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5
◈ 185화. 위험한 존재
태산표국에겐 더 이상 상천을 상대할 힘도, 번지는 소문을 막아낼 여력도 없었다.
진무립에 의해 무너진 담장을 보수한 그들은 정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정문 앞으로 이어진 대로변, 대략 이십여 장 떨어진 작은 집의 담장 너머로 머리통 두 개가 슬쩍 나타났다 사라진다.
석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용삼과 저처럼 외부에서 머물던 표사들입니다. 표사들이 동요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양산팔수 위충은 헛웃음을 흘렸다.
“석형제께서는 어찌 보십니까? 표사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석두는 고개를 저었다.
“안에 있는 용삼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굴러가는 인물입니다. 이미 내부에서도 소문이 번지고 있을 겁니다.”
“이젠 천주님의 말씀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예. 그간 표국의 실체를 아는 자만이 위로 올라가고 모르는 자는 두각주님처럼 만년 표사로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적지 않게 배신감을 느낄 겁니다. 저들을 모두 불러들인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겁니다.”
그 말처럼 용삼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은 조용히 표국 내부에 번지고 있었다.
구수한 냄새로 자욱한 천막 안.
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얇은 막사를 뒤흔들고 간다.
“우라질.”
털어낸다고 털어냈건만 천장의 희뿌연 먼지가 배식받은 음식 위로 떨어져 내렸다.
입맛이 뚝 떨어진 표사들의 나직한 쓴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비단 음식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차에 멀쩡한 밥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없었다.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은밀히 번지는 소문 때문이었다.
은곡의 무공을 익힌 국주와 수뇌부.
그 자체로는 이해할 만하다.
어차피 대부분의 표사들은 천하대전을 겪은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숨기고 표사들을 구분해 위로 올라갈 자들을 선별한 것에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국주와 함께 표국을 일으켰던 표사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진 건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충성심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인의를 저버리고 인근 방파들을 공격한 악적.
보나 마나 외부에서 그와 같은 소문이 번지고 있을 테니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곤혹스러울 지경이었다.
대강 식사를 마친 용삼과 장일이 막사를 나섰다.
불어오는 찬 바람에 잿가루가 휘몰아치는 표국의 전경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용삼이 주변을 살피며 은밀히 전음을 보냈다.
[아직은 모르는 거 같지?] [백표대는 외곽 경계를, 철사대는 국주의 처소를 지키느라 이곳까지 눈을 돌릴 여유가 없을 거야.] [표사 중에서도 아는 자들이 있으니 소문이 수뇌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일세. 그 전에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수뇌가 알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은 자신처럼 외부에서 복귀한 표사들이다.
그때 용삼의 귀로 나직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용삼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무면산왕!’
주변을 둘러본 그는 애써 침착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외당주 유표의 침상 밑에 작은 궤짝을 묻어두었다. 쓸 곳이 있을 것이다.]용삼은 곧장 진무립의 의도를 눈치챘다.
행여 나중에 수뇌의 추궁이 있을 경우 모든 것을 외당주 유표에게 덮어씌우라는 말이다.
‘대체 뭔가?’
그는 마치 자신의 걱정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적기에 찾아와 해답을 주었다.
[네 가족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내 부하가 항시 널 지키고 있을 것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진무립과 함께 온 은무대원이 언제 어디서든 그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용삼은 고마움 가득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르구나.’
설령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그의 입장에선 그저 운이 나빴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천의 천주는 자신을 쓰고 버리는 패로 사용하지 않았다.
천하에서 가장 신비로운 단체.
상천의 수장이 한낱 표사에 불과한 자신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컥한 감정이 치솟았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표국을 나선 진무립은 단려화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우리와 손잡은 사람들은 괜찮겠죠?”
“내가 누구야?”
마치 자신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듯한 당당한 얼굴이다.
단려화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표정 왠지 좀 그래요. 체신을 좀 지켜봐요.”
“하하하. 당신 앞에서까지 그런 걸 지킬 필요는 없잖아.”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은 진무립의 부하가 아니었으니까.
진무립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식사나 하고 돌아가지.”
어깨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왠지 싫지 않았다.
그녀는 슬며시 쳐다보며 물었다.
“시전에 갈 거예요?”
“소문을 확인하기엔 그만한 장소가 없지. 그 전에 들를 곳이 있다.”
“어딘데요?”
“가보면 알아.”
진무립이 그녀를 데려간 곳은 엊그제 전투가 벌어졌던 동풍객잔이었다.
절대 고수들의 경천동지할 전투에 삼 층이었던 객잔은 절반이 폭삭 주저앉은 상태였다.
무너진 잔해 속에 허망한 얼굴로 집기를 챙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보시오.”
진무립의 말에 깡마른 중년인이 핼쑥한 얼굴로 돌아본다.
“꼴이 이래서 당분간 장사는 접었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시오.”
눈 밑이 시꺼먼 것을 보니 그날 이후 한숨도 못 잔 얼굴이었다.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니오.”
“그럼 무엇이오?”
진무립은 그에게 다가가 가져온 전낭을 내밀었다.
“이게 뭐요?”
시큰둥하게 전낭을 받아든 주인은 수북한 전표를 확인하곤 눈을 부릅떴다.
진무립은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본의 아니게 객잔을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약소하지만 객잔을 다시 세울 자금은 될 겁니다.”
주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무립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아아!”
눈앞의 잘생긴 청년은 그날 밤 흉신악살처럼 날뛰던 젊은이였다.
재차 예를 갖춘 진무립이 단려화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진무립과 단려화는 믿기지 않는 듯 멀뚱히 선 주인을 뒤로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단려화가 말했다.
“적어도 산동에서만큼은 누구도 상천을 산적이라고 욕하지 않겠네요.”
진무립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야.”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진무립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객잔을 떠난 두 사람은 이내 대로변에 들어섰다.
태산표국이 문을 걸어 잠근 이상 눈치 보며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길가에 가판을 깔고 앉은 노점상,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과 호객을 하는 상인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북적이는 거리였으나 싸늘한 바람 속에 감도는 공기는 오늘따라 유독 어수선했다.
대로변의 객잔을 찾아 들어간 두 사람의 귀에 긴장된 속삭임이 스며들었다.
“태산표국의 국주가 권성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는구먼.”
“나도 들었네. 태산표국이 주변 방파를 공격했던 것도 전부 그것을 감추기 위함이었다더군.”
단려화는 의미심장하게 웃는 진무립을 따라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혹시 그것도 들었는가? 상천에 대한 소문 말일세.”
“무슨 소문?”
“그들도 태산표국의 국주처럼 은곡의 무공을 익혔다는 게야.”
“그,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상천과 태산표국이 다툴 이유가 없질 않나?”
“그게 말일세. 천하대전 이전에 은곡이 둘로 갈라졌었다더군. 지금 상천의 모태가 된 자들은 전쟁을 반대했던 이들이고 태산표국의 국주는 전쟁에 참여했던 자들 쪽이었던 게야. 그러니 서로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지.”
“은곡이 다 같은 은곡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는군.”
귀를 쫑긋거리던 단려화가 전음을 보내왔다.
[대체 저런 소문은 어디에서 듣는 거예요?] [이가장을 비롯한 방파들이 흘리는 거다. 우리 상천이 정당성을 갖춰야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도 훗날을 대비할 수 있거든.] [훗날을 대비해요?] [세상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자들이 많지. 세상이 은곡을 다 같은 무인으로 취급했던 것처럼 백표대에 맞서 함께 싸웠던 방파들을 상천과 구분해 보지 않을 거야.] [싸잡혀서 무림 공적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상천을 옹호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현시점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직접 습격을 당했던 이가장과 전선문, 양소방의 무인들은 표국이 문 닫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거리에 소문을 퍼트리는 한편 제남의 모든 방파와 접촉하고 있었다.
특히 진무립의 경천동지할 무공을 직접 목도한 이가장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장주 이웅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상단주와 문주들을 만나러 다닌다는 것은 그를 호위하는 은무대원에게 보고받은 참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대화를 나누는 사내들에게 집중되자 진무립은 작게 입을 열었다.
“어쨌든 태산표국이 무너지는 건 그들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지.”
“당신이 악독하게 모든 것을 독식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단려화는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모르죠. 그럴 사람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따라다니면서 지켜봐야겠네요.”
진무립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무림의 평화도 지켜야 하고 말이지?”
마주 앉은 그녀의 입가에도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이에요.”
진무립은 짓궂은 눈빛으로 물었다.
“오대표국과 그 뒤에 숨어있는 자들은 나보다 더 위험한 놈들 같은데 말이야. 무림의 평화를 위해 그놈들을 따라다니는 건 어떤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듯 보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음. 그건 아니에요.”
그녀에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팔황문의 잔당보다 자신의 마음을 유일하게 뒤흔들 수 있는 진무립이 더욱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데 왜 음식이 안 나오죠?”
대답은 간단했다.
“아직 주문을 안 했으니까.”
“…….”
* * *
굳게 닫힌 창문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스며든다.
가구라곤 작은 침상과 덩그러니 놓인 탁자가 전부인 단출한 방이었으나 은수련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지하 밀실에 숨어있던 자신이 햇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진무립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 편한 또 다른 이유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몸은 좀 괜찮으냐?”
침상 옆에 멀뚱히 선 사내는 서진환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녀에겐 그마저도 반갑게 들려왔다.
“며칠 쉬고 복귀하겠습니다.”
“나는 괜찮은지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어색한 시간이 조용히 흘러간다.
임무 이외의 대화를 나눈 적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색함을 참지 못한 서진환이 몸을 돌렸다.
“이러다 온몸에 약 냄새가 배겠군. 창문을 좀 열겠다.”
그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성큼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빨려든다.
“명료와 이숙은 표국의 사내를 호위하고 있다. 왕무와 다른 녀석들은 이가장을 비롯한 수장들의 호위로 바쁘지. 나도 곧 돌아가 봐야 한다.”
“대주.”
“수련아.”
여전히 등을 돌린 서진환의 입에서 정말 모처럼 그녀의 이름이 나왔다.
은수련의 얼굴이 붉어지려는 찰나.
이어진 그의 말은 그녀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분께선 자신의 인생마저 포기하고 대업을 위해 인생을 바치고 계시다. 주군의 창과 방패가 되어야 할 우리에게 임무 이외의 것은 필요치 않다.”
국주의 실력은 물론이고 객잔에 나타났던 노인들을 비롯해 앞으로 더한 강자들을 상대할 진무립이다.
진무립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자신은 그에 앞서 목숨을 바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니까.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진환은 그녀와의 미래를 그릴 수 없었다.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돌아올 수 없는 감정의 강을 건너기 전에, 지금이라도 마음을 접게 만드는 것이 은수련을 위한 일일 것이다.
“행여 내게 다른 감정이 있다면 접어두어라.”
“…….”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편히 쉬어라.”
창문을 닫은 서진환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마치 천중수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정적 속.
울컥하는 감정이 물밀 듯 솟아오르며 그녀의 눈가에 뿌연 습막이 번졌다.
왠지 단려화가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런 말을 듣고 편히 쉴 수 있겠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