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66
◈ 166화.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까
달빛 내린 태산표국의 심처.
정문에서 전투가 시작된 가운데 등을 맞댄 단려화와 은수련도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실수했어.’
복면 위로 드러난 단려화의 눈에 낭패한 기색이 스치듯 사라졌다.
담장 밑의 기관을 발견했을 때의 감지력.
전신의 세포가 활짝 깨어난 것 같던 묘한 감각에 한순간 의존했던 것이 실수였다.
두 여인의 짙은 눈동자에, 사방을 포위한 순백의 무인들이 담긴다.
‘대체 어디에서 이런 자들을…….’
은수련은 좀처럼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은곡이 전부일 거라 생각한 적은 없으나 이렇게 많은 숫자가 다른 곳에 있으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백표대 전원은 산채의 무인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거라.”
인의 장막 너머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백표대는 간격을 벌렸다.
그들 사이로 마치 관우가 살아온 것처럼 탐스러운 수염을 가진 중년인이 창을 움켜쥐고 나섰다.
“제법 오래 버티는구려.”
태산표국이 자랑하는 세 명의 대표두 중 한 명인 금모호(錦毛虎) 좌황이었다.
정중함 속에 담긴 날카로운 기도가 은수련의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만든다.
‘아가씨라도 보내드려야 한다.’
이 순간, 진무립의 당부와 더불어 서진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유는 왜일까.
사방을 살피는 단려화의 머릿속 역시 그녀 못지않게 복잡했다.
‘은소저만큼은 살려야만 해.’
자신의 실책으로 그녀를 다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길을 뚫을 테니 빠져나가세요.] [그럴 순 없습니다.]호위 대상을 두고 탈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려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둘 다 죽어요!]그 순간, 좌황의 솟구친 창날이 벼락 치듯 뚝 떨어진다.
“전음을 나눌 여유가 있소이까!”
타탓!
두 여인은 즉시 간격을 벌렸다.
쐐액!
땅에 처박힐 것만 같던 창날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더니 좌우로 흔들렸다.
샤아악!
그녀들이 수평으로 그어지는 창날을 피해 멀어졌을 때였다.
“표걸! 계화!”
좌황의 외침에 이어 좌측에서 새까만 얼굴의 사내가, 우측에선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쾌남이 질풍같이 나타났다.
“일단 생포하지.”
단려화에게 달려들며 일권을 쏟아내는 중년인은 흑면수(黑面手) 구표걸.
“한 년만 살려두면 된다.”
은수련에게 환도를 내리치는 사내는 벽력도(霹力刀) 악계화였다.
태산표국이 자랑하는 세 명의 대표두가 이 자리에 모두 모인 것이다.
쐐애액!
파공성을 흘리며 쏟아지는 권영에 단려화의 상체가 갈대처럼 흔들렸다.
파파파팡!
허공을 후려치는 주먹에서 북 터지는 소리가 연신 터져 나온다.
‘강해!’
스치는 것만으로도 귓불이 화끈거린다.
단려화가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해냈을 때.
치잉!
등 뒤의 은수련은 검신을 비스듬히 세워 뚝 떨어지는 도신을 흘려보냈다.
‘이자가 악계화.’
대표두 중 가장 주의해야 할 대상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오.”
악계화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상천에서 네년들의 위치는 무엇이냐?”
“…….”
은수련은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새 배후에서 좌황의 창날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익!
이를 악문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몸을 굴렸다.
“중광!”
몸을 일으키는 순간 벽을 만든 무인 중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들며 검을 내질렀다.
상체를 세운 은수련의 검신이 순식간에 네 가닥 검영을 쏟아냈다.
카카카캉!
달려들던 중광이 밀려나는 순간, 어느새 짓쳐 든 악계화의 발길질이 그녀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퍽!
번개같이 쏟아지는 세 명의 연속공격은 반응할 틈도 없이 신속했다.
‘큭!’
발길질에 튕겨 나간 그녀가 인의 장막으로 부딪쳐간다.
이대로는 기다리고 있던 백표대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게 분명하다.
구표걸을 상대하던 단려화는 그녀의 위기를 감지하고 몸을 날렸다.
“은소저!”
“감히 내게 등을 보이는 것이냐!”
은수련을 눈에 담은 단려화는 전신 내력을 끌어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쾅!
‘윽!’
구표걸의 주먹이 등판을 때려 박는 동시에 단려화의 발끝이 지면을 밀었다.
쉬익!
충격을 이용해 한층 가속한 단려화는 손을 뻗어 은수련의 요대를 잡아당겼다.
“아가씨. 저는 괜찮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달빛에 비친 단려화의 복면이 붉은 피로 물들어간다.
자신을 구하겠다고 자처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정신 차려! 호위는 너야!’
은수련은 약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뚫겠습니다!]그녀의 손을 밀쳐낸 은수련은 검파를 움켜쥐고 좌황에게 몸을 날렸다.
단려화가 서둘러 뒤를 따르며 은수련의 후방을 지켰다.
“껄껄껄! 정면이라, 참으로 대담하시구려.”
호방하게 웃은 좌황이 두 손으로 창대를 강하게 움켜쥔다.
이어서 탐스러운 수염이 깃발처럼 휘날리며 창두가 맹렬한 기세로 쏘아졌다.
“어디 받아보시게나!”
흑광을 머금은 창두가 그녀를 꿰뚫기 직전.
탓!
비스듬히 몸을 띄워 창두를 피해낸 은수련이 기다란 창대 위를 수레바퀴처럼 굴러갔다.
휘리릭!
맹렬하게 회전하는 그녀의 검신이 시퍼런 빛을 토해내며 좌황의 머리를 쪼개간다.
“어딜!”
좌황의 투박한 좌수에 시꺼먼 운무가 떠오르더니 그녀의 검신을 막아갔다.
쾅!
폭음이 터지며 은수련의 회전이 멈췄다.
좌황은 빙그레 웃었다.
“생각은 기발하나 검이 가벼워.”
“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좌황의 표정이 흠칫 굳는 순간, 은수련의 뒤에서 솟구친 단려화가 강렬한 일초를 쏟아냈다.
“이건 가볍지 않을 거예요!”
좌황의 우수는 은수련이 움켜쥔 창대에, 좌수는 은수련의 검신에 묶인 상태.
“이런!”
그가 낭패한 얼굴로 창대를 흔들 때였다.
창대를 쥐고 하체를 띄운 은수련의 동공에 머리 위를 뛰어넘는 단려화가 비친다.
‘당신을 지키는 게 내 임무입니다.’
대표두 하나를 제거할지라도 포위를 뚫는 것은 요원한 일.
은수련은 뛰어오른 단려화의 발을 전력으로 밀어 찼다.
퍽!
본의 아니게 두 번째 도약을 한 단려화가 좌황을 지나치더니 포위망 밖으로 바람같이 날아갔다.
“앗!”
부릅뜬 단려화의 눈에 결의에 찬 은수련의 눈빛이 담긴다.
[가세요!]간절한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 때 구표걸과 악계화의 공격이 은수련을 덮쳐갔다.
‘안 돼!’
허공에서 몸을 돌리는 그녀에게 백표대가 매섭게 달려들었다.
“잡아라!”
그녀의 시야가 달려드는 백표대로 가득 차는 순간.
콰쾅!
인의 장막 너머로 강렬한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은소저-!”
사색이 된 단려화의 두 눈에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검영이 비친다.
백표대의 공격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절체절명의 상황.
“숙여!”
익숙한 목소리에 단려화의 상체가 반사적으로 가라앉았다.
쏴아아!
그녀의 등 위를 스쳐 지나간 두 줄기 장력이 몰아치는 해일에 거세게 충돌했다.
쿠아아앙!
달려들던 열 명의 백표대가 가랑잎처럼 튕겨 나간다.
“크아악!”
뇌성벽력이 귓전을 강타하며 대지가 요동쳤고, 시뻘건 피와 함께 솟구친 흙먼지가 달빛을 가려간다.
[려화!]흙먼지를 뚫고 들어온 진무립이 다급하게 단려화의 어깨를 잡았다.
[안에 은소저가 있어요!]울먹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진무립의 두 눈이 지독한 혈광으로 번뜩였다.
[뒤로 물러나라.]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눈빛과 함께 북해의 빙굴에 들어선 듯한 냉기가 주변을 휩쓸어갔다.
쾅!
지면을 박찬 진무립의 귀로 단려화의 다급한 전음이 틀어박혔다.
[백표대는 은곡의 무공을 익혔어요!]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은곡도 다 같은 은곡이 아니다.
나와 함께하는 자는 아군이요, 막아서는 자는 적일 뿐이다.
쏴아아!
단전에서 솟구친 가공할 내력이 움켜쥔 두 주먹에 깃들었고 혈광을 토해내는 동공엔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백표대가 담긴다.
단려화의 말처럼 이들이 풍기는 기세는 결코 산채의 무인에 못지않았다.
가면 속 진무립의 두 눈이 섬뜩한 빛을 토해냈다.
“비켜.”
백표대와의 간격이 일 장 안으로 좁혀진 순간.
파앙!
공간을 찢어발기고 쏘아진 주먹이 날아드는 검신을 거칠게 때려 박았다.
캉!
검신을 조각낸 진무립의 주먹은 상대의 머리를 수박처럼 으깨버렸다.
콰직! 콰직!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선 육중한 타격음만이 들려올 뿐 그 어떤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축 늘어진 은수련의 목덜미를 움켜쥔 구표걸은 흙먼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 번씩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흙먼지를 뚫고 나온 백표대가 사정없이 지면에 처박히고 있었다.
가공할 기세를 흩뿌리는 뭔가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순식간에 스무 명의 백표대가 쓰러졌을 무렵.
고개를 치켜든 악계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위다!”
흙먼지를 뚫고 솟구친 무언가가 달빛을 가리고 오연히 지상을 내려본다.
“감히 내 부하를 다치게 한 자가 네놈들인가?”
살기 가득한 그 목소리는 북풍한설보다 차갑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네놈은…….”
서서히 추락하던 진무립은 손에 쥔 백표대원을 슬쩍 띄웠다.
쾅!
백표대원의 시신을 거칠게 박찬 진무립이 한 마리 비조처럼 맹렬하게 지상으로 쏘아졌다.
쌔애액!
“피해라!”
좌황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은 은수련을 놓고 사방으로 산개했다.
순식간에 떨어진 한 줄기 벼락이 그들이 머물던 자리를 맹렬하게 폭격했다.
콰아아앙!
울부짖는 대지의 떨림에 이 장 밖의 담장까지 폭삭 무너졌다.
그 엄청난 위력에 세상 두려울 것이 없던 대표두들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대체 이놈은…….”
휘이이이!
불어온 겨울의 한풍이 순식간에 장내에 드리운 흙먼지를 걷어갔다.
시산혈해의 참상.
한순간 벌어진 전투에 무려 스무 명의 백표대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전장은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꺼져 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이건 국주조차 낼 수 없는 결과다.
떨리는 좌황의 두 눈에 은수련을 안아 든 흑면탈의 사내가 보인다.
“수련아.”
피를 흠뻑 뒤집어쓴 은수련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가씨는…….”
“네 덕분이다.”
어두워지는 은수련의 두 눈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다행…….”
작아지던 목소리가 뚝 끊기더니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진무립은 서둘러 그녀의 목에 손을 올렸다.
‘아직 살릴 수 있다.’
미약하게 뛰고 있는 맥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표두들을 죽일 듯이 노려본 진무립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네놈들의 목은 잠시 붙여두겠다.”
서슬 퍼런 경고가 가슴에 비수처럼 틀어박힌다.
우두커니 선 대표두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진무립과 단려화는 전장에서 사라진 뒤였다.
장원의 숨 가쁜 사투가 마무리에 접어들 무렵.
정문 앞의 전투는 치열함의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백하진과 한천유는 쏟아지는 일급표사들의 합공에도 한 치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쐐애액!
호선을 그리고 회전하는 비도가 두 명의 목젖을 스치고 돌아온다.
“크윽!”
“비도를 보지 말고 비도와 놈의 손에 연결된 은잠사를 노려라!”
한천유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제까지 죽은 놈들은 멍청이들이냐?”
백라자수(白拏磁手)를 펼치는 백하진의 공격도 표사들을 당혹스럽게 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하얗게 물든 그의 손은 마치 자석처럼 세상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검과 도, 창과 봉에 이어 그들의 육신까지 여지없이 백하진의 손에 끌려 들어간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무공이냐?”
“네가 알 것 없다.”
싸늘한 음성과 함께 날아든 그의 손날이 거침없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푹!
두 사람에게 쓰러진 일급표사만 벌써 서른이다.
검진을 형성하면 한천유의 비도가 날아들어 그것을 흔들었고, 그 틈에 달려든 백하진은 흔들린 표사들을 거침없이 도륙했다.
서로 상극일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절묘한 호흡으로 표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잠시 여유를 찾고 뒤를 쳐다본 한천유가 백하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러다 당하는 거 아니야?]백하진도 슬쩍 고개를 돌렸다.
청금환의 거침없는 맹공에 시평은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천천히 돌아오는 시선 속에 담장 너머로 빼꼼히 고개 내민 사람들이 또렷하게 들어온다.
인근 방파의 무인, 상인을 비롯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그들을 밀어냈던 태산표국의 위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은무대로군.’
내심 감탄한 백하진은 나직이 전음을 보냈다.
[신경 쓰지 마라.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까.]두 사람이 다시 표사들에게 달려들 때였다.
쐐애액!
일진광풍을 동반한 주먹이 시평의 가슴으로 매섭게 짓쳐 들었다.
봉 끝으로 지면을 강하게 밀어낸 시평이 간발의 차이로 일격을 피해냈다.
추격하는 청금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쥐새끼처럼 도망칠 줄만 아는구나. 이게 상천의 거산채주냐?”
물러나던 시평이 봉을 휘둘러 간격을 확보했다.
“그런 말은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춘 다음에 하는 게 옳지 않아?”
청금환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인다.
시평의 말처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으나 급소를 치는 공격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까닭이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연신 수비에 치중하면서도 잠시 여유를 가지려 할 때마다 달려들어 호흡을 빼앗는다.
절묘하게 치고 빠지는 그 움직임에 밀어붙이고 있음에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슈슈슈슉!
시야를 교란하던 시평의 봉이 마침내 물러난 순간이었다.
“크아악!”
찢어질 듯한 표사의 비명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시평의 뒤를 확인한 청금환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당장 죽여주마.”
슈우욱!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주먹에서 수십 개의 권영이 파생된다.
시평의 전신을 덮쳐가는 권영의 장벽.
권성 대연무의 천수만화공(千手萬化功)이 마침내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