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73
◈ 173화. 우리의 꿈이 걸린 전투
가공할 내력이 실린 그 외침은 동진상단의 장원을 뒤흔들었다.
장원의 깊숙한 안채.
“흡!”
뇌성벽력이 치는 듯한 그 외침에 놀란 아이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공여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인자한 미소로 보듬었다.
“괜찮다. 걱정할 것 없단다.”
등불조차 꺼진 넓은 방 안에는 상단의 식솔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을 둘러본 채경승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창문을 살짝 열었다.
‘이 고비만 넘길 수 있다면.’
동진상단은 비상하는 상천에 편승해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공여소가 그의 뒤로 다가왔다.
“상공. 잠시 방에 다녀오겠습니다.”
“천주께서 계시니 별일이야 없겠지마는 서둘러 다녀오시구려.”
“네.”
조용히 돌아선 그녀는 슬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문을 향한 공여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것이야.’
주변을 살핀 그녀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청금환의 일갈에 인근 가옥의 문이 열리며 담장 위로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지?”
“저들은 태산표국의 사람들인데…….”
청금환은 굳게 닫힌 정문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조용하군.’
청금환이 손짓하자 인근을 지키던 무인이 빠르게 달려와 부복했다.
“밖으로 나간 자는?”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한 명도 없습니다.”
청금환은 즉시 가까운 표두를 소환했다.
“내부를 확인해봐라.”
“예.”
신법을 전개한 표두가 담장 위로 솟구칠 때였다.
쐐애액- 쾅!
안에서 희뿌연 장력이 쏟아지더니 표두의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 나왔다.
“큭!”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힌 표두가 몸을 일으킬 때였다.
청금환이 손을 뻗었다.
“됐다. 물러나라.”
안에 적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으로 충분하다.
‘역시 이 숫자와 정면에서 붙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담을 끼고 수비에 치중하겠다면 이대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미 사람들의 시선은 충분히 끌고 있다.
굳이 싸우지 않더라도 이대로 백표대가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청금환이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자영.”
호리호리한 체구에 날렵한 턱선을 가진 사내가 곁으로 다가왔다.
“예. 국주님.”
그는 청금환이 직접 가르친 철사대의 대주 자영이었다.
오로지 국주의 명에만 따르는 철사대 일백 명은 백표대 다음가는 강자들이다.
청금환이 백표대를 보내고 이들을 데려온 것은 철사대가 은곡의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단을 포위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나가지 못하게 하라.”
“예.”
표두 자영은 즉시 표사들을 움직여 장원의 담장을 따라 포위망을 갖췄다.
침입하는 표두를 떨쳐낸 진무립은 바깥의 분주한 움직임을 눈치챘다.
담장에 등을 기댄 채 오감에 집중하던 단려화가 차분히 눈을 떴다.
[밖에 백표대는 없어요. 역시 저들은 미끼예요.]백표대를 두고 왔다는 것은 시선을 끌고 뭔가를 꾸미고자 함이 분명하다.
[밖에 보는 눈이 많아요. 여기 상천의 무인이 없다면 저들에게 상단을 공격할 명분은 없어요.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아요.]진무립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모두 그녀의 생각대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이 있었군.’
처음엔 정말 미친 줄 알았는데 그녀의 계획이 마냥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
동진상단을 나선 시평과 녹사대는 곧 약속 장소에서 은무대와 합류할 것이다.
열 개의 상단과 방파는 각기 열 명의 양산채 무인이 지키고 있다.
그들이 지원을 요청하는 즉시 시평을 비롯한 무인들이 지원을 가는 계획이었다.
미소를 감춘 진무립이 가면을 고쳐 썼다.
[가자.]소완공을 전개한 단려화, 음혼귀영공을 전개한 진무립은 동쪽 담장을 넘어 은밀히 자취를 감췄다.
* * *
상단을 벗어난 두 사람이 빠르게 태산표국으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복면을 쓴 오십의 녹의인이 전선문(戰先門)의 현판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들은 상천의 무인으로 위장한 백표대였다.
예비대까지 차출해 숫자를 보충한 그들은 셋으로 나뉘어 움직이는 상태였다.
대표두 좌황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전투 중에 절대 입을 열지 마라.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다.”
태산표국의 무인이라는 것은 반드시 감춰야 한다.
백표대의 본신 무공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자가 없는 이상 입만 다물면 알아볼 자들은 없다.
“가자.”
좌황을 필두로 백표대가 일제히 담을 넘은 순간이었다.
안에서 푸른 무복을 입은 전선문도들이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아 들고 나왔다.
“적이다!”
매섭게 쇄도한 좌황은 지체 없이 창을 내질렀다.
쐐애액!
일진광풍을 동반한 엄청난 기세에 맞닥뜨린 무인의 눈이 부릅떠진 순간이었다.
“멈춰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우측에서 튀어나온 시꺼먼 인영이 창대를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콰앙!
폭음과 함께 빗나간 창대가 전선문도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큭!”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전선문도의 앞을 범상치 않은 흑의인이 막아섰다.
‘쉰인가. 그나마 다행이군.’
양산팔수의 일원, 위충에 이어서 여덟 명의 흑의인이 튀어나와 백표대를 막아섰다.
카카캉!
번뜩이는 불꽃과 함께 쇳소리가 연신 터져 나오는 가운데 전각에서 반백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태산표국! 정녕 그대들이란 말인가!”
주먹을 부르르 떠는 그는 전선문주 도조강이었다.
이미 한 차례 습격을 받은 데다가 상천의 무인에게 설명까지 들었다.
미리 알고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진짜 눈앞에 나타나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좌황의 눈에 지독한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기다리고 있었는가.’
화살은 쏘아졌다.
전투가 벌어진 이상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면 태산표국은 무림의 공적이 되고 말 터.
그렇다면 망설이지 않고 적을 도륙해야 한다.
좌황은 창대를 치켜들며 외쳤다.
“태산표국에 협력한 전선문은 우리 양산채의 이름으로 지운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들이 아닌 혹시 있을지 모를 외부의 귀를 향한 말이니까.
도조강은 이를 갈며 검을 뽑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이런 상황에서 흩어지면 전부 죽는다.
“원진을 형성하고 버텨라!”
습격에서 자신을 구한 상천의 무인은 버티고 버티면 지원이 온다고 했다.
상대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기댈 곳은 오로지 상천밖에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려는 백표대.
막고자 하는 양산채와 전선문의 무인들.
치치치칭!
사방에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좌황의 창두가 시꺼먼 흑광을 줄기줄기 쏟아냈다.
위충의 눈이 부릅떠졌다.
‘흑천비류창(黑天飛流槍)!’
창성 반서련의 절기 흑천비류창이 그의 창두에서 쏟아져 나왔다.
발끝으로 지면을 밀어낸 위충이 장심을 내뻗었다.
슈우우우웃!
양손에서 쏟아진 지풍 같은 열 가닥 장력이 뱀처럼 휘어지며 좌황을 노려간다.
‘고, 곡사장법(谷蛇掌法)이라고?’
팔성의 무공은 아니나 곡사장법은 은곡의 무인들이 익히는 장법이다.
경악한 좌황이 다급하게 창두를 휘저었다.
타다다다다당!
열 가닥 장력을 해소한 좌황이 득달같이 쇄도했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양산팔수 위충이다.”
“어떻게 곡사장법을 알고 있는 것이냐?”
“잘못 본 게 아닌가?”
쓴웃음을 삼키는 위충을 향해 시꺼먼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든다.
‘사망벽궤의 초식까지?’
흑천비류창의 절초까지 사용한다면 상대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강자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의 꿈이 걸린 전투다. 반드시 버텨서 천주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전선문을 지켜내야 상천이 저들과는 다른, 세상에 이로운 존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한 명을 빼서 지원을 요청했으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쿠콰콰콰콰쾅!
줄기줄기 솟구치는 장력과 시꺼먼 흑광이 상대를 찢어발기고 물어뜯는다.
뱀처럼 휘어지는 위충의 장력은 좌황의 사각을 노렸고,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는 좌황이 창은 그 모든 공격을 되받아치고 있었다.
일진일퇴의 치열한 접전이 어느덧 일다경.
뒷발을 땅에 쑤셔 박은 좌황의 창두가 일점으로 쏘아졌다.
쐐애액!
이를 악문 위충은 혼신의 내력을 장력으로 쏟아냈다.
콰앙!
흑광과 백광의 엄청난 충돌에 땅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진다.
“큭!”
검붉은 피를 토한 위충이 화살처럼 튕겨 나가 전각의 기둥에 처박혔다.
멈추지 않고 지면을 박찬 좌황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곳곳에서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상천의 무인 전원이 은곡의 무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놈들 전부 은곡의 무공을 익혔단 말이냐!’
백표대뿐만 아니라 그것을 알아본 일부 전선문도들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좌황은 창을 내지르며 거칠게 일갈했다.
“냉큼 밝히거라! 그 무공을 어디에서 익혔느냐!”
“잘못 본 거라니까 그러네.”
피식 웃은 위충은 입가의 피를 훔치며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일직선으로 쏘아지던 창두가 궤적을 바꾸며 그 뒤를 맹렬하게 추격했다.
‘위험하다.’
쫓아오는 가공할 기세에 등판이 따끔거린다.
등을 돌린 위충은 바닥으로 미끄러지며 짓쳐 드는 흑광을 향해 장심을 내뻗었다.
쏴아아아!
절망처럼 드리우는 흑광과 온 힘을 다해 발출한 장력이 격돌하기 직전.
쌔애액!
좌측에서 날아든 한 줄기 검광이 흑광을 거칠게 강타했다.
콰아아앙!
작렬하는 굉음과 함께 굵직한 대들보가 절반으로 쪼개진다.
쿠르르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지는 전각.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화마가 집어삼킨 장원.
카아앙!
“크아악!”
오싹한 쇳소리와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이곳은 바로 양소방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선풍도골의 노인, 양소방주 묵운정은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크으윽!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냐!”
“하늘이 우릴 무서워해야지.”
피식 웃는 구표걸의 눈에 양산팔수 상초가 떠올랐다.
‘제법이다만 내 상대는 아니다.’
주먹을 움켜쥔 상초의 전신은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했다.
좌우로 움직이는 동공에 고전하는 동료들이 떠오른다.
자신을 포함한 동료의 숫자는 아홉.
상천의 무인으로 위장한 백표대의 숫자는 쉰.
양소방의 고수들 이백이 있다지만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충할 수는 없었다.
적의 협공을 상대로 처절하게 버티는 동료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제발 조금만 더 버텨라.’
이윽고 전방으로 향한 상초의 눈에 매섭게 짓쳐 드는 구표걸의 얼굴이 담긴다.
쐐애액!
상초는 즉시 상체를 굽혔고, 구표걸의 주먹은 귓전을 스쳐 가 허공을 강타했다.
파앙!
바스러진 머리칼이 바람에 흩어지는 순간 상초의 우권이 구표걸의 복부로 쏘아졌다.
쉬익!
구표걸은 즉시 좌수를 뻗어 상초의 주먹을 밀어쳤다.
탁!
주먹이 밀려나는 반동을 이용해 상초의 하체가 맹렬히 회전했다.
슈아악!
대각으로 솟구친 발등이 구표걸의 손바닥에 가볍게 막힌다.
“감히 천수만화공(千手萬化功)을 익힌 내게 근접전으로 승부를…….”
거만한 구표걸의 동공에 뒤로 넘어가는 상초의 얼굴이 담겼다.
“막아보시지.”
허공에 몸을 띄운 상초의 왼발이 구표걸의 안면으로 벼락같이 짓쳐 들었다.
쾅!
좌수로 얼굴을 가린 구표걸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퉷!”
구표걸은 입안의 피를 모아 내뱉으며 차갑게 말했다.
“이제 알겠군.”
자신들과 같은 무공.
그러나 자신들은 처음 보는 존재.
두 눈을 부릅뜬 구표걸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네놈들. 겁먹고 전쟁을 회피한 도망자들이로구나!”
벼락같이 짓쳐 든 구표걸의 주먹이 상초의 지척까지 접근한 순간.
부우우웅!
대기의 흐름을 거스르는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시꺼먼 철봉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콰앙!
굉음과 함께 지면에 처박힌 철봉이 육중한 몸을 흔들었다.
“도망자라니. 그건 섭섭한 말이로군.”
가까스로 멈춰선 구표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네놈은…….”
봉을 쏘아낸 자세 그대로, 담장을 밟고 올라선 사내는 양산채주 시평이었다.
“우리는 상천. 무성(武聖)의 의지를 이어받은 진정한 은곡의 후신이다.”
서늘하게 미소 짓는 시평의 좌우로 수십 명의 녹사대가 해일처럼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