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189
◈ 189화. 하동교호 나명도
처소를 나선 진무립에게 시평이 찾아왔다.
“주군. 회남표국의 무인들이 산동의 경계를 넘었습니다. 늦어도 이레 안에 제남에 도착할 듯합니다.”
“숫자는?”
“대략 이백오십 정도 된다고 합니다. 복식을 보아 적표대와 흑살대가 오는 모양입니다.”
“빠르군.”
제남에서 회남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들은 생각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었다.
“이쪽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태산표국이 움직이는 일은 없을 거다. 각파에 흩어진 양산채 무인들을 이곳 이가장으로 옮기고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
행여 표국에 이변이 생긴다면 그곳을 주시하는 무인들에게 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예.”
그로부터 다시 사흘이 지난 날, 제남의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 * *
멀리 제남이 보이는 나직한 야산.
얼마 전까지 양산채 무인들이 숨어있던 자리에 한 무리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선 매부리코의 중년인이 멀리 제남의 성곽을 눈에 담았다.
“참으로 오랜만이군.”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달려온 탓에 내력을 회복하기 급급한 탓이다.
나명도는 일행 중 유일하게 백의를 입은 무인, 자신들을 이곳까지 안내한 백표대원의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까지 수고 많았네.”
운기행공에 집중하는 백표대원이 입을 열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명도의 안면에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만 편히 쉬시게.”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서걱!
그의 소매가 움직인다 싶더니 벼락같이 뽑혀 나온 검신이 백표대원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솟구치는 피가 눈 쌓인 지면을 붉게 물들여간다.
잠시 후, 세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내력을 갈무리하며 일어났다.
“가서 연락을 취할까요?”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흘리는 아름다운 여인은 회남에서 무영천퇴(無影千槌)의 무명으로 유명한 영요설이었다.
나명도는 고개를 저었다.
“제남은 산적 놈들이 장악했을 게야. 해가 지기 전에 섣불리 접근했다가 들통이라도 나면 눈을 속인 보람이 없지.”
지금쯤 적표대와 흑살대로 위장한 표사들이 곡부의 남쪽에 도착했을 것이다.
일급표사로만 선별했기 때문에 지척까지 접근하지 않는 이상 정체를 들킬 리는 없다.
양산채의 정예들이 이곳 제남에 있는 이상 그들의 눈을 속이고 지척까지 접근할 수 있는 산적은 없을 것이다.
“전투는 한순간에 끝내야 한다. 놈들이 알아차렸을 땐 늦도록 말이야. 지금은 회복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게 우선이다.”
창을 든 다부진 체구의 중년인, 일경관천(一競貫天) 조관의 눈이 기대감으로 번들거렸다.
“드디어 그놈과 승패를 가를 수 있게 됐군.”
태산표국의 좌황과는 지금까지 다섯 번을 겨뤄 한 번도 승패를 가리지 못한 관계였다.
얼굴이 대추처럼 붉은 사내, 적안호(赤顔虎) 해진이 들뜬 조관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계획이 우선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이곳까지 온 의미가 없어.”
“흥! 말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둘을 향한 나명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전투 중에도 그렇게 투닥거리면 내 손으로 죽여줄 것이다.”
“…….”
움찔한 대표두들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부드러운 주군이었으나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죽여버린다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밤이 오길 기다린다.’
나무를 얇게 벗겨낸 나명도는 품에서 비수를 꺼내 뭔가를 새기기 시작했다.
* * *
밤이 되자 바람이 거세지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지배하는 먹구름, 한점 달빛조차 들지 않는 제남의 성곽을 시꺼먼 그림자가 뛰어넘었다.
복잡한 골목 사이를 빠르게 나아간 흑의인은 순식간에 태산표국의 담장을 넘었다.
‘흑매. 어디냐?’
표사들이 모조리 빠져나간 터라 움직이는 것은 수월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은밀하게 여러 막사를 살핀 흑의인이 마침내 역이광의 막사에 스며들었다.
그는 역이광이 누운 침상 옆에 부복하며 전음을 보냈다.
[노존. 회남에서 왔습니다.]숨어있던 흑매가 나타나며 죽은 듯 누워있던 역이광이 마침내 눈을 떴다.
‘역시 나명도로군. 빨라.’
그는 침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벽히 회복한 것은 아니었으나 무공의 삼 할까지는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나아진 상태였다.
[국주는 어디에 있느냐?] [지금 제남 남쪽 성벽 아래 있습니다. 명하시면 곧장 들어올 것입니다.]역이광은 흑매에게 전음을 보냈다.
[너는 즉시 표국 주변을 살피고 회남의 아이들이 들어올 길을 찾아라.]적표대 역시 백표대처럼 은곡의 무공을 익혔다.
행여 전투가 길어져 보는 눈이 생기면 곤란하다.
전투는 신속하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단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
담장을 다시 세운 만큼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터, 소리만 죽인다면 들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밖으로 나간 흑매는 조용히 표국의 담장을 따라 주변을 확인했다.
멀리 정문이 보이는 가옥, 담장 안쪽의 살짝 열린 창문으로 두 개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이 시간에 왜 주변을 살피는 거지?’
고생하는 양산채 무인을 대신해 이곳을 지키던 단려화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무립에게 일단 알려야겠어.’
조용히 뒷문을 나선 그녀는 이십 장 밖의 안가에서 대기 중인 양산채 무인을 찾았다.
문이 열리자 뜨뜻한 화롯가에서 잠을 자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단려화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무슨 일은 아닌데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요. 표국 안에서 누군가 외곽을 살피고 돌아갔어요.”
단려화의 예리한 감각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다.
상황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으나 그녀가 말한다면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즉시 알리겠습니다.”
뒷문을 연 사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칼바람이 몰아치는 성벽의 그림자 속.
표국에 갔던 흑청이 돌아오자 나명도는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적표대원 열 명이 봇짐을 열어 백의로 갈아입었다.
“제남의 지리는 숙지했느냐?”
“예. 국주님.”
“이가장을 습격해라. 목표는 장주의 목이다.”
“예.”
이가장에는 상천의 무인들이 있다.
자신들은 그들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미끼.
가면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무공을 익힌 순간부터 언젠가 임무 중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각오한 바였다.
나명도는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희의 가족은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주마.”
그 말에 마지막 남은 걱정거리가 사라진다.
“감사합니다.”
백표대로 위장한 열 명의 적표대원이 순식간에 성벽 위로 사라졌다.
‘일각이라도 좋다.’
백표대원에게 들은 무면산왕의 심계는 자신이 상대해온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적어도 이 정도 미끼는 던져야 조금이라도 시선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던 나명도는 백을 헤아렸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작은 화롯불이 은은히 빛나는 막사.
마른 천으로 도신을 닦는 악계화의 눈빛이 복잡하다.
‘기우였는가.’
표사들이 떠나고 제법 시일이 흘렀건만 아직 아무런 일이 없었다.
날카롭게 정비한 도신을 도집에 넣었을 때, 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존께서 찾으십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느냐?”
“곧 회남표국의 지원이 도착한다고 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악계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다.”
휘장을 걷고 나가니 좌우의 막사에서 구표걸과 좌황이 걸어 나왔다.
“드디어 도착했군.”
“다른 노존께서는 아직인가?”
“곧 오시겠지. 일단 가보세.”
회남표국의 정예와 다른 팔존이 도착한다면 고대하던 복수를 이룰 수 있다.
그들이 중앙의 커다란 막사 앞에 도착했을 무렵, 우측의 어둠 속에서 자영의 부축을 받은 청금환이 나타났다.
“국주님을 뵙습니다.”
세 명의 대표두는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청금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당당히 폈다.
비록 내공은 잃었으나 나명도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들이 막사 앞에 도착했을 때, 나명도와 부하들이 차례로 남쪽의 담장을 넘었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란 무인들이 일제히 막사를 뛰쳐나왔다.
청금환이 손을 들어 달려드는 그들을 제지했다.
“멈춰라. 회남의 형제들이다.”
그 말에 우뚝 멈춰선 표사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드디어 기다렸던 지원이 도착한 것이다.
양 측의 대표두들이 서로를 향해 예를 갖추는 가운데 나명도가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일세. 금환.”
나명도의 눈동자가 빠르게 청금환의 전신을 훑었다.
청금환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 잘 지냈는가?”
“나야 늘 그렇게 지냈지. 몸은 좀 어떤가?”
“움직일 만하네.”
그때 막사 안에서 역이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운데 밖에서 그러지 말고 안으로 드시게.”
“알겠습니다. 노존.”
청금환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표사들을 내보낸 뒤 비어있는 막사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저들을 그리로 안내해주어라.”
자영은 즉시 포권을 취했다.
“예.”
부하들이 회남표국 무인들을 안내하는 사이 역이광과 두 명의 국주, 여섯 명의 대표두가 막사로 들어갔다.
대전을 대신해 사용할 목적으로 세운 막사는 족히 스무 명은 들어와 앉을 만큼 넓었다.
나명도와 대표두들이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노존.”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네. 앉게나.”
원형 탁자의 좌우로 여덟 명의 무인들이 갈라진다.
악계화가 좌황을 따라 좌측으로 움직이려던 찰나, 조관이 한발 앞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에 악계화는 자연스럽게 우측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군.”
조관의 말에 좌황이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상천의 애송이에게 당했다고 하던데 몸은 좀 어떤가?”
좌황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같은 무공을 익힌 상대로서 조관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의식해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크게 걱정할 것 없네.”
별것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와 행동.
그러나 자리에 앉는 순간 악계화의 가슴엔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엄습하고 있었다.
‘뭔가 있다!’
안쪽의 역이광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청금환과 나명도가 붙어 앉았고, 그 옆에는 좌황과 조관이 앉았다.
우측으로 구표걸의 곁에는 교소를 흘리는 영이설이, 자신의 옆에는 적안호 해진이 앉는다.
먼저 움직인 태산표국 무인의 뒤를 저들이 따라붙은 듯한 모양새다.
악계화는 이 상황을 결코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함정!’
설마 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머리가 얼음물에 처박은 듯 차가워졌다.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어야 했는데.’
역이광이 표사들을 내보내라고 했을 때, 왠지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영에게 국주를 지키라고 부탁했었다.
모두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상대가 팔존이었기 때문에, 심증만으로 불경한 마음을 드러낼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동료들을 훑은 악계화의 눈에 짙은 어둠이 깃들었다.
‘……무기가 없다.’
도를 차고 온 자신과 맨손으로 싸우는 구표걸은 상관없었으나 좌황이 창을 두고 온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역시 하동교호야.”
역이광이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나 혼자선 역부족이다.’
악계화는 손으로 콧잔등을 긁는 척 입을 가리며 전음을 보냈다.
[구표걸. 이건 함정이다. 국주님을 지켜야 한다!]전음을 보낸 악계화는 이내 자신의 실책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구표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