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2
◈ 162화. 제남으로
구름 낀 하늘이 한바탕 쏟아낼 듯 먹먹하다.
표국에 들어선 지 이틀이 지난날, 백환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정문을 나섰다.
‘참으로 다행이로다.’
상천의 입장에선 오대표국을 대신할 기반을 마련했고 대량표국의 입장에선 자신들을 비호할 뒷배를 얻은 셈이다.
고집을 버린 매제가 새로운 꿈을 꾸게 됐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백환이 정문 밖에서 뒤를 돌아볼 때였다.
말의 머리 밑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감님. 거 좀 비켜봐요.”
“음?”
고삐를 당기니 추레한 몰골의 청년이 불편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추워 죽겠네. 좀 지나갑시다.”
“허허. 미안하네.”
멋쩍게 웃은 백환이 말을 몰아 자리를 떠났다.
정문 앞에 멈춰선 동초개는 고개를 들어 현판을 빤히 쳐다봤다.
‘대…… 표국? 뭐 세 글자는 맞으니까 대량표국이겠지.’
이곳을 찾는 것은 쉬웠다.
가까운 산채에 들어가서 길을 물으면 되었으니까.
헛기침을 한 동초개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표사에게 물었다.
“여기 혹시 상천의 식구들이 머물고 있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동초개는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개봉에서 동초개가 왔다고 전해 주십쇼.”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안으로 들어갔던 표사가 금세 돌아왔다.
“모시겠습니다.”
동초개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가봅시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근방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지인가?”
오랜 사천 생활로 제법 깔끔한 의복을 유지해온 동초개였다.
그러나 지금은 며칠을 바쁘게 달린 터라 상거지 꼴을 하고 있었다.
“거지 맞지?”
한 아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아니야. 이젠 많다고 그랬어.”
“그래서 저 사람은 거지야?”
무시하려 했으나 자꾸 거지 소리가 나오니 왠지 거슬린다.
동초개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래! 나 거지다! 됐냐!”
“거지 아저씨가 화났다!”
“도망치자.”
움찔한 아이들이 우르르 사라졌다.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고개를 돌려보니 단려화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반가운 얼굴에 동초개가 활짝 웃었다.
“소저! 하하하!”
수문화와 함께 회의를 준비하던 진무립은 모처럼 만난 동초개를 반갑게 맞았다.
자리에 앉은 동초개는 개봉에서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적모개에게 들었던 금성표국주와 맹주의 밀담 내용, 관제묘에서 습격을 당했던 일.
그 모든 것을 설명한 동초개는 출발 직전 적모개가 써준 서신을 꺼냈다.
서신을 펼친 진무립은 그만 실소를 흘렸다.
동초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라고 쓰여있는데요?”
“네가 방금 한 이야기가 전부 쓰여있다. 까먹을 게 뻔하다며 글로 써뒀다는군.”
동초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진무립은 수문화에게 서신을 넘기며 물었다.
“그래서 세 사람의 상태는 어떻더냐?”
“크게 다치긴 했으나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고 쉬면 괜찮아질 거랬어요.”
“다행이로군.”
고개를 끄덕이는 진무립의 눈에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운화결.’
자신의 사람을 다치게 한 죄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서신을 읽은 수문화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자가 권성과 장성의 무공을……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범상치 않은 자라는 건 만난 순간부터 직감하고 있었으나 설마 은곡의 무공을 익혔을 줄은 몰랐다.
“주군. 다른 은곡에 팔성의 무공을 익힌 자가 또 있었습니까?”
“전부 죽었으리란 보장은 없지. 당장 사천에서도 만난 적이 있으니까.”
비록 불완전하다곤 하나 대검문주 종비웅도 검성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흑무진천도를 익힌 육군명 또한 그렇다.
드넓은 천하 어딘가에 자신들이 모르는 생존자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문화가 말했다.
“두 가지 무공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과거 팔황문에서도 문주 황운천밖에 없었습니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다.”
“행여 그자가 팔천영신공을 익혔다면…….”
“그건 아무나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야.”
천음지체를 타고난 자신도 팔천영신공을 수련할 때 몇 번이나 사경을 헤매야 했다.
천하에 자신 말고 이것을 익힐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건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진무립은 동초개에게 물었다.
“혹시 세 사람의 정체가 놈에게 노출되었나?”
동초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상천이라는 건 모를 거예요. 만일 이야기를 들었다면 사천에서 온 지인이라는 건 알지도 모르겠어요.”
진무립은 고개를 돌렸다.
[진환. 개봉에 대원 두 명을 보내라.]앞으로의 상황을 고려하면 개봉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자가 필요했다.
[예. 주군]서진환의 기척이 사라질 무렵, 수문화는 서랍에서 지필묵을 꺼냈다.
상천의 정체가 은곡이라는 것은 언젠가 알려질 일이다.
그러나 저들이 사천의 정보를 캐다 보면 자칫 꼬리를 잡혀 이쪽의 계획과 무관하게 정체가 노출될 수도 있었다.
서신을 작성한 수문화가 밖을 향해 외쳤다.
“이상!”
문이 열리며 그의 호위 정이상이 들어왔다.
“예. 총사.”
“시평은 지금 어디 있나?”
“국주와 대화를 나누는 모양입니다.”
“부곡채로 보낼 서신이다. 시평에게 전해줘라.”
부곡채주 백채륜이라면 공위맹에 접근하는 자들을 차단할 수 있을 터.
시평의 양산채에서 흑혈매를 이용하면 닷새 안에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서신을 갖고 나가자 진무립이 물었다.
“여기서 제남까지 얼마나 걸리지?”
“수레를 끌고 가면 사흘은 걸릴 겁니다.”
“직접 태산표국을 확인해야겠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동초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만약에 산동거사(山東巨士) 청금환이 그 무공을 익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청금환은 태산표국의 국주였다.
진무립이 답했다.
“만일 그 무공을 익힌 자가 금성표국주 말고 더 있다면 천하는 두 번째 환란을 맞게 될 수도 있겠지.”
동초개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이 상천과 같은 의도로 정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면 진무립의 말대로 될 확률이 높다.
전란이 일어나면 같은 무공을 익힌 상천이 휘말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는 사람이 다치는 건 싫은데…….’
동초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의 마음을 느꼈는지 진무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느라 수고 많았다. 가서 씻고 쉬어라.”
“밥은 언제 줘요?”
“일러두마.”
히죽 웃은 동초개가 밖으로 나가자 진무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뇌를 소집해라. 회의다.”
수문화가 고개를 숙였다.
“예.”
* * *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매섭게 파고드는 가운데, 대량표국의 대전에 수뇌들이 집결했다.
상석에 앉은 진무립은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벌써부터 겁을 줄 필요는 없지.’
이제 막 상천의 가족이 된 이들이 동초개가 전해온 소식을 듣는다면 내심 불안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두용청.”
“예. 천주님.”
“현 시간부로 총사부 산하에 전이각(電移閣)을 신설한다. 초대 각주로 그대를 임명할 것이며 함께 온 표사들을 배속한다. 앞으로 표행과 관련된 업무는 총사와 의논해 처리하라.”
이곳까지 오며 지켜본 바로 두용청은 경험이 많고 제법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표행에 관한 일이라면 믿고 맡길 만했다.
믿기지 않는 말에 두용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싫은가?”
“아, 아닙니다!”
두용청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토록 빠르게 자신을 신임하리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년 표사로 지내야 했던 태산표국에서의 대우와는 천양지차였다.
진무립은 표국주 신노군에게 물었다.
“지금 표국과 거래하는 상단은 몇이나 되는가?”
신노군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곡부의 작은 상단 둘입니다.”
“지난 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고개를 들어라.”
“예. 천주님.”
진무립은 두용청을 바라보았다.
“태산표국의 거래처는 모두 몇 군데인가?”
“동진상단과 같이 규모가 큰 상단 다섯을 포함해 모두 서른둘입니다.”
이곳 대량표국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문화.”
“예.”
“상천의 이름으로 이 지역 모든 상단에 서신을 돌려라. 오늘부터 태산표국과 거래하는 상단은 통행세를 다섯 배로 받을 것이다. 그러나 대량표국을 이용한다면 통행세를 반으로 줄여줄 것이다.”
노림수가 먹혀든다면 태산표국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는 계획이다.
“알겠습니다.”
진무립은 이어서 양산채주 시평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산채에서 오십 리 안쪽으로 통과하는 태산표국의 표행은 통행세를 받아라. 거부하면 표물을 모조리 빼앗아 대량표국에 인계한다.”
제법 마음에 드는 명령인지 시평이 씩 웃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상천의 산채는 천하 각지에 산재해 있다.
관리 구역을 오십 리까지 넓힌다면 표행이 최소 세 배 이상은 느려질 것이다.
지금의 명령은 작정하고 붙어보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십 리라니…….”
진무립의 과감한 행동에 새로이 합류한 자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신노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주님. 섣불리 그들을 건드렸다간 오대표국 전원이 나설 수도 있습니다.”
수문화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진무립은 걱정스러워하는 신노군에게 물었다.
“남은 표사의 숫자는?”
“아, 일급표사 다섯을 포함해 모두 팔십입니다.”
최소 이천이 넘는 표사를 보유한 오대표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진무립이 실망했을까 우려한 신노군은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모두가 경험이 풍부한 이들로 천하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험만큼은 자신할 수 있었다.
두용청이 그를 거들었다.
“국주의 말이 옳습니다. 태산표국에서 가장 탐을 냈던 것도 바로 대량표국의 표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태산표국의 일급표사 중 상당한 수가 대량표국 출신입니다.”
대량표국이 태산표국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시평을 불렀다.
“이 지역 산채에서 똑똑한 아이들로 여든 명을 차출해라.”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진무립은 물 흐르듯 지시를 내려갔다.
“앞으로 일감이 늘어날 것이다. 국주는 양산채주가 보내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전수해라.”
“알겠습니다.”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내일 아침 대별산에서 이어온 표행을 마무리하러 갈 것이다. 남은 일은 총사와 의견을 나눠 처리하라.”
좌중이 일제히 일어나 예를 갖췄다.
“명을 받듭니다.”
* * *
다음 날 아침.
북상하는 동진상단의 표행에 대량표국의 깃발이 내걸렸다.
조용히 후미를 따르던 대행수 송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루아침에 대량표국을 손에 넣었구나.’
비록 태산표국에 맞서다 몰락했다곤 하나 대량표국의 이름값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무립이 탄 마차를 응시하던 송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량표국의 일이 왠지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우리 동진상단을 노린다면…….’
그간 상천이 보여준 수완을 보았을 때 충분히 먹히고도 남을 것 같았다.
‘허허. 이것 참 모르겠구나.’
송현이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을 때, 중열의 마차 안에선 나직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두용청의 부탁으로 안내역을 맡은 석두는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내,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가?’
앞에는 진무립과 단려화가, 곁에는 산동에서 악명 높은 청옥공자(靑玉公子) 시평이 앉아있다.
악명이라 봐야 태산표국에서 흘린 게 대부분.
그러나 그곳 출신인 석두에게 시평은 두려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마른침이 연신 넘어가는 가운데 시평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