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
◈ 17화. 무공회수
무림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 천하대전.
그중 가장 치열했던 것은 팔성(八星)과 구천맹(求天盟) 고수들의 싸움이었다.
검성 몽연은 그들 중 가장 먼저 죽었으나 패배를 모르던 신룡을 처음으로 위기에 빠뜨린 고수였다.
진무립은 종비웅의 무공에 검성이 사용하던 무공, 유운천예검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검성의 무공을 익혔다면 고작 십 년 만에 중경의 패권을 차지한 것도 이해가 된다.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던 종비웅의 가슴이 터질 듯 요동쳤다.
‘저놈이 그걸 어떻게?’
가까스로 냉정을 되찾은 종비웅은 진무립의 싸늘한 기운에 대항해 내력을 끌어올렸다.
“네놈은 누구냐!”
진무립은 종비웅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며 물었다.
“너 말고 또 누가 그들의 무공을 익혔지?”
종비웅은 버럭 소리쳤다.
“내 질문에 먼저 답하라!”
“네놈은 맞아야 말하고 싶어지는 부류구나.”
나직한 혼잣말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장포가 펄럭이더니 섬뜩한 장력이 공간을 뛰어넘어 나타났다.
‘장성(掌星)의 무월반장(無越搬掌)?’
기겁한 종비웅은 다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파직!
장력이 기세에 비해 의외로 가볍게 해소되자 종비웅은 자신감이 생겼다.
“고작 장성의 무공 따위로 나를 얕보는 것이냐!”
보는 눈이 없으니 숨길 것도 없다.
종비웅의 검극이 머금은 오싹한 기운은 장원에서 보았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진무립은 즉시 상체를 비틀었다.
옷섶이 찢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가슴을 스쳐 지난 검신이 잔영만 남기고 회수됐다.
종비웅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입만 산 놈이로구나.’
종비웅은 진무립이 보여준 최초의 기세가 허장성세임을 확신했다.
물러나는 진무립을 향해 새하얀 섬광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진무립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낙성파(落星破)까지 쓰는 걸 보면 전반부는 제대로 익혔구나.’
몰아치는 섬광은 흔들리는 진무립의 상체를 간발의 차이로 비껴갔다.
좌측으로 미끄러진 종비웅이 일검을 내지르며 말했다.
“장성의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느냐?”
고개를 젖힌 진무립이 종비웅을 깔아보며 웃었다.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아.”
턱밑으로 스쳐 지나간 검이 잔상을 남기며 흔들리자 진무립은 장심을 올려쳤다.
타앙!
손바닥이 정확히 검면을 타격하자 종비웅의 팔이 크게 흔들렸다.
상체가 흔들린 두 사람은 보폭을 넓히며 중심을 바로잡았다.
종비웅은 거침없이 검을 내질렀다.
‘여긴 내 간격이다!’
상체를 흔들어 공격을 피해낸 진무립은 물러나며 우장을 내뻗었다.
슈우우!
물 흐르듯 부드러운 장력은 종비웅의 검에 닿는 순간 두 갈래로 나뉘었다.
“흥!”
콧방귀를 뀐 종비웅은 팔을 크게 흔들었다.
파지직!
검신이 좌우로 흔들리며 두 개의 장력을 해소했다. 하지만 진무립의 움직임은 끝이 아니었다.
자세를 잔뜩 낮춘 진무립은 이미 흔들리는 검신 아래로 파고든 상태.
종비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법을 익힌 놈이 대체 왜?’
일격 일격에 엄청난 힘을 쏟아내는 장력은 준비 시간이 길다.
자타공인 천하제일로 인정하는 신룡이라면 모를까, 근접전에서 장력을 퍼붓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느새 턱밑까지 파고든 진무립이 씩 웃었다.
“내가 왜 장법밖에 모를 거라 생각하나?”
접근하던 손바닥은 어느새 주먹으로 바뀌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종비웅은 즉시 검신을 끌어당겼다.
쾅!
검면과 주먹의 정면충돌, 비명을 토해낸 건 종비웅이었다.
“크윽!”
손목이 얼음장에 박힌 것처럼 시큰하다.
엄청난 충격에 종비웅의 발은 지면에서 한 자 남짓 떠올랐다.
단전에서 치솟은 극음의 기운에 진무립의 소매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신공절학을 익혀도 재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지.”
한 발을 내민 진무립의 두 주먹이 폭풍 같은 기세로 쏟아졌다.
쿠콰콰콰콰!
노도와 같이 거침없는 연속공격은 천수만화공(千手萬化功)의 승연비겸권(勝連批鎌拳).
그것을 알아본 종비웅은 경악했다.
‘권성의 무공까지 익혔단 말인가!’
디딜 곳을 잃은 종비웅은 목각인형처럼 난타당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요혈만 방어하면 타격에서 오는 고통은 견딜 수 있다.
진무립이 연속공격을 이어가고자 위력이 큰 공격은 자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먹이 닿을 때마다 침투하는 음한지기는 혈맥을 시리도록 차갑게 얼려가고 있었다.
종비웅은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한 방 내주마!’
활짝 열린 복부로 엄청난 위력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콰앙!
“쿨럭!”
피를 토하며 날아간 종비웅은 커다란 나무에 처박혔다.
진무립은 멈추지 않았다.
지려 밟는 풀잎조차 흔적이 남지 않는 극상의 보법 무령경천보(武靈驚天步).
일장이라는 공간이 순식간에 압축되자 대경한 종비웅은 몸을 굴렸다.
바닥을 구르는 종비웅을 향해 진무립의 발이 내리꽂혔다.
콰직!
수풀이 들썩이며 흙가루가 치솟는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다급하게 일어선 종비웅은 훌쩍 물러나며 전신의 내력을 일거에 끌어올렸다.
장성의 무공도 모자라 권성의 무공까지 선보이는 상대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넘어서기 힘든 괴물이다.
종비웅의 주변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젠 네놈이 누구든 상관없다.”
그의 소매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칠공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흡사 지옥의 악귀를 연상케 하는 시뻘건 얼굴, 살갗을 저밀듯한 살기.
이를 바드득 간 종비웅은 각오를 담아 외쳤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
진무립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만 마주쳐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상대를 앞에 두고도 다른 생각이 떠오른 거다.
‘이 새끼······. 그냥 둬도 뒈질 거 같은데?’
피 칠갑이 된 몰골을 보면 한계를 초월한 게 확실하다.
기신봉진대법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내력에 제한이 있는 이상,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무너질 상대와 싸우는 건 진무립의 기준에서 멍청한 짓이다.
종비웅의 검신이 푸르게 빛나는 순간, 몸을 돌린 진무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당황한 종비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각오하고 한계 이상의 내력을 끌어올렸는데 상대가 도망치는 것이다.
종비웅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썼다.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란 말인가!”
“자식놈을 사지에 몰아넣고 도망친 주제에 필요할 때만 무인을 찾냐? 무인은 애미애비도 없단 말이냐?”
“이놈!”
추격하는 종비웅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으나 진무립은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시간을 계산했다.
림주 초무강과의 싸움에 이어 조금 전 내상까지 입었으니 지금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대략 이각 정도 버티면 무너지겠군.’
달빛마저 들지 않는 울창한 숲속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종비웅은 이를 악물고 뒤를 쫓았으나 좀처럼 진무립의 등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진무립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강변에 도착한 순간 동남쪽에서 흑영대주 지월인이 나타난 것이다.
“소공자!”
“아이고.”
진무립은 반사적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종비웅에게 쫓기는 모습을 본 지월인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피하십시오!”
“미치겠네.”
자신의 속도 모르는 지월인이 야속했지만 저대로 둘 수는 없었다.
종비웅의 날카로운 일검이 지월인에게 쏘아졌다.
카아앙!
섬뜩한 쇳소리와 함께 지월인의 신형이 주르륵 밀려났다.
“큭!”
어떻게 막기는 했으나 손목이 부러질 듯 아파 왔다.
‘이 정도로 차이가 있단 말인가?’
종비웅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잡졸은 비켜라!”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다문 지월인이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진무립의 무월반장이 지월인을 뛰어넘어 종비웅을 강타했다.
쾅!
종비웅의 신형이 휘청거리자 지월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눈앞에서 장력이 날아간 것이다.
“이게 무슨······.”
“어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손안의 검이 진무립의 손에 들어갔다.
“소공자?”
“나와 인마.”
진무립은 지월인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뒤로 넘어졌던 지월인이 벌떡 일어났다.
“소공자. 위험합니다!”
대검문 몰락의 계책을 주도한 진무립이다.
유대하에 이어 마도림의 두 번째 식충이가 될 뻔했던 사내는 알고 보니 천하에 보기 드문 보물이었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사문의 앞날에 빛이 되어줄 소공자를 이런 곳에서 잃을 수는 없었다.
“제게 맡기고 피하십시오!”
지월인의 손이 어깨에 닿기 직전, 꺼지듯 사라진 진무립이 순식간에 종비웅을 향해 치달았다.
“소, 소공자?”
부릅뜬 지월인의 눈에 종비웅을 공격하는 진무립의 등이 담겼다.
카카카캉!
네 번의 공격을 차단한 종비웅이 피에 젖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 드디어 멈췄구나.”
“기쁜가?”
종비웅은 진무립의 거만한 미소와 마주하고 나서야 조금 전 자신을 공격한 수단이 검이라는 걸 깨달았다.
“네놈이 검을······.”
“그냥 자멸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진무립의 검이 우측을 찔러오자 빠르게 반응한 종비웅이 공격을 막아갔다.
그러나 검과 검이 부딪치기 직전, 진무립이 살짝 손목을 흔들자 우측의 검이 순식간에 좌측에 나타났다.
미세한 움직임으로 펼쳐내는 번개 같은 쾌검은 유운천예검의 후반부 초식 소리신야검(小利迅惹劍)이었다.
경악한 종비웅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어떻게 그걸 네놈이!’
생각을 입으로 내뱉을 겨를도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쾌검의 향연.
일진광풍이 몰아치며 살갗을 에일듯한 검광이 쏟아진다.
이를 악문 종비웅은 마지막 남은 내력까지 쥐어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시뻘건 피가 왈칵 쏟아졌다.
“쿨럭!”
무리한 내력 운용으로 육신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진무립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종비웅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크아악!”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지월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사람이 정말 우리가 알던 소공자란 말인가?’
내지르는 검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보법은 어떠한가?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자신조차 이따금 신형을 놓칠 지경인데 바로 앞에 선 종비웅에게 제대로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진무립의 주변을 서서히 감싸는 가운데 마침내 종비웅이 나가떨어졌다.
“크으으······.”
천천히 다가가는 진무립의 어깨 위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극음의 기운에 얼어붙은 육신을 천양신단에서 비롯된 극양의 기운이 녹이는 것이다.
진무립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반쪽짜리 무공으로 중경의 패권까지 노린 걸 보면 유운천예검이 신공은 신공인 모양이야. 그렇지 않나?”
종비웅은 이제야 진무립의 무공을 알 것만 같았다.
“쿨럭! 그분의······ 제자였느냐?”
장성과 권성, 검성의 무공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괴물. 그런 인물은 죽은 팔황문주밖에 없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진무립은 인상을 쓰며 곁에 쪼그려 앉았다.
“제자는 무슨, 할 수 있다면 시신이라도 찾아서 불태우고 싶은데.”
“그럼 너는 누구냐?”
“내 질문에 답해준다면 알려주지. 어차피 살 수 없다는 걸 알잖아?”
“크흐흐.”
종비웅의 눈빛이 허망했다.
사천을 발판으로 천하를 손에 넣고자 했던 자신이 고작 중경 땅에서 죽어가고 있었으니 마음 한쪽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진무립이 다시 말했다.
“이왕 가는 거 궁금한 건 풀고 가자고. 유운천예검은 어디에서 얻었나?”
체념한 종비웅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그분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유운천예검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제법 선명한 목소리는 회광반조의 현상이다.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에게 직접 배웠다고?”
검성 몽연은 천하대전이 벌어지기 직전, 무당산 아래에서 신룡에게 죽었다.
만일 그를 따르던 자라면 천하대전에 가담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자 종비웅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었다.
“크흐흐흐. 내가 충성을 바친 대상은 모시던 검성 대인이지 팔황문이 아니다. 언젠가 그분의 무공으로 신룡을 베고 천하를 취하려 했거늘 허사가 됐구나.”
진무립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리석긴. 고작 너 따위에게 당할 신룡이었으면 팔황문주가 졌겠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중경을 발판으로 패권을 노리던 야심가의 허무한 최후였다.
천하를 피로 적신 팔황문의 생존자들.
전쟁에 반대했던 자들은 모두 상천의 깃발 아래 모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종비웅처럼 정체를 감춘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천하대전으로부터 삼십 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무림이 은곡을 찾아다니는 것은 종비웅처럼 복수를 원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천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일 놈들이었다.
‘일일이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숨을 크게 내쉬는 순간 진무립의 안색이 빠르게 창백해졌다.
균형을 잃은 음양의 기운이 날뛰려 하는 탓이다.
진무립이 가부좌를 틀고 앉자 지월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소공자. 괜찮으십니까?”
“호법 좀 서라.”
“알겠습니다.”
진무립을 대하는 지월인의 공손한 태도엔 경외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팔천영신공의 심법, 귀영무천공을 운용하자 진무립의 주변으로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지월인은 조용히 진무립의 앞을 지키고 섰다.
‘소공자가······ 대검문주를 능가하는 고수였다니.’
아직도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의문도 떠오른다.
‘이런 무공을 갖고도 대체 왜 철사방도들에게 당하셨단 말인가?’
철사방도들에게 맞고 돌아온 날부터 진무립에게 예조차 갖추지 않고 다녔던 부하들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변에 자욱하게 내려앉았던 수증기가 진무립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사가 연출됐다.
이윽고 눈을 뜬 진무립의 얼굴에 희열이 번졌다.
‘달라졌다!’
흐트러진 음양의 균형을 바로잡는 속도가 전보다 배 이상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대법이 풀리고 극음과 극양의 두 기운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몽롱한 눈으로 지켜보던 지월인도 정신을 차렸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시체 챙겨라. 가자.”
“예. 소공자.”
지월인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수장의 죽음을 알리고 전쟁을 끝내는 게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