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7
◈ 147화. 협상의 결과
번호기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았다.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벌떡 일어난 번호기가 한 발을 내디디자 진무립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쉬익!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번호기의 손이 장포를 잡아간다.
그의 투박한 손이 시꺼먼 장포에 닿으려는 찰나,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진 진무립은 번호기가 일어난 의자에 그대로 착석했다.
‘아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상대를 놓친 번호기가 눈을 부릅뜰 때였다.
오연하게 다리를 꼰 진무립이 국영승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하지.”
국영승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쩌렁쩌렁한 광소에 지붕이 무너질 듯 요동친다.
번호기가 주먹을 움켜쥐고 외쳤다.
“원주! 이게 웃을 일이오? 이놈은 감히 흑전원을 능멸하고 있소이다.”
“됐다. 나가 있어라.”
“……칫.”
한차례 진무립을 쏘아본 번호기가 성난 걸음으로 나갔다.
서진환이 문을 닫고 나가자 실내에 고요한 정적이 깃들었다.
국영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리는 가면이로구나.”
진무립은 가면을 슥 매만졌다.
“가면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그런가?”
“세상이 날 무면산왕이라 부르니 한번 써봤다. 잘 어울린다니 앞으로 종종 쓰고 다녀야겠어.”
국영승은 진무립의 오만한 말투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놈의 젊은 시절을…… 아니, 그보다 더한 놈인가.’
겁 모르고 날뛰던 왈패 시절의 단소룡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단소룡에겐 적어도 넘지 않는 선이라는 게 있는 느낌이라면 눈앞의 이자에겐 선이라는 게 없는 기분이다.
‘자신이 잘난 걸 아는 놈이로군.’
생각을 정리한 국영승이 물었다.
“지난 일 년간 흑전원에 선을 대고자 애써왔다고 들었다. 그렇게 고자세로 나와도 되겠느냐?”
진무립은 느긋한 어조로 답했다.
“안 될 게 뭐 있겠나?”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득 될 게 있느냔 말이다.”
“이 정도 일에 심기가 불편하다면 오늘의 만남은 없던 일로 하는 게 낫다.”
“왜 그런가?”
“작은 일에 마음이 흔들릴 소인배라면 우리를 음해하는 자들의 속삭임에도 쉽게 넘어갈 게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공들일 필요가 없지.”
국영승은 지금 상대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후후후. 자신감이 과하구나. 그렇다면 오늘의 만남은 없던 일로 하지.”
“이대로 돌아가겠는가?”
“그렇다면?”
“가라.”
자신을 밀어내듯 손을 젓는 무면산왕에게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국영승은 상대가 결코 호락호락한 자가 아님을 직감했다.
‘재수 없는 놈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천하의 안녕을 위해 이용할 만한 가치는 있다.
국영승은 반쯤 틀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이야기는 들어보지.”
가면 속 진무립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참을성은 있는 모양이군.’
이젠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다.
진무립은 다리를 풀고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상천의 천주가 황궁의 흑전원주를 뵙소이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은 그 태도에 국영승은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을 갖고 놀 줄 아는 놈이로구나.”
들리는 목소리와 가면 아래로 드러난 목주름을 보면 많이 쳐줘도 이립 언저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고수처럼 노련하게 사람을 대하고 있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일개 무인이 어찌 감히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는 흑전원주를 갖고 놀겠소?”
“시끄럽다. 네가 어떤 놈인지는 잘 알았다. 골 아프게 심력 소모하지 말고 본론부터 말해보아라.”
“그러리다. 본 천이 천하의 산적을 일통한 순간부터 오늘까지, 우린 단 한 번도 양민을 약탈하거나 마을에 피해를 준 적이 없었소.”
“그건 네놈들이 잘한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것과 통행세를 받는 일은 별개의 일이지. 감히 황제 폐하의 땅에서 마음대로 통행세를 받는다는 게 가당한 일이더냐?”
“하나 묻겠소. 우리가 사라지면 이 땅에 산적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겠소?”
“필요악이란 말이냐?”
“그렇소.”
“필요악은 악(惡)이지 결코 선이 아니다.”
“우린 단 한 번도 선(善)이 되고자 한 적이 없소. 선을 찾다가 굶어 죽느니 악인이 되고 말지.”
“…….”
감히 관인 앞에서 대놓고 악인을 자처하는 그 모습에 국영승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진무립은 말을 이어갔다.
“천하대전으로 수많은 방파들이 몰락했지. 그로 인해 천하의 치안에 공백이 생겼다는 사실은 원주께서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오.”
“계속해 보아라.”
“상천이 팔십팔 채라는 것은 천하에 산적의 무리가 적어도 팔십 채는 넘었다는 말이지. 그 말은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천하를 좀먹는 산적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말이오.”
관에 협조하던 방파들이 몰락한 탓에 치안의 공백이 확연히 드러났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상천은 도적이 횡행하는 것을 막고 산채 주변의 치안을 확실하게 유지해왔소. 마적이 나타나면 마적을 토벌했고 도적이 나타나면 잡아다 관에 넘기기도 했지. 그래서 지금까지 관이 상천의 토벌에 나서지 않았던 게 아니오?”
“제천지사란 놈이 산채 인근의 관에 뇌물을 먹인 탓도 있겠지.”
“뇌물이 아니라 세금이라고 해주시오. 세금을 착실히 내는 산적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오?”
상대의 뻔뻔함에 국영승은 하마터면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지금까지 산적이 대담하게 통행세를 받아먹는 걸 묵과해달라 요구해온 적은 없었다.”
“그건 그놈들이 멍청했던 거요. 우린 아무에게나 통행세를 받지 않소.”
진무립은 품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꺼냈다.
“이게 무엇이냐?”
“대별산 인근 마을 사람의 명부요. 인근 주민들이 산을 넘을 때는 맹수에게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볼 뿐이오. 통행세를 받는 대상은 외인과 보부상, 표행과 상단이지. 게다가 우리가 걷은 통행세 일부는 세금으로 납부하고 있으니 관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소?”
“…….”
국영승의 두 눈이 진무립의 가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왜 그렇게 보시오?”
“네놈의 낯짝이 참으로 두껍다 싶어서 말이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먹여 살려야 할 식솔만 수천이 넘으니 두꺼워질 수밖에.”
마주한 시선 속에 어색한 정적이 깃들었다.
짧은 고민 끝에 국영승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좋다. 네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천하는 넓고 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선 무림 방파의 협조를 구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
국영승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통행세를 받아먹는 걸 묵과하기엔 부족해.”
“표국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군.”
“표국?”
“산적이 성행한 탓에 표국이 덩치를 키워왔지. 당금 무림에서 천하오대표국이라 불리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오.”
그들로 인해 중원의 자금 흐름이 점점 둔화되고 있다는 것은 국영승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표국이라.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와 본 것처럼 말하는군.’
그는 미소를 감춘 채 모른 척 물었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이냐?”
“덩치가 커진 그들은 천하의 표국을 자신의 질서 아래 넣고 있소. 그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온갖 수단에 무너지거나 도태되고 말지.”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닌가?”
“문제는 그들이 독과점을 이용해 표행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올린다는 말이오. 상행이 위축되면 돈의 흐름이 막히고 자연히 국가에서 거두는 세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지.”
“음.”
틀린 말은 아니다.
표행비가 올라간다면 그만큼 상인들이 얻는 이익이 줄어든다.
그리되면 그들은 돈이 되지 않는 상행에는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국영승의 생각이 깊어지자 진무립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 상천이 정식 무림 방파로 인정받는다면, 상인들이 표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다 활발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만들겠소.”
“무슨 수로 말이냐?”
“그건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오.”
국영승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했다.
그간 천하오대표국이 상천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겨왔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설마 오대표국을 무너뜨릴 생각이냐?”
그건 관의 입장에서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표국이 무너지고 상천이 그 자릴 대신한다면 이들 또한 독과점을 이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천하의 요지를 모두 차지한 상천이라면 표국보다 더욱 위험하다.
“나는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오. 그저 우리 식구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랄 뿐이지.”
진무립은 그의 걱정을 읽은 사람처럼 말했다.
“만일 표국이 무너지고 우리가 놈들과 같은 짓을 벌인다면 그땐 우릴 다시 산적으로 규정해도 좋소.”
“…….”
입을 닫고 진무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국영승이 나직이 물었다.
“너, 대체 뭐 하던 녀석이냐?”
능구렁이 같은 언변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심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인물이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면을 쥔 진무립은 천천히 얼굴의 절반을 드러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언젠가 우리의 식솔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원주께서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소.”
가면 위로 드러난 짙은 눈동자를 응시하던 국영승이 작게 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능력은 충분해 보인다.
더불어 지금까지 상천이 보인 행보를 고려하면 이런 자는 적으로 간주하기보다 관에 협조하게 만드는 것이 낫다.
“좋다. 지금부터 상천을 산적으로 보지 않겠다.”
그 말은 지금까지 상천이 누려온 모든 것들을 인정하겠다는 것.
통행세를 걷는 것을 묵인하겠다는 말이다.
가면을 다시 쓴 진무립이 마주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원주의 결정에 감사하오.”
“대신 이쪽도 조건을 걸어야겠다.”
“말씀하시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인근의 치안 유지에 적극 협조하라. 통행세의 일부를 뇌물이 아닌 정식 세금으로 납부하라. 외적이 국가를 위협할 경우 다른 방파처럼 무인을 파견해 협조하라.”
통행세 항목을 제외하면 다른 무림 방파들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조건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물론이오.”
“지켜보겠다. 만일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린 언제든 상천을 다시 산적으로 규정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거라.”
마지막 경고를 남긴 국영승은 그대로 지객당을 나섰다.
빙그레 웃은 진무립은 뒤를 따라나섰다.
밖에서 기다리던 번호기는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진무립을 쳐다본다.
진무립은 그에게 예를 갖추며 사과했다.
“조금 전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다 끝난 마당에 불편한 감정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
국영승이 번호기의 어깨를 잡았다.
“돌아가자꾸나.”
“알겠소.”
길을 나서는 국영승의 시야에 뛰노는 아이들과 밥 짓는 아낙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들어온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데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역시 이곳은…….’
묘한 미소를 남긴 국영승은 진무립의 배웅을 받으며 산채를 떠났다.
관이 상천을 정식 무림 방파로 인정한 날이었다.
* * *
흑전원의 관인들이 돌아가자 진무립은 수문화와 송자광을 불렀다.
수문화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이야기가 잘 끝난 모양입니다.”
“그래. 우릴 산적으로 보지 않겠다고 했다.”
송조광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이제 정식으로 무림의 일원이 되어 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운신의 폭이 넓어진 이상 망설일 것은 없다.
진무립이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화.”
“예. 주군.”
“달포 안에 오대표국과 천하의 모든 표국을 조사해 정보를 가져와라.”
수문화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알겠습니다.”
“조광.”
“예. 주군.”
“감시 범위를 넓힌다. 이백 리 안에 오대표국의 표행이 나타나면 즉시 내게 알려라.”
즉시 일어난 송조광이 포권을 취했다.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