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0
◈ 160화. 머리가 아닌 가슴
혼란에 빠져있던 두 사람은 진무립의 날카로운 일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백환이 떨리는 눈으로 물었다.
“그, 그대가 정말 무면산왕이란 말이오?”
“그다지 좋아하는 무명은 아니지만 내가 상천의 천주라는 사실은 다르지 않지.”
“허!”
당금 무림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자 천하십대고수의 일인.
그런 이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짧은 말투 따윈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진무립은 느긋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국주. 내 말이 틀렸다고 보나?”
신노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겐 내 나름의 신념이 있소. 지금까지 나와 표사들은 같은 뜻을 품고 오늘까지 왔소이다. 우리가 쌓아온 것들을 부정하지 마시오.”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대량표국의 표사와 식솔들이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함이오.”
“그것이 배를 곯는 어린아이들보다 소중한가?”
신노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진무립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부하들에게 옷을 기워 입히고, 곳간이 비어 식솔에게 변변한 식사조차 제공하지 못하면서 신념을 지키면 세상이 알아주나?”
신노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린 길을 막고 통행세나 뜯는 그대들과 다르오! 정도를 걷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는 법! 부끄럽게 살며 하루 세끼 배불리 먹느니 한 끼를 먹더라도 떳떳하게 살 것이오.”
“하하하하!”
진무립이 광소를 터트렸다.
“나는 내 신념을 관철하겠다고 어린아이를 굶기지 않는다. 산채를 통합하고 정해진 규율에 따라 통행세를 걷은 건 우리의 가족을 배불리 먹이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정도가 아니오.”
“정도를 걸으면 언젠가 빛을 봐? 장담할 수 있나?”
신노군은 꿋꿋하게 확신하듯 말했다.
“장담하오.”
그 말에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화.”
뒤에 시립한 수문화가 고개를 숙인다.
“예. 주군.”
“지금 당장 대량표국의 문을 닫아라.”
“명을 받듭니다.”
수문화가 말릴 틈도 없이 나가자 사색이 된 신노군과 백환이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오!”
“이보오. 천주!”
복면 위로 드러난 진무립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그대가 지켜온 신념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줄 생각이다.”
진무립은 그대로 문을 나섰다.
백환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정말 대량표국을 공격하겠다는 말인가!’
일이 이리되면 자신은 토끼굴에 맹수를 들인 게 된다.
그러나 관인인 자신은 나설 명분이 없다.
‘내 옷을 벗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야 한다.’
다급히 뛰쳐나온 두 사람이 마당에 내려섰을 때였다.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묘한 향기가 그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건…….”
그 어디에서도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두용청이 나타나더니 두 사람에게 공손히 예를 갖췄다.
“천주님께서 두 분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말이오?”
두용청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둘은 할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개의 작은 문을 빠져나간 신노군은 내심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문을 지켜야 할 자들이 전부 어디에 갔단 말인가?’
외부인이 방문한 만큼 평소보다 두 배는 경비를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표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식당 뒤편의 컴컴한 공터였다.
어둠 속 은은한 횃불 아래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오고 간다.
“이것도 한잔 마셔보게.”
“이게 뭔가?”
“두향주(荳香酎)라고 하더군.”
폭이 십 장 남짓한 공터가 표국의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빼곡했고.
삼삼오오 모여앉은 곳마다 향긋한 주향이 풍기는 술과 음식으로 가득하다.
표사와 식솔들은 마치 사흘이나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음식은 많으니 천천히 드세요.”
단려화와 은수련, 그리고 은무대는 두 대의 수레에서 쉴 새 없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진무립의 지시를 받은 서진환과 은무대가 기루의 음식을 사 온 것이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언성을 높이자 추레한 여인이 다급히 입을 막았다.
“쉿! 목소리를 낮추어라.”
자라목을 하고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눈엔 왠지 모를 불안함이 가득하다.
그녀의 피곤한 눈과 마주치려는 순간.
신노군은 다급하게 백환을 끌어당겨 모퉁이 너머로 숨었다.
“…….”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건 자신에게 들킬까 싶은 걱정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신노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지금 눈으로 본 것은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가슴이 미어지는 차가운 현실이다.
“큭…….”
마음의 한 조각이 굵은 눈물방울과 함께 뚝 떨어지는 느낌.
“어머니. 이것도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어요.”
모퉁이 너머로 어린아이의 밝은 목소리가 비수처럼 가슴을 찔러온다.
‘나는 왜 저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단 말인가.’
참담한 현실 앞에 지금까지 품어온 신념이 모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자네…….”
백환이 가만히 그의 어깨에 온기를 전할 때, 바로 앞의 어둠 속에서 진무립이 나타났다.
“이것이 그대가 신념을 지켜온 결과.”
진무립은 신노군의 앞에 멈춰 서며 속삭이듯 물었다.
“만족하는가?”
“…….”
“내 작은 호의가, 그대가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음식을 치우고 떠나주지.”
우두커니 서 있던 신노군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냥…… 두시오.”
그는 축 처진 어깨로 무겁게 발을 돌렸다.
신노군과 진무립을 번갈아 보던 백환은 복잡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복면 아래로 쓴웃음을 지은 진무립이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두용청은 나직이 읊조렸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나.”
힘 한 번 쓰지 않고 약점을 이용해 국주의 신념과 마음을 무너뜨린다.
스며드는 바람과 함께 가슴이 서늘해질 때였다.
“반쯤은 진심이었을 겁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수문화가 그의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이건 머리로 계산한 계획이 아닙니다.”
“예?”
“주군의 세상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선이라니요?”
“적과 아군으로 구분된 선을 말하는 겁니다. 선의 안쪽에 들어온 자들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겁니다.”
수문화는 표국의 식솔들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주군께선 어떤 상황에서도 어린아이를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저들에게 밥을 먹인 것은 국주의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아아…….”
두용청은 내심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주군과 나는 조금 다릅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돌아서는 수문화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틈은 있습니다. 나는 주군의 빈틈을 채우는 존재. 하여 이 상황을 이용해야겠습니다.”
처소로 돌아온 신노군과 백환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조금 전 보고 온 상황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신노군은 착잡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형님.”
“말씀하시게.”
“제가 인생을 헛살았던 모양입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저들이 자네를 원망했다면 다른 이들이 떠날 때 함께 떠났을 것이네.”
“태산표국에 밀려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도 저들만큼은 제 곁에 남아주었습니다.”
“우직한 이들이지.”
작게 열린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래서 제 신념에 동의하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부족해도, 모자라도 같은 뜻으로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줄 알았습니다.”
“틀리지 않네.”
신노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저와의 의리로 남은 것이지 헛바람만 잔뜩 든 제 신념에 동의하는 건 아닐 겁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의리를 지켜온 충직한 자들을 배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자조 섞인 그 말에 백환은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볼을 타고 흐르는 신노군의 눈물이 은은한 촛불에 반짝인다.
“하하하.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헛된 신념이었습니다.”
신노군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수문화입니다.”
신노군을 슬쩍 살핀 백환이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오.”
수문화는 품에서 꺼낸 술병 세 개를 흔들어 보였다.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백환이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잘 오시었소. 마침 술 생각이 간절하던 참이라오.”
수문화는 자리에 앉으며 술병을 탁자에 올렸다.
“제일 독한 술로 가져왔습니다. 한 모금씩 하시지요.”
“고맙소.”
신노군은 술병을 덥석 잡고 거침없이 입에 들이부었다.
독한 술로 쓰린 속을 덮고 싶은 사람처럼.
단숨에 절반을 들이켠 신노군이 소리 나게 병을 내려두었다.
“이보시오. 총사.”
“말씀하십시오.”
“형님의 말씀처럼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도움을 받고 싶구려. 그런데…….”
수문화를 바라보는 신노군은 솔직하게 말했다.
“가슴이 뭐에 막힌 듯 답답하외다.”
에둘러 말해도 무슨 뜻인지 전해진다.
수문화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국주께서 지켜온 신념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을 보고 내 어찌 고집을 부리겠소.”
“국주께서는 지나온 과거와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하십니다. 한데 어째서 우리의 과거에 얽매이려 하십니까?”
수문화는 짙어진 눈동자에 신노군의 얼굴을 담았다.
“상천에 들어오십시오.”
백환이 눈에 이채를 띠고 쳐다보는 가운데 신노군이 물었다.
“상천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오?”
“우리는 지배하는 것도 군림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무림의 구성원이 되어, 우리의 가족들이 마음 놓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다시 술 한 모금을 들이켠 신노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의 말이 옳다. 헛되이 보낸 시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 이들의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무엇인가?’
상천은 더 이상 산적이 아니라 흑전원에서 인정한 무림 방파다.
관점을 바꾸니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못난 수장을 따르며 고생길만 걸어온 이들에게 이제라도 사람답게, 무인답게 살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것은 상천이 바라는 이상과 같은 길이다.
“천주님을 만나게 해주시오.”
수문화는 옅은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지요.”
수문화는 신노군을 진무립의 처소로 데려갔다.
정중히 예를 갖춘 신노군이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상천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진무립이 수문화를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오로지 그대의 의지인가?”
“식당 뒤에 숨어서 밥을 먹는 자들은 어리석은 수장과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가시밭길만 걸어왔습니다. 그들에게 사람답게 살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진무립은 가만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
흔들림 없는 눈빛에 담긴 것은 진심이었다.
“좋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들어둬야 할 것이 있다.”
진무립은 상천의 역사, 지나온 길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나씩 숨겨진 비사가 드러나자 신노군은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무려 반 시진에 걸친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신노군은 비로소 진무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서는 따르는 자들을 지켜낼 수 없는 고독한 길.’
상천은 세간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라도 가족을 살리기 위한 길을 걸어왔다.
알량한 고집으로 고된 길만 걸어온 자신과는 다르다.
‘이런 사람은 위기를 함께 겪은 이들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충직한 표사들에게 어울리는 주인이다.
신노군은 망설임 없이 포권을 취했다.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