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48
◈ 148화. 소문주 무산(無山)
사천에서 들려온 소식이 여전히 화젯거리인 가운데 또 하나의 놀라운 소문이 천하를 강타했다.
황궁의 흑전원이 마침내 상천을 정식 무림 방파로 인정한 것이다.
그 말은 상천이 무림의 세력과 충돌할지라도 관에서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흑전원주가 공식적으로 무면산왕을 만났다는 소식 또한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워낙 소문만 무성한 무면산왕이기에 그 존재 자체를 거짓으로 여겼던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천하는 운신의 폭을 넓힌 상천의 다음 행보에 귀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 * *
정주 회월루.
무거운 정적이 감싸 안은 기루에는 흥겨운 풍악도, 아름다운 기녀의 교소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후의 햇살이 기울어갈 무렵, 안에서 나온 운화결이 정문 앞에서 대기 중인 마차 문을 열었다.
“상공.”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매혹적인 미녀가 웃는 낯으로 그를 맞이했다.
운화결은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하며 마차에 올랐다.
“오래 기다렸느냐?”
붉은 입술이 열리며 혼백마저 빼앗아갈 듯 청초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인고의 세월에 비하면 이 정도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차의 문이 닫히자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운화결은 살짝 열린 창밖으로 적막한 하늘을 눈에 담았다.
“나는 참으로 오래 기다려왔다.”
임교영은 그의 넓은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소첩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운화결의 거친 손이 그녀의 탐스러운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제천지사가 상공께서 내민 손을 잡았더라면 일이 더욱 수월해졌을 텐데 아쉽습니다. 우리가 배신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일까요?”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득이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거절은 예상했던 일이니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 놈을 봐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이제 개봉으로 가실 것이옵니까?”
“그래야지. 이번 일에는 중원무림맹도 끌어들여야 한다.”
“판이 커지겠군요.”
그녀를 향한 그의 눈빛에 짙은 갈망이 떠오른다.
“들불처럼 커져야 한다.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의 목표는 더욱 가까워질 테니까.”
임교영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쉬운…… 길은 아니겠지요.”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
“솔직히 조금 두렵사옵니다.”
목소리의 옅은 떨림이 귓속을 파고든다.
운화결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임교영은 말없이 배시시 웃었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니까.
속도를 붙인 마차가 정주의 동문을 빠져나갔다.
* * *
낡은 가옥으로 빼곡한 개방의 총타.
어스름한 어둠 속, 방문을 열고 나온 동초개가 두 팔을 감싸며 부르르 떨었다.
“으. 추워.”
새벽이슬과 함께 서늘한 공기가 옷깃을 깊숙이 파고드는 탓이다.
측간으로 향하는 동초개의 입술이 불만스럽게 삐쭉거렸다.
“내가 못 살아. 분타주는 대체 왜 여길 오자고 한 거야.”
삼결제자에서 사결제자가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장로들의 수발을 오결제자가 들고 있다.
사결 이하의 제자들은 실무를 익혀야 한다며 죄다 분타에 파견한 것이다.
덕분에 온갖 잡일은 모두 동초개의 몫이었다.
“거지 주제에 실무는 무슨 실무람. 동냥질에도 실무 경험이 필요한가?”
삼시 세끼 먹여주고 따뜻한 방에서 재워주던 사천이 그리워진다.
“공위맹에서 큰 공을 세워 한자리 차지했으면 그냥 거기 남아있을 것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까지 끌고 와?”
“불만이면 다시 가지 그러냐?”
“히익!”
동초개는 갑작스러운 등 뒤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적모개가 한심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동초개가 버럭 성을 냈다.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쉿! 아직 잘 시간이다. 이놈아.”
움찔한 동초개가 자라목을 하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언제 왔어요? 비각에서 잘렸어요?”
“잘리긴 누가 잘려? 내가 너냐? 챙길 게 있어서 잠시 온 거다.”
동초개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내가 요즘 어떻게 사는지 알아요? 다른 사결제자는 죄다 분타에서 실무 경험 쌓는데 지금 나는 그 경험을 측간에서 쌓아요.”
거지들 주제에 대체 뭘 처먹는지 똥을 온종일 퍼 날라도 다음 날이면 측간이 우물처럼 차오른다.
“다음에 이야기하자. 며칠 안에 중요한 회담이 있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무슨 회담인데요?”
“금성표국주가 맹주께 은밀히 회담을 신청했다. 각주께서 본가에 가신 탓에 내가 대신 참여해야 한다.”
“부각주는 어디 가고요?”
“그게 나야.”
“……뭐요?”
“그게 나라고.”
지독한 배신감에 치가 떨려온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부하는 여기서 똥이나 푸게 처박아두고, 자기는 비각의 부각주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시겠다?”
인상을 쓴 적모개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놈이 진짜. 부귀영화는 얼어 죽을 부귀영화야.”
“그러다 한 대 치겠어요. 쳐봐요. 앓아누우면 똥도 안 푸고 좋지.”
동초개가 얄밉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걸 그냥…….”
주먹을 부르르 떨던 적모개가 마지못해 팔을 내렸다.
“방금 했던 이야기는 극비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거지소굴에서 똥이나 푸는 놈이 하는 말을 누가 믿어요.”
“어쨌든 지금은 가봐야 한다.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는 절대 누설해선 안 된다.”
동초개의 손을 뿌리친 적모개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칫!”
심술이 난 동초개는 신경질적으로 눈앞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돌멩이가 정확히 처마 끝에 걸린 밥그릇에 직격했다.
따악!
시원스러운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난 밥그릇이 바닥을 나뒹군다.
동초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왜 하필.”
손때로 가득한 나무그릇은 방주 철표개가 아끼는 것이었다.
식사가 끝날 때마다 곱게 씻어 바람 부는 곳에 말린다고 걸어둔 것이다.
암기를 수련할 땐 그렇게 목표를 빗나가더니 참 재수도 없다.
‘아니, 씨이……. 무슨 노인네가 밥그릇을 문짝 위에 걸어둬? 부적이야?’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보통 총타의 제자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가장 먼저 시키는 일이 측간 청소다.
그런데 자신은 매일같이 그 짓을 하고 있으니 분명 더한 벌을 받을지 모른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동초개의 뇌리에 번뜩이는 생각이다.
‘사천으로 튀자!’
허구한 날 똥을 푸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곳에서 한 일이 있으니 적어도 문전박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간 동초개는 지도를 펼쳤다.
“우선 대별산을 지나…… 강남에 가서 배를 타고 사천으로 넘어가자.”
결심을 내린 동초개가 바람같이 총타를 빠져나왔다.
* * *
완연한 가을의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 진무립 일행이 올라섰다.
잠시 숨을 고른 그들이 죽립을 벗었다.
“어떻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바로 유대하였다.
단려화의 민낯에 만개하는 꽃처럼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이젠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못 알아보겠네요.”
품에서 손바닥만 한 동경을 꺼낸 용추가 내심 불만스럽게 말했다.
“조금 더 달라질 수는 없습니까?”
똑같이 역용을 했는데 진무립의 외모는 여전히 수려하다.
반면 거울 속에는 전보다 조금 더 험상궂은 산적이 있을 뿐이었다.
“역용술에도 한계는 있어요.”
“…….”
그들이 신기한 듯 거울을 번갈아 볼 때였다.
단려화의 고개가 언덕 너머로 휙 돌아갔다.
“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 밑에서 십여 대의 수레와 오십여 명의 표사가 나타났다.
진무립은 미소를 감췄다.
‘왔구나. 태산표국(太山鏢局).’
산동성 제남에 총단을 둔 태산표국은 천하오대표국 중 하나였다.
“모두 기도를 감춰라.”
진무립의 말에 동료들은 은은히 새어 나오던 내력을 갈무리했다.
단려화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할 거예요?”
진무립은 점점 가까워지는 표국의 무인들을 보며 씩 웃었다.
“이제 와서 뭘 망설이지? 함께하겠다고 따라온 게 아니었나?”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죽립으로 감췄다.
“그야 그렇지만…….”
“준비하자.”
진무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일제히 언덕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자 말에서 내린 표사들이 쟁자수들과 함께 수레를 밀어 올렸다.
“정상에서 쉬어갈 것이니 조금 더 힘을 내라.”
당당한 풍채의 중년인이 부하들을 독려했다.
그는 표행을 이끄는 표두이자 산동에서 천목수(穿木手)라고 불리는 능양이었다.
표국에 들어온 지 십 년, 표두 자리에 오르고 처음으로 표행을 이끌게 된 그는 여느 때보다 의지가 충만한 상태였다.
능양의 시선이 언덕의 정상으로 향했다.
‘누군가 있군.’
좌우의 숲을 빠르게 살핀 능양이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앞을 살피고 오겠다.”
능양은 표홀한 신법으로 순식간에 언덕을 올라갔다.
정상에 오른 그의 눈에 삼 장 밖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죽립인들이 보인다.
검과 도를 허리춤에 찬 사내와 맨손의 두 사내, 천으로 감싼 검을 등에 진 여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본인은 태산표국의 표두 능양이라고 하오. 형제들은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시오?”
능양은 가볍게 예를 갖추며 그들의 기도를 파악했다.
겉보기엔 제법 깔끔한 차림새에 뭔가 있어 보였으나 풍기는 기도는 평범한 표사와 다를 게 없다.
진무립과 단려화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 역시 상천의 영하은기(影下隱氣)를 익혀 완벽하게 기도를 감췄기 때문이다.
영하은기는 상대적 무공의 고하에 상관없이 자신의 내력을 감출 수 있는 무공이었다.
물론 십대고수에 준하는 고수라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제 막 표두에 오른 능양에겐 어림없는 일이었다.
파악을 끝낸 능양의 표정이 한결 거만해졌다.
‘경계할 정도는 아니로군.’
죽립을 벗은 진무립이 천천히 일어나 예를 갖췄다.
“저는 남악 영천문의 소문주 무산(無山)입니다. 부친이신 문주님의 명으로 안목을 넓히고자 중원행에 나선 길입니다.”
진무립의 수려한 용모에 잠시 놀랐던 능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천문?”
요동부터 서역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는 산동표국이었으나 강남과 사천의 정보에는 어두웠다.
폐쇄적인 사천과 화령이 있는 강남은 오대표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남 벽지의 작은 문파이니 표두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시골의 젊은 무인이 부푼 꿈을 안고 중원행에 나서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중원행이라…… 그래, 소형제는 어디부터 둘러볼 생각이신가?”
능양의 말이 짧아졌으나 진무립은 개의치 않았다.
“오는 길에 무당산의 수려한 산새를 둘러보았으니 다음으론 대별산을 지나 태산에 가볼까 합니다.”
“대별산이라?”
능양의 미간이 좁아지자 진무립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무림 초출인지라 중원의 지리에 밝지 못합니다. 고언을 해주신다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능양은 혀를 차며 말했다.
“대별산은 상천이라고 하는 극악무도한 놈들의 산채가 있는 곳이지. 우리 오대표국을 제외하면 지금껏 그곳을 사지 멀쩡하게 지나간 자들이 없을 정도일세.”
진무립은 짐짓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 상천이 그 정도로 흉악한 놈들이란 말입니까?”
단려화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사기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 모습에 능양은 실소를 흘렸다.
“강남의 벽지에서 살아왔다면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이곳에선 오래 살고 싶다면 산을 피해 다녀야 할 게야. 그놈들이 없는 산이 드물 정도니까.”
“아아…….”
나직이 탄식한 진무립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단려화의 입에서 우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주님께서 반드시 중원의 명산들을 둘러보고 오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키지 않아 보이던 단려화였다.
그런 그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장단을 맞춘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유대하가 속으로 혀를 찰 때 육군명이 일어났다.
“소문주님. 태산표국은 산동에 있지 않습니까? 가는 길이 같다면 저분들의 표행에 잠시 몸을 의탁하는 것은 어떠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