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5
◈ 145화. 상천팔기
진무립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분지 곳곳에서 연회가 벌어졌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채주들 사이에 섞여 음식을 받아먹었고 대별산의 무인들과 여인들은 쉴 새 없이 술과 음식을 가져왔다.
단려화를 비롯한 동료들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들이 채주들을 무서워하지 않네요.”
용추가 답했다.
“아이들이 본 천의 미래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평소 무섭게 대할 이유가 없죠.”
아이들을 눈에 담은 육군명이 왠지 아련한 미소를 보였다.
“그렇지. 아이들은 저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지.”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스승을 따라 수십 번도 넘게 거처를 옮긴 탓에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고 행여 누가 다가와도 절대 마음을 열 수 없었다.
들키는 순간이 바로 천하의 공적이 되는 날이었으니까.
유대하는 육군명의 마음을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지켜내지 못하면 저 아이들도 자네와 같은 처지가 되겠지.”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래.”
마주 본 두 사람이 씩 웃으며 술잔을 나눴다.
그들이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진무립의 부름을 받은 상천팔기가 중앙의 전각으로 입장했다.
떠들썩한 연회장과 달리, 이곳 전각의 정전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고요함이 감돌았다.
상석의 뒤편으로 작은 문이 열리며 서진환이 나타났다.
“천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이어서 옷을 갈아입은 진무립이 들어오자 여덟 명의 무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경천동지할 무공을 익힌 위험한 자들.
상천팔기로 불리는 그들이 일제히 예를 갖췄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나직한 목소리 속에 유달리 위엄 있는 음색이 천장으로 솟구친다.
“목소리로 힘자랑하지 마라.”
진무립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값비싼 자색 비단옷에 기품이 넘쳐흐르는 귀공자가 있었다.
“하하. 습관적으로 그만…….”
“옷 좋아 보이네. 산동은 살만한가 보다.”
사내는 산동성 양산채의 채주로 무림에선 청옥공자(靑玉公子)라 불리는 시평이었다.
그는 스물여섯 살인 백채륜과 함께 팔기 중 가장 젊은 무인이기도 했다.
“훔쳤습니다.”
“어디에서?”
“왜놈들한테요.”
바다와 인접한 산동은 왜구의 습격이 매우 잦은 곳이었다.
“……장하다.”
진무립이 상석에 착석하자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조광에게 들었다. 오대표국이 통행세를 내지 않는다고?”
용추 이상으로 기골이 장대한 중년인, 산서 거련산의 채주 거력패도(巨力敗刀) 연길상이 답했다.
“예. 처음에는 교묘하게 외곽을 걸쳐 지나가더니 점점 대담하게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이어서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 섬서성 화룡채주인 파사장추(波死掌錐) 마일관이 입을 열었다.
“서역으로 가는 표행도 마찬가지입지요. 마치 얻어맞고 싶은 놈처럼 요란하게 지나갑디다.”
그는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신을 갑옷 같은 근육으로 두른 장법의 고수였다.
백채륜이 말했다.
“우리 부곡채 인근으로는 그런 자들이 없던데요. 여러분이 너무 만만하게 보인 것은 아닙니까?”
마일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말조심하거라. 백가야. 여기서 무림 칠군이니 하는 부질없는 허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느냐?”
백채륜이 두 팔로 몸을 감싸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너무 무섭군요.”
“사천 땅에 머무는 네가 중원의 사정을 어찌 알고 입을 놀린단 말이냐?”
폐쇄적인 사천과 화령이 있는 강남은 오대표국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 다른 곳에 비해 접촉할 일이 드물었다.
그때 구석에서 반백의 노인이 웃음을 흘렸다.
“흘흘흘. 주군 앞에서 이 무슨 추태야. 그만들 하시게나.”
그는 상천팔기의 최고령자이자 유일하게 강남에 거점을 둔 죽산마호(竹山魔狐) 왕유였다.
그 말에 한 차례 서로를 바라본 백채륜과 마일관이 시선을 돌렸다.
화령이 있는 강남에서 산채를 유지해온 왕유의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중이 입을 다물자 진무립이 물었다.
“분명 몇 해 전에 나이 어린 산적들을 차출해 본 천의 무공을 가르치라고 했을 것이다. 보고를 듣고 싶군.”
왕유가 일어났다.
“숫자는 모두 이백. 본 천 최정예의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충분히 일선에서 싸울 만합니다. 특히 그중 두 녀석의 성장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본 천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성품과 자질, 지난 행적을 면밀하게 살펴 차출했습니다. 대부분 무공을 익히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었고 떠돌고 떠돌다 산채에 들어간 아이들이지요. 그 녀석들은 은혜를 압니다. 천주님을 위해서라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질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고 싶군.”
“소환하겠습니다. 달포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리하라.”
명을 내린 진무립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닿았다.
“불만이 있는 얼굴이로군.”
그의 시선에 닿은 곳에는 다소 차가운 인상의 보기 드문 미인이 앉아있었다.
바로 상천팔기의 홍일점이자 무림에선 흑백독화(黑白毒花)라 불리는 하남성 복호채주 이하빈이었다.
진무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녀가 붉은 입술을 열었다.
“신룡의 딸에게 동행을 허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왕유가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묘한 눈길을 던졌다.
“혹시 아비의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게야?”
그녀의 부친 이립은 과거 팔황문이 회천대계를 진행할 당시 일선에서 활약했던 십사주(十四主)의 일원이었다.
그의 목숨을 앗아간 자가 팔황문에 잠입했던 화령의 세작이었으니 악감정이 있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갓 태어난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야망을 택한 부친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결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이하빈의 짙은 눈동자가 진무립을 담았다.
“주군께서는 화령이 우리의 잠재적인 적이라는 걸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렇기에 데려온 것이다.”
연길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송구하오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세상이 말하는 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백채륜이 싱긋 웃었다.
“행여 그녀가 본 천의 정보를 화령에 전할까 걱정하신다면 염려 놓으셔도 될 겁니다. 그녀는 그 정도로 악독한 사람은 못 되니까요.”
청옥공자 시평이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욱 의심스럽잖아.”
백채륜이 쏟아지는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시평의 목을 걸지요.”
시평의 볼살이 불만스럽게 씰룩거린다.
“내 목 말고 니 목을 걸어. 자식아.”
진무립이 손을 들어 좌중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해선 논하지 마라. 지금은 당면한 과제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할 때다.”
좌중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예. 주군.”
“오는 길에 총사가 흑전원과 접촉했다고 들었다. 결과가 있을 때까지 놈들의 도발은 묵인한다. 작은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도록 주의해라.”
“예.”
“사천과 강남의 거산채에선 정예 오십 명씩을 차출해 이곳 대별산으로 보내라. 그대들이 직접 이끌어야 할 것이다.”
백채륜의 부곡채와 대중경의 검산채는 사천에, 왕유의 죽산채는 호광성 남부에 있었다.
중원을 위주로 활동하는 표국과의 마찰에 대비해 그들을 미리 불러들이는 것이다.
명을 받은 세 사람이 즉시 예를 갖췄다.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 * *
첫 번째 회의를 마친 진무립이 밖으로 나왔을 땐 산채에 붉은 노을이 걸려 있었다.
아직도 곳곳에선 떠들썩한 연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서진환이 조용히 뒤를 따르는 가운데 진무립은 연회장 주변을 산책하듯 걸었다.
그렇게 반 바퀴를 움직였을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는 끝났어요?”
고개를 돌리니 두 볼에 옅은 홍조를 띤 단려화가 보인다.
“얼마나 마신 거야?”
“그냥 주는 대로 다 마셨어요. 선녀님! 하면서 따라주는데 거절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진무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술을 그렇게 잘 마시는 줄 몰랐군.”
그녀는 싱긋 웃었다.
“아버지 닮아서 그래요.”
“같이 좀 걷을까?”
그녀는 등 뒤로 숨긴 술병을 슬며시 내려두었다.
“그럴까요?”
분지의 능선을 따라 진무립과 단려화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서진환은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십 장 밖에서 조용히 뒤를 따랐다.
진무립이 분지의 떠들썩한 연회장을 눈에 담고 말했다.
“화령도는 어떤 곳이지?”
“사실 보면 볼수록 상천과 비슷해서 사실 좀 놀라는 중이에요.”
“우리와 비슷하다?”
“어머니를 따라 칠맥에도 가봤고, 스승님과 사모님을 따라 남궁세가에도 가봤지만 화령도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곳은 상천이 유일하네요.”
“그런가?”
“마도림의 분위기도 이곳과 같지는 않았잖아요?”
“음.”
진무립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가 깊은 방파는 상관들이 아무리 격의 없게 아랫사람을 대할지라도 어느 정도 경직된 분위기는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상천의 사람들은 서로를 격의 없이 대한다.
모두가 함께 사지를 헤쳐나온 탓에 서로를 상관과 부하가 아닌 진짜 가족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단려화가 웃으며 말했다.
“화령도는 계절마다 마치 다른 곳처럼 풍광이 변하는 아름다운 섬이에요. 언젠가 꼭 당신을 데려가 안내해주고 싶어요.”
“삼두육비의 괴물을 납치하고 싶은 건 아니고?”
단려화의 눈꼬리가 샐쭉하게 올라간다.
“당신이 어디 납치될 사람이에요?”
“하하하!”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어깨 위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걱정과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
상천의 천주로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나무로 존재해야 할 진무립에게 그녀는 조금 색다른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기대려 하지 않았고 자신 또한 그녀의 버팀목이 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려화는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여인이었다.
자신을 향한 진무립의 시선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왜 그렇게 봐요?”
진무립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진환!”
“예. 주군.”
십 장 밖을 따르던 서진환이 바람같이 달려왔다.
“오늘부터 수련을 려화의 정식호위로 붙여라.”
“나한테 호위를?”
단려화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가운데 서진환은 두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존재가 진무립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명을 받듭니다.”
서진환이 사라지자 단려화가 물었다.
“갑자기 무슨 호위예요?”
진무립은 일부러 짓궂게 웃으며 농을 던졌다.
“내가 아는 광녀는 사실 호위가 필요치 않은 여인이지. 호위가 아니라 감시라고 생각해라.”
“……이 인간이 진짜.”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얼굴이 왠지 모르게 귀엽다.
“하하하!”
진무립의 웃음소리가 길게 퍼져 나갈 때, 산채의 입구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사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진무립은 단려화의 새침한 눈빛을 피해 도망치듯 몸을 날렸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계속 그렇게 놀려봐요! 분명 천벌 받는 날이 올 테니까!”
전각으로 돌아온 진무립이 수문화의 예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표정이 밝으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좋은 일은 무슨. 그보다 정주에 갔었다지?”
“예. 금성표국주가 만나자고 하기에 다녀왔습니다.”
수문화는 정주에서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오대표국에는 통행세의 절반을, 다른 자들에겐 두 배를 받으라고?”
그들의 과욕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익이 보장될지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본 천의 평판만 깎아 먹는 일이 될 겁니다.”
“아무래도 일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군.”
“그렇겠지요.”
“오래전부터 각오한 일이다. 그보다 흑전원이 먼저 접촉을 해왔다는 게 사실이냐?”
수문화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예. 몇 년간 그토록 선을 대고자 노력할 땐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갑자기 왜 먼저 보자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던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우리에겐 잘된 일이다. 어디로 가면 되나?”
“원주가 직접 이곳 대별산으로 오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