혼인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은잠술의 대가인 은랑 장청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좌측 언덕 밑에 관이 있었다. 약물을 집어넣더군.] [약물?] [우리가 심법을 운용해 기운을 채우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접근할 수 있겠나?]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할 거 같다.]현진학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이거…… 잘하면 생각보다 일이 수월해지겠구나.’
그는 즉시 독랑 막월을 찾았다.
[가진 독 중에 쓸만한 게 남아있나?] [독탄을 만드느라 남은 게 별로 없다. 쓸만한 건 산공독뿐이다.]혈야광인과 같이 위험한 완벽한 실혼인을 만들자면 들어가는 약재에 정확한 배합이 필요할 터.
거기에 약간의 오차가 발생한다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산공독에 남은 독을 전부 섞어라.] [알았다.]막월은 품 안에서 은밀히 독을 섞었다.
좌측을 응시하는 현진학의 두 눈이 기대에 반짝였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 * *
숨 막히는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밤사이 시신을 수습한 공위맹은 멀리 벽산 아래까지 후퇴했다.
새벽이슬을 지그시 밟은 무천극이 멀어진 그들을 눈에 담았다.
“역시 산을 끼고 방어를 펼칠 모양이로군.”
자인경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어제와 똑같이 싸웠다간 결과는 뻔할 테니 머리를 쓰는 모양입니다.”
“달라질 건 없다. 오늘 놈들을 모두 끝내고 중경을 불태운다.”
“출진 준비를 하겠습니다.”
산 밑의 들판으로 혈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공위맹 무인들도 즉시 전열을 갖췄다.
다리를 저는 무인들도, 한쪽 눈을 잃은 무인들과 팔이 잘린 무인들도 각오를 다지며 병기를 들었다.
적이 오십 장 안쪽까지 간격을 좁혀왔을 때였다.
선두로 나선 초평천이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외쳤다.
“사천의 명운이 걸린 마지막 싸움이다! 승리할 각오는 되었는가!”
“예!”
결연한 외침이 하늘로 솟구친다.
혈교도들이 물밀듯 달려오고 있었으나 두려움에 떠는 이는 없었다.
치켜든 초평천의 검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쳐라!”
“우와아아!”
우렁찬 함성과 함께 공위맹 무인들이 산 밑으로 몸을 날렸다.
눈을 부릅뜬 무천극이 일성을 토해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존명!”
선두로 달려간 청성의 무인들이 사사대와 전투를 개시했다.
카카카캉!
검병에서 불꽃이 튀며 쇳소리가 따갑게 귓전을 강타한다.
자인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역시 독은 없다. 단숨에 끝낸다.’
그는 즉시 후방으로 소리쳤다.
“실혼인을 준비하라!”
“예!”
자인경은 관뚜껑 솟구치는 소리를 기대하며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뒤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