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53
◈ 153화. 밀담
끼이익.
불어오는 바람에 사립문이 스르륵 열린다.
‘으스스하네.’
움찔한 적모개가 슬며시 위사영을 살필 때 어둠 속에서 다소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와 동시에 푸른 빛을 발하는 한 쌍의 안광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멀어져간다.
문을 넘어선 적모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것도 무공입니까?”
“그런 모양이군.”
적모개는 미간을 찌푸렸다.
‘손님을 불러놓고 저게 무슨 지랄이냐. 평범한 새끼들은 전부 뒈졌나.’
적모개는 느낄 수 없었으나 위사영은 멀어지는 불빛에서 은밀한 내력을 느끼고 있었다.
‘금성표국이라.’
저런 무인을 고작 호위로 부릴 정도라면, 자신의 생각과는 별개로 중원무림맹을 능가했다는 세간의 평가도 납득이 간다.
모퉁이를 돌아가자 아담한 건물이 나타났다.
문 앞까지 걸어가자 작은 방문이 열리며 운화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금성표국주 운화결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위사영이오.”
가볍게 인사하는 위사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군.’
자신의 앞에서 기도를 감출 수 있는 자는 천하에 많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것이 실체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은밀하다.
‘이자는 대체 무엇이냐?’
운화결이 길을 비켜서자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가구라곤 탁자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실내.
그들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구수한 다향이 짙게 퍼지는 가운데 운화결이 찻잔을 채우며 말했다.
“검제 대협께서 중원무림맹의 맹주직을 수락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중원무림맹은 최근까지 맹주가 없었다.
중원 무림의 대표들이 의화전(義和殿)을 운영해 모든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랬던 중원무림맹이 얼마 전 의화전을 해체하고 맹주로 위사영을 추대했다.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대 고수.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견식하고자 수십 년간 떠돌던 위사영이었기에 그 결정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위사영의 동공이 확장되며 시야가 넓어진다.
‘넷. 아니, 다섯인가.’
그조차 실체를 확신하기 어려울 만큼 은밀한 눈들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위사영은 담담하게 찻잔을 잡으며 말했다.
“그게 궁금해서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닐 것이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은 운화결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무면산왕이 흑전원주와 회동을 가졌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소.”
“그간 중원맹 소속 방파들이 그들의 영역을 통과하며 통행세를 납부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위사영의 눈짓을 받은 적모개가 대신 답했다.
“산적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산적이 나타날 뿐입니다. 적절한 규율로 그들을 묶어둔다면 괜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지요.”
실제로 상천이 등장한 이후 마적과 도적이 사라지며 이동이 한결 더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젠 통행세를 낼 필요가 없겠습니다.”
적모개가 물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턱을 괸 운화결의 목소리가 실내에 낮게 깔린다.
“그들은 흑전원을 통해 스스로가 산적이 아닌 무림 방파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산적처럼 길 가는 사람에게 통행세를 받는 짓은 관둬야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적모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역시 상천과의 싸움에 우릴 끌어들이려 하는구나.’
뭔가 말을 하고 싶었으나 섣불리 입이 열리지 않는다.
상천과는 사천에서 작은 인연이 있다.
여기서 의견을 피력한다면 숨은 속내가 있는 게 아닐지 오해할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내가 오는 게 아니었는데.’
상천의 이야기를 꺼내리라고 대강 예상했음에도 달리 보낼 사람이 없었다.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사영이 담담하게 물었다.
“부각주의 생각은?”
“통행세에 대해 관에서 묵인했다면 우리가 따질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관과 무림이 각자의 위치를 존중하고 서로의 영역에 개입하지 않는 만큼, 상천을 무림의 질서에 편입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합니다.”
통행세에 대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적모개의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답변이었다.
운화결이 말했다.
“상천에겐 통행세를 제외하면 수익을 낼 곳이 없습니다. 다시 산적질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이어서 운화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서로 손을 잡는 게 어떻겠습니까?”
위사영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적모개가 답했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상천의 제천지사와 회동을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적모개의 날카로운 말에도 운화결은 느긋하게 차를 들었다.
“흑전원과 상천의 회동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소. 충돌이 불가피하다면 그 전에 내 눈으로 상대를 직접 봐두고자 했을 뿐이오.”
“본 맹을 택한 게 차선책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운화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우리가 진심으로 상천과 손을 잡으리라 생각하셨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지.”
가만히 듣고 있던 위사영이 말했다.
“그래서 손을 잡고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중원맹에 속한 방파들의 주된 수익원은 기루와 객잔을 비롯한 사업장이지요. 세력 확장을 원한다면, 상단과의 연계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과거의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한 중원의 방파들은 조금씩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상단에 손을 뻗고는 있으나 규모 있는 상단의 대부분은 오대표국과 함께 하는 탓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적모개가 물었다.
“손을 잡으면 거래처 일부를 양보하겠다는 말입니까?”
힘주어 말하는 운화결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천하 각지에 흩어진 상천의 산채. 그 자리에 함께 지부를 세워 관리한다면 통행세를 아끼고 더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된다면 귀 맹과 오대표국은 이권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림 방파로 거듭나고자 하는 상천이 계속해서 통행세를 받는다면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적모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단순히 이익만 생각하면 이권이 겹치지 않는 상천과 손을 잡는 게 더 낫겠지만…….’
과거의 실수에서 천하대전을 겪은 중원의 방파들은 비리와 부정을 타파하고 쇄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맹주를 두지 않다가 일인전승의 무공을 익힌 위사영을 초빙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 이들이 산적 출신의 상천과 쉽게 손을 잡을지 의문이었다.
‘상천이랑은 왠지 싸우기 싫은데.’
단순히 지나간 인연 때문이 아니라 왠지 모를 꺼림칙한 느낌이 있었다.
위사영의 침묵 속에 적모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듯합니다. 돌아가서 논의를 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위사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운화결이 옅은 미소로 말했다.
“좋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온 운화결이 안채의 건너편 방문을 열었다.
침상에 앉아있던 임교영이 배시시 웃으며 일어났다.
“맹주는 어떤 사람이던가요?”
“과연 명성에 걸맞은 무인이더구나.”
위사영이 운화결을 살핀 것처럼, 운화결 역시 대화 내내 그의 면면을 탐색하고 있었다.
운화결은 그녀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나 내 상대는 아니다.”
검제 위사영은 당금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엄청난 고수.
그럼에도 운화결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안도한 얼굴로 그의 품에 기댔다.
“상공은 역시 대단해요.”
안도한다는 것은 반대로 불안을 품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나를 믿어라.”
“그럼요. 그럴 거예요.”
빙그레 웃은 운화결이 손을 흔들자 촛불이 꺼졌다.
그녀를 품에 안은 운화결은 침상에 몸을 뉘었다.
“그대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 아무것도.”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두 사람의 눈이 천천히 감긴다.
정적 속에 둘의 가슴이 고르게 오르내릴 무렵.
‘무결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오며 새까맣던 운화결의 세상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무결아!”
선명한 외침과 함께 매캐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귓속을 파고드는 선명한 외침에 화무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원을 집어삼킨 화마가 하늘로 솟구치는 가운데 사방에서 쇳소리와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비명에 고개를 돌리는 사이, 곁에서 다그치는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어머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어서 뒷문으로 나가거라!”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분노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감히 어딜 간단 말이냐!”
놀란 여소화가 다급하게 돌아서며 화무결을 뒤에 감췄다.
“이 아이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시꺼먼 얼굴의 중년인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네놈들 화가보(樺家堡)가 따르던 팔황문은 내 아들에게 죄가 있어 죽였다더냐?”
어린 화무결은 그제야 팔황문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도 수 오십에 불과한 본 보가 무슨 힘이 있어 소림까지 무너뜨린 팔황문을 거역하겠습니까?”
여소화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곡히 청했다.
“내 목은 얼마든지 내어드릴 터이니 제발 이 아이만큼은 살려주십시오.”
오싹한 살기와 함께 핏빛 도신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네년의 목도, 네년 아들놈의 목도 내 아들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벼락같이 떨어지는 도신이 그녀의 몸을 대각으로 갈라버렸다.
서걱!
시뻘건 피가 화무결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아!”
피에 흠뻑 젖은 얼굴, 요동치는 아이의 눈동자에 시꺼먼 사내의 얼굴이 담긴다.
“아아…….”
이어서 비명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내는 광기에 젖은 미소로 도를 치켜들었다.
“네 아비는 이미 전장에서 죽었을 터, 네놈도 양친의 뒤를 따라가거라.”
쌔애액!
파공성을 흘리는 도신이 눈앞에 도달하기까지.
그 찰나의 순간이 화무결에겐 영겁의 시간처럼 느리게만 느껴졌다.
‘어째서.’
화가보는 어째서 팔황문의 강압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모친은 왜 눈앞에서 죽어야 했는가.
고작 다섯 살에 불과한 자신은 왜 여기서 죽어야 하는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가며 세상을 향한 분노가 육신을 잠식했다.
‘전부 다 죽여버리고 싶다. 전쟁을 벌이고 남의 목숨을 손쉽게 빼앗는 무뢰배들. 무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
다섯 살 어린아이의 두 눈에 지독한 혈광이 번뜩이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한 줄기 섬광이 사내의 도신을 강타했다.
쾅!
“큭!”
도를 놓치고 신음하는 사내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퍽!
그와 동시에 느리게만 흘러가던 아이의 세상이 본래의 흐름을 되찾아간다.
불길을 뚫고 나타난 흑의인은 마치 아이를 아는 사람처럼 물었다.
“네가 화무결이라는 아이더냐?”
짓이겨진 뇌수를 뒤집어쓴 화무결이 히죽 웃었다.
“맞아요.”
“무엇이 즐거우냐?”
화무결의 표정은, 눈앞에서 모친을 잃은 다섯 살 어린아이가 지을 표정이 아니었다.
“한 놈이 죽었잖아요.”
“한 놈이라?”
영문 모를 말에 흑의인의 고개가 갸웃했다.
화무결의 광기 어린 미소가 흑의인에게 향했다.
“무인이라 자처하는 자 한 명이 사라졌단 말입니다.”
“그것이 즐거우냐?”
“세상에 분란만 일으키는 족속이 죽었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그 섬뜩한 표정처럼 아이답지 않은 답변이다.
‘천살성(天殺星)을 타고난 아이라 하여 와봤는데 사실과 다르군.’
분노의 대상이 명확한 것을 보면 천살성은 아니다.
‘이 아이는 천살성으로 다가가는 별이로구나.’
타고난 살귀는 아니나 살귀가 될 기질이 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주변을 둘러본 흑의인이 말했다.
“아무래도 싸움이 끝난 모양이다. 화가보를 공격한 자들은 전부 죽여주마.”
“아니요.”
화무결은 그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갖췄다.
“저를 지붕 위로 데려가 주세요.”
흑의인은 두말없이 아이를 번쩍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화마에 휩싸인 장원.
한 폭의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시산혈해의 참상.
바닥에 번져 나가는 뜨거운 피는 저들이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춤추듯 흩날리는 불길 너머로 사방을 수색하는 적도들이 보인다.
화무결은 그들 아홉 명의 얼굴을 뇌리에 깊숙이 새겼다.
“내 이름을 아는 걸 보면 은공께서는 나를 만나러 오신 거겠죠.”
“그렇다.”
“제게 무공을 가르쳐주실 건가요?”
“내가 아니라 내가 모시는 분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것을 배우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무엇을 하고 싶으냐?”
“세상 모든 무인을 죽여버리고 무림을 없애고 싶어요.”
흑의인은 실소를 흘렸다.
‘아이다운 단순함인가, 아이답지 않은 독기인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했다.
“네가 하기에 따라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
“가요.”
“모친의 시신을 수습해줄 수도 있다.”
화무결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지금의 마음은 수습하고 싶지 않아요.”
무엇 하나 평범한 대답이 없다.
쓴웃음을 지은 흑의인은 화무결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럼 출발하지.”
지붕을 박찬 흑의인이 순식간에 담장을 넘었다.
타오르는 장원에 점점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다.
‘세상에서 무림이라는 먹구름을 걷어내고 돌아올게요. 어머니.’
굳은 다짐이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 캄캄해지던 세상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상공!”
귓속을 파고드는 외침과 함께 꿈속에 머물던 운화결의 시간이 현재로 돌아왔다.
슬며시 들어 올린 눈꺼풀 아래로 걱정 가득한 임교영의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