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
◈ 16화. 화광충천(火光充天)
야심한 시각에 떠오른 화광은 마치 저녁노을을 연상케 했다.
대검문의 운성각.
처마 끝에 올라선 대검문주 종비웅은 먼 하늘을 응시했다.
“아름다운 하늘이로다.”
처마 아래로 붉은 비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운성각주 방사윤의 목이 처마 끝에 걸린 탓이다.
핏물 고인 웅덩이 앞에 선 묵인표의 표정이 복잡했다.
‘한 번의 실수로 개파 공신의 목을 치는 독심이라, 비정 강호로구나.’
종화기가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준비하지.”
소문주 종화기와 낭인의 수봉 묵인표. 두 사람의 임무는 텅 빈 마도림을 불태우는 것이다.
“예.”
묵인표의 소집에 낭인들이 집결하며 출발 준비를 마쳤다.
종화기는 부친을 올려보며 예를 갖췄다.
“다녀오겠습니다.”
“기다려라.”
“서두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일을 믿고 맡길 놈이 하나도 없군.”
영문 모를 말에 살짝 입술을 깨문 종화기는 눈으로 부친의 시선을 좇았다.
종비웅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적에게 절망을 선사하겠다고?”
쾅!
입구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과 함께 종화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하늘로 솟구치는 찢어질 듯한 비명이 점점 가까워졌다.
“내 자식만 아니었으면 네 목도 이 자리에 걸려있을 거다.”
말이 끝나는 순간 운성각의 정문이 박살 나며 한 무리의 무인들이 돌입했다.
“마지막 인사는 반갑게. 그게 우리의 약속이었지?”
선두에 선 진무립이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기쁘구나. 종화기.”
종화기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진무립.”
지부를 치러 간 놈이 어떻게 이 자리에 나타난단 말인가?
종화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것이냐!’
일그러진 종화기의 얼굴을 본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그래도 좀 쓸만한 놈인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멍청하네.”
종화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서북로의 화광처럼 대검문의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무인들 사이로 걸어 나온 초무강이 종비웅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오. 종문주.”
종비웅의 낯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랜만이군. 림주.”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도무지 초대를 안 해주기에 내 직접 왔소이다. 혹시 실례가 되었소?”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내가 찾아갔을 테니 실례랄 것은 없네.”
훌쩍 뛰어내린 종비웅은 허리춤의 검집을 풀었다.
“사방이 적이라······.”
대검문에 남은 무인은 낭인을 제외하면 고작 일백 남짓.
비명이 잦아드는 것을 보면 곧 남은 적이 들이칠 게 확실하다.
종비웅의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번졌다.
“내 집에서 이런 상황을 맞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소문주 종화기가 부친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자가 길을 뚫겠습니다. 서북로까지 가면 전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시린 눈빛만큼이나 싸늘했다.
“목숨을 걸어라.”
“예.”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집어삼킨 묵인표는 하는 수 없이 종화기의 곁에 섰다.
그간 자신들이 중경에서 행한 일을 생각하면 항복한다고 살려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포위가 굳혀지기 전에 가시죠. 소문주.”
“가자.”
비장하게 눈을 빛낸 종화기가 서쪽으로 치달았다.
그 뒤로 종비웅이 몸을 날리자 초무강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문주는 내가 맡겠다.”
폐쇄적인 사천 무림의 형편상 중원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사천신검(四川神劍) 종비웅이라 하면 사천에선 적수를 찾기 힘든 고수다.
하지만 파성마검(破星魔劍) 초무강도 만만치 않은 고수.
초무강은 파성마검이 사천신검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강하게 검초를 흩뿌렸다.
“칫.”
오싹한 흑광이 장대비처럼 쏟아지자 부친의 앞을 막아선 종화기는 전력을 쏟아냈다.
새하얀 빛줄기가 흑광에 부딪치는 순간.
카카카캉!
오싹한 쇳소리와 함께 종화기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고 마도림의 고수들은 순식간에 주변을 포위했다.
[정신 차려라! 어디서 감히 그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냐!]부친의 일침에 종화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죄송합니다.] [목격자를 전부 죽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절대 사용하지 마라.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라!]부친의 잔혹한 전음에 종화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검문주 부자가 인의 장막에 가려졌으나 진무립의 눈동자는 여전히 종화기의 무공을 떠올리는 듯했다.
‘조금 전 그 검초는······.’
진무립은 서둘러 운성각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난전이 벌어진 가운데 사천신검과 파성마검은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고 종화기와 낭인들은 원진을 형성해 극단적인 수비를 펼치고 있었다.
‘진의 중심은 묵인표다.’
진무립은 즉시 유대하를 찾았다.
전투에서 한 걸음 물러선 유대하는 검을 쥔 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와 달리 동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다시 식충이로 돌아가고 싶냐? 다른 놈은 볼 것도 없어. 한 놈만 잡아!]진무립의 전음에 유대하는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볼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소공자의 말대로다. 여기서 망설이면 차라리 검을 꺾는 게 낫다!’
신법을 전개한 유대하는 즉시 전방으로 치달으며 묵인표를 향해 강력한 일검을 내질렀다.
치잉!
갑작스러운 일격에 묵인표의 도신이 흔들렸다.
“식충이 주제에 감히!”
워낙 많이 들어온 이야기라 아무렇지도 않다.
흑도패한테 얻어맞고 다니는 소공자를 모시는 몸으로 자존심을 내세울 생각도 없다.
씩 웃은 유대하는 검파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너는 오늘 식충이한테 죽는 거다.”
묵인표가 묶이자 원진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진무립은 곧장 두 명의 원주를 지붕으로 불렀다.
“대검문에 남은 무인은 저들이 끝이다. 두 사람은 무인의 절반을 이끌고 서북로를 구하러 가라. 나는 이곳의 정리를 끝내고 함께 가지.”
마치 날 때부터 위에 선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명령에 둘의 고개가 전장으로 향했다.
상황을 지켜보니 일선에 자리가 없어 서성이는 무인이 훨씬 많았다.
“알겠소이다.”
우가산이 먼저 몸을 날리자 상호군은 흑영대주 지월인을 불렀다.
“자네는 지금부터 싸움이 끝날 때까지 소공자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게.”
림주 초무강과 함께 움직이며 진무립의 심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지월인이다.
승패에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진무립이 쥐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지월인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상호군이 지붕 아래로 몸을 날리자 진무립은 혀를 찼다.
“쓸데없는 짓을.”
진무립의 눈이 다시 대검문주 부자에게 닿았다.
‘감추고 있다.’
초무강과 맹렬한 기세로 접전을 펼치는 종비웅이었으나 진무립의 눈에는 보였다.
초식과 초식 사이의 미세한 어색함.
무명에 신검이 붙은 자의 무공 치고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의혹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던 진무립은 마침내 그가 숨기는 검술이 무엇인지 확신했다.
‘초식의 연계에서 느껴지는 어색함, 그 무공의 초식을 억지로 바꾼 게 분명하다!’
진무립의 눈에 확신이 떠오른 순간, 마침내 유대하의 검이 묵인표의 목을 꿰뚫었다.
“컥!”
유대하는 쓰러져가는 묵인표에게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잘 가라.”
묵인표의 죽음과 함께 낭인들이 빠르게 무너지며 전황이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다.
종비웅 부자도 전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조금씩 움직임에 변화를 가져가고 있었다.
품에서 뭔가를 꺼낸 진무립은 지월인을 불렀다.
“이봐.”
“예. 소공자.”
“이걸 환마각주에게 전하고 와라.”
진무립이 내민 것은 손바닥만 한 노리개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제까지 귀신 같은 계책으로 아군을 이끌어온 진무립이다.
반문하지 않고 몸을 날린 지월인은 환마각주 앞에 도착했다.
“각주님. 소공자께서 이걸 전하라고 하십니다.”
노리개를 본 조양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엇인가?”
“그냥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내려온 김에 부하들을 살핀 지월인은 다시 지붕으로 올라갔다.
“전했습······. 소공자?”
진무립이 보이지 않았다.
지월인의 눈이 커지는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이 하늘로 솟구치며 전황이 급변했다.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던 종비웅이 싸움이 불리해지자 마도림 무인들을 방패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종비웅!”
분노한 초무강이 추격하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간격을 넓히고 공간을 만들어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무인들은 서둘러 초무강과 종비웅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아들의 목덜미를 낚아챈 종비웅은 잔혹하게도 종화기를 초무강에게 던져 버렸다.
“컥!”
별안간 끌려간 종화기의 눈앞에 시꺼먼 섬광이 번뜩였다.
카앙!
가까스로 공격을 받아낸 종화기의 귀로 잔인한 전음이 들려왔다.
[네 쓸모를 증명해라.]넓게 벌어진 간격. 신법을 전개해 도약하기 충분한 공간이다.
아들마저 소모품 취급한 종비웅은 순식간에 포위를 뛰어넘어 서쪽 담장을 넘었다.
“종비웅!”
추격하려던 초무강의 귀에 진무립의 전음이 들려왔다.
[쫓다 보면 시간을 지체합니다. 소수만 남기고 서북로로 가십시오! 종비웅보다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종비웅이 사라진 담장을 노려보던 초무강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크흐흐.”
홀로 남은 종화기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쓸모를 증명하라?”
두려울 것 없던 대검문의 소문주에서 한순간에 버림받은 자식으로.
계책에선 진무립에게 완벽하게 패했고 자신은 사면초가의 위기다.
처지가 이보다 비참할 수 없었다.
“그래. 증명해드리지.”
눈에 핏발을 세운 종화기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초무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놈은 대체······.’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기운.
진무립의 의견에 따라 소수를 남긴다면 당해내기 어렵다.
‘내가 해야한다.’
결정을 내린 초무강은 검을 움켜쥐며 말했다.
“환마각주는 즉시 서북로로 가시오. 나는 여길 정리하고 뒤따르겠소.”
종화기의 기세를 감지한 조양흘은 초무강을 홀로 남겨둘 수 없었다.
“흑영대를 남기고 가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환마각주 조양흘이 무인들을 이끌고 사라지자마자 종화기의 공격이 시작됐다.
“크흐흐!”
“숨겨둔 한 수가 있었구나.”
초무강의 두 눈에 섬뜩한 살광이 번뜩였다.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
대검문을 탈출한 종비웅은 이가 부서질 정도로 바드득 갈았다.
‘초무강!’
충분히 찍어누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그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다행스럽게도 놈들이 공간을 내준 덕에 도망칠 수 있었으나 뼛속까지 치미는 굴욕감은 견디기 힘들었다.
‘초무강.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북로에 보낸 전력과 합류하면 다시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며 전력으로 달리던 종비웅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살기!’
바닥에 몸까지 굴린 종비웅이 벌떡 일어났을 때,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청년이었다.
“네놈은······. 마도림의 소공자로구나.”
진무립은 숲속에 스며드는 달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종비웅.”
“겁도 없이 혼자 나를 기다린 것이냐?”
싱긋 웃는 진무립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더니 종국엔 사방을 얼려버릴 만큼 차갑게 변했다.
“겁이 없는 건 나일까? 너일까?”
“뭣이?”
그 순간 진무립의 전신에서 엄청난 한기가 쏟아져 나와 사방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겨울이 멀었음에도 내쉬는 숨결은 뽀얀 입김으로 변해간다.
딱딱히 굳은 종비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떨리는 목소리에 화답해 진무립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검성(劍星) 몽연의 무공. 유운천예검(流雲千銳劍)을 회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