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36
◈ 136화. 벽산의 기슭에서
산기슭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전투.
중앙에는 독왕 당조가, 아미의 장문인 자소와 마도림주 초무강이 좌우를 지킨다.
이런 지형에선 포위망을 갖추기가 어려워진다.
자인경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제법 머리를 썼어.’
무인의 숫자, 전력을 비롯해 모든 부분에서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
어제와 같은 독탄이 없으니 주의할 것은 당가의 고수들이 사용하는 독장뿐이다.
자인경은 실혼인을 이용해 어제 자신들을 애먹인 당가부터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타나야 할 실혼인이 좀처럼 소식이 없다.
자인경은 고개를 휙 돌렸다.
“뭘 하는 게냐! 당장 실혼인을…….”
실혼인을 관리하던 서풍패초대주 고태흘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달려왔다.
“구, 군사. 실혼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라고?”
자인경은 다급하게 후방으로 달려가 관을 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독물로 찰랑거려야 할 관 속이 검붉은 곰팡이로 가득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고태흘이 어쩔 바를 모르며 말했다.
“분명 어젯밤 배합에 따라 약을…….”
자인경은 노성을 터트렸다.
“이걸 보고도 하는 소리냐! 네놈의 눈깔은 장식품이란 말이냐?”
독물의 배합이 잘못된 게 분명했다.
실패작에서나 나타나던 현상에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실혼인이 없다면 피해 없이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관을 확인해라! 어서!”
“예!”
고태흘이 바로 옆의 관뚜껑을 열어갈 때였다.
관속에서 시꺼먼 팔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고태흘의 목을 덥썩 움켜쥐었다.
“컥!”
당황한 자인경이 훌쩍 물러나는 사이, 혈야광인의 손이 고태흘의 목을 그대로 분질러버렸다.
우두둑!
자인경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아아!’
관뚜껑이 하나씩 미끄러지며 지독한 사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랑 현진학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네놈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돌아가라.”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닌데 어찌 그냥 돌아가겠는가?”
“그게 무슨…….”
그 순간, 등 뒤에서 벼락같은 일검이 날아들어 자인경의 등을 단숨에 꿰뚫었다.
푸욱!
“컥!”
떨리듯 돌아가는 고개가 검랑 서천휘의 얼굴을 향했다.
“네, 네놈들이 배신을…….”
“공위맹의 의뢰가 먼저였습니다.”
서천휘가 검을 뽑는 순간 번뜩이는 현진학의 검이 자인경의 목을 단숨에 잘라냈다.
서걱!
잘린 단면에서 솟구친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흐, 흑사칠랑이 배신했다!”
누군가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현진학의 등 뒤에서 시뻘건 장력이 가공할 기세로 짓쳐 들었다.
“지랑!”
현진학을 밀쳐낸 서천휘의 검이 장력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콰아앙!
장력을 받아치는 순간 손목이 부러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음.’
강렬한 폭음과 함께 서천휘의 발이 지면에 깊은 골을 패며 미끄러진다.
‘위험한 자다.’
미간을 좁힌 서천휘의 눈에 담긴 인물은 바로 무천극이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무천극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혈광을 줄기줄기 흘려내는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의 악귀처럼 섬뜩했다.
한쪽에 서 있던 장우기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도랑 도운수가 장우기의 목덜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왜긴 왜야. 처음부터 우린 공위맹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잠입했기 때문이지.”
허공에 매달린 장우기가 발길질을 해대며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왜 나한텐 말을 안 했냐! 내가 대장이잖아!”
비랑 비사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랑잎보다 가벼운 네 입을 어떻게 믿고 말할까?”
은랑 장청이 검파에 손을 올렸다.
“그보다 우선 여길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
피부가 아려올 정도로 짙은 살기를 쏟아내는 무천극, 그를 지키는 흑천대와 사방의 무인들이 흑사칠랑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현진학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은자 백만에 괜한 짓을 했나?’
군사의 목을 가져오면 추가금을 준다기에 자인경을 죽였는데 생각보다 저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좌우를 살핀 현진학이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일단 튀자.”
대노한 무천극이 거친 노성을 토해냈다.
“죽여라!”
근방에 머물던 혈교도들은 즉시 무천극의 명령에 반응했다.
시뻘건 무인 둘이 흑사칠랑의 진로를 가로막는다.
그에 도운수는 들고 있던 장우기를 전방으로 냅다 던졌다.
“어억!”
“이럴 땐 대장이 앞에 나서야지?”
“이럴 때만 대장이냐!”
버럭 화를 내는 장우기에게 벼락같은 일도가 떨어진다.
“죽어라!”
이를 간 장우기는 허리춤에 주먹을 바짝 붙였다.
움켜쥔 주먹으로 노도와 같은 내력이 운집한다.
“네놈이나 죽어라!”
내지르는 악과 함께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주먹에서 태산 같은 내력이 쏟아졌다.
“아.”
부릅뜬 혈교도의 눈에 장우기의 주먹이 빨려들 듯 확장되는 순간.
쿠아아아앙!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뻗어 나간 권력이 전방을 초토화시켰다.
그 엄청난 위력에 지면이 움푹 꺼지며 일진광풍이 몰아친다.
장우기는 핼쑥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너무 힘을 썼네.”
도운수가 버럭 성을 내며 그를 낚아챘다.
“고작 두 놈 잡으려고 그 짓을 하냐! 그런 건 적이 뭉쳐있을 때나 써야지!”
장우기의 전방에 서 있던 숫자는 고작 둘이 전부였다.
곁으로 따라붙은 비사령도 장우기를 힐난했다.
“전대 흑랑은 너처럼 멍청하지 않았어.”
“닥쳐. 할멈.”
이를 바드득 간 혈교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때였다.
그들의 후방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혀, 혈야광인이 폭주한다!”
몸을 일으킨 혈야광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검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혈교도를 사정없이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크아악!”
흑사칠랑을 추격하던 무천극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무혼광인은 어찌 됐느냐!”
서풍패초대의 부대주 양강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다행히 말을 듣습니다!”
흑사칠랑은 혈야광인의 독물에만 약을 섞었다.
수가 많은 무혼광인까지 장난을 칠 만큼 독의 여유가 없던 까닭이었다.
“무혼광인으로 저지하라. 난 저놈들부터 때려잡겠다.”
“존명!”
무천극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사해. 사광원이 나설 차례다.”
추레한 몰골의 노인, 사광원주 사해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흘흘. 결국 이 몸들을 찾으시는구려.”
서른 명으로 구성된 사광원은 금지된 사공의 실험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괴물들.
그간 감춰온 이들을 쓴다는 것은 목격자까지 전부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실혼인은 사천을 점령하고 다시 만들면 된다.’
천하를 거머쥐고자 하는 계획이 조금 미뤄지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조리 죽여주마.”
빠르게 갖춰진 포위망이 흑사칠랑을 둘러싼다.
무천극은 단숨에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등 뒤의 지독한 살기에 비사령의 눈이 부릅떠졌다.
“오잖아! 빨리 뚫어!”
흑사칠랑은 우세를 점하고 포위를 뚫어갔으나 상대의 필사적인 공격에 나아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벼락같이 달려든 무천극이 포위망의 후방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인의 장막 너머에서 새하얀 섬광이 가공할 기세로 짓쳐 들었다.
쿠콰콰콰콰!
갑작스러운 배후의 기습에 육편이 비산하고 피가 역류하는 폭포수처럼 솟구친다.
“크아악!”
쏟아지는 비명 속에 화살처럼 날아든 섬광은 단숨에 포위망을 관통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던 장우기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저, 저놈은?”
마치 바닷길이 열린 것처럼 뻥 뚫린 길 앞에 나타난 인물은 바로 진무립이었다.
“수고했다. 나와라.”
진무립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일을 대비한 다른 계책도 준비된 상태였으나 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히 의뢰를 성공시켰다.
현진학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놈도 괴물인가.’
지금껏 장우기를 능가하는 젊은 고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무립이 보여준 일격의 위력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가자.”
흑사칠랑이 단숨에 포위망을 뚫고 나간 직후, 그 자리에 도착한 무천극의 눈이 진무립을 담았다.
“설마 이번에도 네놈이었느냐?”
진무립의 입가에 짙은 조소가 번진다.
“왜 아니겠나?”
“큭큭큭!”
살기 가득한 웃음소리와 함께 무천극의 주변으로 지독한 사기가 넘실거렸다.
“그래. 네놈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줘야겠지.”
“도망치면 따라올 거냐?”
“감히 본좌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럼 해보든가.”
그대로 돌아선 진무립의 신형이 길쭉한 잔상을 남기며 멀어진다.
“도망치지 못한다!”
일갈을 토해낸 무천극이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콰앙!
움푹 꺼진 땅거죽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산속으로 사라지자 흑천대와 백사대 백여 명이 빠르게 뒤를 쫓았다.
서천휘가 미간을 좁혔다.
‘가능하겠는가?’
단 한 수를 맞댔을 뿐이지만 무천극의 힘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가능하다면 광룡은 십대고수, 아니 단숨에 십대고수의 수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같은 천하십대고수일지라도 모두가 같은 수준은 아니다.
천하십대고수의 수위라면 검황과 궁황이 있는 이황(二皇)의 영역이었다.
장우기가 물었다.
“이제 우린 뭐 해?”
눈을 시꺼먼 천으로 가린 사내, 창랑 진야가 창대를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싸워야 한다.”
장우기는 울상을 지었다.
“나 좀 힘든데.”
도운수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의뢰인이 죽으면 돈은 누구한테서 받냐?”
때마침 그들 앞으로 단려화가 나타났다.
“따라오세요!”
거금을 들인 이상 이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이용해야 한다.
서천휘가 뒤를 따르며 물었다.
“누굴 상대하면 되겠습니까?”
“저쪽에 괴상하게 생긴 영감님들 보이죠?”
그녀의 손끝에는 흉측한 몰골로 짙은 사기를 흩뿌리는 사광원의 고수들이 있었다.
단려화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가장 위험한 자들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피해를 줄이려면 저들부터 막아야 해요.”
산비탈을 단숨에 뛰어오른 그들이 전장을 돌아 좌측으로 이동했다.
전장을 주시하던 적모개가 초평천을 돌아보았다.
“맹주님. 화공단주가 적장을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지켜본 초평천은 타는 속을 달래고 있었다.
‘무사해야 한다.’
믿고 보냈으니 끝까지 믿는다.
지금부터는 자신이 맹주로서 무인들을 지킬 차례였다.
“광인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계획이 잘 진행된 것 같군.”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흑사칠랑은 생각보다 훌륭하게 약속을 지켰습니다.”
초평천도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주에게 십 장 뒤로 후퇴하라 이르게.”
중군을 책임진 당조가 뒤로 빠진다면 자연스럽게 우익과 좌익이 앞으로 나서는 형국이 된다.
적이 마치 그릇에 담긴 물처럼 들어온다는 말이다.
“적이 실혼인을 피해 산개하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무혼광인이 혈야광인을 막아내곤 있으나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다.
“속히 전달하게. 나는 지금부터 적의 후방으로 돌아갈 것이네.”
적의 전력이 우위에 있다곤 하나 자중지란에 빠진 지금이 전세를 역전할 절호의 기회였다.
초평천의 눈빛과 표정은 적모개가 지켜봐 온 나날 중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명을 받듭니다.”
적모개가 사라지자 초평천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걸세.”
광룡대주 유대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포권을 취했다.
“소공자는 저희를 그렇게 약하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광룡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초평천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믿음직한 그 모습에 초평천은 발을 내디뎠다.
“가세나.”
“예!”
초평천과 광룡대가 질풍같이 몸을 날렸다.
사방에서 솟구치는 비명과 쇳소리, 아비규환의 전장이 빠르게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벽산의 좌측으로 난 골짜기에선 곧 진무립과 무천극이 경천동지할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잠시 그쪽을 바라본 유대하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소공자. 아니, 천주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전장에서 백오십 장 떨어진 나직한 언덕.
치열한 전장을 눈에 담은 이들은 비단 남궁세가의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천하 각지에서 몰려온 세작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곳을 주시하고 있던 것이다.
정갈한 자줏빛 도복 차림의 도사, 화산의 이대제자 유대수가 물었다.
“어떻게 보는가?”
“실혼인이 변수로군. 갑자기 왜 자중지란을 일으킨 거지? 실험이 완벽하지 못했을까?”
대답하는 하늘색 도복의 도사는 곤륜의 제자 장오였다.
진무립과 적모개의 계책에 따라 흑사칠랑이 손을 썼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오가는 와중에 남궁도는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오라버니. 어디 가요?] [보지 않았느냐? 광룡이 혈마와 함께 사라진 것을.]남궁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요?]백오십 장이나 떨어진 이곳에서 난전이 벌어지는 전장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두 사람을 확실하게 본 인물은 남궁도가 유일했다.
[너는 여기 있거라. 잠시 다녀오겠다.]그녀는 다급하게 오라비의 소매를 잡았다.
[위험해요! 혈마와 마주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내 눈으로 보고 싶구나.] [광룡이 제아무리 뛰어난 후기지수라지만 혈마가 소문대로라면 당해내지 못할 거예요. 안 돼요.] [멀리서 지켜보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돌아오겠다.]동생을 뿌리친 남궁도가 은밀히 자취를 감춘 순간이었다.
꽈아아아아앙!
벽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터져 나온 뇌성벽력이 전장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